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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방 전후 - 1940-1949
유종호 지음 / 민음사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지금은 70살이 넘은 노학자가 자신의 유소년기(대략 6살에서 15살까지)에 해당하는 해방전후기(1940년~1949년)의 기억을 복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36년간의 일제치하에 있다가 해방을 맞고, 해방이후에도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혼란했을 그 시절을 실제로 산 사람이 당시 소년의 눈으로 해방전후의 생활상을 복원한 것이다.
내가 뒤늦게 해방전후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히 읽었던 소위 ‘운동권적 성향’의 역사책을 통해 내가 이전에 알고 있던 막연한 역사적 지식과는 너무나도 다른 우리의 현대사를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방면에 더 관심을 가져 책을 몇권 읽다 보니 역사적인 fact는 하나인데 그것을 상반되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우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격변기였던 해방전후의 시기는 더욱 그러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실제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의 눈으로 당시 일어났던 일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한 책은 없을까하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하던 중에 신문지상에서 ‘나의 해방전후’를 접하고 읽게 된 것이다.
격변기를 실제로 겪은 사람의 객관적인 fact의 서술 -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기대한 것이었고, 이 책은 그 기대에 너무나도 딱 들어맞는 책이었다. 저자는 ‘들어가면서 - 기억의 복권을 위하여’라는 책의 서두에서 이 점에 관하여 무척 공감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의 사고는 개인적인 경험의 틀을 벗어나기 어렵고 실제로 겪지 못한 과거의 일을 떠올리거나 이를 평가할 때 당시의 역사적 배경이나 생활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주위에서 주워들은 단편적인 생각만으로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책을 읽을 때 종종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은 일상적이고 당사자들은 별의미도 부여하지 않았을 행위가 예상치 못한 큰 역사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거나, 또는 그러한 파장조차 없이 단순히 후세 역사가들이 그러한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많지 않을까하는 생각말이다. 그래서 실제로 역사적 사건의 실제 상황을 포착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거시적 역사와 미시적 역사의 불일치하는 지점을 찾아보고 싶은 욕구랄까.
물론 이 책을 읽고 그 욕구를 모두 충족시킨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내가 기대한다고 생각했던 것에 충실했고, 다만 내가 객관적 사실의 진술보다 내가 보고자 했던 어떤 것 - 기술된 역사와 실제 사건이 달랐다는 진술 등 - 을 읽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책을 읽다보면 부모님을 통해 조금씩 들었던 당시의 생활상이 저자의 놀랍고도 성실한 기억의 복원작업을 통하여 많은 부분 재생된다. 그리고 저자는 정말로 객관적으로 당시의 생활을 그려내려고 노력하고 있고, 글 중간중간 드러나는 그의 삶이나 인생관을 통해 정말 그가 객관적으로 기억을 복원했으리라는 점에 대한 강한 신뢰가 생긴다. 복원된 기억 중 일부분은 동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활했었나 하고 쉽게 믿기지 않는 것도 있고, 불과 십수년 전에만 해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일도 있고, 지금도 남아 있는 일도 있다. 그것이 아마 시대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 겨우 30대를 바라보고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추억해보는 것도 무척 의미가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불완전한 기억이 더욱 흐려지기 전에 어린 시절을 조금씩 기록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