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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평전
윌리엄 J. 듀이커 지음, 정영목 옮김 / 푸른숲 / 2003년 4월
평점 :
역사의 전개에 있어서 특정 개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늠해보고 싶다면, 어쩌면 호치민 평전을 읽어보는 것이 유익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영웅에 대한 맹목적 숭배나 신격화가 역사를 왜곡하고 퇴보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호치민이 걸어온 인생을 읽다보면, 집념으로 뭉친 인간의 끝없는 전진 앞에서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나 베트남의 독립을 쟁취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젊은 청년이 소련에서 열린 코민테른에서 식민지가 된 아시아 국가들의 독립을 의제화시키려는 노력은 가히 눈물겹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문제를 앞에 두고 절차와 순서를 뛰어넘어 의제화해나가는 과정은 사명감이 아니면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다. 동조하고 뭉쳐가며 세를 확장해야하는 조직의 틈바구니에서 그는 가야할 길을 결코 잊지 않았다.
숱한 위장과 탈출, 극한 긴장과 도망이 연속된 삶이었지만, 경직된 사고가 아니라 유연하고 실용적인 태도를 견지한 점은 호치민의 반대편에 선 이들에게도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되었다.
책을 읽으며 베트남 전쟁의 이면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중국과 소련의 공산주의 두령을 향한 경쟁과 경계, 사이공 정권의 무능, 아이젠하워, 케네디, 린든 B 존슨, 닉슨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실책, 호치민과 레두안 등 북베트남의 차세대 권력 지형의 변동, 한국전쟁과 분단 등이 얽히고 섥히며 만들어낸 사안들을 읽으면서, 단견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것의 위험성을 다시 한번 각성하기도 했다.
호치민을 공산주의자로 볼 것인가, 민족주의자로 볼 것인가는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실현하기 위해 베트남의 독립을 지향했다기보다는 베트남 독립을 위해 공산주의를 이용한 측면이 있는데다, 단순한 민족주의자로 치부하기에도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애국심을 고취하거나 베트남 민족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데도 일부 열중했지만, 국제적 공산주의 연대를 구상하는데도 상당히 열심을 냈기 때문이다.
호치민에게 배울 것은 '베트남 독립'이라는 목표 앞에서, 끊임없이 현장과 현실을 돌아보는 한편 국외적으로는 냉정한 평정심을 바탕으로 유려한 외교를 펼쳤으며, 안으로는 소탈한 지도자로서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내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균형감각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이 책의 미덕은 사료를 바탕으로 호치민을 영웅화하거나 윤색하는 대신 그의 행적을 쫓으며 인간과 역사의 관계를 덤덤히 그려냈다는 점일테다. 사심 없이 민족을 위해 일평생을 바친 호치민 같은 지도자가 우리에게도 있었더라면 한반도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읽는 내내 가슴에 묵직한 돌을 얹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가능성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어렵고 절망적이겠지만,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최신식 대포만큼 강한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민족주의입니다! 그힘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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