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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 / 피에르 르메트르  / 다산책방 (2012)

 

박찬욱 감독이 떠올랐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JSA>같은 대중영화를 찍을 수도 있고, <올드보이>처럼 강렬하면서도 대중과의 접점을 놓치지 않느 영화로 완성해내기도 하고, <복수는 나의 것>처럼 어떠한 것과도 타협하지 않은 채 자신의 취향과 주제의식을 끝까지 밀어붙일 줄도 아는...그 박찬욱 말입니다.

 

단순 비교나 직접적으로 대입을 하기에는 조금 억지스럽지만, 피에르 르메트르의 두 작품 <알렉스>와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를 연이어 읽고나니 어쩔 수 없이 그가 떠오르더라구요. 물론 <알렉스>가 <올드보이>이고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가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박찬욱의 작품들이 장르와 예술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일견 전혀 다른 작품들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어쩔 수 없이 박찬욱의 인장이 새겨진 그만의 작품이듯이 르메트르의 두 작품 역시 그러했습니다. 장르도 풀어가는 방식도 달라보이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역전되며 주인공의 실체와 정체성이 밝혀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 주인공이 여인이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혹은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남성(혹은 남성들)에게 수난을 당하고 이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에 나선다는 점에서 결국 르메트르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알렉스>가 베르호벤이라는 경감을 또다른 주인공이자 화자로 내세워 알렉스의 궤적을 쫓고 그녀의 비밀을 파헤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좀 더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작품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아무려나 알렉스는 연쇄살인범이고, 베르호벤은 그녀를 쫓는 '탐정'인 것이니까요. 저같은 독자들은 베르호벤을 따르며 그의 입장에서 함께 추리하고 알렉스의 비밀을 알아가며 그녀에 대한 (호기심, 분노, 동정, 이해 같은) 복합적인 감정을 차례로 분출하면 되는 겁니다.

 

그에 비해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의 문학성은 조금 더 두드러집니다. 사실 이 소설을 장르문학 혹은 추리소설의 한 줄기로 보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조차 심도깊게 논의해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소피와 프란츠라는 두 인물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사건을 끌어가는 화자나 이 두 인물을 추적하고 파헤치는 관찰자가 따로 없습니다. 인물들의 내밀한 심리는 두 주인공의 진술과 독백을 통해 가감없이 드러나고, 사건의 개요와 전개 또한 두 주인공이 전적으로 이끌어 갑니다. 두번째 챕터에서 밝혀지는 충격적인 사건의 전모와 주인공들 사이의 비밀 또한 제3의 인물을 통해 밝혀지는 것이 아닌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우리는 일방적으로 통보받을 뿐입니다. 이러한 형식과 전개는 흔한 대중 추리소설의 흐름에서 확실히 벗어나 있는 것이며, 이 낯설음 때문에 저같은 독자들은 이 소설을 어찌 읽어내야 할지 당황스러워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놀랍게도, 이러한 낯설음 때문에 이 소설이 낯설어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는 여느 추리소설들보다 잘 읽히며, 그 끝이 궁금해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한 채 밤을 지새우게 되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이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궁금증의 정체가 소피의 정체성에 관련된 점이라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인생이 조정당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내면조차 갈기갈기 찣겨진 채 너무나 사랑하던 자신을 부정하게 된 주인공이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 스스로가 가해자이며 피해자이고, 스스로가 범인이자 탐정인 기묘한 이야기. 이것이 바로 이 소설이 문학적이면서도 지극히 장르적인 이유이며, 낯선 듯 하면서도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아닐까요?  

 

후반부에 일어나는 또 한번의 반전 덕분에 이러한 장르성은 더욱 더 두드러져 보이며, 그 덕분에 결국 이 작품의 정체성은 확고해집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작가는 일말의 모호함을 남기며 소피와 프란츠 중 누가 진짜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마지막 판단을 내려주지 않습니다. 이 역시 지극히 장르적인 결말인 동시에 너무나 문학적인 결말이니...우리는 끝내 이 작품의 정체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이처럼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는 여느 작품들처럼 장르에 대한 규정이나 캐릭터와 플롯에 대한 분석이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소피와 프란츠라는 두 인물의 얽히고 설킨 기막힌 인생 자체에 대해 생각케 하는 소설입니다. 아주 단순하지만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만을 남기는 것이지요. 내가 프란츠라면? 혹은 내가 소피라면? 이라는. 그러한 질문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보고, 스스로가 누구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고민해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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