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경제학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영욱 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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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는 단박에 우리를 사로잡았다. 우물 안 개구리 같던 한국을 단박에 세계의 중심국가를 끌어올리는 주술 같았다. 모든 것은 세계화로 향했다. 모든 수사는 세계화에서 비롯되고 파생됐다. 그러나 그 세계화가 줄기차게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다. 양극화는 심화됐고, 격차사회로 진행됐으며, 돈이 모든 가치를 집어삼키게 됐다. 지구촌이라는 말로 세계화를 설명했던 수사는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세계화는 화폐화의 다른 말이었던 것이다.

 

행복의 경제학은 그런 세계화의 거짓부렁을 꼬집는다. “세계화는 인간과 환경을 희생시켜 자신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각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는 초국적 기업의 작품이다. 이 과정에 세계의 분열과 갈등에 대한 책임이 있다.”(p.141) 그리고 우리의 반성과 성찰을 유도한다. 그것이 오래된 미래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이기에 설득력을 더한다. 헬레나는 우리가 어떤 준비나 논의 없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세계화를 발가벗겨 놓는다. 기만적인 언어와 뉴스피크(정치선전용의 모호하고 기만적인 표현)를 통해 지구인의 삶 깊숙이 들어온 신자유주의의 폭주와 폐해에 대한 총정리라고 해도 좋겠다.

 

이 책의 미덕은 세계화의 폐해에 대한 실증적 지표와 설득 뿐 아니라 확실한 대안을 내놓는다는 점이다. 지역화. , 마을공동체의 회복이다. 지역정체성과 지역경제, 지역지식이 앞으로의 시대를 이끌어가야 할 근거를 제시한다. 세계화는 그 수사와 달리 공동체를 파괴했다. 그러나 인류가 살아가기 위해서 공동체는 필수적이다. 인간적 유대가 필요하다. 공동체에서 살아 숨 쉬는 역할 모델을 만나고 사랑을 배운다.

 

세계의 붕괴를 막으려면 지역적 상호의존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즉 대규모에서 인간적인 규모로 인위적 소비문화에서 사람과 자연이 빚어내는 문화로.”(p.78)

 

그것은 우리가 아는 마을이다. 관계와 이웃이 다시 살아난 마을공동체를 통해 세계화에 초토화된 지구의 삶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헬레나는 조목조목 설명한다. 성장과 세계화의 이름으로 파괴되었던 문명은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회복될 수 있다. 지역화 즉 마을화는 지금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종류의 위기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경제와 환경은 건강을 되찾을 것이고, 도시화의 불건전한 조류를 막을 수 있으며, 문화적 다양성이 회복될 것이다. 종족 갈등이나 폭력도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지역화를 향해 나아가는 게 현재의 세계화를 지속하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들고 사회환경적 손실도 적다.”(p.35)

 

성장의 이름으로 진행됐던 세계화는 경제의 집중을 불러왔다. 기업들만 살이 쪘고, 노동자는 거리로 내몰렸다. 이 책이 내세운 지역화는 그 집중이 불러온 폐해를 물리치고 행복의 경제학으로 갈 수 있는 방법론이다. 곧 경제시스템의 전면적인 전환이다. 그것은 당연해 뵌다.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기존 경제 체제를 살짝 수정하는 정도로는 지금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스템 자체가 문제라는 점은 이미 2008년 경제위기로부터도 명백해 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관성이 지금의 체제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유감이다.

 

지역화는 세계화된 기업자본주의에 대한 체계적이고 폭넓은 대안이다. 경제활동의 규모를 근본적으로 줄이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국제무역의 철폐를 의미하거나, 자급자족을 위해 노력하자는 건 아니다. 단지 보다 책임 있고 보다 지속 가능한 경제를 발전시키고,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들을 집 가까이에서 생산하자는 것이다.”(p.36)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맛있는 두부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금 도시의 많은 사람들은 포장두부에 익숙해져 있다. 식품 대기업들의 포장 두부가 마트를 비롯한 시장을 장악한 까닭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짜 두부라고 보기 어렵다. 유통기한 보름의 각종 화학첨가물과 향이 가미된 짝퉁이다. 우리는 진짜 맛있는 두부를 잃었다. 소규모 가내수공업이 갓만든 두부의 맛은 마을 단위에서만 가능한 무엇이다. 지역화가 필요한 것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않고 무조건 덩치를 키우고 성장해야 한다는 논리가 만들어낸 기형아가 포장 두부인 셈이다.

 

행복의 경제학은 안정적인 지역경제로 향해야 한다는 근거를 명확히 제시한다. 생태적·사회적 파괴로 치닫고 있는 지금 상황을 되돌리기 위함이다. 즉 경제활동을 인간적·생태학적 욕구에 적응시키려는 것이다. 마을기업 등 지금 마을공동체와 함께 형성되고 있는 마을경제의 구조가 자리를 잡아가야 하는 이유다. 소수의 거대 기업은 극히 소수의 이익만을 위해 복무한다. 공동체 따윈 안중에 없다. 대다수 노동자나 주민의 삶이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화가 급선무다. 지역화 혹은 마을화는 그래서 경제민주화의 다른 이름이다.

 

경제민주화가 경제 주체들이 주인이 되는 것이라면,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들 손에 경제활동을 맡기는 지역화와 바로 연결이 된다. 안정적인 지역경제는 협동과 친밀, 상호의존적 공동체의 근원이 된다. 지역공동체가 커지고 강해짐으로써 사람들의 삶도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행복의 경제학은 마을이 대세가 돼야 함을 확인하는 책이다. 그곳엔 진짜 삶이 있다. 세계화라는 명분에 의해 노예화된 삶은 바뀌어야 한다. 에너지, 식량과 농업, 교육, 의료, 미디어 등이 거대기업이 아닌 인간을 위해 작동해야 한다. 마을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나고 자란 곳에서 각자의 삶이 뿌리내림으로써 우리는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마을화(지역화)는 경제학이 인민의 진짜 행복을 위해 복무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성장에 대한 맹목적 인식을 아직 깨기는 어렵다. 성장해야만 분배도 있을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의 주술에 주화입마를 입은 까닭이다. 그렇다고 이웃 없이 관계없이 살아가는 무연사회가 주는 끔찍한 풍경을 더 이상 접하는 것은 두렵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책을 덮고 나서 어떤 방식의 행동과 실천을 하느냐가 내 삶과 지구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역 제품을 사세요라는 캠페인,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엇이다. 나는 이것부터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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