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 버지니아에서 한국인 유학생이 총기 난사를 했던 사건. 그 비극 앞에 어이 없게도, 그가 한국인이라서 국가적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던 주장도 있었다. 비극 앞에 있거나 그 사건으로 경악한 많은 미국인들도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문제삼지 않았다. 실제로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그가 단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으며, 그런 그를 제대로 보듬지 못한 사회가 문제가 됐을 뿐.   

그런 것으로 따지자면, 지구상의 남자들은 모두, 죽어 마땅하다. 없어져야 할 족속이다. 세상의 거의 모든 악과 폐해의 당사자는 거의 남자들이다. 그렇게 따지자니, 우습긴 한데, 그만큼 남자들은 늘 문제를 일으킨다. 영원히 철들지 않는다는 말은, 진실에 가깝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그런 남자들의 심리를 보여준다. 왜 그들은 좋지도 않다는술을 입으로, 위로, 간으로 퍼붓는 것일까. 오죽하면 이런 말도 있을까. “한국 성인 남자는 여가의 절반을 술을 마시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술을 깨우는 데 사용한다.” 한국 성인 남자들은 대부분 재미를 모른다. 아니, 어떻게해야 재미가 있는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혼자 있는 법도 모른다. 그래도 꼴에는 강한 척 해야 '가오'가 선다.  

제목부터 자극적인 이 책은, 술술술 읽힌다.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그것이 대한민국의 성인 남자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혹은 그 남자를 지겨워하거나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여성들에게도 이해도를 높여준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재미와 감탄을 모르고 살아가는 남자들을 위한 처방전 혹은 그런 남자들을 알고 싶은 여자들의 참고서이다. 

무엇보다 저자인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내 이야기'가 살갑다. 오밀조밀 궁시렁궁시렁 신변잡기에 불과한 그 이야기가 왠지 살갑다. 시시콜콜하지만, 수다의 힘은 의외로 세다. 여자들의 것이라고 치부했던 수다는 의외로 많고 큰 효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것도 술보다는 수다다. 저자의 수다가 살가운 것도, 저자가 친근하게 여겨지는 것도 책 속의 다종다기한 수다 덕분이다.  

사실 지금은 우울한 시대다. 20대부터 벌써 재테크에 미치라고 설파하고, 어떻게든 스펙을 좀더 높이 쌓아 어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알랑방귀를 낀다. 30대라고 다르진 않다. 현실이라는 이유로 부동산, 재테크, 육아 얘기만 나부낀다. 자신의 이야기는 쏙 빠졌다. 내 고유의 서사를 지운 삶인 셈이다. 어떡하면 재미가 있는지 모르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의 미덕은 무엇보다 '감탄하기'의 중요성을 알려준 점이다. “식욕, 성욕은 인간의 본질적 욕구가 아니다. 감탄이 인간의 본질적 욕구다”(p.283) “누가 나보다 더 분명하게 우리의 삶의 목적을 설명할 수 있다면 나와보라! 우리는 감탄하려 산다.”(p.293) 그것은 아마도, 세상에 대한, 작고 사소한 것에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열라는 말이다. 그러면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고, 정서적 경험이 풍부할수록 타인과의 관계도 유려해진다.

감탄할 줄 아는 것은 재미의 다른 말이다. 재미가 없으니 정치인 욕이나 하고, 폭탄주 돌려서 취하고 빨리 망가지는 거다. 많은 남자들은 그런 퇴행적 온정주의에 사로잡힌 노예들이다. 일 하는 것도 힘든 마당에 술까지 힘들게 마시는 소아병적 퇴행. 그럼에도 알코올이 힘을 발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비슷비슷한 처지이기 때문이다.   

책은 남자들에게 익숙지 않은 정서적 공유도 강조한다. 아내에게든 자식에게든 친구에게든 뭐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공유하면 살 길이 열린다.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표현도 그런 얘기를 터 놓음으로써 치유 받고 싶다는 마음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책은 알려준다. 사회적 지위? 기똥찬 집과 차? 그것은 본질이 아니다.  “당연히 여겨지는 어느 회사의 부장, 사장, 교수와 같은 내 사회적 지위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내 본질과 상관없는 것들이다”(p.100)  

그러면서 저자는 커밍아웃한다. “생각해보라! 도대체 언제까지 사장할 것인가. 언제까지 교수일 것인가. 나는 어느 대학의 교수나 어느 위원회의 위원장이 아니다. 나는 슈베르트의 노래를 따라 부르면, 내 노래에 감동하여 눈물 흘리고, 아내의 관심이 조금만 식어도 쓸쓸해하고, 하늘거리는 주름치마에 가슴 설레어 한다. 그게 진짜 나다.”(p.100) 아내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 마냥 침울해지는 소심한 남자!

다시 말하지만, 이 시대의 문제는 모두 남자의 문제다. 가족에서 더 이상 남자(남편)는 필요없게 됐다. 기러기 아빠가 이를 대표하지 않나. 남자들은 돈'만' 버는 기계다. 그래놓고선 고작 하는 위안이 가족을 위해, 아이를 위해 희생한다? 참으로 불쌍한 족속이 아닌가.  

저자의 남자 다독이기는 별다른 게 아니다. 그럼에도 그 심리적 파장은 크다. 나도 그렇지만 아마도 이 땅의 남자들이 너무 획일적으로 길들여진 탓일 게다. 아니, 그보다 더 크고 중요한 사회적 문제도 많은데, 일일이 남자들 심리를 파고들 건 뭐야, 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우리는 다른 문제도 면밀하고 정교하게 접근할 수 있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남자들의 문화심리를 다뤘는데, 한편으로 (남자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법, 재미있게 사는 법을 알려주는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허섭하게 야동틱한 이야기말고 생동감 있는 에로틱한 수컷의 향기를 풍기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그렇게 되면 감탄도 절로 나올 것이며, 우리는 자신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여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시간을 이겨낸 모든 것은 예술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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