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행복이 커지는 가족의 심리학 토니 험프리스 박사의 심리학 시리즈 1
토니 험프리스 지음, 윤영삼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일독을 가장 권하고 싶은 대상은 결혼을 앞둔 남녀이다. 부모가 되고 싶다면, 행복한 가족을 만들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게 가장 첫번째라고 끊임없이 강조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양인이지만, 그의 당부는 그릇된 효윤리에 꽁꽁 강박되어진 한국사회에 더욱 적절한 충고이다.

두 눈에 콩깍지 씌워진 신혼임에도 불구하고 남녀가 대판 싸웠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혹은 결혼을 앞두고 사랑하던 연인이 갑자기 의견충돌로 헤어진다면 그 이유는 또 무얼까? 십중팔구는 당사자인 두 사람의 문제라기 보다 그들을 둘러싼 가족이 발단일 것이다.

나와 옆지기만 해도 결혼을 앞두고 양가에 불려다니며 온갖 요구에 시달려야 했다. 누구를 주례로 모실 것인가? 결혼식장은 어디로 결정할 것인가? 결혼하고 어디에 살 것인가 등등 하나부터 열 가지 양가 어르신의 훈수를 받아야 했다. 시댁은 기독교를, 친정은 천주교를 믿으며, 시댁은 일산에, 친정은 하남에 살고 있다 보니, 무엇 하나 의견이 맞는 게 없었고, 그 차이를 조율하려 애쓰다 옆지기와 내가 노상 싸우게 되니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결국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하기로 결정하고 밀어붙였다. 교회도 성당도 아닌 결혼식장에서, 목사님도 신부님도 모 회장님도 아닌 범민련 선생님의 주례로 결혼할 것을 강행했고, 결혼식장도 신접살림도 모두 서울로 정했더랬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들었던 부모님의 비난은 책에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너 없이 어떻게 살란 말이냐?" "더 이상 우릴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냐?" "네 삶을 살 권리가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게다가 시아버님은 저혈압이 악화되었고, 친정어머니는 혈당이 치솟아 머리싸매고 드러누우셨더랬으니, 우리는 불효자라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결혼에 성공하긴 했지만,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시어머니도, 친정어머니도 집 열쇠를 요구하셨다. 둘 다 직장 다니느라 바쁘고 멀리 살아 시간 맞춰 얼굴 보기 힘드니, 아예 우리 없는 낮에 들러 반찬을 놓고 가시겠다는 거였다. 우리는 집주인이 싫어한다는 핑계를 대고 이를 거절했다(안타깝게도 나의 작은새언니는 거절을 못해 이 문제로 어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마음 고생을 했다). 또한 양가 집안은 우리가 결혼하기 전과 똑같이 양가의 대소사에 모두 참석하길 희망했고, 그 뜻을 따르자면 토요일엔 시댁에, 일요일엔 친정에 가야 했고, 우리 둘의 여유로운 사생활은 가지기 힘들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마로를 가지고 입덧이 유난스러워 엘리베이터만 타도 멀미를 했던 터라, 주말 방문을 면제받기 시작했고, 지금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양가 나들이를 하지 않는 편이다.

우리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우린 양가 부모님께 참 야박한 자식이고, 이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시부모님의 문제에 같이 휩쓸려 우리가 허우적댄다면, 자식에게 평생 헌신하시고 껍데기만 남았던 어머니의 맹렬한 애정과 가부장의 권위밖에 모르는 아버지의 변덕에 휩쓸렸다면, 우리는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을 모르는 나약한 존재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사실 아직도 우린 자신있게 부모로부터 독립했다고 말하지 못 하며, 마로와 해람에게 바람직한 부모인지도 자신없다. 하지만 부모는 가족의 건축가라는 저자의 호통처럼 보다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이 책은 우리 집의 울타리가 무엇인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민 하나.
우리는 우리의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부모는 자식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까? 평생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거나, 자식을 지배하는 대상으로밖에 알지 못했던 그들인데? 그들의 노후는 너무나 황량하여 자식에게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면 혼자 서기 힘든 존재인데?

고민 둘.
시아버지의 저혈압도, 시어머니의 관절염도, 친정아버지의 신장투석도, 친정어머니의 당뇨도, 모두 가족의 불행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의 불화로 인해 소아암이 걸린 여자아이와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암이 걸린 청년의 이야기가 못내 마음에 걸린다. "내가 아프면 이제 그만 날 받아들여줄거지?"라는 그들의 항변처럼, 우리의 부모님도 지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자식에게 호소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 셋.
무능력하고 외로운 부모님의 모습을 반면교사 삼아 우리 부부의 노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마로와 해람이를 우리 품에서 떠나보낸 뒤, 우리 부부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물질적으로는 국민연금 외의 경제적 보험책이 있어야 할 것이고, 정서적으로는 우리 부부 공동의 취미가 있어야겠다. 최고의 노후 대책은 부부애라고 하지 않는가.

고민 넷.
"아기 때는 분명 특정한 행동이나 특성 때문에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만의 고유성, 숨쉬고 생각하고 느낀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랑하는 이유가 된다"는 말, 잊지 말자. 마로는 마로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고, 해람이는 해람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마로가 학교에 들어가면 저 글귀를 꼭 잘 보이는 곳에 써놔야겠다.

사족.
<아이를 정말 위한다면 칭찬을 아껴라>를 읽고 반감을 가졌으나, 올바른 칭찬이 무엇인지 몰라 더듬거렸는데, 이 책에서 두 가지 단서를 얻었다. 하나. 가족 개개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를 중점적으로 긍정하고, 칭찬하고, 격려하라. 둘. 긍정과 칭찬을 구별하라. 긍정은 가족구성원의 독특한 측면, 즉 사물을 이해하는 관점, 일을 처리하는 방식, 옷 입는 감각, 외모, 사고방식 미소 등 그 사람의 특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행위다... 가장 바람직한 칭찬은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노력을 높이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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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6-10-22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 공감가는 말이네요. 한국에서 부모와 자식간의 문제의 많은 부분이 경계(boundary)가 불분명한데서 나온다고 하더군요. 상담에서 자주 지적하는 사항이라고 합니다.

클리오 2006-10-22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쩔 수 없이 끈적한 애증의 속에서 허우적대는 부모자식들에게 공감되는 글이긴 합니다만, 조선인님의 고민처럼 우리가 독립할테니 부모님도 독립하십시오..라고 말할 수 없으니, 참.. 공염불인가요..

水巖 2006-10-23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발 좀, 하는 부모들이 더 많을것 같은데요.

수퍼겜보이 2006-10-24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선택에 박수를 보냅니다. 혼자 참아서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그 영향이 자신 또는 자신의 자녀에게 갈 수밖에 없고, 참다 폭발하는 것보단 애초에 선을 긋는 게 당연히 현명하고 올바른 선택이 아닐까요.
수암님 이 책에서 부모들은 제발 좀 독립하라고 함으로써 자식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면서도 사실은 의존적인 자식을 바라는 모순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동감이구요.

조선인 2006-10-24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마천님, 경계가 담은 아닌데, 오해되는 경우가 많죠.
클리오님, 희생밖에 몰랐던 부모님들에게 새로운 낙을 어찌 찾아드릴지 그게 걱정입니다.
수암님, ㅎㅎ 역으로 그런 문제도 있군요. *^^*
수퍼겜보이님, 저도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은 좋은 전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