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갯벌의 다정한 친구가 되기로 했다 - 35년 동안 갯벌에서 만난 생물과 사람들 최고의 선생님 2
김준 지음, 맹하나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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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갯벌의 다정한 친구가 되기로 했다](김준, 위즈덤하우스)
-부제: 35년 동안 갯벌에서 만난 생물과 사람들

어릴 때는 갯벌에 관심이 없었다.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도 했고, 자연히 나 아닌 주변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교사가 되지 않았다면 평생 갯벌에 관심을 안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교육과정이 바뀌기 전 3학년 국어 교과서에 갯벌이 나왔다. 작년에 3학년 담임을 하면서 갯벌에 사는 생물들이 등장하는 그림책을 보여주었는데, 갯벌에 관심 있는 아이가 있다면 이 책을 소개해줘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펼치면 차례 옆에 우리나라 갯벌의 위치가 잘 나와 있다(사진 참고). 내가 사는 곳 주변에 어떤 갯벌이 있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다. 기회가 되면 아이와 같이 가볼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제일 신기했던 것은, 갯벌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과, 갯벌에 사는 동물의 종류에 따라 집 모양이 다르고 구멍의 크기나 길이가 다르다는 내용이었다. 구멍만 보고 어떤 생물이 살고 있는지 알 정도가 되려면 얼마나 갯벌을 탐사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렁이들은 땅에서나 갯벌에서나 정화시키는 활동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하고, 갯벌에 사는 생물을 잡아먹는 새들의 부리 모양을 본떠 만든 도구들이 신기하기도 했다.

갯벌을 매립해 새만금 지대와 인천국제공항을 지은 사례들을 보며, 인간의 편의를 위해 지어지는 시설들이 생기는 건 좋지만 거기 사는 동식물들은 다 어디로 가나, 하는 생각도 하고, 글을 쓰는 지금은 [형제의 숲]을 읽을 때 집을 크게 짓기 위해 나무를 베어 동물이 도망가게 만든 그림이 떠오르기도 한다.

갯벌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관심이 있으면 보이는 것들이 진짜 많다.

🔎위즈덤하우스 ‘나는 교사다 4기‘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글입니다.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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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줏빛 끝동의 비밀 - 약초꾼 소년, 폐위된 왕후를 만나다 오늘의 청소년 문학 45
지혜진 지음 / 다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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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줏빛 끝동의 비밀](지혜진, 다른)
-스포일러 주의

이 책은 주인공의 심리 묘사와 인물들의 말이 인상적이다. 어쩌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매료되었다. 밑줄을 얼마나 그었던지.

표지에 나오는 인물은 단종(노산군)의 아내인 정순왕후다. 책에서는 군부인으로 나온다. 자줏빛 끝동에 수놓인 소나무와 자줏빛 수건에 수놓인 씨앗이 눈에 띈다.

주인공 단오는 얼굴에 화상 자국이 있다. 치료가 되지 않는 시기에 살아, ‘짓무르고 곪아가는‘ 상태에 있었다. 가정 형편도 넉넉하지 않다. 아버지는 아무에게나 돈을 빌렸고, 노름을 했으며, 그나마 일을 하게 해주는 막수 아저씨네 밑에서 일 하나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사고를 치기 일쑤였다. 단오는 늘 아버지가 친 사고 수습에 앞장서야 했다. 단오를 동정하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사고 친 대가가 퉁쳐지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단오의 마음은 착잡하다.

🏷아버지를 불러들인 혜민원 관리는 짓무르고 곪아 가는 내 얼굴을 보고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어린 시절 집에 불이 나 이리 되었다는 아버지의 말에 나는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내 아픔은 왜 누군가의 핑계가 되어야 하는 걸까. 나는 모욕을 온전히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지만 이럴 때는 차라리 그 불이 내 목숨을 앗아갔다면 더 좋았을 거라 생각했다.(45쪽)

단오는 어릴 때의 비밀을 알고 더 비참해진다. 아버지는 집에 불을 질렀고, 어머니는 불길에 휩싸인 단오를 구하지 않았다. 단오를 구한 건 막수 아저씨였다. 부모에게 버림을 받은 것과 다름없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단오는 내 생각보다 더 큰 아픔을 느꼈다.

🏷좁은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를 마주치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버려졌다는 사실보다 그러고도 살아남은 내가 싫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22쪽)

얼굴 때문에 일하기도 쉽지 않지만, 막수 아저씨의 딸 영초와 친하게 지내며 약초꾼이 되어간다. 막수 아저씨는 단종 복위를 위해 일하던 사람들을 도왔기 때문에, 자연히 영초도 단종을 복위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종 복위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며 단종(노산군)은 죽임을 당하고, 군부인은 동네 사람들에게마저 희롱을 당하며 어려움을 겪는다.

🏷˝복위 시도를 하지 않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먼저 가신 노산군뿐만 아니라 군부인께서도 조금은 더 편안하게 지내셨을 수도 있잖아. 옳다고 생각했던 일이더라도 결국 누군가를 망쳐 놓았다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을 수도 있어.˝
옳은 일은 그저 옳다고 믿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버지, 어머니가 옳다고 믿고 행한 일들은 나에겐 옳지 않은 일이 되었다.
˝단오 너, 설마 왕위를 빼앗은 사람들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
이건 왕권이라든지, 왕위의 정통성이라든지 하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다. 가난한 집 어딘가에서 일어난 비극도 이리 버거운데, 어린 왕이 감당해야 했던 비극은 도대체 얼마나 벅차고 무거웠을까?(39쪽)

이 시대의 수많은 ‘옳은 일은 그저 옳다고 믿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 부분이 특별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정치일 것이다. 정의는 행복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고,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행복과 옳고 그름이 섞여 있다. 행복한 것이 곧 옳은 것일까.

누군가를 돕는 행위가 모두 정당화되거나, 옳은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은 갸륵하지만,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그 도움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단종은 도움을 받았으나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감정이 과연 순수하고 맑기만 할까? 받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그저 더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 하는 마음은 도대체 누굴 위한 것일까? 지금까지 사람들의 숱한 동정과 연민의 시선을 받으며 자란 나조차도 정답을 찾아낼 수 없었다.(38쪽)

단오의 아버지는 또 돈을 빌리고 갚지 못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막수 아버지와 친구이면서 적으로 돌아선 청파다. 청파는 단오에게 일거리를 주었고, 군부인이 만든 자줏빛 천을 몰래 가져오면 아버지가 진 빚을 탕감해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청파의 질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독서토론 질문으로 좋은 것 같다.

🏷˝자. 여기 옳은 일이 있고, 꼭 필요한 일이 있다. 딱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너는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이냐?˝(92쪽)

청파의 말을 들어보면, 청파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에 대한 소문을 너도 잘 알 것이다. 나는 본디 천한 출신이었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부를 얻기까지 많은 고비와 위험이 있었다. 나는 동생이 아파 의원에 가야 했고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돈을 빌렸는데 갚질 못했지. 돈을 벌려면 내 양심을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두들겨 맞아 한쪽 눈을 못 쓰게 됐고, 내 동생도 목숨을 잃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난 후 옳고 그름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은 필요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가장 옳은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93쪽)

단오는 멋졌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얻게 되는 결론은 단 하나였다. 누군가를 곤경에 빠트리면서 내가 필요한 것을 얻을 수는 없다는 것. 그런 방법을 쓰지 않고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지키고 필요한 것을 얻고 싶었다. 옳지 못한 방법을 배워 가며 살고 싶지 않았다.(117쪽) 요즘은 누군가를 곤경에 빠뜨리면서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는 것 때문에 양심에 가책을 받을 사람이 적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으면 누군가가 곤경에 빠진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단오는 군부인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생각을 확신하게 되는 것 같다. 🏷˝단오야, 누군가의 수단이 되어 살면 언젠가 세상 모두를 미워하게 된단다. 너는 네 자신의 씨앗이 되어야 해. 너의 싹을 스스로 틔워야 해.˝(118쪽)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씨앗의 모습처럼, 불행의 씨앗을 심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사람이 아파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또다른 불행의 씨앗이었다. 살아남은 나를 보는 일이 어머니에게 그랬을 것이고, 위험에 빠진 영초와 군부인을 보았을 때 내 마음이 그랬다. 소중한 누군가가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 시작은 바로 나 자신이어야 했다. 변덕스러운 계절의 바람을 맞으면서도 끝내 싹을 피워 내는 씨앗처럼 그래야 했다.(143쪽) 그리고 결국, 모두를 지켜낸다. 🏷부모님은 나를 지켜 주지 못했어도 나는 부모님을 내버려둘 수 없었다. 가끔은 나를 부담스럽게 하는 동생들이지만, 그 아이들에게까지 상처를 주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영초 역시 나에게 가족과도 같은 아이였다. 그러니 나도 영초를 지켜야 했다.(120쪽) 너무 가슴 아픈 말이었다. 부모님이 자신을 지켜주지 못했어도 내버려둘 수 없었다는 그 말이.

단오가 이렇게 단단한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씨앗의 운명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씨앗의 운명은 정해진 대로 흘러갔다. 홍화 씨앗을 심으면 홍화가 되고, 지초 씨앗을 심으면 지초가 된다. 바람이 불고, 눈이 오고, 비가 와도 씨앗은 자기 운명을 따라 자랐다. 그 작은 씨앗도 그럴진대, 나 역시 어떤 이유가 있어 이 땅에 발을 붙인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 그 누구에게서도 받지 못한 진짜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81쪽)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까지 이어진 것 같다.

단오는 흔들렸지만 뿌리가 뽑히지 않았고 심지를 굳게 세웠다. 나에게도 그 단단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때로는 뿌리가 뽑힐 것처럼 흔들리는 것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자줏빛 끝동의 비밀]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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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하루 머나먼 길 뒹굴며 읽는 책 51
게리 D. 슈미트 지음, 유진 옐친 그림, 장미란 옮김 / 다산기획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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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하루 머나먼 길](게리 D. 슈미트, 엘리자베스 스티크니/장미란 옮김, 다산기획)

🏷한줄요약: 좁쌀 한 톨

슈미트와 엘리자베스 스티크니는 부부다. 엘리자베스 스티크니가 슈미트보다 먼저 세상을 떴다고 한다.

올해는 슈미트 책을 다 읽을 계획을 갖고 있다. [수요일의 전쟁]을 매우 감명깊게 읽었고, [너의 궤도를 맴돌며]에서 살짝 실망했고, 이번 책은 우리나라 전래동화 ‘좁쌀 한 톨‘이 생각났다.

이 시대는 물물교환의 시대인 것 같다. 가난한 농부의 집에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에게 우유를 줄 암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말에 아빠는 주머니칼을 들고 암소를 구하기 위해 떠난다. 아빠는 아들과 길을 나서면서 ˝날은 짧고 길은 멀단다.˝(7쪽)라고 말한다. 아들에게 미리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미리 알려주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와 다니면서 ˝저 물병과 이 책을 교환하는 것이 공정한 거래 같으냐?˝(25쪽) 이런 식으로 거래가 공정한지 아이에게 물어본다. 앞으로 아이가 혼자서 물물교환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모든 거래에 ˝좋은 거래인 것 같아요.˝(10쪽)라고 말하며, 암소와 바꿔지지 않을 때마다 가끔씩 ‘어머니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이 갈색 눈의 암소가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10쪽)라는 말로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암소를 얻지 못할 것 같다는 비관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와 아이는 양철 등 두 개, 파란색 시집, 커다란 물병, 메리노 양, 금 회중시계, 조랑말과 마차를 거쳐 결국 암소와 양치기 강아지를 얻게 된다. 주머니칼이 암소로 변하는 데 일곱 번의 물물교환을 거치는데, 주머니칼이 암소로 변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암소를 얻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 농부와 아들을 잘 돌보아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간절하게 바라면 얻게 된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내가 너무 낮은 목표를 갖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높은 목표를 갖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럼에도 목표를 바라고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좋아해서 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경지에 닿는 게 나은가 싶고. 둘 다 있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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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게 -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53
이나영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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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게](이나영, 문학동네)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한줄요약: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요즘 ‘제이미 맘‘이 뜨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의 엄마는 제이미 맘 같은 부류다.

엄마는 이 동네가 이 근처에서 교육열이 가장 센 곳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최고가 되어야 진짜 1등이 되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며 수영이와 빨리 친해지라고 했다.(8쪽)

엄마는 1분 1초가 아깝다. 학교에서 마치면 시간에 딱딱 맞게 학원에 가야 한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엄마의 지청구를 들어야 한다. 학원에 늦을 판이고, 엄마한테 혼나지 않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시간 가게 홍보물을 믿기로 한다.

시간 가게에서는 시간을 판다. 10분에 행복한 기억 하나다. 기억은 중요할까? 윤아는 기억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기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기억 따위, 윤아에게도 소중하지 않다. 기억은 시간과 탈바꿈하고, 시간은 스펙과 탈바꿈한다. 부모가 기억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자녀도 역시 그렇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기억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시간 가게는 기억 가게이기도 하다.

그래, 어차피 내게 지난 기억 따위는 필요 없다. 엄마도 늘 말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거라고.(17쪽)

엄마 말로는 유기농 재료로 만든 거라 몸에도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먹는 것까지도 자기 관리 능력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엄마는 모르는 걸까? 음식의 질도 중요하지만 같이 먹는 사람이 있어야 밥맛이 난다는 것을.(75쪽)

기억을 쌓아가는 데에는 밥을 함께 먹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공동체 내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함께 밥을 먹는 것이다. 그 의식은 공동체를 결속시킨다.

윤아는 행복한 기억을 떠올려 시간을 샀다. 그리고 엄마를 만족시키기 위해 나쁜 짓도 서슴치 않는다. 스펙을 위해서라면 나쁜 행동도 상관 없나? 어떤 부모는 스펙을 위해서라면 자녀가 도덕적으로 타락해도 묵인하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 최근에 봤던 쇼츠에서 가난하지만 자상한 아빠와 돈 많지만 잘 못 놀아주는 아빠(맞는지 모르겠다) 중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를 선택하겠냐고 아이들에게 묻는 걸 봤다. 아이들 중 두 명이(내가 두 명만 봤다) 돈 많은 아빠를 선택했다. 돈이 많으면 여행을 갈 수 있고, 여행으로 추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나. 오늘날은 대부분 여행에서 추억을 얻는 경우가 많고, 우리 집도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같다. 진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라고 하지만, 돈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나. 무언가를 얻으려면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돈을 무조건 악한 것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돈을 행복한 기억을 만드는 밑바탕으로 삼아도 괜찮은 건지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행복한 기억으로 시간을 샀던 윤아는, 다른 사람에게 점점 잊혀진다. 그건 아니라는 생각에 이번에는 윤아의 시간을 팔아 행복한 기억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윤아의 행복한 기억만 들어오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한 기억까지 들어오면서 자신이 누군지 혼란스러워 한다. ‘다른 사람의 기억은 내게 행복을 주지 못한다. 누구의 것인지도, 언제 들어온지도 모를 기억들이 섞이면서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졌다.‘(186쪽)

이 책의 주제는 행복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 과거의 내가 있기에 현재의 내가 있는 것이라는 내용일 거다.

시간만 사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내 과거도 현재도 엉망이 되어 버렸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 엄마 말처럼 미래에 행복해질 수 있을까. 만약에 그렇다 해도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150쪽)

난 1등을 위해 달렸다. 1등을 하면 행복해진다고 믿었다. 그리고 내 미래도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다.
엄마가 웃는 걸 보고 싶었다. 엄마에게 칭찬받고 싶었다.
그래서 시간을 샀다. 과거의 행복한 기억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전교 1등을 했다. 그런데 시간을 살수록 외딴섬에 간힌 것처럼 무서웠다. 생각해 보니 과거의 시간들이 있어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행복한 기억을 찾기 위해 시간을 팔았다. 행복한 기억이 많아졌다. 그 기억 속에서 인증 시험 만점을 받은 영어 수재도 되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기억일 뿐 내 행복이 아니었다.(187쪽)

하지만 분명한 건, 행복이란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 그리고 내 시간을 내가 주인이 되어 써야 할 것이다.(197쪽)

요즘은 자신의 기대 충족을 위해 자녀의 미래를 담보잡는 행동을 하는 부모들이 많이 줄어든 것 같지만, 너무 자녀의 행복만을 따지다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쳐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이 생기기도 하고, 또는 자녀도 부모가 제시하는 꿈이 합리적이라 생각하고 일찍부터 공부하는 데에 몰입하며 친구들과 노는 것에는 시간을 덜 쓰는 아이들이 생기기도 한다. 스스로의 생각이라고 하더라도 일찍부터 공부에 몰입하는 게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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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비상벨을 누르면 토토는 동화가 좋아 10
김화요 지음, 김수영 그림 / 토토북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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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비상벨을 누르면](김화요, 토토북)
-스포일러 주의

김화요 작가님은 5학년 1학기 도덕 1단원 수업을 하며 알게 되었다. 김화요 작가님이 쓰신 [내가 모르는 사이에]라는 책으로 도덕 수업을 했는데 아이들 반응이 정말 폭발적이었다. 4학년 도덕에서 김화요 작가님 책으로 수업하셨다는 다른 선생님 말을 듣고 더 관심이 가게 된 차에, 토토북에서 서평단 신청 이벤트를 하고 있어 냉큼 신청했고 감사하게 선정이 되었다([내가 모르는 사이에]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아이들에게 이 책도 깨알홍보를 했다. 아이들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후속작이냐며 관심을 많이 보였다.).

토토북에서 서평단 신청을 받을 때,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최악의 하루로 시작해도 최고의 하루가 된 이야기로 끝맺고 싶었다는 작가님 인터뷰를 보았다. 아, 여기 등장하는 아이가 최악의 하루를 보냈다가 최고의 하루를 맞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린이 서평단의 추천사도 살짝 봤는데, 엘리베이터를 타면 다른 세계로 가게 된다고 해서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궁금했다.

주인공 이름은 내 이름하고 비슷했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들으면 항상 ‘은하‘로 기억해서 일부러 내 이름을 더 또박또박 말하는 습관이 생겼다. 어릴 때는 귀찮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귀찮게만 생각할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은하의 최악의 하루는 등굣길에 넘어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은 까져서 피가 철철 나고, 새 휴대폰은 작동되지 않는다. 급기야 단짝 친구와 싸우기까지 했는데, 선생님은 하교 직전에 가족과 관련된 글쓰기를 해오라는 숙제를 주시지, 친구와는 화해도 안 했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오지라퍼(?) 아주머니를 만났지, 집에 도착해서 엄마가 일찍 왔다고 좋아했더니 엄마한테 남자친구가 있다고 하지, 4학년짜리 여자 아이한테는 버겁기만 한 하루다. 와, 나는 이렇게까지 소소한 일들이 제멋대로인 날은 없었는데, 4학년이 감당하기 너무 힘들었겠다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은하는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급하게 탄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갇힌다(이제 하다하다 엘리베이터까지.). 비상벨을 눌렀는데 이상한 세계가 펼쳐진다. 엘리베이터가 가득한 세계로. 여기까지 봤을 때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과자 엘리베이터를 소개하는 장면을 읽으면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 많은 엘리베이터 세상은 [찰리와 거대한 유리 엘리베이터]를 떠올리게 했다. 작가님이 그 책에서 영감을 받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은하는 어떤 엘리베이터를 탈지 고르는 과정 중에 최악의 하루를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들은 ‘기억 엘리베이터‘를 탄다. 은하는 세 개의 기억 세계로 여행한다. 뱃속에 있을 때, 1학년 학부모 참관수업 날, 여섯 살 생일날. 그리고 부모님이 은하에게 말해주지 않았던 비밀을 알게 된다. 그게 참 슬펐다. 때로 어떤 비밀은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는데, 은하가 이 비밀들을 알게 된 게 약이었을 수 있고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과연 좋은 점만 있었을까 싶어서. 때로는 부모님의 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싶은 때가 있는 덜 큰 어른이라 나도 잘 모르겠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이가 들어가는 부모님을 마주할 때마다 세월을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에 계속 모른 척하고 싶다.

🏷잊고 싶은 기억 속에는 내가 모르는 비밀 한 조각이 숨겨져 있었다.
˝엄마...˝
나는 가만히 엄마를 불러 보았다. 뒷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엄마에 대해 내가 잘못 알고 있는 조각들은 얼마나 될까? 놓치고 만 순간들은 얼마나 될까?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엄마는 어쩌면 늘 나를..., 아니, 분명히 나를...(67쪽)

엄마를 원망하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나도 엄마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조각들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엄마의 사정을 알았다면, 엄마를 더 이해할 수 있었을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오해들을 쌓으면서 사정을 말하지 않는 게, 참 모순적인 사랑의 모습이랄까.

🏷˝내가 보이지 않아도 나는 너를 보고 있을 거란다.˝
그 말을 하는 아빠의 눈빛이 너무나도 정확하게 내 눈에 머물렀다. 나는 마른침을 삼겼다.
˝응? 그게 무슨 말인데?˝
여섯 살의 내가 천진하게 묻자 아빠가 빙긋 웃었다.
˝네가 있는 모든 순간에 전부 내가 있을 거라는 얘기야. 그러니까 말이지....˝
아, 항상 그리웠던 목소리가 나를 어루만졌다.
˝잊어도 괜찮아.˝
참았던 눈물이 왈칵 흘러나왔다.
˝정말로 괜찮아, 은하야.˝(81쪽)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잊혀질까봐인 이유도 있지 않나. 그런데 잊어도 괜찮다니. 너무 슬펐다. 기억은 내게 어떤 의미이기에 이토록 슬펐던 걸까.

내가 수업하고 있는 아이들 중엔 은하처럼 어릴 때 부모님 중 한 분이 돌아가신 아이가 있다. 이 아이에게 이 책이 어떨지 잘 모르겠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한 아이에게, 이런 부분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깊다.

🔎[엘리베이터 비상벨을 누르면]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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