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이야기 (반양장) 문학과지성사 이청준 전집 20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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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청준, <벌레 이야기>

 

[너무나도 인간적인 절망]

 

  "사람에게는 사람만이 가야 하고 사람으로서  수밖에 없는 길이 있는 모양이다그리고 사람에겐 사람으로   있고   없는 일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p66)


  "김 집사는 사람과 하느님 사이에서 원망스럽도록 하느님의 역사만을 고집했다." (p75)

  "아내는 마침내 마지막 절망을 토해내고 있었다하지만  집사는 이제  가엾은 아내 속에서 질식해 죽어가는 인간을 보려 하지 않았다그녀는 아내의 무참스런 파탄 앞에 끝끝내 주님의 엄숙한 계율만을 지키려 하고 있었다그녀는 이제 차라리 주님의 대리자처럼 아내를 강압했다." (p76)


  "아내의 배신감은 너무도 분명하고 당연한 것이었다그리고  절망감은 너무도 인간적인 것이었다." (p77) 



_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 영화 밀양의 원작이기도  단편소설사랑과 화해그리고  중심에 있는 용서를 다루는 이야기다

자신의 아들을 유괴하고 죽인 유괴범을 용서하기 위해 어렵게 찾아간 교도소유괴범은 그녀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나는 이곳에서 하느님을 만나 이미 용서를 받았다고

그녀는 자신이 용서하기도 전에 이미 용서받은  유괴범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지너무나도 인간적으로지극히 인간답게 절망한다

누구도 쉽사리 답을 내릴  없는  현실 앞에사람의 사람됨보다 하늘의 계율만 앞세우는  집사란 인물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_
나는 생각한다예수 그리스도가  땅에 오실  완벽한 인간의 몸을 입고 있었음을예수는  어느  쪽도 불완전하지 않은완벽한 '신인'이었다신성과 인성 완벽한 신이자 완벽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이적과 구원에 초점을 맞춘 신성에 관한 이야기를 즐겨 한다물이 포도주가  이야기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인 오병이어 이야기  사람을 고친 이야기무엇보다 죄로부터의 구원-.

그러나 그의 완벽히 인간적인 모습은 사람들 이야기 속에 쉽사리 나타나질 않는다 모습은 너무나도 무력하고너무나도 절망적이고인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패배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걸인처럼 잠잘  없이 돌아다니고천한 사람들과 어울리고동산에서 울고제자에게 배신당하고한밤중에 끌려가고채찍으로  몸을 맞으며 모욕 당하는데도 아무런 말이 없고-

마치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거나 그보다 못한 사람은 쉽게 무시하면서자신보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은 좋아하고선망하고심지어 동경하는 것같은 현상

한마디로 말해 기왕이면 내가 믿는 신이 멋있었으면 좋겠는거다내가 이토록 현실에서 무력하고 찌질한 모습이니까 당신만은 그저 그렇게 영웅처럼 남아달라고전지전능한  모습으로  비천한 생활에도 기적을 일으켜달라고복을 내려 달라고 말이다


_
사람이 사람됨을 잊어버리면 사람이 아닌 무슨 존재가 되는가 분도 말씀하셨다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지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지 않다고 분은 사람이 도구가 되는  원하지 않으셨다 분에겐  사람이 우선이었다

조금  솔직해도 된다
조금  인간다워져도 된다
조금  자유로워도 된다

사람이 신이 된양 항상 거룩한 모든 것을 용서한  세상 어떤 것도 포용할  있는척 하지 말자

우리는 어쩔  없는 인간이고창조주가 아닌 창조물이고영원을   없어 오직 현재만을 살아가는 유한한 사람이기에그리고 이러한 사람됨을 인정할때라야  분의 구원이  간절히 필요해지기 때문에

신은 또다른 신을 구하러  땅에 오지 않았다

신은 인간을 구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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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기 범우문고 132
오스카 와일드 지음 / 범우사 / 199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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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있으면서도 울지 않는 날이란 마음이 즐거운 날이 아니라 마음이 완전히 굳어 버린 날이다.˝ 슬픔에 민감했던 작가, 옥중에서의 치열한 사색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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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기 범우문고 132
오스카 와일드 지음 / 범우사 / 199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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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카 와일드, <옥중기>

 

[제2의 탄생을 맞이한 옥중의 기록.]

 

 

범우문고의 책은 작다. 가볍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시내의 한 서점에 들러 이 책 저 책 살펴보다가 우연히 범우문고의 작은 책들이 나란히 꽂혀있는 곳 앞에 멈춰섰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으로 알려진 오스카 와일드의 이름이 눈에 띄었고, 목차를 보고 첫 장을 피자마자 나는 이 문장을 만났다.

 

 "…고통은 매우 긴 하나의 순간이다. 우리는 이것을 계절에 의해서도 가를 수가 없다. 우리는 다만 그저 그 기분과 그것의 재래再來를 기록해 볼 수 있을 뿐이다." (p17) 

 

그리곤 이 책을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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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는 한마디로 잘난 사람이었다. 영국의 유명한 안과 의사 아버지와 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뛰어난 말솜씨와 사교술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시를 지어 호평을 받곤 했다. 그는 자신의 천부적 재능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반항아적 기질을 가지며 반도덕적인 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결국 동성을 사랑하기에이른 그는 보수적인 영국사회 내에서 풍기문란 죄로 감옥에 가게 된다.

 

세상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누릴대로 누리던 그가 감옥에서 18개월을 보내며 심한 노동과 공포, 야만적인 분위기 속에서 정신적으로 깊은 상처를 입는다. 그가 겪은 영혼의 아픔은 종교적 참회로 이어지게 되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고독들이 이 <옥중기>를 탄생시킨다. 다시말해 그는 옥중에서 제2의 탄생, 즉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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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고통이 필수불가결한 것일까? 그가 감옥에서 맨 처음에 느낀 감정은 '슬픔'이었다. 그러나 그는 작가답게, 자신이 느낀 감정을 경험하는 것을 넘어서 관찰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해낸다. 슬픔을 세밀하고도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만 하나의 슬픔의 계절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해와 달까지도 빼앗겨 버린 것 같다." (p18, 참회의 아픔속에서)

 

 "영화, 기쁨, 성공, 이런 것들은 그 결이 거칠고 그 올도 보통의 것이지만, 슬픔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예민한 것이다. 사고의 전 영역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 중에서 슬픔이 그것에 닿았을 때 슬픔을 떨지 않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으리만큼, 슬픔은 예민한 것이다." (p20)

 

 "슬픔 속에는 성스러운 부분이 있다. 언젠가 사람들은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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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슬픔을 받아들인 그는 처절한 고독 속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또 한층 성장한다.

 

  "벌받은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내가 너무나 불완전하기 때문에 좀더 완전해지기 위한 하나의 출발점인 것이다." (p43, 고독한 젊은이의 성城)

 

영혼의 밑바닥에서 그는 단테의 말- '슬픔은 인간을 다시 신에게 귀의시킨다'- 을 떠올리며, 새로운 존재적 탄생을 맞이하게 된다.   

 

 "사람들은 때때로 고통을 신비한 것으로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신비가 아니라 실제 하느님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역사 전체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접하게 되는 것이다." (p49)

 

 "아름다운 육체에 대해서는 쾌락이 있듯이, 아름다운 영혼을 위해서는 고통이 있는 것이다."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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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이제 세상에서 누리던 육체적 즐거움이 남아있지 않은 듯 하다. 슬픔과 고통과 고독을 통해 자신의 영혼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영혼은 '그리스도'에게로 향해 더욱 성숙해지며 정점을 맞는다.

 

 "나는 한 젊은 갈릴리의 농부가 온 세계의 짐을 자신의 어깨로 짊어질 수 있다고 상상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뭐라 말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든다." (p64, 그리스도에게 묻는다)

 

 "정말 이처럼 모든 것을 말해 감에 따라 점점 늘어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매력이다. 그는 하나의 예술작품과 같다. 그는 인간에게 무엇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그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이 무엇인가가 되게 만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의 면전에 서야 할 운명에 있다. 누구든지 그의 생애에 있어서 적어도 한 번쯤은 그리스도와 함께 엠마오로 걸어가게 된다." (p98, 절망의 피안)

 

그리고는 드디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과 칭찬을 받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과 칭찬을 통해 살아야 한다." (p85, 백합꽃들의 정원으로)

 

전자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름아닌 옥에 갇히기 전 오스카 와일드 자신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칭찬받기만을 바라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 그러나 후자의 '우리'는, 이제 옥중에 있는, 현재 자기 자신의 모습이다. 그래서 자신을 포함한 '우리'라는 단어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삶과 사랑의 의미를 알게된 그가 하는 고백이다. "사랑과 칭찬을 통해" 살아야 한다. 문장을 이어주는 접속사인 '위해'와 '통해'는 명백한 차이가 있음을 독자들은 알 것이다.

 

'~를 위해'는 '~'가 목적이 되는 것이기에, 사랑과 칭찬 그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된다. 그래서 사랑과 칭찬이 없을 경우, 자신의 인생의 목적이 상실될 경우, 이를 목적으로 삼던 사람은 엄청난 괴로움과 실의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를 통해'는 다르다. '~'는 이제 목적이 아니라 삶을 구성하는 소중한 도구요, 하나의 과정이요, 자기 자신도 그 속에 포함되어야 하는 의미가 된다. 즉, 오스카 와일드는 이제 사랑 언저리에서 머무르지 않고, 사랑 속으로 적극 뛰어 들어가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사랑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타인에게도 일어나리라."(p63)

 

그가 말하는 이 한마디는 이제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도 공감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고, 자신이 겪은 슬픔과 모든 불행들을 똑같이 겪는 타인을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즉 타인을 또다른 '나'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만큼 인생의 귀한 가르침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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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옥중기>는 작은 소챕터로 나눠져 있고, 코트 주머니 속에도 쏙 들어갈만한 크기여서, 나는 종종 어딘가로 이동할 때 조금씩 나눠서 읽곤 했다. 한꺼번에 다 읽기보다 가끔 꺼내서 읽으면 더 와닿는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렇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삶의 슬픔과 고통으로 마음이 괴로운 사람은 이 책을 통해 소박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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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그리스도인 - 반지성주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고함
존 R. 스토트 지음, 한화룡 옮김 / IVP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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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이성적인 믿음, 즉 신뢰할 만한 하나님을 사려깊고 확신 있게 따져 보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광신적 혹은 맹목적 믿음과 교리에 집착하는 믿음 사이에서, 균형있는 지성으로 믿을 것을 설파하는 존 스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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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그리스도인 - 반지성주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고함
존 R. 스토트 지음, 한화룡 옮김 / IVP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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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스토트,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지성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 그리스도인에게.]

 

 

20세기 복음주의 운동을 이끈 최고의 지도자, '존 스토트'. 그 자신이야말로 진정으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며, 뛰어난 지성인이며, 무엇보다 자신의 지성을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이 책의 기초가 된 강연을 했던 1972년 당시에는 기독교 반지성주의가 열풍이었다. 그는 총 세 부류의 그리스도인을 반지성주의에 속한 자들로 보며, 그들에게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지성으로 회복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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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는 반지성주의의 첫 번째 부류는, '예식주의자'이다. 로마가톨릭 교회의 예식과 수행에 영향을 받은 교회와 교인들은 오늘날에도 이러한 특성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성경의 진리를 분명하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외적 예식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되겠지만, 존 스토트는 이것이 '예식주의'로 언제든지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예식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위험을 지적한다.

 

또한 두 번째 부류는, '에큐메니컬 운동가 즉, 사회 참여를 앞장서는 급진적 그리스도인들'이다. 이들은 사회적, 정치적 활동에 집중하며, 정의를 외치면서 굶주린 이들을 먹이는 사역을 펼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인류의 복지와 존엄과 자유를 위한 투쟁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에 지나치게 치우치다 보면 교회의 연합과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소홀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부류는, '오순절파 그리스도인'이다. 이들은 대체로 체험을 진리의 중요한 표준으로 여기며, 교리보다 자신들의 경험을 더 우선시 해(예를들면 방언을 하는 것), 주관적 경험이 하나님의 계시된 진리 위에 놓이게 되는 위험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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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토트는 "성경적으로 균형잡히고, 광적인 극단을 극복할 수 있길 바라며, 지성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것의 치료책은 지성을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을 하나님이 지정하신 자리에 앉히고 하나님이 지정하신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임을"(p20)  강조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은 우리는 생각하도록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을 알아가는데 지성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우리의 지식(지성)에 의해 심판도 받게 될 것이므로, 이 선물을 잘 활용해야 할 것을 주장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성을 사용해 참된 예배를 드리며, 성결을 추구하고(위의 것을 찾고), 이를 잘 다스려 해로운 것 대신 건강한 것으로 섭취할 줄 아는 절제력을 갖기 원하신다고 말한다. 또한, 사도 바울과 같이 자신의 지성을 최대한 활용해 복음을 제시하며, 사역과 은사를 통해 교회를 섬기는 것 또한 잊지말아야 함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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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지식들이 실천(행함)으로 이어져야 하며, 결국 사랑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루병은 머리는 크게 자라게 하고 다리는 약하게 하는 병이다. 우리는 말씀에 대해 토론하고 이야기할 뿐 아니라 그것을 지켜야 한다. 귀로 듣기만 해서도 안 되고, 머리로 생각하기만 해서도 안 되며, 혀로 나불대기만 해서도 안 된다. 다리를 써야 한다!" _ 토마스 맨튼(Thomas Manton) (p94)

 

'성령님에 대한 의존과 우리의 연구를 결합해야 한다'는 말을 인용하며, 무엇보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지성을 사용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라는 존 스토트의 마음이 경종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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