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기 범우문고 132
오스카 와일드 지음 / 범우사 / 199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오스카 와일드, <옥중기>

 

[제2의 탄생을 맞이한 옥중의 기록.]

 

 

범우문고의 책은 작다. 가볍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시내의 한 서점에 들러 이 책 저 책 살펴보다가 우연히 범우문고의 작은 책들이 나란히 꽂혀있는 곳 앞에 멈춰섰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으로 알려진 오스카 와일드의 이름이 눈에 띄었고, 목차를 보고 첫 장을 피자마자 나는 이 문장을 만났다.

 

 "…고통은 매우 긴 하나의 순간이다. 우리는 이것을 계절에 의해서도 가를 수가 없다. 우리는 다만 그저 그 기분과 그것의 재래再來를 기록해 볼 수 있을 뿐이다." (p17) 

 

그리곤 이 책을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

오스카 와일드는 한마디로 잘난 사람이었다. 영국의 유명한 안과 의사 아버지와 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뛰어난 말솜씨와 사교술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시를 지어 호평을 받곤 했다. 그는 자신의 천부적 재능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반항아적 기질을 가지며 반도덕적인 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결국 동성을 사랑하기에이른 그는 보수적인 영국사회 내에서 풍기문란 죄로 감옥에 가게 된다.

 

세상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누릴대로 누리던 그가 감옥에서 18개월을 보내며 심한 노동과 공포, 야만적인 분위기 속에서 정신적으로 깊은 상처를 입는다. 그가 겪은 영혼의 아픔은 종교적 참회로 이어지게 되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고독들이 이 <옥중기>를 탄생시킨다. 다시말해 그는 옥중에서 제2의 탄생, 즉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

사람이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고통이 필수불가결한 것일까? 그가 감옥에서 맨 처음에 느낀 감정은 '슬픔'이었다. 그러나 그는 작가답게, 자신이 느낀 감정을 경험하는 것을 넘어서 관찰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해낸다. 슬픔을 세밀하고도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만 하나의 슬픔의 계절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해와 달까지도 빼앗겨 버린 것 같다." (p18, 참회의 아픔속에서)

 

 "영화, 기쁨, 성공, 이런 것들은 그 결이 거칠고 그 올도 보통의 것이지만, 슬픔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예민한 것이다. 사고의 전 영역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 중에서 슬픔이 그것에 닿았을 때 슬픔을 떨지 않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으리만큼, 슬픔은 예민한 것이다." (p20)

 

 "슬픔 속에는 성스러운 부분이 있다. 언젠가 사람들은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p21)

 

-

그렇게 슬픔을 받아들인 그는 처절한 고독 속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또 한층 성장한다.

 

  "벌받은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내가 너무나 불완전하기 때문에 좀더 완전해지기 위한 하나의 출발점인 것이다." (p43, 고독한 젊은이의 성城)

 

영혼의 밑바닥에서 그는 단테의 말- '슬픔은 인간을 다시 신에게 귀의시킨다'- 을 떠올리며, 새로운 존재적 탄생을 맞이하게 된다.   

 

 "사람들은 때때로 고통을 신비한 것으로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신비가 아니라 실제 하느님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역사 전체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접하게 되는 것이다." (p49)

 

 "아름다운 육체에 대해서는 쾌락이 있듯이, 아름다운 영혼을 위해서는 고통이 있는 것이다." (p54)

 

-

그에게는 이제 세상에서 누리던 육체적 즐거움이 남아있지 않은 듯 하다. 슬픔과 고통과 고독을 통해 자신의 영혼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영혼은 '그리스도'에게로 향해 더욱 성숙해지며 정점을 맞는다.

 

 "나는 한 젊은 갈릴리의 농부가 온 세계의 짐을 자신의 어깨로 짊어질 수 있다고 상상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뭐라 말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든다." (p64, 그리스도에게 묻는다)

 

 "정말 이처럼 모든 것을 말해 감에 따라 점점 늘어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매력이다. 그는 하나의 예술작품과 같다. 그는 인간에게 무엇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그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이 무엇인가가 되게 만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의 면전에 서야 할 운명에 있다. 누구든지 그의 생애에 있어서 적어도 한 번쯤은 그리스도와 함께 엠마오로 걸어가게 된다." (p98, 절망의 피안)

 

그리고는 드디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과 칭찬을 받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과 칭찬을 통해 살아야 한다." (p85, 백합꽃들의 정원으로)

 

전자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름아닌 옥에 갇히기 전 오스카 와일드 자신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칭찬받기만을 바라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 그러나 후자의 '우리'는, 이제 옥중에 있는, 현재 자기 자신의 모습이다. 그래서 자신을 포함한 '우리'라는 단어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삶과 사랑의 의미를 알게된 그가 하는 고백이다. "사랑과 칭찬을 통해" 살아야 한다. 문장을 이어주는 접속사인 '위해'와 '통해'는 명백한 차이가 있음을 독자들은 알 것이다.

 

'~를 위해'는 '~'가 목적이 되는 것이기에, 사랑과 칭찬 그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된다. 그래서 사랑과 칭찬이 없을 경우, 자신의 인생의 목적이 상실될 경우, 이를 목적으로 삼던 사람은 엄청난 괴로움과 실의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를 통해'는 다르다. '~'는 이제 목적이 아니라 삶을 구성하는 소중한 도구요, 하나의 과정이요, 자기 자신도 그 속에 포함되어야 하는 의미가 된다. 즉, 오스카 와일드는 이제 사랑 언저리에서 머무르지 않고, 사랑 속으로 적극 뛰어 들어가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사랑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타인에게도 일어나리라."(p63)

 

그가 말하는 이 한마디는 이제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도 공감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고, 자신이 겪은 슬픔과 모든 불행들을 똑같이 겪는 타인을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즉 타인을 또다른 '나'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만큼 인생의 귀한 가르침이 또 있을까?    

 

-

이 <옥중기>는 작은 소챕터로 나눠져 있고, 코트 주머니 속에도 쏙 들어갈만한 크기여서, 나는 종종 어딘가로 이동할 때 조금씩 나눠서 읽곤 했다. 한꺼번에 다 읽기보다 가끔 꺼내서 읽으면 더 와닿는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렇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삶의 슬픔과 고통으로 마음이 괴로운 사람은 이 책을 통해 소박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