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과 사랑 
_이재무 


오래전 일 입니다. 주말이면 아이와 나는 집 앞 공터에서 배드민턴을 쳤습니다. 지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아이를 위해 시합에 져주곤 하였는데 눈치 못 채게 져주느라 여간 애쓰지 않았습니다. 5전 3선승제. 1세트는 내가 이깁니다. 2세트는 가까스로 집니다. 이때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부러 진 것을 알면 아이가 화낼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트에 가서 듀스를 거듭하다가 힘들게 집니다. 그리고는 연기력을 발휘하여 분하다는 듯 화를 냅니다. 마른 미역처럼 구겨진 얼굴을 하고 있는 내게 아이는 미안한 표정 지으면서도 한결 업된 기분 참을 수 없는지 탄력 좋은 공처럼 통통 튀면서 경쾌하게 집으로 돌아갑니다. 

배드민턴을 치면서 나는 들키지 않게 져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의 셔틀콕이 네트를 넘어 널리 멀리 퍼져나가면 그것처럼 큰 사랑은 없겠지요?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겠습니까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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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형님은

_라술 감자토비치 감자토프

 

 

저의 형님은

대장이 아닌 사병이었습니다

볼가 강 전선에서 목숨을 잃으셨죠

늙으신 어머닌 애닮고 서러워

지금도 상복을 입고 계신답니다

 

내 맘이 이리도 쓰리고 또 아파옴은

이제 형님보다

제가 나이를 더 먹게 된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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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9 23: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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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며

_라술 감자토비치 감자토프

 

 

열차 승강대 위에 서서

싱글대며 벗에게 나는 손 내밀었소!

농지거리와 웃음을 흘리며 우린 이별했다오

내 조그만 차창 너머로 나무줄기 내달리고

노래를 부르다, 난 문득 정적 속에 입다물고 말았소

느릿느릿 슬픔이 내게 찾아들고

벗을 그리는 울적함에 젖어들면

기차 연기도 보이질 않고 기적조차 들리지 않는

주위를 둘러봐도 산과 바다는 보이질 않고-

차창 너머엔 벗의 얼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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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고양이로다
_이장희


 꽃가루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털에
 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고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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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표정과 걸친 옷이 제각각인
논산 영주사 수백 나한
언제 무너져 덮칠지 모르는 바위벼랑에 앉아
편안하게 햇볕 쬐고 있다
새 소리 벌레 소리 잡아먹는
스피커 염불 소리에 아랑곳 않고
지저분한 정화수 탓하지 않고
들쥐가 과일 파먹어도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는다
다람쥐가 몸뚱이 타고 다녀도 아랑곳 않고
산새가 머리 위에 똥을 깔겨도 그냥 웃는다
초파일 연등에 매달린 이름들
세파처럼 펄럭여도 가여워 않고
시주돈 많든 적든 상관 않는다
잿밥에 관심이 더한 스님도 꾸짖지 않는다
불륜 남녀가 놀러 와 합장해도 혼내지 않고
아이들 돌팔매에 고꾸라져도
누가 와서 제자리에 앉혀줄 때까지
그 자세 그 모습이다
바람이 휙 지나다
하얀 산꽃잎 머리 위로 흩뿌리면
그것이 한줌 바람인 줄만 알고.....

들짐승과 날새
흘러가는 구름과 바람결 속에
화도 안 내고 칭찬도 안하는
참 한심한 수백 나한들

나도 이 바람 속에서
한심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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