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인 까닭에 - 21년차 인권활동가 12년차 식당 노동자 불혹을 넘긴 은숙씨를 선동한 그이들의 낮은 외침
류은숙 지음 / 낮은산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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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은 순간이었지만, 가끔 그럴 때가 있었다. 누군가 칭찬해주거나, 추켜세워주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거리고, 뭔가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 말이다. 수년간 이런저런 사회운동 판에서 변두리를 맴돌다 보니, 그럭저럭 이 판이 돌아가는 모양새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을.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가끔 떠들어 대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꼭 누군가의 칭찬을 듣게 되고(그이의 칭찬이 진심이었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한 대꾸였던 상관없이), 나는 꼭 우쭐한 기분을 느끼며 더욱 말이 많아지곤 했다. 잘난 것 하나 없는 놈이 맨날 잘난 척한다는 말은 나를 보면 꼭 들어맞는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말로만 잘난 척하는 나와는 달리, 실제 현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오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간사 혹은 활동가 영어로는 Activist 라고 부르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흔히 말하듯 87년 체제 이후 형식적인 민주화를 이루어 냈다는 이유로, 많은 사회운동의 역량이 그전까지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던 부문 운동으로 흩어진 결과일까? 최근 우리 사회에는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 활동가라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반갑고 또 고마운 일이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듯, 어느 분야나 보편적으로 가진 어려움과 장벽이 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아주 어렵고 힘든 분야도 또 있게 마련이다. 운동 판에서 보자면 철거투쟁 활동가들과 장애인운동 활동가들이 가장 어렵고 힘든 분야에 있다고 아마 대부분 동의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인권운동 활동가들은 이 두 영역을 모두 포괄한 활동을 한다(물론 인권운동은 이 둘보다 훨씬 더 넓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소금꽃나무]를 읽기가 두려웠다고 한다. 그 뒤에 서술되는 구체적인 이유를 읽기 전에 나는 벌써 고개가 끄덕여졌다. 같은 이유로 나는 이 책을 읽는 것이 두려웠다(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어느 현장에서 마주쳤던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반갑게 읽고 싶기도 했다.). 비록 많이 부족했지만, 한때 활동가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던 처지라 저자의 활동 영역과 그 치열한 활동에 대해 모를 수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다른 운동영역들 중에서 인권이란 영역에 대해 가장 어렵다고 느꼈던 것은 단순히 그 운동이 물리적으로 힘이 더 들고, 경제적으로 더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크게 관심을 두지 못하고 살아왔다. 어떤 하나의 사안에 대해 접했을 때,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에 잘 감정이입하지 못하고, 그저 머리로만 판단하는 편이다. 그래서 늘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하는 인권 활동이라는 영역이 어렵게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책에서 일본 인권교육가 아와노 신조오 씨의 프로그램에 대해 읽고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종이에 ‘자기 인생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10명만 적으라.’고 했단다. 저자는 ‘열 명? 그까짓 거!’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가족들 외에는 쉽게 이름을 적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나 역시 가족들을 빼고 나면 써넣을 이름을 쉽게 떠올리기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친구들과 현재 자주 만나는 이들 몇몇을 떠올릴 수 있겠으나,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과연 이들이 다른 사람에 비해 더 소중하고 귀중한가?’ 라는 질문에 쉽게 답을 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그들에게도 내가 소중하거나 귀한 사람일 거라는 확신은 더더욱 할 수 없다.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여기서 더 충격적인 질문들이 던져지지만, 나는 도저히 거기까지 진도를 나갈 수 없는 부족한 존재이므로 소개하지는 않겠다.

 

저자 류은숙은 인권이 ‘개인의 발굴’이라고 했다. 어려운 질문에 대한 좋은 답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은 것을 계기로 삼아, 이제부터라도 나라는 개인과 내 주변의 여러 개인들을 발굴해내는 일을 해봐야겠다. 비록 모자라고 더디겠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보련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연대의 방법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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