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김영두 옮김 / 소나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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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선달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씁니다. (퇴계 이황이 기대승에게 먼저 쓴 편지)

병든 몸이라 문밖을 나가지 못하다가, 덕분에 어제는 마침내 뵙고 싶었던 바람을 이룰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요. 감사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아울러 깊어져, 비할 데가 없습니다. 내일 남쪽으로 가신다니 추위와 먼 길에 먼저 몸조심하십시오. 덕을 높이고 생각을 깊게 하여 학업을 추구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만 줄이며 이황이 삼가 말씀 드렸습니다. 退

 

(기대승이 이황에게 보냄)

() 삼가 건강이 어떠신지 여쭙습니다. 그리운 마음 끝이 없습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염려해주신 덕분에 근근히 지내고 있습니다.

병도 다 낫지 않았는데 몸을 돌보지 않고 면신례를 하는 것이 진실로 마땅치 않음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여러 사람의 핍박을 면할 수 없어서 무턱대고 나아가 일을 마쳤습니다. 이는 곧 저의 식견이 높지 않은 허물 때문이니 다시 무슨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그러나 또한 이런 사건에서 세상 살면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것이 있으면 사람들의 놀림과 배척을 면하지 못하고, 끝내 몸이 위태로워지거나 뜻을 억눌러야 하는 데에 이르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바라건대 선생님께서 제가 나아갈 방향을 가리켜 주십시오.

저는 늘 말하기를, “처세가 어려운 경우 나는 내 배움이 완전하지 못함을 걱정할 뿐이다. 내 배움이 만약 완전하다면 반드시 처세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했습니다. 이 말의 뜻이 어떻습니까? 제가 드린 말씀을 살펴서 비판해 주시기 바랍니다. -- 조언을 구하는 부분

평생 우러르며 그리워했는데, 단지 두 번 뵙자마자 곧 서둘러 이별했습니다. 그리하여 제비와 기러기가 오가는 것처럼 되었으니 어찌합니까? 제가 근심하고 선생님을 깊이 그리워함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종이를 대하니 아득해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다시 올립니다.

8월 보름, 후학 대승이 머리를 숙입니다. 기운이 약해 간신히 썼습니다. 두렵고도 부끄럽습니다.

 

 

() 기정자 명언에게 답하는 글 (이황이 기대승에게)

이른 봄에 편지 한 통을 멀리 남쪽의 인편에 부친 다음 곧 동쪽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려니 서울 소식도 자주 듣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호남은 천리 밖에 있으니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그사이 그대가 서울로 왔음을 물어 알고서 편지를 적어 나의 뜻을 전하려 했지만, 다시 생각하니 그대는 바야흐로 신임 관리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릇 벼슬에 나아가고 들어가는 거취는 마땅히 스스로 결정해야지, 내가 남을 위해 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또한 남이 나와 함께 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는 호강후(胡康候)의 견해는 뛰어나서 본받을 만합니다. 다만 평소에 이치에 정밀하지 못하고 의지가 굳지 않으면, 스스로의 결정이 혹시 시대의 도리에 어둡거나 또는 바람과 그리움이 앞서게 되어, 그 마땅함을 잃을 뿐이라는 점이 걱정입니다.

그대는 편지에서 처세가 어려운 경우 나는 내 배움이 완전하지 못함을 걱정할 뿐이다. 내 배움이 만약 완전하다면 반드시 처세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했습니다. 이 말은 진실로 간절하고 지극한 말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제가 헤아려 보건대, 그대의 높은 학문은 크고 넓은 점에서는 볼 만한 것이 있으나 세밀하고 오묘한 정수를 꿰뚫지는 못했으며, 마음을 두고 행동을 다스림에 있어서 사방으로 터져 자유로운 면에서는 얻은 것이 많으나 오히려 몸과 마음을 거두어 들여 굳히는 공부는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말이나 글은 뛰어나지만 더러 들쭉날쭉 모순되는 병페를 면하지 못하며, 스스로를 위한 계획이 비록 보통 사람으로서는 미칠 바가 아니나 오히려 여기에 두었다 저기에 두었다 하고, 나아갔다 물러갔다 하는 사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니 큰 일을 맡아서 큰 이름을 걸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처신하자면 어찌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종이를 앞에 두니 마음에 불안해 글이 잘 되지 않습니다. 바야흐로 춥고 얼음 어는 철입니다. 시대를 위해 자신을 소중히 하시기 바랍니다. 거듭 삼가 절하며 아룁니다.

기미 1024, 병자 황이 절합니다.

제 편지에 환란을 염려하는 말이 별 까닭도 없이 많은 듯하지만, 늙은이가 세상일을 겪은 날이 많기에 자연히 염려가 이에 미쳤으니, 괴이쩍게 여기지 말기를 바라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일은 평생 갖은 고생을 해가면서 공부해야 겨우 다다를 수 있는 것인데, 첫발을 내디디면서부터 헛된 명성이 먼저 세상에 퍼진다면, 이것이 예나 지금이나 늘 생기는 환란이니 매우 두려워할 만합니다.

오늘 편지에서는 이처럼 말할 수 있지만, 그대가 권력을 잡고 우뚝하게 드러난 날에는 벼슬도 없는 제가 이런 한가로운 말로 편지를 주고받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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