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 - 65세 안나 할머니의 국토 종단기, 2009년 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황안나 지음 / 샨티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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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께 사드릴만한 책을 고르다가 눈에 띄어 먼저 읽게 되었다. 저자가 마침 어머니와 연세도 비슷하신데다가 비슷한 경력을 가지고 계시기에.

내가 네 나이때에는 하시며 늘상 어머니로부터 듣던 말씀보다 몇 배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저자의 23일의 여행길은 2,30대의 여행과 떠난 목적부터 달랐다. 모르던 곳을 새로 발견하기 위함도 아니었고, 잠시동안의 호젓한 자유를 누리기 위함도 아니었다. 한발작, 한발작 땅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며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머리속에 찾아들어왔는지.지난 세월 자신에게 가해진 시련과 가난의 시간들을 돌아보며 혼자 걷다 울고 걷다 울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모든 여자의 꿈은 혼자 길 떠나는 것이라고 프롤로그에서 말하고 있다. 해남부터 통일전망대까지로 여정을 잡고, 해남에서 큰 아들 내외와 헤어지고 든 생각이 '이제 정말 혼자다'. 살면서 이제 정말 혼자다라는 생각을 우리는 몇번이나 해보게 될까. 길을 떠날 때 남편이 만류할까봐 혼자가 아닌 다른 일행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집을 나섰다고 한다. 나중에 혼자 떠난 것임을 안 남편이 내가 당신에게 뭘 잘못했어 라고 하며 우시더란다.

마치 내 어머니가 해주시는 얘기를 듣는 느낌이어서 그런지, 책을 들기 시작하고 금방 다 읽었다. 국토 종단이니, 23일 동안의 도보 여행이니 하는데에 촛점을 둘것이 아니라, 이 나이 먹기까지 당당히 살아왔다며 환하게 웃으시는 할머님의 구수하고 애절한 살아오신 얘기를 듣는다는 생각으로 읽다 보면 아마도 웃다가도 뭉클하고, 그 힘든 시절을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얘기할 수 있고, 그럼에도 자신의 생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할머니가 존경스러워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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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논문을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는 것. 우리 나라에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으니, 더 이상 '오늘'의 얘기는 아니기를, 이미 지난 '어제'의 얘기이기를 기대했으나, 아니다. 아직도 아니다.

영국에서 학위 과정중 내가 논문을 낼 때의 일이다. 영국에서는  복수 지도 교수제도를 택하고 있는 곳이 많아, 나의 지도 교수도 두 사람이 지정되었으나, 한 사람은 거의 형식상으로 이름이 올라 있을 뿐, 나의 학위 과정에는 거의 개입을 안하고 있었다. 나는 나와 지도 교수, 두 사람의 이름으로 논문을 썼는데 논문의 초고를 검토한 지도 교수가 다른 한명의 지도 교수 이름도 저자에 포함시키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그 지도 교수는 적어도 이 논문에는 전혀 기여한 바가 없는데 라고 당시만해도 철 없는 (?) 내가 이의를 제기하자, 두말 않고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하고는 내가 초고에 쓴대로, 아무리 지도 교수라도 논문에 관여하지 않은 지도 교수 이름은 포함시키지 않고, 나와 다른 한 명의 지도 교수, 두 사람의 이름으로만 논문이 나갔다.

또 다른 논문은 첫번째 논문과는 달리 여덟명의 공저자 형태로 나갔는데, 그때 나의 일을 조금씩 도와주었던 학부생 및 다른 대학원생들의 결과가 논문에 함께 실렸기 때문이다.

미국에 있는 남편의 예전 지도 교수가, 예전에 남편이 해놓았던 일을 가지고 논문을 한편 내자고 연락이 왔다. 남편이 논문을 다시 다듬어 그 지도 교수에게 e-mai로 보내고, 다시 검토를 하고, 첨삭하고, 서로 왔다 갔다  online상으로 discussion끝에 투고를 위한 완결본을 지도 교수가 보내왔는데, 1저자(first author)와 교신 저자 (corresponding author;논문을 지도한 사람. 논문에 대해 답변의 책임을 갖고 있는 사람) 이름을 모두 남편 이름으로 해서 보내왔더란다. 자기는 이 논문에 한 일이 없다며.

몇년 전 국내 모 대학에서 투고를 위해 논문을 작성하고 있던 중, 그 논문과 아무 상관없는 교수들의 이름까지 모두 저자로 포함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영문 없어 하며, 위의 영국에서의 경험담을 얘기했더니 그럴려면 영국에 가서 살라는 말을 들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이지만, 최소한 연구활동과 더불어 '교육'이라는 것이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라는 사회는 그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자의 양심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내가 피땀 흘려 이룬 일을 관심있는 이들과 공유할수 있도록 발표하고,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노력과 수고로 이루어진 일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노력과 수고에 감사하고 존중할 일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 세상이 그렇게 일 더하기 일은 이가 되는 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든, 일 더하기 일은 이 라는 진리를 지키며 사는,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나라에 많지 않은 것이 유감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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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3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7-02-13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식'의 문제인데. 정말 '더럽고 치사하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겠군요.
'관행'의 이름으로 대대손손 내려오는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hnine 2007-02-13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예, 말씀하신 그런 이유이지요. 현실이랍니다.
하이드님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살고 싶지요. '관행'이라는 것, 무섭더라구요.

전호인 2007-02-13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자들도 정치인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는 듯하여 요즘은 씁쓸합니다. 모든 분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냥 관행이라고 덮어두는 것이 옳지는 않다고 봅니다. 관행이라는 말이 좋게들릴 날을 기대해 봅니다. ^*^

여울 2007-02-14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상식'이 필요한 사회라는 생각보단, '상처'가 필요한 사회란 느낌이 듭니다. 아파도 아파할 줄 모르는 우리라는 생각이 들어, 곪고 터져, 이것이 상처라는 것이구나 최소한 느낄 줄 아는 사회면 좋겠습니다. '상처'임에도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상황들이 안타깝습니다. 님의 말씀처럼 묵묵히 지키는 사람들이 그나마 무게중심을 지키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말입니다.

씩씩하니 2007-02-14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세상에 자긴 한 일 하나도 없음서,,그런게 말이되나여?
전 대학 다닐때..저희 교수가 서지쪽 책을 번역하라구 학생들한테 조금씩 분량을 나눠준 후에 그걸 자기가 다시 보구 검토해서 번역한걸루 책 낸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 황당함이라니...
전 님의 자신감과 당당함을 사랑해요,,진짜루요,,,

hnine 2007-02-14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호인님, 그날이 너무 천천히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요.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때에는 많이 바뀌어 있기를. 그런데 그것을 위해 저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네요.
여울마당님,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존경해야 할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일을 이루는 사람들보다 어쩌면 이렇게 말없이 묵묵히 자기의 생각을 지켜가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씩씩하니님, 어제 남편의 지도 교수 얘기를 전화로 듣고 여러 가지 옛날 일이 생각나서 써본 것이었어요. 저 별로 자신있지도 당당하지도 않은데 어쩌지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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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반계에 불고 있는 폭탄 세일 바람.

베토벤, 모짜르트, 슈베르트의 전집 또는 주요작품을 각각  CD 50여장으로 묶어 서너장 CD가격으로 예약 판매한다.

모두 탐 났지만, 그 중 가장 갖고 싶은 이 Schubert의 collector's edition이 알라딘에서는 검색이 안된다. 베토벤 것은  있는데.

할 수 없지. 예약 판매이기 때문에 파는 곳을 찾아 가는 수 밖에.

3월 30일 배송 예정이라는 말도 개념치 않고 바로 구매해버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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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7-02-10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래식을 좋아하시는 군요. 잔잔함이 베어 있어 좋습니다. ^*^

hnine 2007-02-11 0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따로 들을 시간이 많지 않고 그나마 출퇴근 시간 차 안에서 듣던 것도 안하다 보니 성에 안 차지만 그래도 짬짬이 들으면 행복할 것 같아요.

2007-02-12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을 찾는가? 그건 어디에도 없다.

자유를 찾는가? 그것 역시 어디에도 없다.

찾아서 찾아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바로 지금, 현재를 열심히, 착한 마음으로 사는 것.

그것에 뭘 더 보태고 바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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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야누슈 코르착 지음, 노영희 옮김 / 양철북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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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숟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고 있을 때

그 숟가락을 빼앗아 버린다면,

단지 물건 하나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에너지를 분출하고

소리를 냄으로써 자신을 표현하던

손의 일부분을 빼앗는 것입니다.

야누슈 코르착이 그의 본명은 아니다. 헨리크 골드슈미트가 본명인 그의 직함은 의사, 작가, 교육자, 철학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열한살 되던 해 아버지가 정신 질환을 일으켜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 후 빈민 거주 지역으로 이사하여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야누슈 코르착은 그가 사용한 필명.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의사가 되었으며, 문학과 의학 두 분야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책은 야누슈 코르착의 저서 <어린이를 사랑하는 법>과 <어린이 존중> 에서 일부를 샌드러 조지프가 발췌하여 그에 대한 소개와 곁들여 엮은 책이다. 장황한 설명대신, 짧은 산문시 형식으로 우리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은 정직합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있을 때도 아이는 대답하고 있습니다.

사실을 얘기할 수 없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입니다.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어른들이, 더 순수하고 거짓없는 아이들에게 화내고 야단치고 억압을 가한다. 그들은 아직 힘이 없고 스스로 독립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어른들로부터 쏟아지는 그 모든 것을 아무 방어도 못한채 받아들인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그 여린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다. 무슨 권리로?

세상에는 끔찍한 일이 많지만

가장 끔찍한 것은 아이가 부모나 선생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대신 겁내는 것입니다.

나치가 그가 거주하던 바르샤바 유대인 거주 지역을 소탕할때, 돌보던 아이들을 저버릴수 없었던 그는 수백명의 유대인 고아들과 함께 가스실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 타고 마지막까지 그들과 함께 했다, 죽음의 순간까지.

이럴 수가. 갑자기 목이 콱 메여 왔다. 아무 잘못 없는 어린 아이들이 가스실로 들여보내지는 광경때문이기도 하고, 그들을 저버리지 못하고 함께 죽음을 택한 야누슈 코르착의 정신때문에 말을 잃는다.

한 아이가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예를 들어 창문 유리를 깨뜨렸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아이는 이미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이때 아이를 나무라면, 설사 그 이유가 타당할지라도 뉘우치는 기색을 보이는 대신 반항하고 얼굴을 찌푸리거나 화를 내게 됩니다.

사실 아이가 죄책감을 느낄 때, 그 때는 바로 어른들이 따뜻함을 보여 주어야 할 때입니다.

사실 깨진 유리는 아이들 편에서 보면 실패한 시도일 뿐입니다.

비록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은 결과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때 깨진 유리뿐 아니라 실패해 삐치고 화가 난 그 마음까지 받아들여야 합니다.

실패해 삐치고 화가난 그 마음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과연 타고 나는 것일까.

이 작은 책 한 권이 나를 감동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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