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하게 산다 심플하게 산다 1
도미니크 로로 지음, 김성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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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라며, 나는 해본 적 없는 기발한 생각, 저자의 천재성에 감탄하며 책을 읽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게 바로 내 생각인데 이 사람은 어쩌면 이렇게 잘 정리해서 일목요연하게, 설득력있게 쓸 수 있었을까?' 하는 경우가 있다. 이 또한 나같은 보통 사람에 비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뛰어남일텐데 이 책은 바로 후자에 해당한다.

<심플하게 산다> 원제가 프랑스어로 나와 있는데 난 프랑스어는 한마디도 모르지만 눈치로 보건대 <The Art of Simplicity>쯤이 아닐까.

예전에 혼자 기숙사 생활을 할때 내 방에 와본 친구들이 내 방을 보고 그랬다. 바로 어제 이사온 사람, 아니면 바로 내일 이사나갈 사람의 방 같다고. 그만큼 방 안에 뭐가 없다는 얘기이다. 지금도 책꽂이에, 냉장고에, 옷장에, 뭐가 꽉 차 있으면 불안해진다. 텅 비어있을때보다 더 내 심기를 건드린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쌓여간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뭔가 자꾸 쌓이는게 싫은 나는 책도 웬만해선 미리 사놓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도리어 읽은 책은 리뷰를 쓰고나서 누굴 주거나 중고책으로 파는 것으로 정리하는게 대부분이다. 나중에 또 보고 싶으면 어떻하냐고? 그럼 그때 또 사면 된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식사 준비할때에도 나의 이런 성향이 드러나는데 여러 가지 반찬이 올라와있는 밥상이 좋은 밥상이라고 생각하질 않는다. 물론 음식 솜씨가 별로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어떤 접시도 그냥 들러리로 상에 올랐다가 내려지는 것 없이, 적은 가짓수로 꽉 찬 밥상을 차리고 싶어한다. 그러려면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들때보다 생각을 더 많이 해야한다. 적은 가짓수로도 영양적으로 충분한 식사가 되어야 하니 책도 찾아봐야 하고 내가 정한 메뉴에 대한 분석도 해봐야 한다. 필요한게 들어가있나.

이 책에 그런 구절이 나온다. 안쓰는 물건을 정리하는 첫단계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과정이라고.

심플하게 사는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 노동, 두뇌 작용이 따라줘야 하는 것이다. 안버리고 그냥 쌓아두는데에는 머리 쓸 일이 없다. 그냥 두면 되니까. "언젠가 또 필요할지 몰라." 라는 한 마디 말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버리기 위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즉, 머리를 써야하는 것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버리기 싫어하는데는 욕심보다도 이런 '귀찮은' 과정이 필요한 것도 이유가 아닐까?

열 몇평 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30평대 처럼 사는 집이 있다. 삼십 평대 아파트에 살면서 열 몇 평 아파트에 사는 것처럼 사는 사람이 있다. 차이가 무엇일까? --> 이건 가끔 내가 남편과 아이에게 "정리하라'는 잔소리할때 하는 얘기이다. 버리는 것은 낭비, 버리지 않는 것이 곧 더 소유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그게 더 낭비인걸 모른다. 내가 쓸 수 있는 공간의 낭비.

요즘 많이 나와있는 정리의 기술을 주제로한 책들과 이 책의 차이가 무엇인지 읽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심플하게 사는 것의 철학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몸의 어디에 좋기 때문에 이걸 먹어야 하고, 다른 어디에 필요하니까 또 다른 종류의 뭘 먹어야 하고, 건강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면서 건강 식품, 영양제 등을 파는 광고가 사람들을 솔깃하게 한다. 양파 한가지 먹으면서도 몸의 여기에 좋으니까 이걸 특히 많이 먹어줘야 하고, 고기는 고기대로 충분히 먹어줘야 하고, 이건 이래서 먹어줘야 하고 저건 저래서 먹어줘야 한단다. 하지만 내 생각엔 뭘 더 먹어서 건강해질 생각을 하기보다는 몸에 좋지 않은 걸 하나라도 먹지 않음으로써 챙기는 건강이 더 먼저가 되어야 한다. 일단 돈도 덜 들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거나 쓰고 싶은 글이 있을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반복하게 된다. 더 좋은 단어, 문장이 떠오를때마다 포기할 수 없어 쓰고 또 쓰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농축된 짧은 말, 글로 끝내야 더 차원높은 말, 글이 된다는 걸 모르는바 아니면서.

 

이 책에서 인상깊은 구절을 여기에 다 옮겨적지는 않기로 한다. 마음다스리기 편에 나와있는 문장 딱 하나만 남겨두자.

자기 자신을 바로잡는 것이 그 어떤 지식을 얻는 것보다 우리를 훨씬 더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이게 심플하게 사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고? 읽어보면 알게 된다. 자유와 어떻게 관련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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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3-08-18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글도 님도~!! 밑줄 그어주신 문장 열 번 읽고 갑니다. 열 번 읽었더니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잘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hnine 2013-08-18 05:31   좋아요 0 | URL
열번씩이나! 감사합니다 ^^
자기 자신을 바로 잡는데에는 규율이 있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남이 만든 규율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잘 알고 만든 나만의 규율이요. 그래서 내 삶의 중심을 가질 때 물질적인 소유욕으로 비어있는 나의 중심을 대신 채우려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다고요.

이제 새벽 공기가 많이 선선해졌어요. 더위에 잠 설치지 않고 저도 잘 자고 일어났네요. 메리포핀스님도 잘 주무셨기를, 그래서 오늘도 힘찬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크아이즈 2013-08-18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책 정리에 대한 부분 격하게 공감합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생각은 님과 같은데 실천은 잘 못해요. 사는 속도에 비해 읽는 속도가 느리니 쌓이는 게 좀 있죠.
책을 그때그때 읽고 메모 남길 수만 있으면 실은 책꽂이가 모자랄 이유가 없지요. 책꽂이의 70퍼센트 이상의 책이 장식용이 되어가는 건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테니까요. 하지만 장식용이 된들 뭐 어쩌랴 하는 심정으로 책이 쌓이는 걸 방치하게 되는 게 읽고 쓰는 자들의 운명...
남은 여름 잘 보내시어요.^^*

hnine 2013-08-19 05:42   좋아요 0 | URL
저도 책 읽는 속도가 빠른 건 아니에요. 읽고나서 바로 리뷰 남기지 못할 때 많고요. 다만 새 책을 사는 속도도 그에 맞춘다고 해야되겠지요. 제가 2,30대에, 아니 최근 몇년까지 수시로 이사를 다녔다는 경험도 아마 한몫 하는 것 같아요. 이사할때 책이 얼마나 큰 짐인지, 자잘한 짐보다 책들 다 묶어서 포장하고 다시 박스 풀어서 책꽂이에 정리하고, 와, 그게 장난 아니더라고요.

프레이야 2013-08-18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제가 느끼고있는 나인님의 생활철학이 잘 드러나는 리뷰에요. 이 책이 새삼 관심가는 리뷰구요. 누가 그러더라구요. 나이들어가면서 이제 다운사이징 해야한다고. 예를들어 자동차도 오히려 작은거로 바꾸고.ᆢ 버리지못하고 이곳저곳 쌓아두는 건 제 자신을 방치하는 거나 다르지 않군요. 책을 비롯한 물건에서 글쓰기까지 , 그리고 크고작은 인연에까지. 나 자신을 알고 바로잡기 그리고 자유롭기, 좋은 충고 고마운 일요일 아침이에요. 무더워도 힘내고 방긋^^

hnine 2013-08-19 05:46   좋아요 0 | URL
저한테는 저자처럼 철학이라고까지 말하기 부끄럽고요 ^^
책을 읽다보니 ( 이 저자의 다른 책도 한권 읽었는데 ) 역시 사람에 관심이 많은 저는 이 저자에 대해서도 좀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아주 멋진 사람이거나, 아니면 좀 독특하고 괴퍅할 수도 있는 사람이거나...ㅋㅋ
제 남편은 뭐든 쌓아놓는 성격. 결혼하고 나서 저희 둘의 충돌이 어땠는지 짐작하시지요 ^^
버리지 않고 쌓아두는 건 모아두는게 아니라 '방치'하는 것이라는 말씀, 맞아요. 나 자신을 바로잡는 것은 자유로움으로 가는 수단이라는 것 까지...프레이야님은 따로 이 책 안 읽으셔도 되겠네요 ^^

서니데이 2013-08-18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루다미루다 얼마전부터 저도 정리를 시작했는데, 막상 시작하니까 걸린 시간에 비해서는 눈에 보이는 차이는 크지 않아서 아쉽긴 해요. 그래도 며칠 해보니까 좋은 점도 있고, 필요한 점도 있었어요. 리뷰에 적어주신 글에서처럼, 쓸만큼 사고, 쓸만큼 가지고 있는, 그리고 필요하지 않으면 정리하는 쪽으로 저도 앞으로는 바꿔보려구요. 저녁부터 비온다더니 덥네요. 즐겁고 건강한 여름 보내세요.

hnine 2013-08-19 06:16   좋아요 0 | URL
덩치가 큰 세간을 갖다버리지 않은 이상엔 정리한 것이 눈에 금방 띄지는 않지만 분명히 정리가 많이 되어 있을거예요. 저도 오늘은 화분들 정리좀 해볼까 생각중. 이거 벌써 몇달때 미루고 있는 일이랍니다. 날이 더우니 화분들고 이리 저리 옮기는게 힘들 것 같아서요.
여긴 어제 저녁 비 안왔어요. 이제 기온이 조금씩 내려가지 않을까요? 아이들도 이제 개학하고 대학도 개강이 멀지 않았는데 좀 선선해져야 할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