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 출간 15주년 기념 개정증보판
로버트 풀검 지음, 최정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인 로버트 풀검은 1937년 미국 텍사스주 웨이코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남부침례교의 엄격한 규율에 얽매인 삶을 어린시절과 청소년 시절에 보냈다. 젊은 시절에는 웨이터, 선불교 수도사, 조각가, 음악가, 로데오선수 등 다양한 직업과 삶을 경험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20여년간 퍼시픽 노스웨스트의 어느 교회에서 파트타임목사로 봉직했다. 올해로 79세다. 그는 성직자라기보다는 개그맨이나 예술가가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의 글은 웃기고 자기의 신념을 숨기지않으며 감성적이다. 글에는 자기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그의 생각이 느껴진다. 모든 훌륭한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이 독특함이 그의 글이 주는 매력이다. 

 
책에는 모두 70여편의 에세이가 실려있다. 주로 그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그 밖에도 그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것들, 동물들,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는 시시한 일에서도 재미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모든 이야기꾼들이 그러하듯이 그는 예리한 관찰자다. 그는 인류의 이야기꾼 전통을 잇는 사람이다. 소설로 풀어낼 수 있는 것들을 그는 에시이로 남겼다. 나에게 그는 미국의 작가들인 빌 브라이슨, 스티븐 킹, 레이먼드 카버, 스캇 펙과 같은 종류의 인간이다. 그들은 재미있고 심오하다.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고 알고보면 너무 재미있다는 게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다. 
 
풀검의 책에는 신조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2003년에 쓴 수정판 머리말에는 그가 쓴 이야기꾼의 신조가 있다. 모두 6개조다. 그는 아마 이 신조는 오랜세월 동안 변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강하다.
신화는 역사보다 강력하다.
꿈은 사실보다 힘이 있다.
희망은 늘 경험을 이긴다.
웃음만이 슬픔을 치유한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상상력, 신화, 꿈, 희망, 웃음, 사랑은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정신적인 가치들이다. 인간은 어쩌면 이런 것들 때문에 사실과 역사, 경험, 죽음, 슬픔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도착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지구에 번성하는 비밀일지도 모른다. 특히 모든 것의 앞에는 상상력이 있다. 상상하는 힘은 우리는 전혀 다른 우주로 데려간다. 
 
책 제목에서 말하는 바, 유치원의 모래성에 배운 것은 16가지다. 그는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이 어린시절에 배운 진리를 행동으로 옮긴다면 지구는 좀 더 평화롭고 살기좋은 행성이 되리라고 말한다. 문제는 늘 믿음이 아니라 행동이다. 이것은 기독교를 믿지 않았던 그의 아버지가 늘 하던 말 속에 들어있다. "네가 뭘 믿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네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야." 이건 어쩌면 예수가 말한 이야기 중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도 통한다. 
 
무엇이든 나누어가지라.
공정하게 행동하라.
남을 때리지 마라.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놓으라.
내 것이 아니면 가지지 말라.
다른 사람을 아프게 했으면 미안하다고 말하라.
우리는 모두 죽는다.
모든 단어중 가장 의미있는 단어인 '보다'(look)을 기억하라.
 
풀검의 에세이는 사실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것들이다. 보통과 다른 것은 그의 독특한 시각(look)이다. 그가 뉴욕의 택시기사를 만나고서 썼던 글에 나온 것처럼 '모든 것은 태도에 달려있다.' 어떤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어떤 태도로 대할 것인가가 그의 사람됨을 결정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기억에 오래 남는 사람과 사건들, 동물, 사물들이 있다. 낙엽청소부인 청각장애아 도니, 매년 크리스마스에 구세군 냄비를 들었던 '위대한 이교도'인 풀검의 아버지, 신학대학원 은사인 바틀렛 학장, 진공청소기 파는 남자, 구두닦이 엘리 에인절, 1인 성가대 소년, 버펄로 술집에서 만난 인디언 춤꾼, 인어소녀, 인도인 독립운동가 메논의 보좌관의 아들, 16년동안 그의 머리를 깎아준 이발사, 옆집 흑인남자, 그리고 거미와 너구리, 고장난 뻐꾸기 시계, 버섯, 민들레, 그리고 베토벤 9번 교향곡. 이들은 모두 시트콤의 등장인물들처럼 느껴진다. 에세이 한 편은 적어도 10분 정도 분량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이 중에서 가장 독특한 이야기는 단연 '의자 조종사' 래리 월터스의 비행일 것이다. 너무나 기발한 이야기라서 충격적이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설마'한다. 래리 월터스를 기념하는 웹사이트와 그의 비행사진을 보여주면 '우와'한다. 그는 1982년에 33살의 트럭운전사였다. 그는 정원용 알루미늄 의자에 헬륨을 가득 채운 45개의 풍선을 묶고 로스엔젤레스 국제공항 위로 날아올랐다. 16,000피트(4,878미터)까지 올라갔다. 그는 낙하산, 라디오, 캔맥주 6개, 땅콩버터와 샌드위치, 내려오기 위해 풍선을 떠뜨리는데 쓸 BB총을 갖고 있었다. 나중에 미연방항공국은 래리에게 '허가받지 않은 민간항공기를 조종한 죄'와 '공항 위를 날면서 관제탑과 교신하지 않은 죄'로 벌금 1,500달러를 물렸다. 그는 이 일로 유명해져서 <뉴욕타임즈>에도 실리고, 텔레비전에도 출연했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다. 그는 10년 뒤인 1993년에 로스엔젤레스 국립공원으로 등산갔다가 총으로 자신의 심장을 쏘았다. 이것도 충격이다. 풀검은 이렇게 썼다. '그가 느낀 절망의 깊이가 그가 가진 상상력의 높이와 비슷해서였을까.' 풀검의 방 벽에는 래리 월터스가 하늘을 나는 사진이 걸려있다고 한다. 
 
또 한 사람 기억나는 이는 유대인 구두닦이 엘리 에인절이다. 그는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이다. 동시에 학식과 사랑이 풍부한 사람이다. 학교는 안 다녔지만 독학으로 여러 개의 외국어를 능숙하게 할 줄 앍고, 역사와 철학, 신학에도 박식하다. 그는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신념의 소유자다. 그 믿음을 바로 행동으로 옮긴다. 보상을 바라지 않고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유대인들은 미츠바(mitzvah)라고 한다는데, 그는 미츠바의 대가다.  풀검은 그를 땅 위에 내려온 천사라고 말한다. 그의 심성은 그대로 아들과 딸들에 물려진다. 그들도 미츠바를 행한다. 그 결과로 세상은 더 살기 좋아진다. 그리고 그런 미츠바를 행하는 이는 미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인도에도 있다. 인도인 독립운동가 메논은 늘 자선을 행한다. 그는 젊은 시절 어느 이름모를 시크교도에게 받은 자선을 잊지 않고 죽을 때까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선을 베푼다. 그 자선은 돌고 돈다. 이런 가르침은 이슬람교의 수피즘에도 있다. 모든 인간적인 종교에는 이와 같은 가르침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랑 먼저 놀 거야! - 코숙이 선생님의 시공책
강승숙 지음 / 낮은산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기엔 모두 32편의 시가 실려있다. 어린이들에게 들려줄 만한 참 좋은 시들이다. 시인이 쓴 시도 있고, 어린이가 쓴 시도 있다. 강승숙 선생님이 직접 그린 그림도 같이 곁들여져있어서 한 권의 그림책을 읽듯이,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를 읽듯이 그렇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덕분에 발견한 시들도 여럿이다. 구일초등학교 2학년 박철순이 쓴 시 '바람소리'가 좋았다. 나무 밑에 있으니/바람 소리가/파라파라거린다/그 소리가 좋다/바람이 피리를 분다. 9살 어린이의 감성이 그대로 느껴지면서 어른도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시였다. '뻔하지 않아/뻔뻔하지도 않아'라는 시구가 들어간 정유경의 '번데기'도 좋다. 어린시절 고소하게 먹던 번데기 생각이 절로 났다. '나는 개밥주는 시간이 좋다'는 망상초등학교 5학년 김파란의 '개밥주기'를 읽으면서는 정호승의 시(개밥그릇인가?)가 얼핏 생각났다. 개가 밥그릇을 밑바닥까지 핥아먹는다는 그 시가 문득 생각났다. 이렇듯 좋은 시와 글은 잊혀졌던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관계의 교육학, 비고츠키 - 한국 교육의 새 지평을 여는 비고츠키 교육학 입문서
진보교육연구소 비고츠키교육학실천연구모임 지음 / 살림터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레프 비고츠키(1896-1934)는 심리학의 모차르트,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대단한 통찰력과 열정의 소유자였던 그는 폐결핵으로 38세에 요절한 천재다.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거대하다. 신자유주의와 경쟁교육이 만들어낸 황폐한 사회와 학교현장에 그가 제시하는 ‘협력과 발달’의 교육학은 마치 복음처럼 들린다. 공생애 활동 3년만에 인류에게 사랑의 복음을 전해주고 떠난 예수처럼, 비고츠키도 짧은 활동기간에 인간과 교육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과 처방을 남겨주고 떠났다. 그는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도 병상에서 <생각과 말>로 구체화된 사상을 제자들에게 남겼다. 그의 사상은 소련의 관변과학에서 탄압받았지만 30여년이 지난 후 다시 부활했다. 그의 사상은 현대적인 발달 심리학과 뇌과학, 인지과학의 성과를 예언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시대를 앞서갔다.

 

이 책은 비고츠키 교육학에 대한 입문서다. 비고츠키 교육학의 핵심개념과 원리들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저자들이 오랫동안 비고츠키 저작들을 가지고 세미나를 하고 현장에 적용하면서 고투해온 흔적이 엿보인다. 덕분에 우리는 비고츠키 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지도를 건네받은 셈이다.

 

책은 모두 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는 비고츠키 교육학의 기본관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관계와 협력을 통한 주체적인 인간발달이 교육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2장에서는 고등정신기능에 대해서 다룬다. 도구와 기호의 문제, 창의성에 대한 비고츠키의 견해를 알 수 있다. 3장에서는 생각과 말의 문제를 다룬다. 비고츠키의 마지막 저작인 <생각과 말>을 자세히 풀어 쓴 글이라고 보면 되겠다. 4장에서는 근접발달영역과 오브체니(우리말로 교수-학습)에 대해서 다룬다. 용어가 어려워서 심오한 것 같지만 그다지 어려운 영역은 아니다. 학교 교육현장에서 꼭 필요한 영역이기도 하다. 5장에서는 유아에서 청소년까지 인간발달이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과정을 설명한다. 6장에서는 비고츠키 교육학이 교육현장에서 실천적으로 적용된 사례를 다룬다. 배움의 공동체나 혁신학교 운동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다. 실천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관심있게 볼 부분이다. 보론에서는 비고츠키의 주요저작에 대한 안내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은 고등정신기능의 문제를 다룬 2장과 생각과 말의 관계를 다룬 3장이다. 물론 실천적인 적용의 문제를 다룬 4장도 흥미로웠다. 모두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의 문제, 어떻게 자유의지를 지닌 주체적인 인간이 형성되는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철학과 교육학의 문제이기도 하면서 인간이 다루는 모든 학문의 궁극적인 지향점이기도 한 영역이다.

 

보통 인간을 규정할 때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 사회를 이루는 존재, 말하는 존재라는 정의를 많이 인용한다. 약간 식상하기도 하지만,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기호는 심리적인 도구라고 한다. 기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다. 비고츠키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언어라고 말한다. 언어활동에서도 고등기능을 가지는 것은 글쓰기다. 입말과 글말은 똑같은 말 같지만 엄연히 구분되는 기호다. 단지 우리가 날카롭게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이 지점에서 이오덕 선생의 글쓰기 교육이 가지는 교육학적 의미를 새롭게 파악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종말론적 신비주의자 중세르네상스연구소 연구시리즈 1
주경철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어로 Christopher Columbus라고 부르는 이 인물은 다른 나라에서는 조금씩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크리스토포로 콜롬보(제노바), 크리스토발 콜론(스페인), 크리스토파오 콜롱보(포르투갈), 크리스토프 콜롱(프랑스). 이 인물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새로운 대륙의 발견을 위대한 위인에서 인디언의 학살자, 노예사냥꾼 등 다양한 평가를 가지고 있다. 이 사람이 태어난 나라는 이탈리아의 제노바다. 1451년 여름이라고 알려져있다. 아버지의 직업은 직조공이었다. 그도 가업을 이으려고 하다가 젊은 시절에 방향을 전환하여 선원의 길로 접어들었다. 나중에 제노바를 떠나서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건너간다. 1476년이라고 한다.26살 때다. 대관절 이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세계사적인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1453년 비잔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투르크제국의 메메트 2세에게 함락된다. 이로써 지중해 동부는 이슬람권이 장악하게 된다. 지중해동쪽을 이용한 교역로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중국과 인도를 대상으로한 비단과 향신료무역으로 덕을 보던 이탈리아자본은 새로운 방향전환을 모색한다. 제노바나 베네치아 같은 통상국가들은 이베리아반도의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주목한다. 아마 이 무렵에 콜럼버스 일가도 리스본으로 이주한 것이 아닌가 싶다. 콜럼버스가 포르투갈에  체류한 10년간은 그가 가장 젊었던 시절이다. 26살부터 10년간 그는 포르투갈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항해에 대한 것부터 세상사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당대의 진리인 기독교에 대한 것 까지도. 그는 방대한 독서량을 가지고 있는 독서가였다. 그 때는 책 한권의 가격이 굉장히 비쌀 때였는데, 그가 남긴 문고는 상당하다고 한다. 책 여백에 그가 남긴 주석이 상당할 정도로 그는 당대에 유행한 교양서들을 거의 다 보는 독서가였다. 콜럼버스의 대서양 항해의 재료가 된 것은 바로 그가 읽은 책에서 얻은 지식들이었다. 유명한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비롯해서,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중세의 베스트셀러였던 맨드빌의 <여행기>같은 책들이 그가 열심히 읽고 주석을 달았던 책들이다. 그런데 이들 책 가운데는 이른바 '안락의자 여행자'들이 쓴 터무니없는 소설 같은 책들도 있었는데 그것을 열심히 믿었다고 한다. 이 책들은 아직도 남아서 연구자들이 콜럼버스의 생각을 연구하는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무렵 포르투갈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왕국인 모로코를 정복하려는 군사적 욕망과 동시에 아프리카해안과 대서양을 향해서 새로운 교역로를 찾으려는 상업적 욕망이 팽창해있는 국가였다. 콜럼버스는 1485년 포르투갈왕에게 대서양을 넘어선 아시아 항해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한다. 명목은 황금의 나라인 시팡구를 찾아서 금을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시팡구는 마르코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말하는 황금의 나라이다. 오늘날의 일본(Japan)을 말한다고 여겨진다. 똑같은 제안을 스페인왕에게도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나중에는 프랑스로 가려고도 했다. 그렇지만 거의 마지막 순간에 스페인의 왕이 받아들여서 세 척의 배로 첫 항해를 하게 된다. 이들이 타고간 배는 한강 유람선 정도의 작은 규모였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스페인은 콜럼버스의 발견을 국제적으로 알릴 때 그들이 타고간 배가 작은 규모였다는 것을 기밀로 숨겼다고 한다. 그렇게 작은 배로도 대양을 항해하는 게 가능하다는 게 비밀이라면 비밀이었던 셈이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서쪽으로 직선항해하여 아시아에 도착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또 그는 왜 아시아에 가려고 했던 것일까? 당시 유럽인의 지리학적 상식을 구성한 지도는 이른바 마파 문디(Mappa Mundi. 중세세계지도)다. 이 지도에 의하면 세계는 예수의 몸의 이미지에 맞게 되어있다. 지도 가운데는 세계의 배꼽(옴팔로스)인 예루살렘이 있다. 성경에서 노아의 대홍수 이후에 아시아를 셈에게, 유럽을 야벳에게, 아프리카를 함에게 주었다고 한 것을 문자 그대로 믿었다. 그래서 세계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지상낙원인 에덴은 동쪽 끝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큰바다(ocean)이다. 이들에게 대서양은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큰 바다였다. 아직 유럽인에게 태평양이나 인도양의 개념도 없을 때이다.

 

한편으로 새로운 지도도 있었다. 이른바 포르톨라노(Portolano)지도인데, 이것은 실제적인 지형을 기록한 지도다. 당대까지 얻어낸 최신의 지식을 활용하여 만들어낸 지도였다. 뱃사람들은 두 개의 지도를 같이 갖고 다녔다고 한다. 또한 1406년에는 고전시대 지리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이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이것은 지구를 360도의 경도와 위도로 나누는 혁신적인 방식의 지리학이었다. 이 때쯤에는 이미 뱃사람들에게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지구는 평평해서 먼바다로 나가면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선원들이 믿었다는 이야기는 19세기에 만들어진 이야기다. 오히려 선원들이 먼바다로 항해할 때 두려워했던 것은 물과 식량이 떨어져서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콜럼버스는 선원들이 걱정하는 것과는 다르게 생각했다. 그가 나름대로 공부해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육지가 바다보다 6배나 더 크고, 바다는 아주 작다. 아시아는 광대한 대륙이다. 아시아의 끝에는 시팡구라는 황금이 가득한 섬나라가 있다. 시팡구로 가는 길에는 8,000개 가까운 섬이 있다. 그 섬들을 중간 기착지로 삼아서 식량과 물을 해결하면 될 것이다. 콜럼버스의 계산으로는 카나리아제도에서 일본 사이의 거리는 2,400마일 정도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실제 거리는 16,000마일이라고 한다. 중간에 아메리카 대륙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들이 스페인의 팔로스 항을 떠난 것은 1492년 8월 3일이다. 10월 10일에 선원들이 반란을 기도했다. 가도가도 망망대해만 나오니 선원들은 두려워진 것이다. 콜럼버스는 며칠만 더 기다려보고 그래도 육지가 안 나오면 돌아가자고 설득했다. 마침내 이틀 뒤인 10월 12일 현재의 바하마 제도에 있는 '구아나아니'(이구아나를 닮았다고 현지인이 부르는 이름)섬에 도착했다. 콜럼버스는 이 섬을 '산살바도르'(구세주라는 뜻)라고 이름 붙였다. 원주민들은 발가벗고 다니고, 정말 친절하게 그들을 환대했다. 콜럼버스가 이곳에서 찾은 것은 금이었다. 그렇지만 금은 없었다. 나중에 그가 발견한 것은 쿠바였다. 그는 쿠바를 아시아대륙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모두 4차에 걸친 항해에서 그가 찾아낸 것은 남아메리카의 오리노코강도 있었다. 바다가 아니라 민물이 흘러나오는 강을 발견한 그는 이곳이 바로 에덴동산이 있는 곳일 거라고 생각한다. 중세의 지도에 의하면 낙원은 아시아의 동쪽 끝에 있는 곳이니까 말이다. 유럽인의 항해에는 이런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그들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간 것이고, 그것을 해석할 때는 성경에 근거했다. 인어를 보았다고 믿는 장면도 나온다. 마치 우리가 지금 태양계를 탐사하면서 온갖 추측을 하듯이 그들도 당대의 지식으로 온갖 상상을 다한 것이다.

 

중세적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이들에게는 세상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만들어져 있었다. 세계는 창조된지 7000년 정도면 종말에 이른다고 계산했다. 콜럼버스 당대에서 종말까지 남은 시간은 150년 정도가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세밀하게 분석해서 얻은 결론이었다. 당대의 과학자들인 뉴턴이나 케플러, 파스칼, 로저 베이컨 같은 인물들도 종말론을 적극 연구하고 종말의 시간을 계산했다고 하니, 사람은 시대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는 법이다. 게다가 15세기의 스페인은 이러한 종말론의 온상이었다고 한다. 이슬람세력의 흥기가 끝나면 종말론에서 말하는 마지막 종파인 적그리스도가 활개를 친다. 진짜 마지막은 적그리스도와 벌이는 아마겟돈 전쟁이다. 그 전쟁이 끝나면 세계의 종말이 온다. 책에서는 콜럼버스를 종말론적 신비주의자라고 하는데, 기록과 분석에 근거해서 하는 이야기다. 콜럼버스는 단지 세속적인 욕망만으로 대서양항해에 나선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신분상승의 욕망이 강한 인물이기도 했지만, 기독교 종말론에 깊이 심취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황금의 나라인 시팡구를 찾아서 금을 얻고, 그 금으로 스페인 왕을 새로운 예루살렘을 건설하는 마지막 황제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카리브해에서 발견한 것은 금이 아니었다. 그가 볼 때 돈이 되는 것은 원주민노예밖에 없었다. 그는 원주민을 노예로 만들어서 팔 생각을 했다. 이게 나중에 스페인 왕과 충돌하는 이유도 된다.

 

결국 콜럼버스는 카리브해의 원주민을 학살하거나 노예로 만들고, 식민지를 만드는 데 첫삽을 뜬 인물이다. 그래서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콜럼버스가 도착한 10월 12일을 콜럼버스의 날로 기념하길 거부하고, '원주민 저항의 날'로 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몇 년 전에 죽은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 같은 이는 콜럼버스가 원주민을 학살하고 식민체제를 만든 장본인이라고 격렬히 비난하기도 했다. 콜럼버스는 전 지구적인 교류의 문을 연 장본인이기도 하면서, 아메리카 원주민을 고통 속에 몰아넣은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는 콜럼버스 덕분에 담배나, 고추, 감자, 고구마, 옥수수를 맛보고 있다. 그렇지만 1만년전 빙하기로 건너가면 우리의 친척이기도 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받았던 끔찍한 대접을 잊으면 안 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