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기다리던 경주마라톤대회에 참가했다. 기다림에 비해서 운동량은 많이 모자란다는 점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난 때가 5시였다. 밤새 긴장한 탓에 잠이 깨자마자 바로 일어났다. 어제 밤에는 11시 반에 잤었다. 잠이 좀 모자란 듯했지만 그대로 일어나서 움직였더니 몸이 정상으로 돌아간다. 녹차를 300ml 정도 마시고 나갔다. 아침밥은 안 먹었다. 공복에 달리기로 했다. 5시 55분에 집에서 나섰다. 동쪽 하늘에 샛별이 떠 있었다. 감동스러웠다. 날씨는 쌀쌀했다. 차를 열심히 몰았다. 신호등 무시하고 한참을 밟아서 그렇게 경주로 갔더라.
경주 황성공원에 도착한 시간이 6시 50분이었다. 미리 답사를 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마음에 긴장이 되었다. 초조하기도 했다. 나는 시립도서관 근처에 차를 대고 나서 길을 물어보니 시민운동장이 바로 지척이었다.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어묵이나 뜨거운 차를 마시는 모습들이 보였다. 옷이나 가방, 신발을 눈여겨 살펴보게 된다. 대부분 운동복 외투를 입고 오거나 가방도 근사한 것들이 많았다. 나는 차 안에 가져온 아디다스 가방을 그대로 두고 어깨에 매는 작은 가방을 가지고 갔다. 나중에 차라리 큰 가방을 그대로 가져올 것을 하는 후회를 나중에 하기도 했다. 시민운동장으로 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바쁘게들 가고 있었다. 운동장에 도착한 시간이 7시 10분쯤이었다. 나는 지난번에 본 대회요강에 나온대로 6시 30분에서 7시 사이에 선수등록을 해야 하는 줄 알고 마음이 바빴다.
운동장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운동장을 한번 둘러보고나서 운동장 한가운데 있는 '안내소'로 갔다. 거기 가서 선수등록을 어디서 하는지 물었더니 거기 있는 아가씨가 "선수등록요? 그런 거 안하는데. 등록번호 있으시면 나중에 그냥 뛰면 됩니다."하고 말했다. 순간 멍청했다. 7시 전에 등록하라는 대회요강은 뭐야? 따질 것 까지는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돌아서 나왔는데 우선 내가 안내책자를 제대로 못 읽어서 그렇다는 생각을 했다. 운동장 한 가운데서 30분 정도를 서성거렸다. 따뜻한 차도 얻어마시고, 화장실에도 다녀왔다. 운동장 밖에 있는 간이화장실은 어찌나 덜렁거리던지. 문밖에서 계단을 짚고 있으면 화장실이 똑바로 서는 그런 이상한 화장실이었다.
7시 40분에 여자엘리트 선수들이 먼저 출발했다. 이어서 8시에 엘리트 선수들이 출발했다. 8시 10분 마스터스 부분 풀코스 선수들 출발. 8시 15분 하프코스 출발. 8시 25분 10km코스 출발. 그 전에 물품보관소에 짐을 맡겼다. 우유빛 비닐가방에 짐을 넣어서 주었더니 짐번호를 선수번호표에 붙인다. 시스템이 잘 짜여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스트레칭을 10여분 했다. 그 동안 운동장은 전국에서 모여든 선수들로 꽉 찼다. 10,000명은 넘어보였다. 각종 달리기 동호회들이 모여드었다. 카톨릭 달리기 동호회가 나는 인상깊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했다는 말씀을 옷에 새긴 선수들이 많았다.
풀코스, 하프코스, 10km코스로 출발을 나눠서 했는데, 출발선으로 한꺼번에 천천히 밀려갈 때의 그 느낌이 좋았다. 가슴이 흥분으로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날 사회는 이창명과 후배 개그맨(이름은 모르겠다. 목소리가 힘있고 좋았다.)이 맡아서 했다. 대회 내빈은 동아일보사 김학준 사장, 아식스 사장, 육상협회장, 경북도지사, 경주시장, 국회의원 들이 있었다. 이들이 출발선 쪽에서 출발버튼을 누르면서 우리를 환송해주었는데, 나는 김학준이라는 사람을 주목해보았다. 대학1학년 때 김학준의 <러시아혁명사>를 탐독했던 기억이 있어서 나는 김학준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거리였다.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손을 흔드는데 김학준은 손을 잘 안 흔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민운동장을 나서서 거의 1km를 달리기까지는 천천히 걷듯이 했다. 앞 쪽에 보니 산소통을 메고 달리는 119소방대원들도 있었다. 나는 책자에서 본 대로 '걷다가 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9분 달리고 1분 걷기로 했다. 처음에는 걱정했던 대로 정강이 근육이 모이는 증상이 있었는데, 2km를 넘어서니 풀리는 것을 느꼈다. 5km 정도 달리니 기분도 상쾌하고 달리는 느낌도 좋았다. 그야말로 순풍에 돛 단 듯이 그렇게 잘 달렸다. 슬슬 처지는 사람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가는 재미도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숨이 가빴다. 9분 달리고 1분 걷기를 되풀이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어느새 8km였다. 남은 거리는 2km. 1분 걷기할 구간이었지만 그대로 달리기로 했다. 마지막은 정말 힘을 주어서 달렸다. 처음에는 기록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었는데, 불현듯 시계를 보니 잘하면 1시간 안에도 들어갈 수 있겠다 싶었다. 열심히 달렸다. 결승점에 들어올 때 손목시계를 보니 1시간 2분 정도 되었다. 나중에 주최측에서 문자메시지로 보내온 기록은 1시간 09초였다. 거의 한시간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번호표 뒤에 달려있는 컴퓨터 칩이 기록을 자동으로 측정하는 것이라서 오차가 거의 없다고 한다.
달리고 나서는 운동장을 5분 정도 걸어다녔다. 그리고 나서 잔디밭에 앉아서 스트레칭을 10분 동안 했다. 이어서 칩을 반납했다. 10km 완주 메달과 간식을 받았다. 빵과 바바나, 초코파이, 보리음료가 들어있었다. 얼마나 반가운 음식이던지. 아침 굶고 달린 뒤라 정말 몸이 노곤했다. 음식을 맛있게 먹고나서 잔디밭에 앉아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메달을 들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첫화면에 등록을 했다. 지금도 그 사진이 내 휴대폰에 등록되어 있는데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그냥 가려는데 재활마사지를 하고 있는 곳을 보니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가만히 보니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나도 거기 줄을 섰다. 6명 정도 지나서 나도 마사지를 받았다. 30분쯤 기다렸나. 5분 정도 다리와 골반, 등을 중심으로 마사지를 했는데 몸이 훨씬 나았다. 내 앞에 서 있던 아저씨는 나이가 50살 근접했다고 하는데, 몸이 안 좋아 보였다. 화장실에 간다고 일어서는데 다리를 펴지 못해서 내가 손을 잡아서 일으켰다. 근육이 모인 모양이었다.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원래는 풀코스에 출전했다고 한다. 그런데 연습을 거의 못해서 아주 힘들었단다. 달리는 도중에 하프코스로 바꿔 달렸다고 한다. 완주도 여러번 했다는데, 젊어서 달리던 실력만 믿고 무리해서 풀코스를 달렸다가 낭패를 본 경우였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나도 그렇게 연습을 많이 한 편이 아니다. 9월 한달은 한 주에 서너번 연습을 충실히 했다. 그런데 추석연휴 뒤부터는 거의 한 주일에 한번 달릴 정도의 연습 밖에 못했다. 나중에는 조금만 달리면 정강이 근육이 모이고 하길래 과연 10km를 달릴 수 있을지 자신이 안 섰다. 그런데 뜻밖에 10km를 쉽게 뛰고 기록도 예상보다 잘 나온 편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 평소에 걷기를 많이 한 덕분이라고. 나는 출퇴근을 버스로 한다.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15분 정도 걸린다. 1km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아침에는 매일 30분씩 산행을 한다. 이것도 거리가 2km는 될 것이다. 하루에 4km는 기본으로 걷는 셈이다. 나는 이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믿는다. 이번에 우승한 케냐 선수나 얼마전에 세계기록을 낸 선수도 학교가는 길이 10km여서 늘 걷거나 뛰었다고 한다. 하루에 20km정도는 저절로 운동이 된 셈이지. 이렇게 일상적인 생활에서 쌓는 운동이 주는 의미는 커다. 10분 정도 거리면 걷기, 엘리베이터 안 타고 계단 걸어서 올라가기 같은 것들이 내가 습관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발을 씻다보면 발바닥에 굳은 살이 박힌 부분이 만져진다. 예전에 늘 차타고 다닐 때는 없던 것이다. 손이나 발에 굳은 살이 박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손으로 운동이나 노동을 많이 하고 늘 걸어다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깨가 아파서 거의 1년 동안 무거운 것을 드는 일을 못했더니 손바닥은 여자손처럼 말랑해졌다. 이제 좀 움직일 만한 데 여유가 되면 헬스장에라도 가보아야겠다. 한 주일에 세번 헬스하고 네번 달리기하는 리듬을 당분간 유지해보려고 한다. 4월 초에 있는 경주벚꽃마라톤에는 하프코스에 도전해보는 것이 지금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