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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졸업 후 스웨덴에서 취직해서 스웨덴 여성분과 결혼하여 아이 낳고 오손도손 잘 살고 있는 동아리 오빠한테 문자가 왔다. "여기에서 결혼한 회사 여자 동료가 얼마 전 한국에 갔었는데, 친구들이랑 친척들이 능력 있는 남편 잘 잡아서 집에서 지내는 게 여자로서 최고의 복이라고 했대. 아무리 공부 잘해봤자 남편이 돈 못 벌어오면 나가서 일해야 하니까 돈 많은 남편이나 시댁 만나서 집에서 노는 게 훨 낫고 자랑스럽다고. 한국 여자들은 진짜로 그래?"

"엥? 친구들까지 그런 말을 했다고? 진짜로 그랬대?" 오빠는 내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노처녀에세이를 쓰고 있기 때문에 물어본 거 겠지만, 나도 처음 듣는 얘기였다. 한국이 아무리 좁다지만 내 허용범위는 어디까지나 나와 내 주변 사람들까지다. 막장드라마보다 더 자극적인 연애를 하는 친구들은 더러 있지만, 오빠가 궁금해하는 남의 인생에 자기 인생을 끼워팔기하려는 여자들은 내 주변에는 없다. 21세기에 이제 저런 사고방식을 가진 여자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주변에 은근 많다고 한다.

 


 

 

 

뭐니뭐니해도 인생은 날로 먹는 게 장땡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란 건데, 능력 있는 남편 만나서 집에서 놀고 먹고 살고 싶다는 소망자체는 나쁠 것 없다고 본다.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면 결혼 상대자를 볼 때 오로지 '조건'만 보면 되니까 고르기도 편할 것 같다. 결혼이라는 게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가치들, 매력있게 생겼다, 배려심이 많다, 유머러스하다, 코드가 잘 맞는다 등등에 대한 비중이 높으면 고르기가 어렵다. 남들 눈에 괜찮아도 나에겐 아닌 경우가 많아서 소개를 받고 난 뒤에 듣던 거랑 완전 다르다며 실망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그런데 '능력'이라는 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객관적인 팩트라 소개한 사람도 소개받은 사람도 만족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집에서 놀고 먹고 살려면 능력만 가지고는 부족할 수 있겠다. 남자의 능력에 남자의 가치관까지 합쳐져야 진정한 인생 날로먹기가 성립한다. 능력 있는 남자라 하더라도 집에서 여자가 놀고 먹는 꼴은 못 보는 사람이면 안 되니까, 본인능력이 있으면서 여자는 자고로 집에서 남편을 내조하는 게 최고라고 여기는 남자여야 할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고 선 자리라면 만나기도 전에 알 수 있으니 시간 낭비, 감정 소모 할 필요도 없이 속전속결로 결혼을 추진할 수 있을 것 같다. 관건은 두 조건을 충족한 남자 쪽이 여자를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겠지. 이런 결혼조건을 내세우는 여자는 현실적이고 똑똑할테니까 스스로의 값어치가 가장 높을 때를 알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줄도 알 것 같다. 그리고 베짱이인생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면 더할 나위없는 성공적인 인생일 터.

 

 


 

 

 

여기까진 좋다. 각자의 가치관과 인생이 있는 거니까. 그런데 베짱이가 개미의 인생을 우습게 보고 까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문제가 된다. 남의 인생에 얹혀 살아가려는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바로 서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모독하는 건 허영심만 가득찬 골빈 인간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밖에 안 된다. 내 몸 하나 편하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을 마치 인생의 대단한 진리라도 깨우친 것 마냥 '진정한 여자의 행복' 이라 포장하고, 내 몸뿐 아니라 내 가족들의 몸까지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여자를 한심하다고 비꼬며 으스대는 모양새는 꼴같잖다. 같은 유부녀들 사이에서 대장노릇하려는 거로도 모자라 우매한 노처녀들에게 훈계질까지 하려한다니 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아무리 물질만능주의 시대라 해도 물질이 모든 걸 채워주진 못 한다.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샤넬 백을 사서 남들의 부러움을 샀던 때는 아닐 것이다. 만약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라 한다면 그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가. 돈만 보고 결혼한 여자들은 하나같이 얼마나 풍족하게 잘 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과시하고 싶어한다는데 자신의 행복을 남을 통해서 밖에 확인할 수 없다는 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고보니 한번은 그런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종로의 한 카페였는데 건너편에 앉은 남녀가 시선을 끌었다. "외모는 통과, 내 조건만 잘 들어주면 결혼하는 걸로 엄마한테 얘기할게. 일단 밥은 안 해도 돼. 대신 집에서도 그렇게 항상 예쁘게 차려입고 있도록 해. 몸매관리도 잘 하고. 골프는 칠 줄 알아? 몰라? 빨리 배워. 내 사업상 부부동반으로 칠 때 필요하니까."

고급진 옷으로 휘감은 때깔 좋은 남자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로 여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야 저 놈은, 조용한 카페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큰 목소리에 내용도 내용인지라 저절로 눈길이가고 귀가 쫑긋 세워졌다. 앞에 앉은 여자는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모으고 네, 네 하며 존댓말로 고분고분하게 대답했다.

한참 말하는 중에 벨소리가 울렸고 남자는 양해의 말 한마디 없이 전화를 받았다. 그 남자의 통화는 길고 길어서 그 사이 나는 커피와 샌드위치를 다 먹었지만, 그 동안에도 여자는 미동도 없이 얌전히 기다리고만 있었다. 보면 볼 수록 흥미진진한 커플이었다. 드디어 전화를 끝낸 남자는 역시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없이 못 다 말한 조건을 쏟아냈다. 자기 신경 거슬리지 않게 잘 하라는 것과 부모님 특히 엄마하라는 대로 잘 하라는 것. 그 밖에도 이러쿵 저러쿵 늘어놓더니 이제 가야겠다며 나중에 전화할테니 잘 받으라는 말을 남기고 훌쩍 일어섰다.

 


 

 

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네, 라는 대답 외에는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사업상 거래를 하는 듯한 만남, 갑과 을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화.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광경이 충격적이어서 한참 전일인데도 생생히 떠오른다. 불가피하게 결혼이라는 개인회생이 필요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신분상승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조건은 집어삼킬 수 있다는 야망가였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스스로가 선택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기대한 바대로 나름의 만족과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 하지만 살다보니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상대적 박탈감을 주변 사람들에게 선사함으로써 어떻게든 자기 삶을 합리화해서 억지로 행복한 척 하지말고, 죽기 전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한 기억을 채워줄 순간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길 바란다.

물질이든 감정이든 간에 여자의 궁극의 행복을 판단하는 건 각각의 여자 개인에게 달려있겠지만, 어느 한 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친 삶에서 행복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하는 괴로움과 갖고 싶은 행복을 저울질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할 때'에는 용기를 내서 움직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 용기를 내면서 살아가는 여자들을 한심하다고 싸잡아 깎아내리는 행위는 단연코 삼가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 부여를 할 것인가,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문제만큼은 상대평가를 해서는 안 된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도 철저하게 절대평가로 임해야 남들의 말에 흔들림 없이 바로 설 수 있고, 내가 선택해서 거머쥔 행복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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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 설인데 뭐 해?
심심하다 놀아주라


쏴리, 나 지금 한정식집이야



엇! 너 결혼해?!
상견례 중?



ㄴㄴ 친구 생파



생파를 무슨 한정식 집에서 해
칠순잔치도 아니고ㅋㅋㅋ



노총각 친구가 빵터졌다. 친구들끼리 한정식집이 어때서! 어릴 때부터 서로의 집을 오가며 먹부림을 하던 친구들끼리 그대로 나이만 먹었다. 평균 20년지기 동네친구들 5명 가운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친구는 꼴랑 한 명. 나를 포함해 나머지 넷은 노처녀다.

 

친구가 결혼할 때 포토테이블 장식을 살까말까하다 우리 친구들 결혼할 때 물려 쓰면 되니까하며 질렀었는데 그 뒤로 만 3년간 아무도 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포토테이블 장식이 들어있는 상자에는 뽀얗게 먼지만 내려앉았다. 원래 친구가 가면 뒤이어 줄줄이 간다는데 우리 친구들은 어쩜 이리도 강직한 성품을 지녔는지 꿋꿋하게 노처녀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한정식집에서 무슨 생일 파티냐며 웃던 노총각 친구는 자기도 껴달라고 졸랐다. 노총각이네 친구들은 다들 결혼해서 아이낳고 사느라 같이 놀아주기는 커녕, 얼굴보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혼자 외롭고 우울하다고.

 

외로운 건 피차 마찬가지지만, 외로움을 나눌 친구가 있다는건 참 감사하고 든든하다. 결혼한 친구 외에는 한동네에 살기에 '어디야, 나와'해서 떡볶이 먹고 친구네 집에 가서 뒹굴거린다. 몸만 컷지 교복 입던 그 때 그대로다.

노처녀라고 못 갈 쏘냐 우리도 한 번 가보자, 격조있는 한정식집에서 모처럼 곱게 차려입고 만났건만, 음식 앞에 우아는 개뿔. 그릇을 치우려는 종업원에게 "아직 안 돼요!"를 급박하게 외치며 내 자식이라도 뺏기는 양 온 몸을 던져 막아내는 우리.

 

끝도 없이 나오는 코스 요리에 배가 터질 것 같다면서도 쉴 새 없이 입에 잔뜩 쑤셔넣고는 내 배 좀 보라며 출산임박했다며 누가누가 더 나왔나 겨루질 않나. 비와 김태희의 결혼소식에 아기가 아빠 닮아서 막 춤추면서 나오는 거 아니냐며 왕년에 비 팬인 내가 한 번 해보겠다며 꿀렁꿀렁 웨이브와 글러브춤을 추질 않나.

 

36살 먹고 이러고 있다.


이런 꼴을 모르고 자기도 껴달라고 떼쓰던 노총각이는 안 껴줄 거면 소개팅이나 시켜달란다. 왕따 서러워서 올해는 결혼해야겠다고. 같이 놀 친구가 없으면 제 아무리 혼력(혼자 지내는 능력)이 뛰어나도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쉽고 그러다보면 괜시리 조급해져서 아무나 붙잡고 확 결혼해버려야겠다는 마음이 들기 쉽다.

 

주위를 보면 노총각이든 노처녀든지 간에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하고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싱글생활을 잘 보낸다.

유부친구들은 육아에 살림에 일에 슈퍼맘하느라 바쁘다보니 자연스럽게 노처녀들끼리 어울리게 된다. 같은 노처녀 친구라하더라도 눈빛만 봐도 통하는 오래된 친구는 역시 특별하다.

 

아무 말 없이 같은 공간에 있기만 해도 힐링된다. 뭘 해도 좋고 아무것도 안 해도 좋은 친구는 쉽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친구 잘 둔 덕분에 외로운 노처녀 인생이 그나마 살만 한데, 우리 엄마는 너네끼리 붙어지내느라 결혼 안 하는 거 아니냐며 좀 떨어지라고 구박한다. 정말 모르시는 말씀이다.

우리 넷은 결혼을 말리기는 커녕 오히려 서로 못 보내서 안달이다. 소개팅한 남자가 좀 아닌 것 같다해도 한 번봐선 모르는 거다 일단 더 만나보라 부추기고, 우리 모임 중에 남자한테 연락이 오면 빨리 가보라며 등떠민다. 너네들 시집 다 보내고 갈 테니까 어서 사뿐히 즈려밟고 먼저 가라며 서로 아우성이다. 인연이 될 지도 모를 사람을 놓치고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고, 남겨질 친구들이 외로울까 쓸데 없는 걱정을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철없던 학창시절, 서로의 결혼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믿었던 그 때, 우리 이 다음에 커서 결혼해도 우정 변치말자고 손가락 걸고 약속했었다.

 

네가 먼저 결혼할 것 같아, 아니야 네가 먼저 갈 걸,

 

이러면서 서로의 이상형을 상상하곤 했었다. 서른 여섯인 지금 '이상형 따위 개나 줘버려'가 되었지만, 서로에 대한 철썩 같은 믿음만은 아직도 유효하다.

 

"너넨 꼭 시집 갈 겨. 가끔 한 번씩 죽었나 살았나 들여다봐주기만 해."

 

참으로 눈물겨운 우정이지만, 결국 지금처럼 옹기종기 노인정에 모여서 먹부림이나 하는 철없는 할머니들 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드는 건 왜 일까,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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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신년운세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많다. 결혼운이 궁금한 노천녀들도 삼삼오오 모여서 용하다는 사주카페나 점집을 찾아가곤 한다. 내 사주에 '노처녀 팔자'라고 나와 있는지, 이대로 '평생 혼자 살 팔자'인건지, 그래도 언젠간 가긴 가는지, 그게 언제가 될 런지, 뭐 이런 걸 물어본다.

"이번 남자는 아니고 다음 남자를 잡아" "올해는 힘들고 내년부턴 풀려" "너는 사주에 딱 서른 여덟에 간다고 나와" 등등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반대로 "결혼 세 번 할 팔자네" "비구니팔자라 결혼운이 없어" "여자 기에 눌려서 남자가 다가오지를 못해" 같은 말을 들으면 착잡하고 찜찜하다.

점이라는 게 무조건 믿고 의지할 건 못된다지만 듣고 나면 자꾸 떠오르고 신경 쓰인다. 좋든 나쁘든 영향을 받게 되는 게 두려워서 잘 안 보는 편인데 나랑 달리 매년 신년운세를 보는 친구가 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용하다는 역술인을 찾아가 충격적인 점꽤를 들었다. 24살 때 일이었다.

 


앞으로 10년 동안
남자가 안 생기겠어


나는 말도 안 된다며 웃어넘겼다. 친구도 '하긴, 다 맞추는 건 아니더라'고 했다. 그간 찐하게 사귄 남자는 없지만 썸타거나 사귀는 사람은 꾸준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설마가 사람 잡았다. 한 해, 두 해, 세 해, 네 해가 가도 계속 솔로인 거다.

20대 후반부터는 엄마의 등쌀에 선을 보기 시작했는데 이 또한 얄궂게도 어긋나기만 했다. 어느 새 솔로생활 9년 차. 친구는 지쳐갔다. 1년만 더 있으면 딱 10년 채울 기세였다. 나 역시 망할 '10년의 저주'가 깨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오! 그런데 드디어! 9년 째 33살 새해가 시작하자마자 선 본 남자와 잘 됐다. 9년 만에 남자 손도 잡아봤다며 '볼빨간사춘기' 소녀가 되어 행복해하는 모습은 참 예뻤다. 긴긴 기다림 끝에 인연을 만나 '이제 곧 결혼하겠구나'했는데, 이럴 수가.

뜻 하지 않게 친구 부모님의 반대로 얼마 못 가 이별하고 말았다. 친구의 상심은 이루말할 수 없었고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며 나도 한없이 가슴이 아팠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랜만에 마음을 준 남자와 납득할 수 없는 이별을 한 뒤 친구는 상당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어떻게 또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올해 친구는 35살이 되었다(빠른 년생이라 한 살이 어리다). 그 역술인이 정말 용한 건지 어쩌다보니 맞아떨어진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어찌됐든 10년이 지났고 이제 친구의 저주는 끝이 났다.

올해 신년운세를 보러 갈 거냐는 나의 질문에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가려고. 다시 노력하고 싶은 마음에 들 때까지는 선 보는 것도 쉬면서 내 삶에 먼저 충실하고 싶어" 그리고 남자를 만나는 것 보다 나 자신을 알고 나와 잘 지내는 방법을 터득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친구는 한층 더 멋진 여자가 되어있었다. 십 년 사이 작정하고 결혼할라치면 괜찮은 조건의 적당한 남자랑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 텐데 친구는 타협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어마어마한 등쌀에도 결혼을 도피처로 삼지 않았다. 고독하고 불안함에 막막한 밤들을 지새우면서도 아침이 되면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스스로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많아 수없이 휘청이기만 했다고 친구는 스스로의 나약함을 탓했지만, 한 번의 흔들림없이 꼿꼿한 대쪽보다 꺽이고 쓰러져도 다시 피어나는 여린 꽃잎이 더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온몸으로 태풍을 이겨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친구에게 따뜻한 봄바람만이 살랑살랑 불어오도록 10년의 축복을 걸어주고 싶다.

꽃피는 봄이 오면 그 누구보다 예쁜 꽃을 활짝 피우기를 바라며 친구를 봄이라고 불러야겠다. 3월이 되면 봄이랑 도시락싸들고 꽃놀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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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낮추라는 말 좀
안 했으면 좋겠어!

 

결혼식에 다녀왔다는 언니는 잔뜩 뿔이나 있었다. "만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조건이 안 좋아. 그럴 때 눈을 낮추라고 하면 이해해. 근데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눈을 낮추라는 거야?! 낮추고 말고 할 게 어딨어!" 오. 맞네. 그렇네. 나는 왜 이 생각을 한 번도 못했지? 아... 난 이 말을 거의 안 들어봤구나.

이 언니는 '스펙'이 좋다. 잘 나가시는 사업가 아버님, 더 잘 나가시는 외조의 여왕 어머님, 언니도 박사까지 밟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는 '엄친딸'이자 '골드미스'다. 38살에 싱글, 조건도 외모도 괜찮은 언니에게 날리는 주변 사람들의 단골멘트는 '눈을 낮춰라' 이다.

이 언니는 우리 사이에서 '엘사'로 통한다. 관심을 보이고 다가오는 남자가 있으면 한 방에 얼려버린다. 다시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게 근성을 뿌리째 뽑아버린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묻는다. '나한테 관심 있었던 거 같았는데 왜 그 뒤로 연락이 없는 걸까?' 들으나마나다.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언니가 그 남자를 먼저 칼 같이 내쳤겠지, 언니는 아니라는데, 들어보면 역시나다. 우리가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고 나면 '아~ 그런 거구나' 한다.

하지만 크게 아쉬워하진 않는다. 쿨하게 이해하고 넘어가는 걸로 끝이다.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결혼이라는 걸 하기 위해 억지로 눈을 낮추는 건 사양이라고. 남자 없는 지금도 딱히 나쁠 거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정말 그래보인다.

 


 

나는 언니와 반대다. 눈 좀 올리라는 말을 들어왔다. 8년을 만난 전 남자친구는 한 살 연하였는데, 내가 33살이 될 때까지도 특정한 직업을 갖지 못한 채 계속 방황했다. 아프니까 청춘이길 원하는 남자였다. 그가 청춘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혼자 울면서 나이들어 갔다. 전남친를 만나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지 그래?" 즉, "눈 좀 올려" 였다.

"눈 좀 낮춰"와 "눈 좀 올려"사이의 그 어디 중간 쯤에 해당하는 사람을 만나야 결혼할 확률이 올라가겠지. 마음이 통하는데 결혼할 여건이 전혀 안 된 사람이나 결혼할 준비는 됐는데 마음이 전혀 안 통하는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다. 모 아니면 도는 타협의 여지가 없거든. 적어도 개, 걸, 윷은 되어야 눈을 낮추든, 올리든 할 테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결국 사람들 말이 맞다. 노처녀는 이것저것 너무 따지는 게 많아서 결혼을 못한다고. 언니가 내가 포기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조건은 '마음'이다. 마음은 남들이 낮추라고 해서 낮춰지거나 올리라고 해서 올려지지 않더라. 마음을 움직이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난 후 나는 미련하게도 또 다시 결혼할 수 없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아홉 살 연하의 취업준비생과 말이다. 사람들에게 말했다가는 내 눈을 뽑아서 머리 위로 끌어올려줄까봐 겁이나서 비밀로 하기로 했다.

미래의 현실적인 남편감을 찾는 대신 오늘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을 선택한 나. 남들에게 보여지는 완벽한 삶을 살기 위해 자신만의 불완전한 행복을 놓을 생각이 없는 언니. 사랑에 죽고 사랑에 사는 현실감각 제로인 여자들은 아니지만, 지키고 싶은 우리만의 결혼원칙이 있다.


기승전사랑, 그 다음에 결혼.

 

이 원칙을 거스르면서까지 결혼에 목매고 싶진 않다. 결혼한 사람들이 그렇게도 조언해주지 않았던가. 결혼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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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는 10화 공포의 노처녀 히스테리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나는 확실히 점점 까칠해져가고 있었고 누구에게나 히스테릭한 면이 있다는 말로 나의 노처녀 히스테리에 대한 불안을 씻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잠깐 예민해졌나보지, 호르몬 때문에 그럴 거야, 싶다가도 특정상황이나 사람에 의해 주기적으로 폭발할 때마다 깊은 우울감에 사로잡혔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보다 너그러워졌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잔소리에 있어서는 갈수록 속좁아지고 날을 세운다. 대한민국에서 노처녀로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들어야할 말들인데 왜 그러려니 하지 못하는 걸까. 한번 씩 성난 고릴라가 되는 나, 비정상인가요? 의학, 심리, 뇌과학 등 각 분야 전문가의 진단을 들어봤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먼저 말했다. 그건 '자궁병'이라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자가 히스테리를 부리는 건 자궁의 기능이 잘못되어 생기는 증상이라고 간주했다. 여성의 자궁이 방치되면, 즉 욕구불만이 쌓이면 발생하는 질병이라는 것이다. 히스테리라는 단어도 '자궁'에서 따온 말이다.

그러자 샤르코가 반박했다. 히스테리는 남성에게도 나타난다고. 19세기 프랑스 신경병리학자였던 그는 인간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발생하는 정신병이 히스테리라고 했다. 나아가 스트레스으로 인해 팔다리가 마비되는 등의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면 전환형이고, 기억상실이나 몽유병, 자아분열 등 정신적인 증상이 생기면 해리형이라고 분류했다.

스트레스. 결국엔 이놈의 스트레스가 문제였나. 하긴, 노처녀 구박을 좀 받았어야지. 하지만 위에서 설명하는 정신병에 해당되는 증상은 없었다. 신체적 마비라든가 지킬과 하이드 같은 자아분열을 일으키진 않는다. 내가 느낀 건 뭐랄까, 말하자면 패닉상태에 가까웠다. 순간적으로 머리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느낌이랄까. 하고 싶은 말이 활화산처럼 솟구치는데, 안하자니 못 배기겠고 하자니 끝이 없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지는. 정신을 차리고 보면 폭주해서 악다구니를 쓴 다음이다.

대체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하는 건지 스스로의 가슴을 치며 괴로워하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란다. 나뿐 아니라 다른 여자들도 똑같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자궁 때문도 아니요, 정신병 때문도 아니요, 바로 뇌 때문이라고 했다. 뇌과학자의 말이다. 사람 뇌에는 '뇌량'이라 불리는 신경섬유 다발이 있는데 여기에 히스테리의 원인이 있다고 한다. 가슴을 칠 게 아니라 머리를 쳤어야 했나.

 

 

 


 


히스테리의 원인을 설명하려면 먼저 뇌량의 역할에 대해 알아야 한다. 사람의 뇌에서 우뇌는 감정 및 감각을, 좌뇌는 언어중추를 담당하는데 '뇌량'이라는 건 우뇌와 좌뇌의 중간에서 둘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인터넷 케이블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통로인 케이블이 튼튼할 수록 좌우의 흐름이 원활해질 것이다. 그런데 남자에 비해 여자의 뇌량이 약 20%나 더 두껍고 넓다고 한다. 남자가 일반 케이블이라면 여자는 초고속 광케이블을 탑재했다는 것이다.

 

 

 

 

 

초고속 광케이블 '뇌량'이 여자에게 주는 혜택은 여러 가지다.  우선 청력. 들을 때 좌우뇌를 모두 쓰는 여자는 한 쪽 뇌만 사용하는 남자에 비해 청각자극에 훨씬 예민한다고 한다. 두 번째, 멀티태스킹 능력. TV를 보면서 요리를 하는 데도 태워먹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세 번째, 감정표현력. 섬세한 감정을 풍부한 표현력으로 전달할 수 있다. 우뇌에서 느낌 감정을 두껍고 넓은 뇌량이 즉시 좌뇌로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폭풍처럼 전달된 감정은 입을 통해 밖으로 나와야 일련의 흐름이 끝난다. 여자는 생각한 것, 느낀 것을 즉각적으로 말로 하도록 뇌구조가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전달된 감정을 말로 하지 못하면, 뇌에 신경 스트레스가 쌓이게 된다. 여자가 남자보다 수다쟁이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토록 우수한 뇌량이 어째서 히스테리의 원인이 되느냐, 그건 바로 너무 뛰어나기 때문이다. 여자가 어떤 일을 계기로 화가 폭발하게 되면, 순간적으로 엄청난 정보가 뇌량을 통해 미친 속도로 오가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뇌가 들이닥치는 정보량을 감당 못해서 '임시파업!' 백기를 든다. 접속자 폭주로 서버가 마비되는 것이다. 뇌의 파업은 여자의 패닉상태, 히스테리증세를 일으킨다.

그래. 내 머리가 뻥하고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건 실제로 뇌의 퓨즈가 나갔기 때문이었던 거다. 히스테리가 우수한 여자 뇌의 부작용이라니, 자궁병은 아니었지만 결국 여자와 히스테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였던 것이다. 어쩌면 히스테리는 여자가 짊어져야 할 운명과도 같은 것 아닐까.

해결책을 찾은 건 아니지만, 원인을 알게 된 덕분에 한번 씩 히스테리를 부리고 난 후 찾아오는 깊은 자괴감에서는 헤어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내 탓 반, 뇌 탓 반 할 수 있으니까. 여자여서, 여자이기 때문에 부리는 히스테리. 이걸 알고 나니 히스테리가 조금 사랑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인생친구인 히스테리를 이제 그만 미워하고 어떻게 하면 싸우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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