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졸업 후 스웨덴에서 취직해서 스웨덴 여성분과 결혼하여 아이 낳고 오손도손 잘 살고 있는 동아리 오빠한테 문자가 왔다. "여기에서 결혼한 회사 여자 동료가 얼마 전 한국에 갔었는데, 친구들이랑 친척들이 능력 있는 남편 잘 잡아서 집에서 지내는 게 여자로서 최고의 복이라고 했대. 아무리 공부 잘해봤자 남편이 돈 못 벌어오면 나가서 일해야 하니까 돈 많은 남편이나 시댁 만나서 집에서 노는 게 훨 낫고 자랑스럽다고. 한국 여자들은 진짜로 그래?"

"엥? 친구들까지 그런 말을 했다고? 진짜로 그랬대?" 오빠는 내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노처녀에세이를 쓰고 있기 때문에 물어본 거 겠지만, 나도 처음 듣는 얘기였다. 한국이 아무리 좁다지만 내 허용범위는 어디까지나 나와 내 주변 사람들까지다. 막장드라마보다 더 자극적인 연애를 하는 친구들은 더러 있지만, 오빠가 궁금해하는 남의 인생에 자기 인생을 끼워팔기하려는 여자들은 내 주변에는 없다. 21세기에 이제 저런 사고방식을 가진 여자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주변에 은근 많다고 한다.

 


 

 

 

뭐니뭐니해도 인생은 날로 먹는 게 장땡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란 건데, 능력 있는 남편 만나서 집에서 놀고 먹고 살고 싶다는 소망자체는 나쁠 것 없다고 본다.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면 결혼 상대자를 볼 때 오로지 '조건'만 보면 되니까 고르기도 편할 것 같다. 결혼이라는 게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가치들, 매력있게 생겼다, 배려심이 많다, 유머러스하다, 코드가 잘 맞는다 등등에 대한 비중이 높으면 고르기가 어렵다. 남들 눈에 괜찮아도 나에겐 아닌 경우가 많아서 소개를 받고 난 뒤에 듣던 거랑 완전 다르다며 실망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그런데 '능력'이라는 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객관적인 팩트라 소개한 사람도 소개받은 사람도 만족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집에서 놀고 먹고 살려면 능력만 가지고는 부족할 수 있겠다. 남자의 능력에 남자의 가치관까지 합쳐져야 진정한 인생 날로먹기가 성립한다. 능력 있는 남자라 하더라도 집에서 여자가 놀고 먹는 꼴은 못 보는 사람이면 안 되니까, 본인능력이 있으면서 여자는 자고로 집에서 남편을 내조하는 게 최고라고 여기는 남자여야 할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고 선 자리라면 만나기도 전에 알 수 있으니 시간 낭비, 감정 소모 할 필요도 없이 속전속결로 결혼을 추진할 수 있을 것 같다. 관건은 두 조건을 충족한 남자 쪽이 여자를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겠지. 이런 결혼조건을 내세우는 여자는 현실적이고 똑똑할테니까 스스로의 값어치가 가장 높을 때를 알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줄도 알 것 같다. 그리고 베짱이인생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면 더할 나위없는 성공적인 인생일 터.

 

 


 

 

 

여기까진 좋다. 각자의 가치관과 인생이 있는 거니까. 그런데 베짱이가 개미의 인생을 우습게 보고 까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문제가 된다. 남의 인생에 얹혀 살아가려는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바로 서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모독하는 건 허영심만 가득찬 골빈 인간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밖에 안 된다. 내 몸 하나 편하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을 마치 인생의 대단한 진리라도 깨우친 것 마냥 '진정한 여자의 행복' 이라 포장하고, 내 몸뿐 아니라 내 가족들의 몸까지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여자를 한심하다고 비꼬며 으스대는 모양새는 꼴같잖다. 같은 유부녀들 사이에서 대장노릇하려는 거로도 모자라 우매한 노처녀들에게 훈계질까지 하려한다니 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아무리 물질만능주의 시대라 해도 물질이 모든 걸 채워주진 못 한다.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샤넬 백을 사서 남들의 부러움을 샀던 때는 아닐 것이다. 만약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라 한다면 그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가. 돈만 보고 결혼한 여자들은 하나같이 얼마나 풍족하게 잘 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과시하고 싶어한다는데 자신의 행복을 남을 통해서 밖에 확인할 수 없다는 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고보니 한번은 그런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종로의 한 카페였는데 건너편에 앉은 남녀가 시선을 끌었다. "외모는 통과, 내 조건만 잘 들어주면 결혼하는 걸로 엄마한테 얘기할게. 일단 밥은 안 해도 돼. 대신 집에서도 그렇게 항상 예쁘게 차려입고 있도록 해. 몸매관리도 잘 하고. 골프는 칠 줄 알아? 몰라? 빨리 배워. 내 사업상 부부동반으로 칠 때 필요하니까."

고급진 옷으로 휘감은 때깔 좋은 남자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로 여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야 저 놈은, 조용한 카페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큰 목소리에 내용도 내용인지라 저절로 눈길이가고 귀가 쫑긋 세워졌다. 앞에 앉은 여자는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모으고 네, 네 하며 존댓말로 고분고분하게 대답했다.

한참 말하는 중에 벨소리가 울렸고 남자는 양해의 말 한마디 없이 전화를 받았다. 그 남자의 통화는 길고 길어서 그 사이 나는 커피와 샌드위치를 다 먹었지만, 그 동안에도 여자는 미동도 없이 얌전히 기다리고만 있었다. 보면 볼 수록 흥미진진한 커플이었다. 드디어 전화를 끝낸 남자는 역시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없이 못 다 말한 조건을 쏟아냈다. 자기 신경 거슬리지 않게 잘 하라는 것과 부모님 특히 엄마하라는 대로 잘 하라는 것. 그 밖에도 이러쿵 저러쿵 늘어놓더니 이제 가야겠다며 나중에 전화할테니 잘 받으라는 말을 남기고 훌쩍 일어섰다.

 


 

 

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네, 라는 대답 외에는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사업상 거래를 하는 듯한 만남, 갑과 을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화.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광경이 충격적이어서 한참 전일인데도 생생히 떠오른다. 불가피하게 결혼이라는 개인회생이 필요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신분상승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조건은 집어삼킬 수 있다는 야망가였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스스로가 선택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기대한 바대로 나름의 만족과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 하지만 살다보니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상대적 박탈감을 주변 사람들에게 선사함으로써 어떻게든 자기 삶을 합리화해서 억지로 행복한 척 하지말고, 죽기 전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한 기억을 채워줄 순간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길 바란다.

물질이든 감정이든 간에 여자의 궁극의 행복을 판단하는 건 각각의 여자 개인에게 달려있겠지만, 어느 한 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친 삶에서 행복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하는 괴로움과 갖고 싶은 행복을 저울질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할 때'에는 용기를 내서 움직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 용기를 내면서 살아가는 여자들을 한심하다고 싸잡아 깎아내리는 행위는 단연코 삼가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 부여를 할 것인가,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문제만큼은 상대평가를 해서는 안 된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도 철저하게 절대평가로 임해야 남들의 말에 흔들림 없이 바로 설 수 있고, 내가 선택해서 거머쥔 행복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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