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설인데 뭐 해?
심심하다 놀아주라


쏴리, 나 지금 한정식집이야



엇! 너 결혼해?!
상견례 중?



ㄴㄴ 친구 생파



생파를 무슨 한정식 집에서 해
칠순잔치도 아니고ㅋㅋㅋ



노총각 친구가 빵터졌다. 친구들끼리 한정식집이 어때서! 어릴 때부터 서로의 집을 오가며 먹부림을 하던 친구들끼리 그대로 나이만 먹었다. 평균 20년지기 동네친구들 5명 가운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친구는 꼴랑 한 명. 나를 포함해 나머지 넷은 노처녀다.

 

친구가 결혼할 때 포토테이블 장식을 살까말까하다 우리 친구들 결혼할 때 물려 쓰면 되니까하며 질렀었는데 그 뒤로 만 3년간 아무도 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포토테이블 장식이 들어있는 상자에는 뽀얗게 먼지만 내려앉았다. 원래 친구가 가면 뒤이어 줄줄이 간다는데 우리 친구들은 어쩜 이리도 강직한 성품을 지녔는지 꿋꿋하게 노처녀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한정식집에서 무슨 생일 파티냐며 웃던 노총각 친구는 자기도 껴달라고 졸랐다. 노총각이네 친구들은 다들 결혼해서 아이낳고 사느라 같이 놀아주기는 커녕, 얼굴보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혼자 외롭고 우울하다고.

 

외로운 건 피차 마찬가지지만, 외로움을 나눌 친구가 있다는건 참 감사하고 든든하다. 결혼한 친구 외에는 한동네에 살기에 '어디야, 나와'해서 떡볶이 먹고 친구네 집에 가서 뒹굴거린다. 몸만 컷지 교복 입던 그 때 그대로다.

노처녀라고 못 갈 쏘냐 우리도 한 번 가보자, 격조있는 한정식집에서 모처럼 곱게 차려입고 만났건만, 음식 앞에 우아는 개뿔. 그릇을 치우려는 종업원에게 "아직 안 돼요!"를 급박하게 외치며 내 자식이라도 뺏기는 양 온 몸을 던져 막아내는 우리.

 

끝도 없이 나오는 코스 요리에 배가 터질 것 같다면서도 쉴 새 없이 입에 잔뜩 쑤셔넣고는 내 배 좀 보라며 출산임박했다며 누가누가 더 나왔나 겨루질 않나. 비와 김태희의 결혼소식에 아기가 아빠 닮아서 막 춤추면서 나오는 거 아니냐며 왕년에 비 팬인 내가 한 번 해보겠다며 꿀렁꿀렁 웨이브와 글러브춤을 추질 않나.

 

36살 먹고 이러고 있다.


이런 꼴을 모르고 자기도 껴달라고 떼쓰던 노총각이는 안 껴줄 거면 소개팅이나 시켜달란다. 왕따 서러워서 올해는 결혼해야겠다고. 같이 놀 친구가 없으면 제 아무리 혼력(혼자 지내는 능력)이 뛰어나도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쉽고 그러다보면 괜시리 조급해져서 아무나 붙잡고 확 결혼해버려야겠다는 마음이 들기 쉽다.

 

주위를 보면 노총각이든 노처녀든지 간에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하고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싱글생활을 잘 보낸다.

유부친구들은 육아에 살림에 일에 슈퍼맘하느라 바쁘다보니 자연스럽게 노처녀들끼리 어울리게 된다. 같은 노처녀 친구라하더라도 눈빛만 봐도 통하는 오래된 친구는 역시 특별하다.

 

아무 말 없이 같은 공간에 있기만 해도 힐링된다. 뭘 해도 좋고 아무것도 안 해도 좋은 친구는 쉽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친구 잘 둔 덕분에 외로운 노처녀 인생이 그나마 살만 한데, 우리 엄마는 너네끼리 붙어지내느라 결혼 안 하는 거 아니냐며 좀 떨어지라고 구박한다. 정말 모르시는 말씀이다.

우리 넷은 결혼을 말리기는 커녕 오히려 서로 못 보내서 안달이다. 소개팅한 남자가 좀 아닌 것 같다해도 한 번봐선 모르는 거다 일단 더 만나보라 부추기고, 우리 모임 중에 남자한테 연락이 오면 빨리 가보라며 등떠민다. 너네들 시집 다 보내고 갈 테니까 어서 사뿐히 즈려밟고 먼저 가라며 서로 아우성이다. 인연이 될 지도 모를 사람을 놓치고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고, 남겨질 친구들이 외로울까 쓸데 없는 걱정을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철없던 학창시절, 서로의 결혼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믿었던 그 때, 우리 이 다음에 커서 결혼해도 우정 변치말자고 손가락 걸고 약속했었다.

 

네가 먼저 결혼할 것 같아, 아니야 네가 먼저 갈 걸,

 

이러면서 서로의 이상형을 상상하곤 했었다. 서른 여섯인 지금 '이상형 따위 개나 줘버려'가 되었지만, 서로에 대한 철썩 같은 믿음만은 아직도 유효하다.

 

"너넨 꼭 시집 갈 겨. 가끔 한 번씩 죽었나 살았나 들여다봐주기만 해."

 

참으로 눈물겨운 우정이지만, 결국 지금처럼 옹기종기 노인정에 모여서 먹부림이나 하는 철없는 할머니들 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드는 건 왜 일까,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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