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화는 10화 공포의 노처녀 히스테리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나는 확실히 점점 까칠해져가고 있었고 누구에게나 히스테릭한 면이 있다는 말로 나의 노처녀 히스테리에 대한 불안을 씻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잠깐 예민해졌나보지, 호르몬 때문에 그럴 거야, 싶다가도 특정상황이나 사람에 의해 주기적으로 폭발할 때마다 깊은 우울감에 사로잡혔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보다 너그러워졌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잔소리에 있어서는 갈수록 속좁아지고 날을 세운다. 대한민국에서 노처녀로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들어야할 말들인데 왜 그러려니 하지 못하는 걸까. 한번 씩 성난 고릴라가 되는 나, 비정상인가요? 의학, 심리, 뇌과학 등 각 분야 전문가의 진단을 들어봤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먼저 말했다. 그건 '자궁병'이라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자가 히스테리를 부리는 건 자궁의 기능이 잘못되어 생기는 증상이라고 간주했다. 여성의 자궁이 방치되면, 즉 욕구불만이 쌓이면 발생하는 질병이라는 것이다. 히스테리라는 단어도 '자궁'에서 따온 말이다.

그러자 샤르코가 반박했다. 히스테리는 남성에게도 나타난다고. 19세기 프랑스 신경병리학자였던 그는 인간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발생하는 정신병이 히스테리라고 했다. 나아가 스트레스으로 인해 팔다리가 마비되는 등의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면 전환형이고, 기억상실이나 몽유병, 자아분열 등 정신적인 증상이 생기면 해리형이라고 분류했다.

스트레스. 결국엔 이놈의 스트레스가 문제였나. 하긴, 노처녀 구박을 좀 받았어야지. 하지만 위에서 설명하는 정신병에 해당되는 증상은 없었다. 신체적 마비라든가 지킬과 하이드 같은 자아분열을 일으키진 않는다. 내가 느낀 건 뭐랄까, 말하자면 패닉상태에 가까웠다. 순간적으로 머리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느낌이랄까. 하고 싶은 말이 활화산처럼 솟구치는데, 안하자니 못 배기겠고 하자니 끝이 없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지는. 정신을 차리고 보면 폭주해서 악다구니를 쓴 다음이다.

대체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하는 건지 스스로의 가슴을 치며 괴로워하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란다. 나뿐 아니라 다른 여자들도 똑같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자궁 때문도 아니요, 정신병 때문도 아니요, 바로 뇌 때문이라고 했다. 뇌과학자의 말이다. 사람 뇌에는 '뇌량'이라 불리는 신경섬유 다발이 있는데 여기에 히스테리의 원인이 있다고 한다. 가슴을 칠 게 아니라 머리를 쳤어야 했나.

 

 

 


 


히스테리의 원인을 설명하려면 먼저 뇌량의 역할에 대해 알아야 한다. 사람의 뇌에서 우뇌는 감정 및 감각을, 좌뇌는 언어중추를 담당하는데 '뇌량'이라는 건 우뇌와 좌뇌의 중간에서 둘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인터넷 케이블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통로인 케이블이 튼튼할 수록 좌우의 흐름이 원활해질 것이다. 그런데 남자에 비해 여자의 뇌량이 약 20%나 더 두껍고 넓다고 한다. 남자가 일반 케이블이라면 여자는 초고속 광케이블을 탑재했다는 것이다.

 

 

 

 

 

초고속 광케이블 '뇌량'이 여자에게 주는 혜택은 여러 가지다.  우선 청력. 들을 때 좌우뇌를 모두 쓰는 여자는 한 쪽 뇌만 사용하는 남자에 비해 청각자극에 훨씬 예민한다고 한다. 두 번째, 멀티태스킹 능력. TV를 보면서 요리를 하는 데도 태워먹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세 번째, 감정표현력. 섬세한 감정을 풍부한 표현력으로 전달할 수 있다. 우뇌에서 느낌 감정을 두껍고 넓은 뇌량이 즉시 좌뇌로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폭풍처럼 전달된 감정은 입을 통해 밖으로 나와야 일련의 흐름이 끝난다. 여자는 생각한 것, 느낀 것을 즉각적으로 말로 하도록 뇌구조가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전달된 감정을 말로 하지 못하면, 뇌에 신경 스트레스가 쌓이게 된다. 여자가 남자보다 수다쟁이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토록 우수한 뇌량이 어째서 히스테리의 원인이 되느냐, 그건 바로 너무 뛰어나기 때문이다. 여자가 어떤 일을 계기로 화가 폭발하게 되면, 순간적으로 엄청난 정보가 뇌량을 통해 미친 속도로 오가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뇌가 들이닥치는 정보량을 감당 못해서 '임시파업!' 백기를 든다. 접속자 폭주로 서버가 마비되는 것이다. 뇌의 파업은 여자의 패닉상태, 히스테리증세를 일으킨다.

그래. 내 머리가 뻥하고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건 실제로 뇌의 퓨즈가 나갔기 때문이었던 거다. 히스테리가 우수한 여자 뇌의 부작용이라니, 자궁병은 아니었지만 결국 여자와 히스테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였던 것이다. 어쩌면 히스테리는 여자가 짊어져야 할 운명과도 같은 것 아닐까.

해결책을 찾은 건 아니지만, 원인을 알게 된 덕분에 한번 씩 히스테리를 부리고 난 후 찾아오는 깊은 자괴감에서는 헤어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내 탓 반, 뇌 탓 반 할 수 있으니까. 여자여서, 여자이기 때문에 부리는 히스테리. 이걸 알고 나니 히스테리가 조금 사랑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인생친구인 히스테리를 이제 그만 미워하고 어떻게 하면 싸우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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