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신년운세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많다. 결혼운이 궁금한 노천녀들도 삼삼오오 모여서 용하다는 사주카페나 점집을 찾아가곤 한다. 내 사주에 '노처녀 팔자'라고 나와 있는지, 이대로 '평생 혼자 살 팔자'인건지, 그래도 언젠간 가긴 가는지, 그게 언제가 될 런지, 뭐 이런 걸 물어본다.

"이번 남자는 아니고 다음 남자를 잡아" "올해는 힘들고 내년부턴 풀려" "너는 사주에 딱 서른 여덟에 간다고 나와" 등등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반대로 "결혼 세 번 할 팔자네" "비구니팔자라 결혼운이 없어" "여자 기에 눌려서 남자가 다가오지를 못해" 같은 말을 들으면 착잡하고 찜찜하다.

점이라는 게 무조건 믿고 의지할 건 못된다지만 듣고 나면 자꾸 떠오르고 신경 쓰인다. 좋든 나쁘든 영향을 받게 되는 게 두려워서 잘 안 보는 편인데 나랑 달리 매년 신년운세를 보는 친구가 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용하다는 역술인을 찾아가 충격적인 점꽤를 들었다. 24살 때 일이었다.

 


앞으로 10년 동안
남자가 안 생기겠어


나는 말도 안 된다며 웃어넘겼다. 친구도 '하긴, 다 맞추는 건 아니더라'고 했다. 그간 찐하게 사귄 남자는 없지만 썸타거나 사귀는 사람은 꾸준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설마가 사람 잡았다. 한 해, 두 해, 세 해, 네 해가 가도 계속 솔로인 거다.

20대 후반부터는 엄마의 등쌀에 선을 보기 시작했는데 이 또한 얄궂게도 어긋나기만 했다. 어느 새 솔로생활 9년 차. 친구는 지쳐갔다. 1년만 더 있으면 딱 10년 채울 기세였다. 나 역시 망할 '10년의 저주'가 깨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오! 그런데 드디어! 9년 째 33살 새해가 시작하자마자 선 본 남자와 잘 됐다. 9년 만에 남자 손도 잡아봤다며 '볼빨간사춘기' 소녀가 되어 행복해하는 모습은 참 예뻤다. 긴긴 기다림 끝에 인연을 만나 '이제 곧 결혼하겠구나'했는데, 이럴 수가.

뜻 하지 않게 친구 부모님의 반대로 얼마 못 가 이별하고 말았다. 친구의 상심은 이루말할 수 없었고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며 나도 한없이 가슴이 아팠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랜만에 마음을 준 남자와 납득할 수 없는 이별을 한 뒤 친구는 상당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어떻게 또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올해 친구는 35살이 되었다(빠른 년생이라 한 살이 어리다). 그 역술인이 정말 용한 건지 어쩌다보니 맞아떨어진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어찌됐든 10년이 지났고 이제 친구의 저주는 끝이 났다.

올해 신년운세를 보러 갈 거냐는 나의 질문에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가려고. 다시 노력하고 싶은 마음에 들 때까지는 선 보는 것도 쉬면서 내 삶에 먼저 충실하고 싶어" 그리고 남자를 만나는 것 보다 나 자신을 알고 나와 잘 지내는 방법을 터득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친구는 한층 더 멋진 여자가 되어있었다. 십 년 사이 작정하고 결혼할라치면 괜찮은 조건의 적당한 남자랑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 텐데 친구는 타협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어마어마한 등쌀에도 결혼을 도피처로 삼지 않았다. 고독하고 불안함에 막막한 밤들을 지새우면서도 아침이 되면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스스로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많아 수없이 휘청이기만 했다고 친구는 스스로의 나약함을 탓했지만, 한 번의 흔들림없이 꼿꼿한 대쪽보다 꺽이고 쓰러져도 다시 피어나는 여린 꽃잎이 더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온몸으로 태풍을 이겨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친구에게 따뜻한 봄바람만이 살랑살랑 불어오도록 10년의 축복을 걸어주고 싶다.

꽃피는 봄이 오면 그 누구보다 예쁜 꽃을 활짝 피우기를 바라며 친구를 봄이라고 불러야겠다. 3월이 되면 봄이랑 도시락싸들고 꽃놀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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