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 - 불행한 시대를 살다간 두 명필을 위한 변명
최준호 지음 / 한얼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내 고향의 천은사가 항상 맑고 청신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 아마도 가는비가 흩뿌릴 때 천은사 일주문을 자주 들었던가 보다. 그러나 어쩌면 일주문 편액 탓인지도 모른다. 대부분 사찰의 일주문 편액이 가람의 위세를 과시하듯 힘찬 필세의 글씨라면, 천은사 일주문 편액은 풀잎을 뒹구는 물방울처럼 작고 맑게 흐르는 필세의 글씨였다. 일주문 편액의 분위기가 곧 천은사 가람의 분위기를 대표한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듯하다. 원교 이광사의 ‘유수체(流水體)’라 하던가. 그런가 보다 했던 것이 불과 몇년 전인데, 작년부터 글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고미술에 일가견이 있는 것도 아니요, 다년간 서화를 보아온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글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우리나라 탁본첩이나 서첩을 빌려와 일견하면서 수많은 서예가들 중에서 마음에 들어오는 서예가들을 꼽아보았다. 김생, 탄연, 영업, …. 그들 모두가 명필 중의 명필로 꼽히는 분들이었다. 나는 서첩들을 보기 이전에 서예관련 글이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역시 예술의 힘이란 이런 것인가? 따로이 설명이 필요없고 곧바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인가? 능호관 이인상도 그렇게 만났다. 그에 관한 견문도 없었고 관련 글도 읽은 바 없었지만, 전시된 단 하나의 작품을 통해서 나는 단번에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만큼 나의 고미술 지식이 형편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내가 그들에 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작품을 알아보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대단히 기쁘다. 내 감각에 대한 확신이 내가 소유한 지식보다 월등히 소중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주류적인 유형에서 벗어난 국외자적 인물임을 자각하고 있다. 서양인문학에 심취하였다가 동양적 정신세계로 완전히 돌아서버린 인문학도. 정상적인 경로라면 어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기 위하여 탄탄하고 끈질긴 준비를 해야 할 30대 중반에 돌연히 방향을 틀었던 것이고, 대학초년생처럼 동양의 정신세계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어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은 감히 품지도 못한다. 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린 지는 훨씬 오래이고. 다만 ‘나’라는 것이 지속적으로 뭔가를 배우며 변해가는 것을 귀하게 여길 뿐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유일하게 벗하고 싶고 기대고 싶은 분들은 옛 사람들이다. 옛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점점 가까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승과 선비들의 세계, 그리고 그들의 예술세계. 그들은 내가 예전부터 친숙하게 알고 있었던 분들이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쏟아지듯 발견되기 시작한 분들이다. 이것이 내게 중요하다. 그들에 대한 지식은 형편없으나, 그들의 글이나 예술을 보는 순간 간명직절하게 읽히고 보인다는 것.
<원교창암유묵>은 원교 이광사(1705~1777)의 서첩(소위 ‘구풍첩’)에 창암 이삼만(1770~1847)의 글씨가 더해진 것이다. 즉, 후대 사람이 서로 다른 두 서첩을 합한 것이 아니라 창암 선생이 원교 선생의 서첩에다 원교 선생을 흠모하면서 자신의 글을 덧댄 것이다. 이 유묵을 아산 조방원 선생이 40여년 간 소장하고 있다가 “완상과 농첩의 즐거움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바람에 따라 몇년 전에 100부 영인본을 만들어 배포했다. 그리고, 이 영인본의 수량 부족을 대신하기 위하여 최준호 선생이 <원교창암유묵>을 탈초하고 해제하여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한얼미디어, 2005)는 제목으로 단행본 책자를 출간하였다. 이 단행본 말미에는 <원교창암유묵>의 복사본이 실려 있어 나같은 학인 수준의 완상첩으로는 부족함이 없을 성싶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서첩의 탈초와 해제, 그리고 서첩복사본으로 주요부분이 구성되어 있다. 해제자가 워낙 조심스런 마음을 가진 분이어서 원교와 창암의 무게를 겨우 겨우 감당해 내는 태도를 취하면서 두 명필이 썼던 글을 또박또박 번역하고 출전을 밝히고 관련 해제를 덧붙혔다. 탈초(脫草), 즉 초서체를 정자체로 옮기는 작업만 해도 7개월 가량 소요되었다고 하니 글의 출전을 일일이 밝히고 그 출전에 관한 주석과 해석을 찾아내는 수고는 또 얼마나 컸을까. 필자의 해제는 과잉해석을 철저히 금하고 대부분 전고로 일관하고 있지만, 옛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흠모하는 이들로서는 이것이 불만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학인이라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이다. 덕분에 원교의 «서결(書訣)»이나 창암의 «서결»이 해제의 자리를 빌어 갈피갈피 소개된다:
비록 자획은 마음가짐에 근원하고 담긴 품격은 식견과 도량에서 나온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모든 것에 통달하여 지혜가 밝고 정직하며 널리 배워 학문을 갖춘 선비라야 서도를 이야기할 수 있다. (20)
이것은 책에 소개된 원교서결의 한 대목이다. 원교서결은 내가 유일하게 의존하고 있는 예술론이기도 하다.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원교서결에서 내가 좋아하는 대목을 소개한다:
노자가 말하기를 “으뜸가는 선비는 도를 들음에 부지런히 실행하고, 중간치의 선비는 도를 들음에 반신반의하고, 아랫등급의 선비는 들음에 크게 비웃나니 아랫등급 선비가 크게 비웃지 않으면 도라고 하기에 부족하다”(도덕경 41장)라고 하였다. 서도는 비록 작은 도이기는 하나 그 지극한 측면을 말하면 또한 그러하다. 또 누가 아랫등급 선비의 마음을 사려고 하다가 도리어 으뜸가는 선비의 비웃음을 당하려 하겠는가? 한유가 말하기를 “글이 조금 부끄러우면 사람들이 조금 좋다고 하고, 크게 부끄러우면 매우 좋다고 한다”라고 하였고, 손과정이 말하기를 “매번 글씨를 써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그 가운데 내 마음에 드는 것에는 일찍이 눈길을 준 적이 없고, 혹 잘못이 있는 것은 도리어 감탄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것은 옛부터 줄곧 있어온 걱정거리이다.
— 김남형 역, «서예비평»(한국서예협회 2002) 223~224면
으뜸가는 작품이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는 것, 고결한 정신이 외면 당하는 것, “이러한 것은 옛부터 줄곧 있어온 걱정거리이다.” 그래서 대가들은 주위와 당대의 평가는 상관하지 않고, 백 년, 이백 년 뒤에 나타날 진정한 대가의 안목을 두려워했다. 먼 후대의 안목이 두려워 맑음과 고고함을 놓치지 않고 그 외로운 경지를 버텨낸 것이다. <원교창암유묵>은 그러한 경지에서 노닐었던 대가들의 서첩이다.
<원교창암유묵>의 구성을 보면, 원교의 글씨가 112자, 창암의 글씨가 발문을 포함하여 110자로서 각각 30면, 26면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서체가 각 글귀마다 달라 완상하는 재미가 더하거니와, 특히 글귀의 뜻을 음미하며 완상하노라면 가히 옛 사람들의 완상하는 맛을 알 듯도 하다.
“입으로 외우는 사람은 소털 같이 많으나 마음으로 통하는 사람은 기린뿔 같이 귀하다口諷牛毛 心麟通角”(19). <원교창암유묵>은 이 전서의 글씨와 함께 시작된다. 책에 실린 서첩복사본을 보면 붓의 속도, 필세, 먹의 농담, 결구의 흔적, 비백 처리 등등, 진품을 완상할 때 못지않게 세밀하게 완상할 수 있다. 얼핏 전서라면 강직하고 굳센 의기가 연상되지만 서첩을 완상하다보면 이처럼 맑고 한가로울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의연하다. 해제자는 이 글씨를 두고,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 담겨 있다. 맑은 하늘에 구름 지나가듯이 천천히 지나간 붓자국의 필로가 역력하다”(21)고 평한다.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는 위와 같은 식으로 유묵의 각 글귀마다 번역하고 출전을 밝히고 해제하는 순으로 글들이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원교의 유묵에 관한 내용이요, 2부는 창암의 유묵에 관한 내용이다. 3부에서는 원교, 창암, 추사의 생애를 약술한 뒤, 그들 간에 얽힌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두 명필의 작품과 서결이 걸림없이 맑고 힘차게 흐르는 반면에 해제자의 풀이는 까끌까끌한 편이지만, 해제자의 노고와 마음자세만큼은 본받고 싶다.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는, 책 말미에 실어놓은 <원교창암유묵> 복사본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를 하고도 남는다. 연노란 한지의 질과 때묻은 흔적마저 자세히 보일 정도로 복사상태가 좋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마치 <원교창암유묵>처럼 완상한다. 완상할 때마다 언제나 맑은 기운이 내 몸을 감돈다.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높은 암벽이 노을을 다투고 외로운 봉우리로 해가 저무네森壁爭霞 孤峯限日”(31) 즐비한 암벽들이 으리으리한 삼림처럼 뻗어올라 노을을 다투지만, 그러나 붉은 해는 외로운 봉우리로 저문다. 예술가는 모름지기 외로운 봉우리가 되어야 한다.
외로운 봉우리에, 천하를 삼키고 떨어지는 붉은 해 있으리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