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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상태에 빠진 아내를 보며 그동안의 무심함에 죄책감을 느끼던 남편이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죄책감은 분노로 바뀌지만 상대방은 변명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다.

의사는 더 이상의 의료적 처치는 의미 없다고 선언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내는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되면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서류를 이미 작성해뒀다.

자신의 일이외의 모든 것을 아내에게 미뤄두고 살았던 남자는 그 모든 것들을 스스로 처리하기 시작한다.

아빠의 무관심과 엄마의 불륜 때문에 양친 모두에게 공격적인 큰 딸과 열 살인데 우리나라 중2처럼 행동하는 작은 딸을 챙긴다.

아내와 알고 지낸 모든 사람들에게 아내가 결국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아내의 부모를 직접 찾아 간다.

장인은 딸의 불행을 모두 사위 탓으로 돌리고, 치매인 장모는 딸의 이름(엘리자베스)을 영국 여왕으로 착각한다.

큰 딸의 반응으로 보아 장인은 늘 그런 식이었던 모양이다.

아버지에게 딸은 완벽하고 사위는 수상 스키를 즐기는 아내에게 보트 한 척 사주지 않는 자린고비, 나쁜 놈이다.

 

남자는 딸과 차를 타고 가다가 아내와 바람핀 남자의 사진을 보게 되고 그가 휴가를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잠 못자며 괴로워하던 그는 그 불륜남을 만나 아내를 만나러 와달라고 부탁하기로 한다.

큰 딸은 그런 아빠를 이해하지 못한다.

남자의 생각은 이랬다.

'아내가 보러 와 주기를 원할 것이다.'

 

어찌 어찌 불륜남을 만났는데 이 남자는 엘리자베스가 그저 섹스 상대였고 자긴 아내를 너무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내는 그 남자를 정말 사랑했고 자기와 이혼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경험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남자는 아내의 불륜상대가 밤일을 얼마나 잘하는지가 궁금한가 보다.

여자는 자기보다 더 젊고 이쁜지가 궁금하겠지.

근데 젊지도 이쁘지도 않으면 이해를 못한다.

 

일본영화 '메종 드 히미코'에서 주인공은 엄마가 커밍아웃한 게이 남편이 일하는 곳에 찾아갔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자신이 가진 가장 예쁜 옷을 입고 찾아간 엄마를, 딸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난 알 것 같다.

남편의 상대가 자기보다 더 젊고 이쁜 여자였다면 차라리 견디기 쉽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경쟁이 되지 않는, 생물학적 여성인 엄마의 안간힘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남자의 조상은 하와이 왕족으로 그 후손들은 조상이 물려준 땅의 소유권이 국가에 귀속되기 전에 개발업자에게 팔려고 한다.

그는 후손이며 변호사라서  법률대리인으로 어떤 업자에게 땅을 팔 것인지 결정할 권한이 있다.

남자는 불륜남의 아내와 이야기하다가 그가 유력한 개발업자의 인척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아내가 이용당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직업이 부동산 중개인이었기 때문이다.

불륜남은 부정하지만 아내가 이혼했대도 자기는 가정을 버릴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확신한다.

불륜남의 아내는 개발업자의 친척이므로 아내를 배신할 수 없었겠지.

저런 남자를 사랑하고 이혼까지 생각했던 아내가 밉기 보다 측은해진 남자.

 

개발업자에게 소유한 땅을 넘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날에 남자는 서류에 서명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 소유권을 포기하는 것이 자신의 고향을 너무 사랑해서라고 생각했다.

자본에 팔려 훼손되는 자연을 보존하고자 하는 생각으로 그랬다고 말이다.

 

이제 생각해보니 그건 남자의 세련된 복수가 아니었나 싶다.

자신의 뒤통수를 치고 결혼의 신성한(?) 의무를 저버렸다 생각했던 아내가 사실은 사랑에 목말라하던 여자일 뿐이었고, 그것역시 짝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남편의 복수.

아내의 순정을 짓밟고 이용해 온 파렴치한 남자에게 주먹질 같은 찌질한 분풀이가 아닌 어마어마한 액수의 중개수수료를 벌 기회를 날려버리게 한 통 큰 복수다.

 

남자의 처신은 현명했고, 나는 그런 지혜가 부럽다.

그는 가족의 구심점이었던 아내의 자리를 대신하며 자녀들을 돌보고, 딸을 잃은 장인, 장모의 슬픔을 어루만져 주었다.

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와서까지 원망을 늘어 놓는 장인에게 '더 잘해줘야 했다'고 인정하며 아내의 허물을 덮는 모습이 특히 그랬다.

나 같으면 배신감에 휩싸여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불륜남이 엉엉 울면서 그녀를 사랑했다, 아내와 이혼수속 중이었다, 뭐 이렇게 나왔다면 어땠을까.

세련된 복수가 아닌 질투에 눈이 먼 치사한 복수를 했겠지.

경쟁자인 다른 개발업자에게 판다든지 하는.

어쨌거나 연적인 부동산 중개인 좋을 일을 하진 않았을 것 같다.

 

가끔씩 '그 때 다른 결정을 했었다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남편과의 긴 연애기간 동안 심하게 다툰 후 냉전중일 때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때 헤어졌어야 했어......

쿨하게 안녕을 외치고 비혼인 상태로 지냈어야 했어......

결혼과 관련해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남자는 만족감을 더 표시하는 반면 여자는 그렇지 않다.

결혼생활이 불만족스러운 건 아니지만 경험해보니 결혼은 여자에게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에너지를 많이 뺏는다.

'이휘재의 인생극장' 처럼 "그래, 결심했어."를 외치며 매번 다른 인생을 살아본다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딱 한 번 뿐이니까 더 신중하게 살 수 있고 살아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결정을 비교할 수 있도록 두 번째,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인생이 우리에게 주어지진 않는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357쪽

 

환자가 연명치료 등에 대해 사전에 자기 뜻을 적어 놓은 문서를 '사전의료의향서'라고 한단다.

영화를 보면서 마음도 몸도 건강할 때 문서를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회생의 희망이 없는 연명치료는 자신과 가족을 괴롭힐 뿐이다.

나와 관련된 가장 어려운 결정을 미리 해 놓는다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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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가 대학을 간 이후 아침식사를 애써 차리지 않았다.

먹을 사람이 없다는 이유였는데, 그러다보니 점점 더 게을러져 냉장고는 텅텅 비고, 온도를 낮추지 않아도 문을 열면 절로 찬바람이 슝슝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틀 동안 혼자 지내게 된 지난 주, 너무 심심해서 반찬을 몇 가지 만들었다.

음식솜씨가 별로 없는 편이라 음식을 만들 때면 꼭 레시피를 찾아보고 계량컵과 계량스푼, 저울을 사용한다.

이번에는 귀찮아서 계량도 하지 않고 대충 이 것 저 것 부어서 만들었는데 남편이 맛있다고 한다.

어제는 김치찌개 국물 내는 것이 귀찮아 다시마가루, 멸치가루 넣고 대충 끓였는데 또 맛있다고 한다. 헐~

그러니까 내 음식솜씨는 정성과 반비례했던 거다.

더 의욕이 안 난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무슨 일을 할 때는 계기가 있다.

계기가 사소한 것이면 나처럼 심심해서 반찬을 만드는 것이고, 크면 이후의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주말에 본 영화 두 편이 다 어떤 계기로 주인공의 인생이 변하는 이야기다.

 

 

 

 

 

 

 

 

 

 

 

법이 있는데도 집단의 이익을 위해 그 법 위에서 공권력을 남용하거나(변호인), 흑인은 이상한 병을 옮긴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황당한 법을 만드는(헬프) 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용기를 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죄가 있으면 벌을 받고 죄가 없으면 벌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그지 없이 순진한 생각을 가진 변호사가 국보법사건을 공권력남용사건으로 바꿔보려다 실패한 '변호인'은 영화로만 보면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송우석 변호사와 겹쳐보이는 한 사람의 일생을 알고 있기에 그냥 영화처럼 실패는 아니다라고 말 못하겠다.

누구에게나 계기는 있다.

그 이후에 어떻게 사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그의 말대로 '운명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송우석 변호사가 법으로 세상을 바로세우려고 했다면, '헬프'의 주인공들은 글로 바로잡고자 한다.

흑인 하녀는 물건처럼 엄마에게서 딸로 상속된다.

흑인하녀의 손에 키워져 하녀를 엄마로 알고 자라지만 어른이 되면 그 하녀의 주인노릇을 하는 것이다.

그 딸들은 자선바자회를 열어 그 수입금으로 아프리카 아동들을 돕는다고 방송에 나와 설레발을 치지만,

한편으로 자기 집에서 일하는 흑인 하녀가 이상한 병을 옮긴다며 하녀용 화장실을 야외에 따로 만드는 법안을 추진한다.

웃기는 건 그런 불결한 하녀에게 자녀의 양육과 식사, 청소 등을 맡긴다는 거다.

아무리 부당한 일을 당해도 보복이 두려워 말 못하던 하녀들은 동료가 절도죄로 체포되자 용기를 낸다.

흑인 하녀들이 보고 겪은 자기 '주인들'의 인권유린, 부조리 등등, 모든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기로 한 것이다.

그 마을에서 나고 자라, 이제는 지역 신문 기자가 된 백인 여성의 손을 빌어서.

겉보기만 멀쩡할 뿐, 머리와 가슴은 텅 비어 자기가 낳은 자식조차 사랑할 줄 모르는 백인 여성들.

자기가 낳은 자식은 남의 손에 맡기고 백인 아이를 자기 자식처럼 돌보면서 사랑과 긍지를 심어주는 흑인 하녀.

살아있지만 그림자 취급받고, 인간대접 받지 못하던 하녀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자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두 편의 영화는 언뜻 희망을 이야기하는 해피엔딩 같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다 부질없어 보이는 건 현실이 너무 괴롭고 비참하기 때문이다.

 

토요일자 한겨레신문에는 전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지휘자 구자범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여성 단원을 성희롱했다는 혐의를 받고 사직했고 지금은 하는 일 없이 부산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사건의 발단에 대한 진의야 본인들이 잘 알테니 왈가왈부 할 건 아니고 정말 심란해진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레슨 같은 것은 하지 않느냐는 말에 교수가 아니면 어렵다는 말.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 곳에서는 간판이 중요하다.

어디 대학 출신이며 누구에게 사사 받았는지가 중요한거다.

대학 전공과는 상관없는 음악을, 독일까지 가서 배우고 온 구자범에게는 음악에 관한 한 스승이나 선,후배가 없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오전, 오후로 연주 연습을 시키는 지휘자 때문에 레슨하러 갈 시간이 없어서,

즉 가외로 돈 벌 기회를 놓쳐서 지휘자를 모함했다고 한다.

그가 한국에서 유명한 음대교수에게 사사 받고 대학을 졸업한 후 경력을 쌓은 다음 경기 필의 지휘자가 되었다면,

단원들과도 선후배 관계나 사제지간일 것이다.

그렇다면 감히 지휘자를 파렴치범으로 몰아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답답해진 것이다.

음악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연습을 열심히 시킨 지휘자는 죄인인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가외로 레슨지도를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만큼 대우가 허술한가.

저 살자고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내용의 포털 검색어까지 조작해야 할 만큼 절박한가.

 

선배에게 존댓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던 히딩크의 심정을 이해한다.

'우리'가 아닌 남에게는 한없이 가혹한 '우리가 남이가' 정신이 싫다.

영화에서는 절망속에서도 희망의 싹을 볼 수 있었다.

현실에서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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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로 보나 직업으로 보나 늘 죽음과 가까이 지낼 수 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익숙해지지도 않는다.

누구나 한시적 삶을 살고 있지만 생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유한한 것을 알면서도 무한한 것처럼 산다.

자려고 눈을 감을 때 내일이 되어도 눈을 뜰 수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이나 병으로 인해 얼추 자신의 여생을 가늠할 수 있게 된다면 그럴지도.

내 시어머니처럼 심장이 계속 말썽을 부리는데도 전혀 준비하지 않았던 사람도 있고,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엔딩노트를 작성하는 사람도 있다.

 

위암 말기로 수술도 불가능하게 된 스나다씨는 컴퓨터를 켜고 자신의 '엔딩노트'를 작성한다.

죽음을 위한 준비상황은 딸의 카메라로 모두 촬영된다.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고, 일 때문에 소홀했던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장례식을 치를 장소를 알아보고, 초대할 사람들, 재산 상황과 그 처리 방법을 기록한다.

한 회사에서 40년 넘게 일하고 정년퇴직한 사람답게 꼼꼼하고 치밀하게 죽음을 준비한다.

삶을 늘리기 위한 노력만큼 죽음에 대한 준비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세밀하게 알아보고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게 개인의 성향인지 일본인의 특성 중 하나인지 궁금했다.

거의 마지막 순간, 장례식에 초대할 사람들을 적은 명단 파일이 지워져 버렸다는 아들의 말에 그럴까봐 백업해 두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특히 더.

자신의 삶이 행복했다라고 표현하고, 아내에게는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에 대해 사과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의 마지막 순간은 '해피 엔딩'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읽고 있는 책, 강수돌의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 되는가'에는 독일 브레멘대학에서 이반 일리치를 만났던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일리치의 뺨에는 꽤 큰 혹이 있었는데 수술로 제거할 수 있었는데도 현대의학에 의존하는 것이 싫어 수술을 거부했다 한다.

 

선생의 말씀 중에 "현대 의학이 인간으로부터 죽음을 탈취해 갔다"라는 말이 있는데, 결국 인간은 과학, 기술 덕에 무의미하게 죽음을 연장하는 많은 사례에서 드러나듯, 적당한 기회에 죽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능력까지 상실한 상태, 즉 '죽음으로부터의 소외'까지 겪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깊이 생각해 보면 정말 맞는 말이다. 우리는 막연히 오래 살 것처럼 생각하고 불행이나 고통, 죽음에 대해서는 막연한 두려움에 젖어 거의 대비하지 않는다. 생각건대,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성실히 대비하지 못하는 삶은 온전한 삶일 수 없을 것이다. - 154쪽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려면 삶 또한 아름답게 장식해야 하리라.

삶을 아름답게 하려면 또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나라고 하는 존재 자체가 타인에게 선물이 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온전한 인간이 된다"는 이야기가 중요하다. 바로 이런 의식을 우리가 가질 때 나와 타자 사이에 비로소 건강하고 올바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 158쪽

 

내가 가족에게, 친구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재앙이 아닌 선물이 되어야 한단다.

엄숙하고 무거운 다짐이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지 못하면 아름다운 '엔딩'이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죽음에 가까울수록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많다고 한다.

그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하겠느냐 사람들에게 물은 다음 사람들이 여행을 하겠다, 부모에게 전화하겠다 등등 말하면 바로 지금 그 일을 하라고( Just do it, now) 하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지금을 낭비하지 말라고.

그런 것 중 하나가 저축이나 보험이 아닐까 싶은데 나 역시 그렇다.

많지 않은 돈을 이리 저리 쪼개 보험이며 적금을 드느라 허덕인다.

그런데 주간경향(1070호)에서 소설가 백가흠의 글을 읽었다.

'내가 저축하지 않는 이유'

평생 저축해봐야 집 한 채 사기 어려운 때, 차라리 돈을 모으지 말고 빚을 내란다.

0을 만들 수 있는 적절한 빚을.

 

적절한 빚을 낸 삶은 언제나 0을 목표로 한다. 마이너스의 삶에서 0이 최고치인 인생은 무한대로 플러스만 존재하는 인생보다 행복하다. 항상 빚을 갚아야 하니 열심히 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열심히 빚을 갚고 0이 되었을 때의 만족감과 해방감을 짐작해 보자. 적절한 빚이 있는 삶은 엉뚱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빚이 있는 삶의 목적은 오로지 빚을 갚는 것이다. 삶을 마이너스에서 0으로 돌려놓는 일, 끊임없이 욕심을 내야만 하는 플러스의 인생보다 행복하다.

 

내 성격상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삶의 경지이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막연한 불안감으로 현재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을 저당잡힌 삶이 옳다고 주장할 수도 없는 것.

항상 0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멋지다!

 

페이퍼를 계속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어떤 책이나 글을 읽다 보면 생각이 연결되는 경험을 자주 한다.

위에 인용한 강수돌의 책은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다.

'엔딩 노트'를 보고 감상을 적어야겠다 생각한 순간에 저 대목을 읽은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감상을 적으려는 순간에 저 글이 짜잔!하고 나타난 것이 놀랍고, 그런 경우를 올해 들어 여러 번 겪었다.

백가흠의 글도 마찬가지, 그럼 어떻게 살아야하지 하는 생각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아~~~ 이제야 나도 뭔가 보고 듣는 것을 서로 연결할 능력이 생긴건가.

다른 사람의 삶과 생각을 보고 읽으면서 뭔가 새로운 것을 깨달아 간다는 게 글을 읽고 쓰는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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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류에 부응하느라 스마트폰을 장만했다.

나에게 핸드폰이란 그야말로 '핸드'의 '폰'이다.

스마트폰으로 바꿨다고 '폰'을 '스마트'하게 쓰지 못한다.

일단 게으르고, 재미가 없다.

 

대리점에서는 싸게 준다고 하면서 자기들 실속은 다 차린다.

1개월간은 반드시 가입해야하는 상품이 있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올레TV인데 한 달 사용료를 받으면서 접속해 보면 순전 유료영화, 방송 뿐이다.

어쨌거나 한 달은 가입되어 있으니 그럼 공짜 영화나 좀 볼까 하고 여기 저기 뒤지다가 이 영화를 발견했다.

 

실은 우연히 알라딘 DVD에 들어갔다가 꼭 사고 싶었던 DVD를 발견했는데 이만원 안짝이라고 배송료를 물린다.

배송료 물고 싶지 않아서 다른 DVD를 살펴보다가 이 영화를 발견했다.

노란 표지 사진이 눈길을 끌었고, 주인공이 오다기리 죠라서 더 관심이 갔다.

이 일본배우는 이름을 모른채 사진만 볼 때는 일본인인줄 몰랐을 만큼 볼수록 잘생겼는데,

연기도 그동안 봤던 일본인 연기자와는 좀 다르다.

콕 찝어서 말하긴 그렇지만 느낌이 그렇다는 거다.

내용을 잘 몰라 망설이다가 장바구니에 넣는 걸 포기한 후 그날 저녁에 올레Tv에서 공짜로 볼 기회가 생긴거다.

 

일단 영화에 돈은 많이 안 들었겠구나 싶다.

영화의 주된 줄거리가 도쿄를 산책하는 것이라 줄창 걸어다니거나 뭘 사먹거나 구경하는 장면이 많다.

어려서 부모가 도망가고 양부모 밑에서 눈치보며 자란 주인공이,

바로 전까지만 해도 빌린 돈 갚으라며 목을 조르던 남자가 갑자기 돌변하여

자기와 도쿄산책을 해 주면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자 거기에 응한다는 이야기이다.

 

두 사람은 걸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고, 단란한 가정을 경험해 본 적이 없던 주인공은

어려서 해 보지 못했던 일들을 해 보면서 산책을 제안한 남자를 가족처럼(혹은 아버지처럼)여기게 된다.

 

우연히 보고 영화가 맘에 들어 중고샵까지 뒤져 장만했던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같은 영화다.

계기는 엄청난 것 처럼 포장하면서 결국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내용을 보여주는 그런 영화.

그런 느낌을 받게 된 것이 영화 중에 산책을 제안한 남자의 아내가 다니던 회사 동료들이

'거북이......'에서 스파이면서 스파이 아닌 척 하는 사람들을 연기했던 그 배우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검색해보니 같은 감독이다. 어쩐지...

이 감독은 영화에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포장도 하지 않으면서 묘한 매력을 갖게 하는 사람인가 보다.

'거북이...'에서는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이 결코 평범한 것은 아니라는 ,

자기 삶에 대한 어떤 비범함을 찾게 되는 그런 영화였는데

'텐텐'은 내가 사는 동네를 그냥 일 없이 걸어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결국 사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할인중이라 가격도 싸다. 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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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주택가에 문을 연 일본식당.

주 메뉴는 오니기리(주먹밥)

자그마한 몸집의 식당주인 일본여자는 동네 여자들의 구경거리만 되고,

식당은 매일 개점휴업상태.

하지만 여주인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식당에서 손님을 기다리다 꾸벅 꾸벅 졸아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주 메뉴인 오니기리를 아시는지?

속에 장아찌 종류를 넣고 밥을 삼각 모양으로 만들어 겉을 길게 자른 김으로 감싼 것인데

세* 일레븐이니 하는 편의점에서 파는 삼각김밥 같이 생겼지만

우리네 삼각 김밥 같지 않고 굉장히 심심할 것 같은 모양이다.

주인공은 왜 오니기리가 식당의 주 메뉴냐는 질문에

오니기리는 일본인에게 '고향의 맛'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하필 식당을 핀란드까지 와서 열었냐는 질문에는

핀란드 사람들은 그 담백한 맛을 이해할 것 같아서라고 한다.

도대체 이유 같지 않은 이유지만 뭐 딱히 틀렸다고 보기도 어려운 말이다.

 

시종일관 주인공은 조용히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고

매일 공짜로 커피를 마시고 가는 청년에게 변함 없이 친절하며

전혀 서두르거나 초조해 해지 않는다.

우연한 기회에 식당에 머무르게 된 두 일본여자에게도

어떤 판단이나 선입견 없이 편안하게 대한다.

 

식당은 참 밝고 정갈하다.

가구도 주방도구도 주인공의 성격처럼 단정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모든 가구와 주방도구는 아마도 유명한 가구, 주방용품 회사 '이케아 ' 것이 아닌가 싶은데

검색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너무 여유 없이 살고 있는 처지에서 본 영화는

당장 핀란드로 날아가고 싶을만큼 평화롭고 여유로워 보였다.

간단한 인사말 정도는 익힐 수 있을 만큼 반복되고 선명한 발음의 일본어를 들을 수 있고

일본식 정갈한 식탁도 엿볼 수 있다.

마음이 복잡하고 여유가 없을 때 한 번 보면 좋을 영화이다.

 

주인공이 우연히 만나 집에 까지 데려온 일본 여자에게 갑자기 질문을 한다.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오늘 무엇을 하겠냐고.

조금 생각하던 상대방이 맛있는 것을 맘껏 먹겠다고 하자,

주인공도 그렇다고 말한다.

맛있는 음식을 잔뜩 하고 좋은 사람들을 초대해서 맛있게 먹겠다고.

그렇게 세상에서의 마지막을 보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목 카모메 식당의 카모메는 갈매기란다. 핀란드 갈매기는 뚱뚱하다는 말이 영화 첫머리에 나온다.

일명 '닭둘기'라 불리우는 우리네 비둘기 같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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