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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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이라기 보다는 숲을 중심으로 써내려간 산문집 같았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아침 수목원처럼 무겁고 눅눅했다. 솔가지에 매달린 이슬방울처럼 섬세하고 위태로웠다. 

  '나'는 민통선 내에 위치한 국립 수목원의 전속 세밀화가로 채용되었고 이혼한 채 홀로 아이를 키우는 안실장 밑에서 나무와 꽃을 그렸다. 내가 강원도로 거처를 옮기자 홀로 계신 엄마에게선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는 뇌물죄로 교도소에 있었지만 엄마는 아버지의 그런 부재를 오히려 반기는 듯 했다.

  '존내논', 할아버지가 키웠다는 말의 우스운 이름이 이야기를 흐리는 것 같다. 커다란 생식기를 내밀었을 때 붙여진 이름은 존레논의 부드러운 음성과 겹치며 희극화 된다. 비틀즈의 <노르웨이 숲>이 연상되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소설, <노르웨이 숲>(상실의 시대)도 덩달아 떠오른다. 
  아마도 작가는 이 노래의 서정성을 염두에 넣고 글을 쓴 것 같다. 하지만 그 푸른 여운은 '존내논'의 일화를 만나면서 산산이 부서져버린 느낌이다. 상황을 무시한 지나친 위트가 글의 집중도를 떨어뜨린다고나 할까... 

  '나'는 수목원에 있는 동안 한국전쟁 때의 유해발굴사업에 동참하게 된다. 거기서 뼈 그림을 그리며 김중위를 알게 된다. 군인 같아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현실에 동화되지 못한체 기름처럼 떠다니는 자신을 발견한다. 아버지는 가석방 되었고 나는 안실장 아들(신우)의 미술지도를 맡게 된다.

  자폐증을 앓고 있던 신우처럼 서로 단절된 듯 이질적이다. 그 모순된 상황 속에서 이리저리 부유하는 인간상들이 이야기의 근간을 이룬다. 마치 아침 안개 속의 수목원을 걷는 느낌이랄까. 옷깃 사이로 느껴지는 이슬방울의 감촉이 신선하면서도 낯설었다. 베일 속에 가려진 듯 보일 듯 말듯 한 분위기,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그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미묘한 소설이다.

  숲에 가려진 인생 같다고나 할까. 알 수 없는 오늘과 내일, 그리고 과거 속의 메아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진다. <내 젊은 날의 숲>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느낌...
  나를 둘러싼 알 수 없는 미래와 모호한 현실이 적막하게 와 닿는다. 작가는 어쩌면 독자의 이런 혼란을 유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젊음은 어땠는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막막한 안개 속에서 나를 찾게 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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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봉우리 세트 - 전5권
다니구치 지로 지음, 유메마쿠라 바쿠 원작 / 애니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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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게이가 에베레스트 정상(8,848m)에 섰다. 하지만 그보다 30여년 앞선 1924년 에베레스트 정상에 근접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지 리 맬러리와 앤드류 어빈이다. 하지만 정상 200m 아래에서 실종되는 바람에 그들의 성공 여부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과연 맬러리는 에베레스트에 올랐을까? 그로부터 75년이 지난 1999년 5월, 에베레스트 8,520m 지점에서 맬러리의 시신이 발견됨으로써 그의 등정 여부가 다시 한 번 세간의 관심이 되기도 했다.

  <신들의 봉우리>는 후카마치(사진기자)에 의해 맬러리의 카메라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만일 그 카메라 속에 정상등정의 결정적 증거가 될 만한 사진이 있다면 세계의 산악등정사가 다시 쓰이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그 카메라를 도둑맞게 되고 이를 찾는 과정에서 '비카르산'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하부 조지를 만나게 된다. 그는 어렵기로 이름난 동계 오니슬래브(빙벽)를 두 번이나 올랐을 정도로 전설적인 산악인이었지만, 외골수 같은 성격과 동료들과의 잦은 마찰로 산악계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던 잊혀진 영웅이었다. 후카마치는 늑대처럼 강렬한 하부의 인상에 이끌려 그의 삶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책을 읽는 동안 내 기억 속에 있던 풍경들이 오버랩 되며 겹쳐왔다. 여러나라 사람들로 붐비던 네팔의 타멜거리, 바람에 흩날리는 티베트의 타루초, 에베레스트 베이스켐프 길목에 있던 롱북에서의 하룻밤, 눈보라를 일으키며 고개를 내밀던 에베레스트 정상이 눈에 선했다.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안나푸르나(8,091m) 트래킹도 해보고 싶다. 거대한 설산을 주유하며 자연 속의 나를, 내 속의 자연을 여행하고 싶다. 내 안에 숨어있는 이런 동경 때문인지 책에 더 몰입하게 되는 것 같다. 

  하부 조지를 만난 후카마치는 그가 동계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무산소로, 그것도 단독으로 오르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모하리만큼 위험한 코스를, 어느 산악인도 도전하지 않은 조건으로 시도하려는 하부. 후카마치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한발 한발 에베레스트로 걸어 들어간다.
  인간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숨조차 쉬기 힘든 8,000m 히말라야에서 자신과의 한 판 승부가 시작된다. 차가운 몸은 정상을 향했지만 뜨거운 가슴은 언제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정상에 서봤자 해답 같은 건 없다." 정상에서 만나게 될 것은 오롯한 자신이었다. 

  책은 산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인간’을 이야기한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고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일상이라는 거친 삶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살아가는 목적과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고 자신의 열정과 가슴 속에 응어리진 고통을 직시하게 만든다. 인생이라는 산행을 어떻게 진행하고 마무리해야할지 보여주는 교과서인 샘이다.

  유메마쿠라 바쿠의 산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신들의 봉우리>는 다니구치 지로에 의해 만화화 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는 얼마 전에 부천판타스틱에 초청되어 엄홍길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또한 섬세한 필치와 화려한 영상미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것같이 사실적이었다. 아이들만 보는 단순한 오락거리의 만화가 아닌 사실적인 묘사와 깊은 감동이 있는 화보집이었다. 
 나는 이 한권의 책으로 다니구치 지로의 팬이 되어버렸다. 그의 다른 만화책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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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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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음을 낭비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고 하는 자기개발서는 그 내용이나 결말이 정형화 되어있어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불고 있는 김난도 교수님의 열풍은 애써 외면하려던 내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던 중에 직장 도서관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발견하고는 옳거니 하고 빌리게 되었다.

 
 인생, 특히 20대의 젊음은 외부적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부적응과 앞으로 닥쳐올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종잡을 수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학점과 어학연수, 자격시험 등 각종 스펙에 대한 스트레스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을 직시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강요하거나 설득하기 보다는 스스로 분발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심어준다. 
  젊음의 핵심을 냉철하게 까발려 현실의 문제점을 찾고자하는 내용도 좋지만 무엇보다 김난도 교수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글이 마음에 와 닿는다. 내가 이랬으니까 너희들도 이래라는 막무가네식 설교가 아니라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조목조목 설명하며 대처방안을 이야기한다. 아마 김난도 교수님의 평소 성격도 이렇지 않을까. 글 속에 담겨있는 교수님의 인품에 더 많은 감흥을 얻게 된다.

  특히 자신의 인생을 24시간에 비유한 글이 인상 깊다. 20대의 불안한 청춘이라고는 하지만 하루라는 시간으로 비교해보면 오전 8시 전후의 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 아직은 이른 시간이니 너무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항상 쫓기듯 살고 있는 우리 사회를 생각하면 그 의미는 더욱 커질 것 같다. 눈앞의 결과물에 연연하기보다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가는 과정에 주안점을 두어야 하겠다. 우리의 인생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니...
  내 나이가 서른아홉이니 24시간으로 보자면 11시 42분인 샘이다. 해가 중천에 떠오른 오후도, 저녁놀이 은은한 저녁도, 넉넉한 휴식으로 하루를 음미해 볼 밤 시간도 오지 않았다. 이루지 못했다는 불안감보다는 미지의 시간을 즐기려는 자신감으로 하루하루를 생활해야겠다.

  끝으로 책 표지에 인쇄된 글을 옮겨보면,

  "불안하니까 청춘이다
   막막하니까 청춘이다
   흔들리니까 청춘이다
   외로우니까 청춘이다
   두근거리니까 청춘이다
   그러니까 청춘이다"
  청춘이라는 단어 대신에 자신의 나이나 이름을 넣어보면 어떨까. 확실한 것은 우리는 여전히 현재형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 모두들 힘내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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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서재 -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책이 되었다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 / 행성B(행성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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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딱한 취재형식의 글도 아니고 책을 읽으라는 식의 논설조의 글도 아니다. 오래된 친구를 방문하듯,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듯 편안하게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조국, 최재천, 이안수, 김용택, 정병규, 이효재, 배병우, 김진애, 이주헌, 박원순, 승효상, 김성룡, 장진, 조윤범, 진옥섬. 각 분야에서 나름의 일가를 이룬 이들의 서재를 둘러보며 그들의 인생과 책 이야기를 들어본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항상 곁에는 책이 있었다. 관심 분야가 있으면 관련 책을 몽땅 읽어보거나 여러 책을 동시에 읽기도 했다. 서재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식이 아닌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가 되었다. 책이 있어 즐겁고 책을 읽어 행복한 진정한 ‘책쟁이’들의 이야기다.

  어느새 그들이 추천한 책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여기 등장하는 책 제목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독서가 되는 것 같다. 좋은 책을 통해 들여다보는 세상은 언제나 즐겁다.
  근사하게 꾸며진, 혹은 책으로 뒤덮인 그들의 서재가 부럽기만 하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의 느낌이랄까. 책 속에 파묻힌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포만감이 느껴진다. 아니 부러운 시샘이 나를 채웠는지도 모르겠다.
  몇 해 전에는 이중으로 된 서재를 꾸며볼까 한참을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내 방 사면에 빼곡히 들어찬 책. 그 분위기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았다. 물론 지금은 책을 소장하는 것 보다는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싶은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책이 갖고 있는 든든함은 돈이나 명예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여기 소개된 명사들 역시 이런 충만감을 쫓아 책을 탐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좋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불손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을 등장시킨 것은 아마도 다양한 독자층을 만족시키려는 것이리라.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책을 만들려는 기획의도가 조금 엿보인다고 할까. 마치 온전한 새 노래로 음반을 채우기보다는 과거의 히트곡을 적당히 편집해 꾸며놓은 앨범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 거론된 백여권의 추천서 가운데 수십명의 유명인을 내세워 짜깁기한 이런 계몽서적은 한 권도 보이지 않았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지만 여기서 소개된 인물들의 경우에 이런 책은 그다지 추천하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책,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도 좋지만 이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이를 안다는 것 또한 얼마나 뿌듯한가. 책에 대한 기호, 성향, 독서법이 달랐지만 책으로 인해 행복하 수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 하나였다. ‘책이 있어 즐겁고 책을 읽어 행복한’ 이들과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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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08-30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입니다. 프리즘님. 무더위에 건강하신지요?

프리즘 2011-08-30 13:31   좋아요 0 | URL
덥네요. 하지만 곧 겨울이 오겠죠. 늘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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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정보연구원 엮음 / 시사패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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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글씨에서 좋은 마음이 자랍니다. 열심히 국어 공부 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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