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캑터스
사라 헤이우드 지음, 김나연 옮김 / 시월이일 / 2021년 11월
평점 :
가볍고 유쾌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작품이 의외로 묵직한 중량감을 선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캑터스>라는 이 작품이 바로 그렇다. 문장에서 느껴지는 밀도감도 아주 뻑뻑하다. 마흔 다섯살의 싱글 여성인 수잔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이성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감정교류를 싫어하며 비효율적인 일처리나 불필요한 말과 행동이라면 질색이다. 당연히 낯선 사람에게 말붙이는 것도 싫어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정도의 정의감이나 오지랖은 있다. 연애도 같은 방식이다.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남자인 리처드와 12년동안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만나 밥을 먹고 공연을 보고 잠자리를 갖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을 뿐더러 로맨틱한 감정 따윈 없다. 그건 리처드가 제시한 만남의 조건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수잔은 적에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가시가 생겼다고 믿는 선인장 같은 사람이다.
이렇게 매일매일 규칙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수잔의 삶에 균열을 일으킨 두 가지 사건이 발생한다. 하나는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언장이 사이가 좋지 않은 남동생 에드워드에게 전적으로 유리하게 작성되어 있다는 점이고 수잔은 이 모든 것이 엄마의 의지가 아니라 교활한 에드워드의 책략이라고 생각한다. 두번째는 바로 임신이다. 엄마의 유언장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살았던 어린 시절을 다시 소환하고 보고 싶지 않은 가족들을 만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고 마흔다섯살에 하게 된 계획되지 않은 임신은 주변의 인간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고 삶을 살아가는데에는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니까 소설은 선인장이 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만든게 아니라 사막이라는 건조한 곳에서 수분을 간직하기 위해 잎이 아닌 가시로 진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독립적인 삶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때로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 누구에게나 작은 위로나 따뜻한 감정의 교류는 필요하다는 것, 다른 사람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 나의 삶을 풍족하게 할 수 있다는 것, 가끔은 뭐 어때라는 말을 해도 된다는 것을 하나하나 깨달아가는 수잔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심 감동적이다. 그리고 그 감동이 신파스럽지 않아 다행이다. 앞으로 선인장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