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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도 좋은 책들이 정신없이 쏟아져 나왔다. 인문학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좋은 책들이 출간될 때마다 한편으론 걱정부터 앞선다. 대체 책값을 다 어떻게 감당하나 싶어서..^^ 



1.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그리고 잘려진 그 손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라


이번에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일본의 신진 평론가 사사키 아타루의 책이다. 현재 일본에서 그는 아즈마 히로키와 더불어 가장 떠오르는 젊은 사상가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 이 책의 출간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조금 의아했다. 2009년에 일본에서 출간되었고, 2010년에 국내에도 번역된 사사키 아쓰시의『현대 일본 사상-아사다 아키라에서 아즈마 히로키까지』에서는 2000년대 일본 사상계는 사실상 아즈마 히로키의 독무대라고 평가하고 있으며, 사사키 아타루라는 이름은 언급조차 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도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한 인물이라는 얘기이다. 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글쓰기 또는 문학이 가진 위대함, 그 혁명적 힘에 대해 논하고 있다. 저자는 "문학이야말로 혁명의 힘이고, 혁명은 문학으로부터만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그런 관점에서 저자가 드는 혁명의 범례는 바로 루터의 종교개혁, 아니 루터의 '대혁명'이다. 루터가 주도한 사건이 단순히 종교적 개혁이 아니라 혁명, 그것도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친 대혁명인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성서를 읽고, 성서를 번역하고,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책을 썼습니다. 이렇게 하여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책을 읽는 것, 그것이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70쪽) 

저자는 혁명의 본질은 폭력이 아니며, 텍스트의 변혁이야말로 혁명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지극히 편파적이고 비약이 심한 주장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왠지 거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내가 그만큼 언어와 텍스트의 힘에 대해 무지한 것일지 모른다는 자책감만 늘어날 뿐이다. 그만큼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의 차원을 넘어 강한 흡입력과 호소력을 갖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논리적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 감응의 문제일 것이다. 근래에 만나본 가장 독창적이고 심오한 문학론 혹은 텍스트론이었다. 앞으로 한국 문학평론가들의 글에서 사사키 아타루의 이름을 심심찮게 발견하게 될 듯.



2. 이미지의 가면 뒤에 사라지고 있는 실재를 되찾기 위하여


 20세기發 프랑스産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이 정말로 실재하는 것이라면(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은 미국産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만), 응당 그 저작권자 중에 한 사람은 보드리야르일 것이다. "섹스, 언어, 기호, 상품, 전쟁 등 그 어떤 것도 이 사회학자의 역설적인 분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장 보드리야르는 호기심 그 자체였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좌파 신문인 리베라시옹은 보드리야르의 죽음을 이렇게 애도했다고 한다. 


보드리야르는 1981년 주저인 『시뮬라시옹Simulacres et Simulation』(민음사, 2001)을 출간한 이후, 줄곧 자신의 시뮬라시옹 개념을 확대 적용한 연구들을 생산해왔다. 그러한 지적 여정의 최종점에 바로 이 책, 『사라짐에 대하여』가 놓여 있다. 보드리야르는 이미지가 현실/실재를 가리고 왜곡하며 대체하는 상황을 포스트모던 사회의 본질로 파악하고, 바로 그렇게 모든 실재의 인위적인 대체물로 자리잡은 시뮬라크르의 만연을 우리 시대의 위기의 징후로 이해한다. 처음에는 실재의 깊은 반영이었던 이미지가 종국에는 실재나 현실과는 무관한, 자기자신만의 순수한 시뮬라크르로 전환되는 현상. 그것이 바로 시뮬라시옹이며, 바로 이 시뮬라시옹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미지의 폭력과 이미지에 가해지는 폭력에 맞서며, 이미지들로 인해 사라진 실재를 되찾을 것을 요청하고 있다.



3. 갈등을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의 모델을 찾아서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의 ‘구조화이론(structuration theory)’은 구조의 이중성 개념을 전제로 하여 구조와 행위(자) 사이에 매개체인 반복적인 사회적 관행, 즉 '제도'(institution)를 배치함으로써 사회과학의 오랜 난제인 사회현상의 두 축으로서 구조와 행위자 간의 관계를 통합하려고 시도했다. 기든스의 구조화이론에 따르면, 구조는 행위자들의 행위를 통해 존재가 확인되는 원리이고, 행위자는 그 원리의 실행자이며, 제도는 행위자의 구조적 실행의 매개이자 산물이다. 


미국의 저명한 교육운동가인 파커 파머(Parker J. Palmer)는 최근 소개된『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글항아리, 2012)에서 민주주의는 결국 마음의 습관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 마음은 영구혁명과도 같은 민주주의 실험의 지난한 과정 속에 동반되는 갈등과 긴장을 끌어안는 태도 내지는 습속을 가리킨다. 개인의 차원에 속하는 마음의 습관을 사회적/집단적 차원으로 확장시키면 그것이 바로 '제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파머는 말한다. "복원된 평원이 번창하듯이 민주주의가 번창하려면 우리의 마음과 제도가 함께 작용해야 한다"라고. 


그런 의미에서 한국형 민주주의, 복지체제, 자본주의 체제의 대안을 모색하는 이 책 『갈등과 제도』의 출간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사회 갈등 이론 및 제도주의 사회학/정치학 이론을 바탕으로 생산ㆍ노동복지정치제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한국 사회 갈등의 주체ㆍ원인ㆍ양상 등을 분석하고, 나아가 그 각각의 영역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바람직한 제도적 모델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본격적인 사회과학 이론서라 비전공자가 읽기엔 조금 버거울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좀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고 있는 이들에겐 많은 참조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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