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베스트셀러의 사전적 정의는?‘어떤 기간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그렇다면 밀리언셀러의 정의는 무엇일까? 액면대로 설명하면 100만 부 이상 팔린 책이다. 그러나 그 정도 부수가 팔리려면 평상시에는 책하고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까지 책을 사야 한다. 그래서 밀리언셀러에 대해 “평상시에 책을 읽지 않던 사람들이 읽는 책”이라고 정의내리기도 한다.

이 땅에서 최초로 밀리언셀러에 오른 책은? <성경>일까? 아니면 <운전면허시험문제집>일까? 그러나 단행본만 갖고 이야기하자면 1981년에 출간된 <인간시장>(김홍신)이다. 시집으로는 서정윤의 <홀로서기>가 있다. 이어서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이 뒤를 이었다. 류시화는 그의 모든 시집이 100만 부를 넘는 시인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시인이다. 시집이 이렇게 많이 팔린 것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1989년에는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출간 6개월 만에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전주곡에 불과했다. 1990년대에 들어 <소설 동의보감>(이은성), <소설 토정비결>(이재운), <소설 목민심서>(황인경) 등 역사인물소설 트로이카를 비롯해 <배꼽>(오쇼 라즈니쉬), <세상을 보는 지혜>(발타자르 그라시안), <반갑다 논리야>(위기철), <여보게,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지>(석용산) 등이 밀리언셀러가 됐다. 그 후 해마다 서너 종의 밀리언셀러가 줄을 이었다.

그러다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가 닥치자 밀리언셀러는 잠시 사라졌다. 최근까지도 밀리언셀러는 우리 곁에서 사라진 듯했다. 지난 8월 초에 <마시멜로 이야기>(호아킴 데 포사다 외)가 밀리언셀러가 되기까지는 말이다. 덕분에 여기저기서 2000년대에 밀리언셀러가 된 책이 몇 종이냐는 문의가 줄을 이었다. 그래서 며칠을 작심하고 알아보았다. 그랬더니 무려 40여 종이나 됐다.

그 중에는 이미 1천만 부를 넘긴 책도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조앤 K. 롤링) 와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는 2천만 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앞의 책은 전 세계를 강타한 블록버스터 소설이니 달리 할 말이 없다. 뒤의 책은 ‘한국적 현상’이라 할 수 있는 스토리만화의 대표적인 예다. <마법천자문>, <코믹 메이풀 스토리>, <서바이벌 만화과학상식> 등 ‘현존’하는 스토리만화 3총사는 500만 부 안팎의 판매부수를 기록하며 인기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최초는 81년 김홍신 ‘인간시장’

2000년대 들어 졸지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둔갑한 분야가 자기계발서 시장이다. 개인주의로 무장한 사람들은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남들이 읽는 자기계발서를 집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 자기계발서는 개인(셀프)과 경영(매니지먼트)을 결합하고 있다. 경영을 돈으로 바꿔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는 들어 내놓고 돈을 추구하는 것이 더 이상 남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일깨워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가 300만부, 남보다 먼저 변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달콤한‘변화의 철학’을 제시하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가 200만 부 넘게 팔리며 이 시장의 초석을 확실하게 다져놓았다. 그 뒤를 이어서 <화>(틱낫한), <설득의 심리학>(로버트 치알다니),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사이쇼 히로시),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탄줘잉 편), <선물>(스펜서 존슨), <마시멜로 이야기> 등이 꼬리를 물며 밀리언셀러에 오르더니 올해는 아예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 목록 상단을 점령하다시피 했다.

전통적으로 출판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소설도 밀리언셀러를 양산하는 분야이다. 아버지들의 가족애를 그린 <가시고기>(조창인)와 <국화꽃 향기>(김하인),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랑스 작가’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와 <나무>, 추리소설의 ‘창세기’<셜록 홈즈 전집>(아서 코난 도일), 조정래 대하소설 <한강>, 조선 최고의 거상 임상옥의 일대기인 <상도>(최인호) 등이 2000년대 초기에 밀리언셀러에 올랐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중의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하는 <다 빈치 코드>(댄 브라운)와 <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 등 외국소설 두 종만이 밀리언셀러가 됐다. 80만 부가 팔린 김훈의 <칼의 노래>와 42만 부가 팔린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머지않아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오를 것으로 보여 약간은 위안이 되지만 국내 소설의 침체 양상은 심각할 정도이다.

‘해리포터’나 <다 빈치 코드>는 영화로 만들어진 블록버스터이다. <국화꽃 향기>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영화화되었거나 되고 있는 중이다. <상도>는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이제 영상과 책의 접목은 ‘필연’이라 할 만큼 책의 판매부수를 키우고 있다. 영화의 국내 상영과 맞물려 대형 베스트셀러에 오른 <반지의 제왕>(J.R.R. 톨킨)과 뮤지컬을 글로 옮긴 <오페라의 유령>(가스통 르루) 같은 책이 밀리언셀러가 되기도 하지만 (KBS한국방송), MBC FM <이소라의 음악도시>의 상담코너를 책으로 옮긴 <그 남자 그 여자>(이미나) 등 방송 프로그램을 책으로 펴낸 것도 밀리언셀러가 된다. 90만 부가 팔린 <스펀지>(KBS스펀지제작팀)도 곧 밀리언셀러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최근 인기 있는 방송프로그램은 ‘무조건’책으로 만들고 볼 정도다. 인기드라마를 소설화한 <겨울연가>와 <대장금>은 국내에서는 반응이 크지 않았지만 외국에서 밀리언셀러가 된 경우이다.

밀리언셀러 7종 올린 ‘느낌표’ 괴력

해방 이후 가장 큰 출판이벤트는‘느낌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2001년 11월부터 첫 전파를 타기 시작한 MBC 방송프로그램 <느낌표>의 한 코너인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는 많은 책을 소개했다. 소개된 책 중에서 <괭이부리말 아이들>(김중미), <봉순이 언니>(공지영), <아홉 살 인생>(위기철),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 <야생초 편지>(황대권), <톨스토이단편선>(톨스토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J.M. 바스콘셀로스) 등 7종이 밀리언셀러에 올랐다. 이처럼 방송의 소개에 힘입어 밀리언셀러가 된 책으로 KBS 에 소개된 <연탄길>(이철환)과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PPL’처럼 세 차례 등장한 <모모>(마하엘 엔데)도 있다.

이 밖에 영어학습서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정찬용), 카툰만화집 <파페포포 메모리즈>(심승현), 인문서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 역사학습서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사편지>(박은봉), 미국의 역사와 문화를 만화로 설명하는 <21세기 먼 나라 이웃나라 - 미국편> 등도 밀리언셀러에 올랐다.

그렇다면 이들 책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아마도 지식인들은 대체로 부정적으로 말할 듯하다. 한 평론가는 “동서를 불문하고 ‘밀리언셀러’들이 이룩한 공로는 애꿎은 나무 희생과 자연파괴”뿐이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일본의 문예평론가인 사이토 미나코는 밀리언셀러를 분석한 책 <취미는 독서>의 서문에서 지식인들은 대체로 밀리언셀러는 ‘읽기 싫다’ ‘안 읽어도 다 안다’‘읽을 가치 없다’라는 태도를 보인다고 했다.

100만 독자 역사적 ‘경험 공동체’
 
그러나 밀리언셀러는 ‘한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후지와키 구니오는 “한 부의 지식인용 책, 출간되자마자 서평에 오를 것 같은 양서는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평소 책이라고는 잘 사지 않는 사람을 위한 책을 만들어 이익을 내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다. … 이런 책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을 프로라고 부른다.”라고 했지만 나는 밀리언셀러를‘세상’이 만든다고 본다. 운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세상을 잘 만나야 가능한 법이니 말이다.

‘1천만 관객’의 영화 <괴물>이 화제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뉜다. 잔뜩 기대를 하고 본 사람들은 ‘잘 만들기는 했지만 그렇게 까지는’하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반면 아무 기대도 하지 않고 남이 보니 그냥 따라본 사람들은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다. 밀리언셀러 또한 마찬가지다. 세밀한 자로 일일이 대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밀리언셀러를 함께 읽은 사람은 이미 역사적인‘경험의 공동체’다. 워낙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책을 읽다보니 감동을 받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밀리언셀러를 분석하면 지난 세월에 우리가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있는 것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21세기 밀리언셀러 목록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토머스 불핀치, 가나) 1200만
<해리포터>(조앤 K.롤링, 문학수첩) 1100만
<마법천자문>(시리얼, 아울북) 580만
<코믹 메이풀 스토리>(송도수, 서울문화사) 500만
<서바이벌 만화과학상식>(코믹컴 외, 아이세움) 450만
<다 빈치 코드>(댄 브라운, 베텔스만코리아) 330만
<연탄길>(이철환, 삼진기획) 300만
<상도>(최인호, 여백) 300만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 외, 황금가지) 300만
<괭이부리말 아이들>(김중미, 창비) 200만
(KBS한국방송, 샘터사) 200만
<한강>(조정래, 해냄) 200만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 진명출판사) 200만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정찬용, 사회평론) 200만
<반지의 제왕>(J.R.R. 톨킨, 황금가지) 180만
<가시고기>(조창인, 밝은세상) 170만
<봉순이 언니>(공지영, 푸른숲) 150만
<그 남자 그 여자>(이미나, 랜덤하우스코리아) 150만
<파페포포 메모리즈>(심승현, 홍익출판사) 150만
<뇌>(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140만
<아홉 살 인생>(위기철, 청년사) 130만
<셜록 홈즈 전집>(아서 코난 도일, 황금가지) 130만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탄줘잉 편, 위즈덤하우스) 130만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이윤기, 웅진닷컴) 130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 웅진지식하우스) 120만
<국화꽃 향기>(김하인, 생각의나무) 120만
<나무>(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110만
<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110만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사편지>(박은봉, 웅진주니어) 110만
<야생초 편지>(황대권, 도솔) 105만
<톨스토이단편선>(톨스토이, 인디북) 100만
<나의 라임오렌지나무>(J.M. 바스콘셀로스, 동녘) 100만
<모모>(마하엘 엔데, 민음사) 100만
<오페라의 유령>(가스통 르루, 문학세계사 외) 100만
<화>(틱낫한, 명진출판) 100만
<설득의 심리학>(로버트 치알다니, 21세기북스) 100만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사이쇼 히로시, 한스미디어)100만
<선물>(스펜서 존슨, 랜덤하우스코리아) 100만
<마시멜로 이야기>(호아킴 데 포사다 외, 한국경제신문) 100만
<21세기 먼 나라 이웃나라 - 미국편>(이원복, 김영사) 10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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