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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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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기자와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교수의 대담집이다. 스스로 ‘진보·좌파’라고 칭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현실적인 근거를 들어 민주·진보세력의 재집권과 그에 따른 중·장기적 대안들을 솔직하게 대화한다.

  손에 닿는 책의 감촉이 좋았고, 적당한 페이지수라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나온 진보 논단이기 때문에, 현재 한국 정치계에 있어서 진보 세력의 위치와 상황들을 알 수 있고, 진보의 미래를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계속 ‘장례식 모드’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두 거인은 갔습니다. 두 분은 자신의 몫을 다했습니다. 할 만큼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이제 살아 있는 사람들이 대중의 고통이 어디에 있고, 그 고통을 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믿음직한 사람·조직·세력을 대중의 눈앞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명박은 물론, 김대중과 노무현을 넘어서는 가치가 무엇인지 분명히 정립하고, 그 가치를 실현할 세력을 형성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33p>

  민주·진보 세력(책에는 개혁·진보 세력이라 표현하지만 난 이 표현이 더 좋다)의 거목이었던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는 충격과 동시에 민주·진보 세력의 위기였다. 이후 선거철만 되면 뚜렷한 리더와 끈끈한 단결이 부재하여 국민들에게 감정적 호소와 상황적 반사이익만을 노렸고, 롤러코스터와 같은 패배와 승리를 반복했으나 전체적으로는 패배에 가까웠다.

  또한 2007년 대선참패 이후 고질적인 내부분열과 집권 세력을 견제하는 것이 아닌 교착하고, 대화와 타협보다는 생떼와 헐뜯기에 급급한 민주·진보세력을 보면 무척 답답하다. 1970~80년대에 국민들의 편에서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고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민주투사들과 ‘386세대’들은, 입으로는 국민의 기본권 수호와 권익을 말하면서 행동은 보수적이다. 지금까지 나는 진보를 흉내 내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진보다운 진보를 별로 보지 못했다.

  저는 진보·개혁 진영이 재집권을 하면, 이후 10년을 연속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많이 바뀌었어요. 그 10년간 사람들 의식이 바뀌다 보니 이명박 정권 들어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거죠. 진보·개혁 진영이 재집권을 한다면 처음 1~2년 동안 어떠한 제도적 개혁을 할 것인지는 물론, 대통령 임기 중간에 있는 선거에서 어떻게 이겨 진보·개혁 진영을 강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영악할 정도의 전략을 짜두어야 합니다. <311p>

  민주·진보 세력은 이미 수구·보수 세력의 문제점들은 알고 있었고 그에 따른 대안들과 정책들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지만, 추진력과 결단력이 부족하여 지난 집권 10년 동안 지지했던 국민들의 바람과 요구를 외면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대안들과 정책들을 다시 제시하니 한심하다. 하긴 그것들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으니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결론적으로 아직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책을 읽고 있으면 진보는 마치 아직 개봉일이 잡혀있지 않은데 홍보만 열심히 하고 있는 블록버스터급 영화처럼 느껴진다. 과연 2012년이나 그 이후 빠른 시기에 진보가 집권할 수 있을까? 변수는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상당히 전망이 어둡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삶이 불안하다고 느끼면 변화보다는 안정에 먼저 관심을 둔다. 물론 지금의 집권 세력도 국민들에게 많은 불안감을 주고 있지만, 진보가 집권하면 달라질 것이라 낙관할 수 없다. 조국 교수의 말처럼 정말 진보가 국민들에게 밥을 먹여주고, 반값 아파트, 반값 등록금, 일자리 창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확신이 없는 이상, 진보를 지지할 이유는 없다. 국민들은 이미 보수와 진보에게 여러 번 속았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투표는 하겠지만 그리 큰 신뢰를 주지 않는다. 차라리 국민들이 직접 일어나 나라를 바꾸는 게 더 빠를 것이다.

  보수의 정책을 반대하는 것만이 진보라 말할 수 없고, 보수의 정책을 찬성한다고 진보의 정체성을 잃는 것이 아니다. 진보는 무엇을 위한 반대와 찬성인지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는 보수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정치계는 국정 현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소신과 견제가 아닌, 지나친 상호비방과 중상모략에서 비롯된다. 서로의 정책과 의견을 얍삽하게 공격하여 국민들의 눈과 마음에 인상적인 모습을 각인시키려는 정치쇼가 너무 작위적이다. 또한 보수와 진보가 서로 국민을 위한다고 정책들과 대안들을 제시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둘 다 국민을 위한 것일 때도 있고, 둘 중에 하나나 둘 다 아닐 때도 있다. 보수의 강점은 법과 원칙의 준수이고, 진보의 강점은 인권과 사랑의 실천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의 보수와 진보는 그 강점을 살리고 있는가? 서로 집권하려 들기 전에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이 책은 어려운 책이 아니다. 그동안 진보에 대해 몰랐거나 더욱 잘 알고 싶다면, 쉽게 읽을 수 있다. 조국 교수는 상당히 열린 시각을 가지고 있고 보수와 진보를 바라보는 관점이 예리한 편이지만 신선하지는 않다. 물론 그의 학문적, 정치적 소신이겠지만, 이미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말해왔던 것들을 신선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허깨비의 반복일 뿐이다. 혹시라도 그가 학자와 정치인 사이를 갈등한다면 학자의 길을 계속 걸으시라고 권고하고 싶다. 故 노무현 대통령도 정치인 유시민에게 “당신은 정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듯이, 학자는 학자의 위치에서 소신을 말하는 것이 더 아름답고 멋지다. 난 ‘제2의 정운찬’을 보고 싶지 않다.

  예전에 내게 누군가가 내 블로그의 글들을 보고 “진보적인 글을 쓰시네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도 내가 쓴 글들을 다시 보니 진보적인 성향의 글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진보이기 때문에 그런 글들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어디에서도 나 스스로가 진보이거나 보수라 말하지 않았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주관 없는 실용주의와 얍삽한 기회주의를 표방하는 약아빠진 중립도 아니다.

  굳이 말하면 나는 ‘계몽’(啓蒙)이다. 보수와 진보는 장단점이 있다. 진보와 보수 중 어느 한쪽이 집권을 해도 다른 한쪽을 무조건 무시하거나 정치적으로 반대하면 오늘날과 같은 소통이 부재한 시대에 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중립은 더더욱 안 된다. 중립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스스로 중립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내가 그동안 보수와 진보에 관련된 책들과 자료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보수와 진보를 아우를 수 있는 단어는 ‘계몽’뿐이었다. 그래서 나 스스로 계몽주의자(Enlightener)라 칭했다.

  나는 18세기와 같은 ‘계몽’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갖는 ‘계몽’을 꿈꾼다. 물론 나의 소신과 주관에서 비롯된 언행과 글이겠지만, 그것 역시 어떤 하나의 관점일 것이다. 보수이거나 진보일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무엇일수도 있다. 선택은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과 보는 사람에게 있다. 다만 나는 오늘도 ‘계몽’을 위해 공부하고, 내가 말하며 썼던 글과 같이 사람들과 대화하며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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