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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ㅣ 파랑새 그림책 93
마거릿 와일드 글, 론 브룩스 그림, 강도은 옮김 / 파랑새 / 2012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거릿 와일드의 <여우>는 국제아동도서협의회 최우수상을 수상한 그림책이며, 독일최고 어린이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여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숲에서 난 큰 불로 날개를 다친 까치와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개는 서로의 어려움을 보완하면서 살아간다. 개는 날개를 다친 까치의 날개가 되어 주고, 까치는 개의 눈이 되어 평온하게 살아가는 날, 여우가 나타나게 된다. 왠지 불안해 보이는 여우의 등장으로 까치는 불안해하고 개에게 조심하라고 하지만, 개는 여우를 좋게만 본다. 그런데 여우는 까치에게 ‘진짜 날아가는 게’어떤 것인지 알려준다며 까치를 설득한다. 여우의 말에 마음이 움직여 까치는 개를 버리고 여우와 떠나게 된다. 그러나 여우는 까치를 등에 태우고 개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 버린다. 개를 떠난 까치, 깨어보니 까치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개, 다정히 지내는 개와 까치를 질투한 여우의 행동으로 인해 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는 걸까?
“어느새 동굴 속은 여우의 냄새로 가득 차 버렸어. 분노와 질투와 외로움의 냄새였지.”
까치와 개가 다정하게 지내는 것을 바라보는 여우의 기분을 표현한 이 글과 눈동자를 그린 그림은 강렬하게 독자에게 다가온다. 까치와 개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를 포기한 여우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만들어진 관계 속에 뒤늦게 들어가는 사람의 마음과 비슷할까? 하지만 분노와 질투와 외로움만 있는 걸까? 두려움과 불안이란 감정도 싹틀 수 있고, 잘해보겠다는 긍정의 생각은 없는 걸까? 더군다나 책 속 여우는 까치와 개에 비해 신체적으로는 건강하다. 저자는 그런 걸 알면서도 ‘분노와 질투와 외로움’이란 감정에 중점을 두고 책을 썼을지도 모른다.
“한참을 걷던 여우가 까치를 돌아보며 말했어. “이제 너와 개는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될 거야.” 여우는 까치를 혼자 남겨 두고 가버렸어. 사방은 쥐 죽은 듯 고요했어. 한순간 아주 먼 곳에서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어. 승리의 소리인지 절망의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지.“
까치를 혼자 두고 간 여우의 솔직한 심정은 어땠을까? “승리의 소리인지 절망의 소리인지 알 수 없었지”란 부분은 여운을 남겨준다. 여우는 제대로 날지 못하는 까치를 버려두고 가면서 승리의 감정만을 느꼈을까? 자신과 똑같이 외로움을 느끼게 될 거라 생각해서 연민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이 책은 전체적으로 그림의 색이 어둡고 무거운 느낌이다. 표지 안쪽의 불타오르는 듯 사막을 표현한 붉은 색조와 마지막 표지 안쪽의 푸른색 계통의 나무들로 표현된 그림이 대조를 이룬다. 그림책이란 어린 아이들만 본다는 편견을 깨는 책이다. 그림책이지만 줄거리 위주로 너무 어린아이에게 읽히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다. 대신에 대화를 할 수 있는 7세 이후의 어린이부터 성인에게 추천한다. 짧은 글속에 담은 내용들은 풍부한 대화주제와 이야기로 풀어낸 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