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30만부 기념 특별 리커버)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품절


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통권70호 2023년 겨울호


 

책담(冊談)

 

회한 속에도 쌓이는 미완의 과제들

 

 

양솔규 편집위원장

 

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창비/20229/15,000

 

87년 6월항쟁은 표현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던 군부독재의 지배방식에 일정한 파열구를 내었다비록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존재했고방송예술에 대한 직접적간접적 검열이 존재하기는 했지만예술 창작 소재가 그 이전에 비해서는 훨씬 넓어졌다. TV에선 금지곡이 된 이후 들어본 적이 없던 아침이슬이 흘러나왔고노찾사의 노래 사계는 MBC 퀴즈 아카데미의 오프닝송으로 쓰이기도 했다대대적인 탄압이 자행되기는 했지만 노동운동농민운동학생운동 등 대중운동의 괄목할만한 성장에 대응하는 군부독재 잔존세력의 반작용으로(여겼고감당할 만했다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이 다가오고 있다고 믿었다그만큼 자신감이 팽배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배경 속에 88년 이태의 소설 남부군이 출간되었다그동안 들어본 적 없던 빨치산의 존재가 대중적으로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90년에는 이 소설을 가지고 정지영 감독이 영화남부군을 찍었다안성기최민수최진실 등 인기 절정의 배우들이 빨치산이 되었다. 91년에는 왜곡과 자극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MBC 여명의 눈동자를 통해 여순반란사건과 4.3항쟁에 대한 대중적인 인지가 가능해졌다조정래의 태백산맥권운상의 녹슬은 해방구(1989-1991), 실록 정순덕(1989) 등 그 외 빨치산을 소재로 한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그 와중인 1990년 계간 실천문학에서는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이 연재되었고, 3권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소설가 김남일은 월간 말》 913월호에서 빨치산 증후군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었다.……운동권 학생들은 철을 가리지 않고 떼지어 지리산으로 몰려들었는데……뱀사골장터목노고단 등지의 계곡 산장은 밤마다 그들이 불러대는 투쟁가로 들썩거렸다.……내 스스로 그런 증후군을 앓고 있으면서도 언제부턴가 가슴 한구석에 묘한 거부감을 키워내기 시작했다어딘가 너무’ 흥분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 역시 그러한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89년 여름고등학생이던 시절 친구 몇과 함께 지리산 종주에 나섰다힘들게 도착한 세석평전에 텐트를 치고 소주를 기울이던 밤세석평전엔 전국에서 모인 대학생청년노동자들의 온갖 투쟁가가 합쳐졌다가 흩어졌다가 번갈아 가며 불리며 메아리쳤다. (당시에는 세석평전에서 캠핑과 취사행위가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지리산의 빨치산이라는 존재는 과거의 잊혀진 그림자가 아니라미래의 등불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럼에도 소설가 김남일과 마찬가지로 빨치산 존재에 대한 열광’(?)에 묘한 거부감이 들기는 했다분단을 반대하고 통일을 완수하자는(?) 빨치산 정신을 NL 운동은 전면에 내세웠으나여기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점과 논리적 공백지점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그리고 거기에 대한 알리바이는 항상 미국’ 이라는 거악으로 귀결되곤 했다답이 정해져 있는 논리의 반복 속에서 질문은 생명력을 잃어버렸다. ‘북한 바로알기와 한국 현대사 바로 알기의 맥락’ 속에서 빨치산의 좌표는 정해졌고, ‘바로알기는 논리적 구조에 부합하는허용가능한 정도의 정보만을 제공할 따름이었다이후에 대중적으로는(?) 안재성의 경성 트로이카(2004)가 80년대 말의 열기 속의 공백지점들을 메꿔준 듯하다.


1994년 5월 제2기 한총련은 신념의 강자’ 빨치산 전사들을 조선대에서 열린 출범식 무대에 세웠다조국통일운동에 앞장선 어린 학생 선봉대들의 모습에서 빨치산 생존자들은 자신들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투영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NL 주류의 과잉된 감정에 치우친 정세판단은 결국 몇 년 뒤 대중적인 파산을 선고받는다한총련 1~3기가 달성한 대중동원력의 절정 이면에는 발밑부터 무너지고 있던 현실·대중과의 괴리가 있었다아무튼한총련 지도부튼 빨치산 전사들을 통해 자신들의 반미자주애국투쟁이 역사적 정당성과 시대적 연속성북한과의 접점을 만들고 싶었는지 모른다.

 

지금의 세대가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79년 12.12 쿠데타를 마주하고 있다지금으로부터 44년 전 사건이다우리 대중운동이 한참 꽃피던 1990년의 44년 전은 해방공간(1946)이었다우리가 그 당시 해방공간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과 지금의 MZ세대가 12.12와 5.18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이 비슷할 것이다. 1990년 당시 1960년 4.19는 30년 전이었고지금으로부터 보자면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의 시작가 같다그러나 시간적 거리는 상대적이기도 하다사회적 맥락에 따라 압축되기도 하고이완되기도 한다아마도 NL운동 때문이기도 할텐데우리에게 해방공간과 빨치산은 시간적으로 더 가까운 60년 4.19보다 훨씬 익숙했었다북한과는 독립적으로 일어난 4.19 혁명은 NL이 득세하면서부터는 주목도가 떨어진 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이 당시 나는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을 읽지 않았다그리곤 정지아라는 소설가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물론 그의 다른 글들도 본 적이 없다따라서 소설가 정지아의 문체가 어떤지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어떤 작품활동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지냈다작년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책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지만,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제목과 유사한 이 소설책에 대해 그다지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그러다 아주 작은 마을 도서관에서 대출할 만한 책이 워낙 없길래 빌려와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시작은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실제 소설가 정지아의 부친인 빨치산의 딸》 실존인물인 정운창씨는 2008년 51일 별세했다소설은 장례 후 아버지의 유골을 아버지의 고향이자 삶터였던 구례 곳곳에 뿌리면서 끝이 난다그 사이사이 상갓집에 조문을 오는 수많은 사람들(빨치산 전사들구례 등 친척가족들 등)과의 인연의 타래들을 풀어내는 것이 이 소설의 골자다이 소설에는 빨치산 출신 사회주의자인 아버지와 어머니그 인연들에 대해서 풀고 있지만그 사회주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아버지는 혁명운동 속에서 무엇을 고갱이로 보고 있는지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그 관점을 가지고 결국 그 관계를 어떻게 맺어가야 하는지 등을 언뜻언뜻 이야기하고 있다작가의 아버지 故 정운창씨가 세상을 떠난지도 15년이 넘었다그런 시점에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니늦어도 너무 늦었다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은 빨치산의 존재에 대한 재소환은 아닐 것이다아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빨치산’ 책이 아니다감칠맛 나는 전라도 사투리의 능수능란한 속도감이 재미를 더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현재의 상황을 소환하게 된다누군가는 노동운동을누군가는 진보정당운동을누군가는 자신의 가족사를 소환하고 재해석하게 될 것이다굳이 여기서 그 유추의 실마리를 다 풀어낼 필요는 없을 듯하고.

다만 소설 속에서 주목할 만한 한 가지 대목이 있다.

 

밀란 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지만 내 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 (44)

 

입을 다문 건 현실주의자인 아버지도 알기는 한다는 의미였다아버지는 자신의 신념을 후회하지 않았지만 사람인데 설마 괴물처럼 확장하는 자본주의의 기세 앞에 절망이든 회한이든 어떠한 서글픈 감정을 잠시나마 느끼기는 했을 터였다목숨을 건 자신들의 투쟁이 무의미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147)

 

이제 빨치산 전사들이 자신들의 젊은 날의 모습을 투영하며 기대해 마지않았던, (젊었던 왕년의노동운동가들이 은퇴를 하고노년에 접어들고 있으며부고 소식도 들린다신념을 후회하지는 않았지만우리의 투쟁이 무의미해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빨치산뿐만이 아니다역사를 허무주의적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고 누차 의식화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역사가 아닌 개인에게 회한이 없을 수는 없지 않겠나나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 노동운동의 선배들이 느낄지도 모르는 그 회한을 헤아린다빨치산들의 죽음에 고령화된 노동운동가들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이다.

 

내 부모는 평등한 세상이 곧 다가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산에서 기꺼이 죽은 사람들을 늘 부러워했다쭉정이들만 남아서 겨우겨우 살고 있노라한탄을 하기도 했다.” (196)

 

죽음이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아버지는 보통 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으니 해방의 기쁨 또한 그만큼 크지 않을까다시는 눈 뜰 수 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198)

 

그리하여 그 고통으로부터 아버지는 해방되었지만자식에게는 여전히 그 고통이과제가이어지는 것일까학살과고문차별과궁핍이라는 외부적 고통 외에도 아버지는 자신의 이상과 꿈이 무너지고 멀어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내부적실존적 고통이 있었다그 고통은 자본주의 속에서 여전히 대물림 되는 현실이다그 대물림을 끊기 위해 노동운동은 수십 년을 싸워 왔다그러나 그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오늘날빨치산 아버지가 산에서 내려와 굳이 왜 고향 구례로 다시 돌아갔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미완의 과제들이 역사 속에서 켜켜이 쌓여가는 가운데새롭게 되살아나는 과제들은 예전과 같지 않지만다르지도 않다.

밀란 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지만 내 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 - P44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P231

어떤 딸인지, 어떤 딸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누구의 딸인지가 중요했을 뿐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는 데 나는 평생을 바쳤다.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말에는 ‘빨치산‘이 부모라는 전제가 존재한다. 그 부모에게도 마땅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나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변명을 들을 아버지는 이미 갔고 나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 사실이 뼈아파 나는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 아버지를 위한 울음이 아니라 나를 위한 울음이었다. 아버지 가는 길에까지 나는 고작 그 정도의 딸인 것이다. - P224

죽음이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아버지는 보통 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으니 해방의 기쁨 또한 그만큼 크지 않을까, 다시는 눈 뜰 수 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 P198

내 부모는 평등한 세상이 곧 다가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산에서 기꺼이 죽은 사람들을 늘 부러워했다. 쭉정이들만 남아서 겨우겨우 살고 있노라, 한탄을 하기도 했다. - P196

나는 주로 비아냥거렸고, 아버지는 분노에 찬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며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문 건 현실주의자인 아버지도 알기는 한다는 의미였다. 아버지는 자신의 신념을 후회하지 않았지만 사람인데 설마 괴물처럼 확장하는 자본주의의 기세 앞에 절망이든 회한이든 어떠한 서글픈 감정을 잠시나마 느끼기는 했을 터였다. 목숨을 건 자신들의 투쟁이 무의미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 P147

만에 하나 어머니가 월북했다면 자기 농사에 심혈을 기울이다 진작에 숙청당했을 거라고. 그것이 당신들이 믿는 사회주의의 실체라고. - P103

먼지에서 시작된 생명은 땅을 살찌우는 한줌의 거름으로 돌아가는 법, 이것이 유물론자 아버지의 올곧은 철학이었다. 쓸쓸한 철학이었다. 그 쓸쓸함을 견디기 어려워 사람들은 영혼의 존재를, 사후의 세계를 창조했는지도 모른다. - P98

그런데 기실 어머니의 사회주의란 첫사랑, 좀 더 풀어쓰자면 여자도 공부를 할 수 있는 세상, 가난한 자도 인간 대접받는 세상에 불과했다. 신자유주의 대한민국도 그 정도는 해준다. - P21

사상이란 저렇듯 느닷없이 타인을 포용하게 만드는 대단한 것일까. 내 부모에게는 그랬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저 느닷없는 친밀감과 포용이 퍼스트 클래스에 탄 돈 많은 자들끼리의 유대감과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 P23

고통도 슬픔도 지나간 것, 다시 올 수 없는 것, 전기고문의 고통을 견딘 그날은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찬란한 젊음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 P27

"여호와의 증인들이 한 감방에 있었는디 갸들은 지 혼차 묵들 않애야. 사식 넣어주는 사램 한나 읎는 가난뱅이들헌티 다 노놔주드라. 단 한멩도 빠짐없이 글드랑게. 종교가 사상보담 한질 윈갑서야." - P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4일 노동이 답이다
안나 쿠트.에이단 하퍼.알피 스털링 지음, 이성철.장현정 옮김 / 호밀밭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22년 여름호(통권64호) 



책담(冊談)

 

긴축의 시대, 노동시간 단축을 지렛대로!

 

 


양솔규 / 편집위원장

 

 

4일 노동이 답이다/안나 쿠트, 에이단 하퍼, 알피 스털링/호밀밭/20225/15,000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와 제8회 지방선거, 양대 선거가 모두 끝이 났다.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므로 모두들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분주한 거 같다. 더불어민주당이야 가지고 있는 파이가 크니 이해관계도 복잡하고,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국민의힘이라고 시작

쉽겠는가. 모래알같은 당 조직의 결합력과 상실된 깃발이 아직 충분히 재건되지 않았다. 정의당은 파이가 작아 오히려 더 문제인 거 같다. 누구든 쉽지 않을 것이다.

 

선거 결과를 두고 정의당에 대한 회의론이 거세다. 대선과 지방선거의 참담한 결과야 이미 예견된 바이고, 당연히 스스로 책임지는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정의당의 위기를 정책의 위기로 진단하면서 승부수’(?)였던 4일제공약 등이 충성도가 떨어지는 공약이며, ‘졸속 공약이고, “1층을 안 짓고 2층을 짓겠다는 거라고 지적한다(장제우 작가). 이것이 정의당에 대해 애정어린 비판인지 비난인지는 모르겠지만, 백번 양보해서 4일제공약이 졸속적인 공약이 맞다 하더라도 과연 졸속 공약때문에 정의당에 줄 표를 거둬드렸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정의당의 4일제 공약을 포함한 정책들이 이슈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선거 패배의 원인으로까지 비약시키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대선에서는 주4일제 복지국가나 신노동법이 주요한 슬로건이자 공약이었지만, 지방선거에서 주4일제와 관련해서는 공공부문 시범 운영노동시간 단축 사업장 인센티브단 두 줄이 전부였다. 천번 양보해 대선 패배의 원인을 졸속적인 주4일제에 돌릴 수는 있겠지만, 과연 지방선거에서 대표공약도 아니었던 4일제를 심판장에 불러세우는 것은 4일제에게는 억울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정의당의 정책이론가 중 한 명인 장석준도 (지방선거가 아니라) 이번 대통령선거의 기본 구도로 인해 정의당이 아무리 좋은 정책이나 구호를 내세웠더라도 지지를 확대하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전제를 달기는 하지만, ‘4일제에 비판의 화살을 겨눈다. ‘4일제주로 사무실에서 일하는 화이트칼라에게 친숙한 노동시간 표현 방식이며, “결과적으로 4일제 복지국가구호는 정의당이 여전히 정규직, 화이트칼라를 주된 지지 집단으로 설정한다는 인상을 주었으며 당장의 일자리나 노동 안전 등이 관심사인 계층에게는 상당히 태평한 정치 세력으로 비췄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들의 근저에는 4일제라는 슬로건이 다양한 노동시간단축 표현(주당 노동시간 단축 등)을 가둬버리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거 같다. 그러나 정의당 대선공약집에는 4일 근무제(32시간)’으로 표현되어 있는 바, 반드시 주4일제가 주3일의 휴무일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며, 노동시간단축의 또다른 표현이라는 변호를 해주고 싶다. 오히려 정의당의 실책은 4일제에 대한 대중의 호응에 적극 부합하면서, 그 속에 담긴 정책패키지들 예컨대 최소노동시간보장제생애주기별 노동시간 선택제’, ‘성별임금격차해소’, ‘국가일자리보장제’, ‘생활임금제등을 종합적으로 부각시키지 못한 것이다. 대중들이 4일제에 호응한 것은 3일 휴무에 대한 대중적인 욕구가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것을 청년층, 화이트칼라의 요구로 축소해서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산업특성과 근무방식에 따라 대중들이 어느 지점, 어떤 표현에 자신의 욕구를 투과해 반응하는지 분석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장시간 노동체제가 대다수 노동자들의 삶을 억누르는 조건에서 굳이 그렇게 짜게해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코로나 19’ 시국 동안 다수의 노동자들이 자유시간강제로경험하면서, 코로나 이전의 강제 장시간 노동체제에 대비해 보고, 삶의 의미나 노동의 목적 등에 대해 좀 더 성찰적인 시간을 견뎠을 거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대선 과정에서 4일제에 대해 일정한 호응(비록 표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이 있었다면, 왜 그런 호응이 있었는지,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 적극적으로 해석해 과제화 시키는 게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 뭘 혁신하고 어떤 비상대책을 세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요컨대 정의당이 평소 다양한 세력, 현장과 연대해 왔다면 다양한 통로를 통해 (4일제만이 아니라) 종합적인 결론을 만들어 냈을 수 있었을 테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해서 부당하게 4일제가 주범인 것으로 낙인 찍지는 말자는 것이다.

 

4일 노동이 답이다는 그런 의미에서 논의의 시작점에 읽을 만한 책이다. 원제는 “The Case for a Four Day Week”이고 (4일 근무제 도입사례 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 거 같다.) 영국의 신경제재단(New Economics Foundation)의 연구위원들인 안나 쿠트, 에이단 하퍼, 알피 스털링이 저자이다. 신경제재단(NEF)은 로자룩셈부르크재단(브뤼셀사무소), 아탁(ATTAC), 루즈벨트 연합과 함께, “노동시간의 공정한 나눔을 위한 유럽 네트워크(the European Network for the Fair Sharing of Working Time)”를 구축하고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다.

 

이 책은 대선과 지방선거 사이 202251일에 출간되었다. 1886518시간 노동제 총파업과 연이은 학살들이 일어나자, 189051일 제2인터내셔널은 8시간 노동제를 위한 국제 시위를 조직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51일 메이데이의 기원에는 노동시간 단축 투쟁이 있는 것이다. 아마도 출판사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 교육원의 이사이자 창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인 이성철 선생님과, 부산의 호밀밭 출판사 발행인인 장현정 선생이 번역했다. 지역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더구나 이런 돈 안되는’(?) 책을 번역출간까지 한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역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장시간 중노동에 대한 게으른 고정관념은 반드시 깨야만 하는 일종의 질병이고 이다. 이 책을 출간하면서 호밀밭출판사도 주4일제를 시범적으로 도입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1856년 호주 멜버른 석공들이 8시간 노동을 위해 투쟁해 쟁취했고, 1919년 설립된 ILO8시간(40시간제) 산업노동시간 협약을 제정해 전세계에 이 원칙이 확산되었다. 1926년 포드자동차는 임금 삭감 없이 주5, 40시간 노동을 도입했으며, 1930년대 켈로그 시리얼 회사는 8시간 3교대 근무를 6시간 4교대로 바꾸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주당 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단축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20세기 중반까지 이틀 동안의 주말과 주40시간 노동은 표준이 되었다.(한국은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8시간 노동 규범에 갇혀버렸고, 케인스가 (1930년대에) 예측한 주당 15시간 표준은 아직도 요원하다.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

 

노동시간 단축은 공식 육아와 비공식 육아의 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 여성과 남성의 관계 등을 재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돌봄21세기에 더욱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 사회적 돌봄은 디테일하게 설계되어야 하고, 그 중심에 노동시간 단축이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전제 조건이다. ‘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키우는 것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원분배의 전제 조건이다. 정치에 참여하고, 공동체 활동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환경 보호, 생태발자국 줄이기에도 노동시간 단축은 강력한 동인이 된다. 장시간의 유급 노동과 고탄소 소비 패턴 사이에는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다. 저자들은 주당 노동시간 단축이 생태적 한계 내에서 인간의 번영과 사회적 참여에 도움이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실제 사례

 

프랑스는 1998년과 2001년 사이 표준 노동시간을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12.5%에 달하는 높은 실업률 속에서 조스팽 사회당 정부는 녹색당, 공산당과의 연정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 법안을 통과시켰다. 오브리1, 오브리2법이라 불리는 법안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과 새로운 일자리 창출, 재정적 지원 등이 이루어졌다. 이후 들어선 사르코지 우파정부는 오드리법을 무너뜨리려고 했으나 주35시간 노동은 사실상 폐지되지 않았다.

스웨덴 예테보리의 노인 요양병원은 하루8시간 일하던 68명의 요양보호사의 노동시간을 급여 손실 없이 6시간 노동으로 전환했다. 17명이 추가로 고용되었고 공적 자금이 투여되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스트레스 감소, 건강 증진, 결근 감소 등이 나타났다.

노동시간의 단축과 결합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실업률을 낮춤으로써 높은 사회적 비용을 낮출 수 있고, 더 생산적인 곳에 공적자금이 투여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단순한 노동시간 상한이 아니라 선순환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다각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벨기에는 2002년 신용 시간제(time credit scheme)를 도입했다. 노동자들에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개인은 최대 1년 동안 아예 쉬거나, 2년 동안 절반만 일하거나, 나누어 쉬면서 최대 5년 동안 20%의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다. 독일 금속 사업장에서는 노동시간 계좌로 알려진 시간은행 제도가 보편화되었다. 문제는 유연한 근무시간 자체가 아니라 그 유연함을 누가 통제하는가이다. 연간노동시간 분배, 교대제, 안식년, 근무시간 가불제도 등에서 노동자들의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게끔 요구해야 한다.

 

제조업 등에서 임금 손실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작업의 질을 개선해서 생산성을 높여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포드나 켈로그의 경우에 그러했다.) 돌봄 노동 같은 다른 산업 같은 경우에 똑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추가로 직원을 채용해야 하고, 정부의 지원 등이 필요한 이유다. 대신 정부는 실업률 감소로 인한 사회적 비용 감소로 투여 비용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어느 계층에 한정될 때 계급 내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시간 계좌-은행이나, 정의당의 최소노동시간보장제, 생활임금제 등이 노동시간 단축의 패키지가 되어야 하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장시간노동-저임금 / 실업-빈곤 / 장시간노동-고임금 / 단시간노동-고임금(고소득) 등으로 나뉜 계급 내(그리고 산업별) 임금과 시간의 불평등을 고쳐 나가야 한다.

 

시간은 잘 가꾸고 보살펴야 할 사회적자산이다. 이를 확보하는 싸움이 운동의 토대를 결정 짓는다. 저자들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정상의 개념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8시간 노동제, 40시간 노동은 이제 새로운 정상의 개념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정상에 대한 고정관념이 노동시간 단축을 가로막는 최악의 장애물이다. 다만 그러한 변화는 느리게 일어날 수밖에 없고(그러나 이미 시작되었다.) 결과는 획일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은 임금, 산업 전략, 복지 국가 개혁, 기후 완화 등 진보적 구조변화 패키지의 일부이다. 예를 들어 저자들은 그린 뉴딜과 정의로운 전환’(자동화의 압박) 속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산업 내 정상의 기준들을 주4일제(노동시간단축)로 채택시켜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 여전히 노동조합의 단체교섭(collective bargaining)이 중요하며, 여유가 있는 부문의 경우 보다 많은 급여 인상보다 추가 휴가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경영진의 리더십, 정부의 정책적 지원, 노동조합의 교섭, 세 가지 경로를 강제하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정의당에 대한 평가에서 글을 시작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이다. 4일제(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화두를 정의당이 던졌다면, 그 부족한 정책적 디테일과 사회적 압력은 노동조합이 맡아야 한다. 정의당은 지방선거 공약으로 노동시간 단축 위원회 설치 및 공공부문 시범 운영을 내세웠다. 이 공약은 노동조합이 받아 안을 수 있다. 1998IMF 사태 때를 돌이켜보면 노동계에서는 노동시간단축과 사회적 안정망 확보를 강력하게 제기했었다. 지금의 정국은 그때를 돌아보게 한다. 긴축의 시대, 기후위기의 시대, 4차산업혁명이라 일컬어지는 변화를 맞아,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한 정책적 대응과 집단적 압력을 모을 수 있는 위원회를 총연맹과 지역 노동 차원에서 만들 수 있다. 또는 공공부문의 주4일제 시범 운영을 직접 단체교섭을 통해 제기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양질의 일자리 부족 문제’, ‘수요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다소 거칠더라도 사회적 논의를 추동해야 할 것이다. 자본은 먼저 시작하고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책>

 

4일 근무시대/피에르 라루튀르,도미니크 메다/율리시즈/20183/15,000

금요일은 새로운 토요일-경제를 살릴 주4일 근무제/페드로 고메스/넥서스BIZ/20226/19,000

기본소득을 넘어 보편적 기본서비스로!/안나 쿠트, 앤드루 퍼시/클라우드나인/20217/15,000

8시간vs6시간 : 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벤저민 클라인 허니컷/이후/2011/18,000

게으를 수 있는 권리/폴 라파르그/새물결/200512/9,900

무엇이 ‘정상‘인가에 대해 깊이 뿌리박힌 고정관념은 노동시간 단축을 가로막는 최악의 장애물로 알려져 있다. - P94

네덜란드에서 노동자들은 아픈 친척, 광범위한 가족 구성원, 동거인이나 이웃 혹은 친구를 포함한 지인들을 돌보기 위해 법적으로 돌봄 휴가를 받을 권리가 있다. 이 권리의 일환으로 고용주는 직원에게 통상 임금의 70% 이상을 지급해야 하고, 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최대 2주 동안 적어도 법정 최저 임금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 P93

진보적이 의제를 구축하고 실현하려면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강력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유급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사람들에게 공동체 기반 활동에 참여하거나 지역 그룹에 가입하고, 지역과 국가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될 수 있다. 민주주의에도 시간이 걸린다. - P32

‘시간은 돈‘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시간은 그런 말로는 부족할 만큼 사실 훨씬 더 소중하다. 우리에게 돈은 없을 수도 있지만, 시간은 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살 수 없기에 시간은 누구에게나 한정된 자원이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전부이며 우리가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전부라고 해도 좋다. 우리가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경험하고 또 얼마만큼 통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최우선으로 중요한 일이다. - P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길드 사회주의 고전의세계 리커버
G. D. H. 콜 지음, 장석준 옮김 / 책세상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22년 봄호 (63호)


책담(冊談)

 

협업자로서의 노동자 지위를 쟁취하자

 


양솔규 / 편집위원장

 


길드 사회주의/G. D. H. /책세상/20222/11,200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G. D. H. /좁쌀한알/20212/15,000

 

39일 대통령 선거 결과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의 격차는 불과 0.73%, 투표수 차는 24만 표에 불과했다. 우리가 보기엔 민주당이 친노동정당은 분명 아니지만 어쨌거나 민주당의 박빙의 패배에 아쉬워하는 조합원들이 적지 않다. 대통령 취임(510) 17일 후에 사전투표가 진행될(본 투표 61) 지방선거가 대선과 사실상 패키지 성격을 지닐 걸 생각한다면(5.185.23 노무현서거일이 중간에 끼어있다.) 연이은 대선-지방선거 결과가 당장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끼칠 후폭풍이 적지는 않을 것이기에 이런 실망 어린 소회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진보정당 또는 진보후보가 얻은 표를 보면, 또한 정치, 사회운동 진영의 선거 대응 자세와 과정을 생각하면, 상당 기간 진보정당운동의 좌초는 계속될 거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혹자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2.37%, 80만 표)를 포함해 이백윤, 오준호, 김재연 등 범 진보(?)계열 후보의 총 득표수 86만 표는 민주노총 조합원 수보다 적다며,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역사적 실패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비관적 상황은 모두가 예상했던 것이기도 하거니와, 개개인이나 특정 정파가 노력한다고 해서 금방 빠져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이명-박근혜 시대가 지났고, 문재인 5년도 허송세월하며 지났다. 긴 세월동안 켜켜이 쌓인 실패와 좌절과, 무기력의 체지방이 구호와 공학 만으로는 빠질 수 있겠는가? 진보세력도 진보세력이지만 민주당도 급격한 추락곡선에 올라탔다.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줬지만,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못지않게 그 어느 것도 실천에 옮기지 않았고, 코로나 사태로 인한 유동성 증가로 철퇴를 맞았다. 조국이니, 386이니, 내로남불이니 하는 것은 거대한 산불의 밑불 또는 휘발유가 되어 주었다.

 

문제는 노동자가, 민중들이, 시민이 이를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의회제의 한계, 첫 번째, “유권자는 의원을 통제할 수 없고, 임기가 다 끝나 선거를 새로 실시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혼쭐을 내주고 싶어도 다음 선거는 5년 뒤(또는 4년 뒤)에나 온다. 둘째, “대의할 사람이 1(국회의원 1, 대통령 1인 등) 밖에 없다”. 1인 대표자가 나의 모든 문제를 대의해 주지 않는다. 임대차 3법은 민주당 의견에 찬성하지만, 언론중재법은 반대할 수 있고, 경제정책은 반대하지만, 남북관계 개선은 찬성할 수 있다. “합리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항상 이 문제는 이 사람과 동의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는 다른 이와 동의할 게 틀림없다”.(길드 사회주의43) 그러나 나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는 단 4년에 한 번, 5년에 한 번 있는 투표밖에 없으며 그것도 오직 1/44백만 명(총 유권자수)의 비율로만 반영될 뿐이다. 더군다나, 선출된 대표자는 수많은 의제들에 대해 나의 견해와는 대부분 다르다. 정치 영역에 한정된 민주주의는 99%의 시간동안 99%의 의제들에서 나의 뜻이 반영되지 않는다. 요컨대 작은 결과에 절망하기보다는 보다 큰 자유민주주의 자체의 결함을 봐야 되는 시기다. 노동조합운동, 진보정당 운동의 좌초를 슬퍼하기보다는, 애초 우리가 갖지 않았던, 우리가 가지 않았던, 우리가 보지 않았던,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방법과 내용을 갖춰 나가는 것이 이 시대를 견뎌나가는 유일한 방도일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 저자가 쓴 귀중한 책 두 권을 마주하게 된다. 영국의 저명한 사상가이자 사회주의자 G.D.H.(조지 더글라스 하워드 콜, 1889~1959)이 쓴 길드 사회주의(1920)G.D.H. 콜의 산업민주주의(1957)가 그것이다. 이 오래된 책이 20212, 20222, 1년여의 사이를 두고 연달아 번역되어 나왔다. 전간기 영국 노동당의 이론가 G.D.H. 콜은 유명한 역사가들(에릭 홉스봄, E.P. 톰슨, C.W. 밀즈, 도널드 사순)의 책에 자주 소개되고는 했는데, 오랫동안 한국에서는 번역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전설처럼 떠돌기만 했었다. 이들 뿐만이 아니었다. G.D.H.콜의 스승격이자 영국 복지국가와 사회주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시드니 웹, 비아트리스 웹 부부의 책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근에 G.D.H.콜의 저작들이 활발히 번역되어 나왔다. 7권으로 구성된 사회주의 사상사1914년 이후 노동당사만 나오면 중요한 저작들은 대체로 번역되어 나오게 되는 셈이다. 번역자 장석준은 2012년에 재출간된 G.D.H.콜의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1980년 김철수 역), 이번에 나온 두 권의 책 길드 사회주의,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에 모두 (총합 180여 페이지에 달하는) 충실한 해제를 붙여놨다.

 

 



앞에서 얘기한 자본주의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관련해 G.D.H. 콜의 선배격인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웹 부부는 자본주의 대의제 한계를 지적한다. “모든 사람이 가장 잘 아는 직업 영역(산업 영역)에서는 하인으로 남아 있는 반면, 특별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회 전체의 일반적 이해관계(예컨대 정치)에 대해서는 주권자로 인정 받는것은 어딘지 이상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과 일맥 상통하는 지적이다. 안그래도 불완전하기 그지없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그 외 부문에서는 흔적조차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라는 관념 그 자체가 정치적인 관계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관계도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웹 부부의 지적으로부터 G.D.H. 콜은 시작한다. 콜은 묻는다. “오늘날 정치 영역에서 우리 모두는 투표할 권리를 지닌 시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동료 인간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생산을 담당하는 영역에서는 왜 우리 모두가 정치 영역과 마찬가지로 시민이어서는 안 되는가?” 이러한 권리를 획득해야만 우리는 사회적 시민권(social citizenship)에 머물지 않고 산업적 시민권(industrial citizenship)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행의 과정은 거저 거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에서부터 노동계급의 세 가지 무기가 노동조합운동, 노동자 정치운동(당운동), 협동조합운동이며, 노동자 개인은 이 세 가지 영역을 넘나든다. 그리고 세 가지 운동이 상호 연결되고, 발전되면서 노동자들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들을 마련하게 된다. 콜이 말하는 길드 사회주의가 그것이다. 민주주의는 협소한 대의제 정치 영역을 넘어 생산과 소비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하고, 이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운동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예컨대 산별노조)이 생산 영역의 중요한 권력자원이기는 하지만 길드 사회주의에서 말하는 생산 영역의 자치조직으로 그대로 전화될 수는 없다. 그 대신 등장하는 것이 산업길드의회이다.(영국노총 TUCcongress와 산업길드의회의 congress가 같으며 회의’,‘의회라는 뜻에 주목하자.) 소비 영역의 자치조직은 집합 공공재 평의회또는 미래의 진화된 협동조합운동이 담당할 것이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은 탈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일종의 진화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기존의 노동조합이 부정적 기능, 즉 브레이크만 쥐고 있었다면, ‘진화의 과정에서 긍정적 기능, 운전대도 쥐어야 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산업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과정이 바로 진화의 과정일 것이다. 콜은 단순히 노사협의제나 노동이사제를 넘어 기업과 산업 안에서 노동자가 협업자 지위(partner(ship))를 획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협업자 자격은 노동자가 해고당하기에 충분한 잘못을 스스로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해고당할 위험이 없는 기업 내 지위를 말한다.

 

발상의 출발점을 다시 지적하자면 이렇다. 자본주의의 대의제는 오직 하나(국회)로 단일화 되어 있다. 이런 단순한 대의제는 정치 엘리트들의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따라서, 수많은 수준에서, 영역에서, 지역에서 대의제가 필요하며 이러한 대의제들을 기능적 대의제라 하고 콜의 길드 사회주의기능 민주주의가 현존 민주주의에 절망한 대중들에게 가장 필요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길드의 구성과 운영에 있어서 풀뿌리 민주주의상향식 민주주의가 철저하게 원칙으로 지켜져야 함을 강조한다.

 


G.D.H. 콜의 사상을 살펴보면서 주목해야 할 것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왜곡된 상을 콜을 통해 교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콜에게 있어 사회주의는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국가 사회주의가 아니며, 동어반복이지만 사회가 주도하는사회주의, 본연의 사회주의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또한 국가 사회주의의 관료적이고 억압적인, 그리하여 비민주적인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필수불가결한 사회주의, 자본주의의 민주주의를 확장해 사회 전반에 민주주의적 제도가 뿌리내리는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일명 민주적 사회주의이다. “계급없고 문명된 사회를 모색하면서, 그러한 운동은 민주주의가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C.W.밀즈, 마르크스주의자들, 458)

 

윤석열 5년이 끔찍하기야 하겠지만 생소한 광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명박, 박근혜 시기에 익숙하게 경험했던 것들일 것이며, 또한 노무현, 문재인 정권이 저지른 일들도 반복될 것이다. 노동운동이, 당운동이, 진보적 사회운동이 지금 부딪히고 있는 쇠퇴와 침체가 단순히 윤석열 국힘 정권 때문도 아니고, 이들 때문에 급속하게 심화될 거라 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운동의 동력이 촛불혁명을 통해 극복되지 못했다는 것도 자명해졌다. 보다 내재적 원인을 따져보고, 사상적 동력을 숙성시키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극복되지 못할 수도 있다. 아무리 유명한 프리미어리그 팀들도 전성기를 다시 되찾는 데에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하물며 빛을 발한 적도 없는 한국의 척박한 노동조합운동, 당운동에 마음은 아프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아껴주고 보살피는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G.D.H. 콜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나쳐버린 수많은 지적 자원들을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G.D.H. 콜이 말년에 관심을 가졌던 유고슬라비아 자주관리운동도 그 목록에 들어갈 것이다. 콜은 말했다.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면 선거에 이긴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책도 없이 선거에 승리한다는 것이야말로 다음 선거에서 지고 자파의 지지자들 속에 낙담과 환멸을 퍼뜨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C.W.밀즈, 마르크스주의자들, 167)

민주당은 지난 지방선거와 총선을 통해서 정책도 없이 승리했고, 이번 대선에서 패배함으로써 자파 지지자들 속에 낙담과 환멸을 퍼뜨리고 있다. 우리 운동은 민주당이 범한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긴 시간 씨뿌리는 과정을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하겠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G.D.H. 콜과 G. D. H. , G.D.H.코올 등으로 저자 표기가 나눠져 있어 검색의 어려움이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책>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G. D. H. , 김철수 옮김/책세상/20129/37,000

영국 협동조합의 한 세기/G.D.H. , 정광민 옮김/그물코/201512/30,000

로버트 오언/G. D. H. , 홍기빈 옮김/칼폴라니연구소/20172/16,800

영국의 위기 속에서 나온 민주주의/김명환/혜안/20097/24,000

산업민주주의 1,2,3/비어트리스 웹, 시드니 웹, 박홍규 옮김/아카넷/20181/각각 23,000, 25,000, 21,000

마르크스주의자들/C.W.밀즈, 김홍명 역/한길사/19823/4,800

오늘날 정치 영역에서 우리 모두는 투표할 권리를 지닌 시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동료 인간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생산을 담당하는 영역에서는 왜 우리 모두가 정치 영역과 마찬가지로 시민이어서는 안 되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G. D. H. 콜의 산업민주주의 시민 교양 신서 8
G. D. H. 콜 지음, 장석준 옮김 / 좁쌀한알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처 :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통권 63호, 2022년 봄호

책담(冊談)


협업자로서의 노동자 지위를 쟁취하자

양솔규 / 편집위원장


《길드 사회주의》/G. D. H. 콜/책세상/2022년2월/11,200원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G. D. H. 콜/좁쌀한알/2021년2월/15,000원





3월9일 대통령 선거 결과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의 격차는 불과 0.73%, 투표수 차는 24만 표에 불과했다. 우리가 보기엔 민주당이 ‘친노동’ 정당은 분명 아니지만 어쨌거나 민주당의 박빙의 패배에 아쉬워하는 조합원들이 적지 않다. 대통령 취임(5월10일) 17일 후에 사전투표가 진행될(본 투표 6월1일) 지방선거가 대선과 사실상 패키지 성격을 지닐 걸 생각한다면(5.18과 5.23 노무현서거일이 중간에 끼어있다.) 연이은 대선-지방선거 결과가 당장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끼칠 후폭풍이 적지는 않을 것이기에 이런 실망 어린 소회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진보정당 또는 진보후보가 얻은 표를 보면, 또한 정치, 사회운동 진영의 선거 대응 자세와 과정을 생각하면, 상당 기간 진보정당운동의 좌초는 계속될 거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혹자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2.37%, 80만 표)를 포함해 이백윤, 오준호, 김재연 등 범 진보(?)계열 후보의 총 득표수 86만 표는 민주노총 조합원 수보다 적다며,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역사적 실패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비관적 상황은 모두가 예상했던 것이기도 하거니와, 개개인이나 특정 정파가 노력한다고 해서 금방 빠져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이명-박근혜 시대가 지났고, 문재인 5년도 허송세월하며 지났다. 긴 세월동안 켜켜이 쌓인 실패와 좌절과, 무기력의 체지방이 구호와 공학 만으로 빠질 수 있겠는가? 진보세력도 진보세력이지만 민주당도 급격한 추락곡선에 올라탔다.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줬지만,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못지않게 그 어느 것도 실천에 옮기지 않았고, 코로나 사태로 인한 유동성 증가로 철퇴를 맞았다. 조국이니, 386이니, 내로남불이니 하는 것은 거대한 산불의 밑불 또는 휘발유가 되어 주었다.


문제는 노동자가, 민중들이, 시민이 이를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의회제의 한계, 첫 번째, “유권자는 의원을 통제할 수 없고, 임기가 다 끝나 선거를 새로 실시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혼쭐을 내주고 싶어도 다음 선거는 5년 뒤(또는 4년 뒤)에나 온다. 둘째, “대의할 사람이 1인(국회의원 1인, 대통령 1인 등) 밖에 없다”. 1인 대표자가 나의 모든 문제를 대의해 주지 않는다. 임대차 3법은 민주당 의견에 찬성하지만, 언론중재법은 반대할 수 있고, 경제정책은 반대하지만, 남북관계 개선은 찬성할 수 있다. “합리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항상 이 문제는 이 사람과 동의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는 다른 이와 동의할 게 틀림없다”.(《길드 사회주의》 43쪽) 그러나 나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는 단 4년, 또는 5년에 한 번 있는 선거밖에 없으며 그것도 오직 1/4천4백만 명(총 유권자수)의 비율로만 반영될 뿐이다. 한정된 비례의석 속에서 절반이 사표가 되고 만다. 더군다나, 선출된 대표자는 수많은 의제들에 대해 나의 견해와는 대부분 다르다. 정치 영역에 한정된 민주주의는 대부분의 기간에 거의 모든 의제에서 나의 뜻이 반영되지 않는다. 요컨대 작은 결과에 절망하기보다는 보다 큰 자유민주주의 자체의 결함을 봐야 되는 시기다. 노동조합운동, 진보정당 운동의 ‘좌초’를 슬퍼하기보다는, 애초 우리가 갖지 않았던, 우리가 가지 않았던, 우리가 보지 않았던,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방법과 내용을 갖춰 나가는 것이 이 시대를 견뎌나가는 유일한 방도일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 저자가 쓴 귀중한 책 두 권을 마주하게 된다. 영국의 저명한 사상가이자 사회주의자 G.D.H.콜(조지 더글라스 하워드 콜, 1889~1959)이 쓴 《길드 사회주의》(1920)와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1957)가 그것이다. 이 오래된 책이 2021년 2월, 2022년 2월, 1년여의 사이를 두고 연달아 번역되어 나왔다. 전간기(戰間期) 영국 노동당의 이론가 G.D.H. 콜은 유명한 역사가들(에릭 홉스봄, E.P. 톰슨, C.W. 밀즈, 도널드 사순)의 책에 자주 소개되고는 했는데, 오랫동안 한국에서는 번역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전설처럼 떠돌기만 했었다. G.D.H.콜의 스승격이자 영국 복지국가와 사회주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시드니 웹, 비아트리스 웹 부부의 책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근에 G.D.H.콜과 웹 부부의 저작들이 활발히 번역되어 나왔다. 콜의 가장 중요한 저서 《사회주의 사상사 총 7권》과 《1914년 이후 노동당사》만 나오면 중요한 저작들은 대체로 번역되어 나오게 되는 셈이다. 번역자 장석준은 2012년에 재출간된 G.D.H.콜의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1980년 김철수 역)와, 이번에 나온 두 권의 책 《길드 사회주의》,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에 모두 총합 180여 페이지에 달하는 충실한 해제를 붙여놨다.


앞에서 얘기한 자본주의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관련해 G.D.H. 콜의 선배 격인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웹 부부는 자본주의 대의제 한계를 지적한다. “모든 사람이 가장 잘 아는 직업 영역(산업 영역)에서는 ‘하인’으로 남아 있는 반면, 특별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회 전체의 일반적 이해관계(예컨대 정치)에 대해서는 주권자로 인정 받는” 것은 어딘지 이상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지적이다. 안그래도 불완전하기 그지없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그 외 부문에서는 흔적조차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라는 관념 그 자체가 정치적인 관계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관계도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웹 부부의 지적으로부터 G.D.H. 콜은 시작한다. 콜은 묻는다. “오늘날 정치 영역에서 우리 모두는 투표할 권리를 지닌 시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동료 인간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생산을 담당하는 영역에서는 왜 우리 모두가 정치 영역과 마찬가지로 시민이어서는 안 되는가?” 이러한 권리를 획득해야만 우리는 사회적 시민권(social citizenship)에 머물지 않고 산업적 시민권(industrial citizenship)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행의 과정은 거저 거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에서부터 노동계급의 세 가지 무기가 노동조합운동, 노동자 정치운동(당운동), 협동조합운동이며, 노동자 개인은 이 세 가지 영역을 넘나든다. 그리고 세 가지 운동이 상호 연결되고, 발전되면서 노동자들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들을 마련하게 된다. 콜이 말하는 길드 사회주의가 그것이다. 민주주의는 협소한 대의제 정치 영역을 넘어 생산과 소비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하고, 이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운동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예컨대 산별노조)이 생산 영역의 중요한 권력자원이기는 하지만 길드 사회주의에서 말하는 생산 영역의 자치조직으로 그대로 전화될 수는 없다. 그 대신 등장하는 것이 산업길드의회이다.(영국노총 TUC의 congress와 산업길드의회의 congress가 같으며 ‘회의’,‘의회’라는 뜻에 주목하자.) 소비 영역의 자치조직은 ‘집합 공공재 평의회’ 또는 미래의 진화된 협동조합운동이 담당할 것이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은 탈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일종의 ‘진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기존의 노동조합이 부정적 기능, 즉 브레이크만 쥐고 있었다면, ‘진화’의 과정에서 긍정적 기능, 즉 ‘운전대’도 쥐어야 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산업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과정이 바로 ‘진화’의 과정일 것이다. 콜은 단순히 노사협의제나 노동이사제를 넘어 기업과 산업 안에서 노동자가 협업자 지위(partner(ship))를 획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협업자 자격은 “노동자가 해고당하기에 충분한 잘못을 스스로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해고당할 위험이 없는 기업 내 지위”를 말한다.


발상의 출발점을 다시 지적하자면 이렇다. 자본주의의 대의제는 오직 하나(국회)로 단일화 되어 있다. 이런 단순한 대의제는 “정치 엘리트들의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따라서, 수많은 수준에서, 영역에서, 지역에서 대의제가 필요하며 이러한 대의제들을 ‘기능적 대의제’라 하고 콜의 ‘길드 사회주의’는 ‘기능 민주주의’가 현존 민주주의에 절망한 대중들에게 가장 필요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길드의 구성과 운영에 있어서 ‘풀뿌리 민주주의’와 ‘상향식 민주주의’가 철저하게 원칙으로 지켜져야 함을 강조한다.


G.D.H. 콜의 사상을 살펴보면서 주목해야 할 것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왜곡된 상을 콜을 통해 교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콜에게 있어 사회주의는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즉 ‘국가 사회주의’가 아니며, 동어반복이지만 ‘사회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본연의 사회주의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또한 ‘국가 사회주의’의 관료적이고 억압적인, 그리하여 비민주적인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필수불가결한 사회주의, 자본주의의 민주주의를 확장해 사회 전반에 민주주의적 제도가 뿌리내리는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일명 민주적 사회주의이다. “계급없고 문명된 사회를 모색하면서, 그러한 운동은 민주주의가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C.W.밀즈, 《마르크스주의자들》, 458쪽)

윤석열 5년이 끔찍하기야 하겠지만 생소한 광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익숙하게 경험했던 것들일 것이며, 또한 노무현, 문재인 정권이 저지른 일들도 반복될 것이다. 노동운동이, 당운동이, 진보적 사회운동이 지금 부딪히고 있는 쇠퇴와 침체가 단순히 윤석열 국힘 정권 때문도 아니고, 이들 때문에 급속하게 심화될 거라 보지도 않는다. 운동의 동력 저하가 촛불혁명을 거치며 반등되지 못했다는 것도 자명해졌다. 보다 내재적 원인을 따져보고, 사상적 동력을 숙성시키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고, 모순이 심화되더라도 극복되지 못할 수도 있다. 세계 최고의 프리미어리그 축구팀들도 전성기를 회복하는 데에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하물며 빛을 발한 적도 없는 한국의 척박한 노동조합운동, 당운동에 마음은 아프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아껴주고 보살피는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정말로 역사에 비약이 없다면 비루한 우리의 실력은 많은 사람들이 그저 채우고 가꾸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G.D.H. 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나쳐버린 수많은 지적 자원들을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G.D.H. 콜이 말년에 관심을 가졌던 유고슬라비아 자주관리운동도 그 목록에 들어갈 것이다. 콜은 말했다.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면 선거에 이긴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책도 없이 선거에 승리한다는 것이야말로 다음 선거에서 지고 자파의 지지자들 속에 낙담과 환멸을 퍼뜨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C.W.밀즈, 《마르크스주의자들》, 167쪽)

민주당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을 통해서 정책도 없이 승리했고, 이번 대선에서 패배함으로써 자파 지지자들 속에 낙담과 환멸을 퍼뜨리고 있다. 우리 운동은 민주당이 범한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긴 시간 씨뿌리는 과정을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하겠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G.D.H. 콜과 G. D. H. 콜, G.D.H.코올 등으로 저자 표기가 나눠져 있어 검색의 어려움이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책>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G. D. H. 콜, 김철수 옮김/책세상/2012년9월/37,000원

《영국 협동조합의 한 세기》/G.D.H. 콜, 정광민 옮김/그물코/2015년12월/30,000원

《로버트 오언》/G. D. H. 콜, 홍기빈 옮김/칼폴라니연구소/2017년2월/16,800원

《사회주의 사상사 1》/G.D.H. 코올/신서원/1992년5월/절판

《영국의 위기 속에서 나온 민주주의》/김명환/혜안/2009년7월/24,000원

《산업민주주의 1,2,3》/비어트리스 웹, 시드니 웹, 박홍규 옮김/아카넷/2018년1월/각각 23,000원, 25,000원, 21,000원

《마르크스주의자들》/C.W.밀즈, 김홍명 역/한길사/1982년3월/4,800원

참으로 새로운 것은 단지 일상 작업과 관련해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이 원칙을 적용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 방안이 기본적인 정치 문제에 대해 의식적으로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민주주의를 향해 의식적으로 전진하는 사회가 별다른 고민 없이 거부해야 할 만큼 경천동지할 혁신이라는 말인가? - P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길드 사회주의 고전의세계 리커버
G. D. H. 콜 지음, 장석준 옮김 / 책세상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처 :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통권 63호, 2022년 봄호

책담(冊談)


협업자로서의 노동자 지위를 쟁취하자


양솔규 / 편집위원장








《길드 사회주의》/G. D. H. 콜/책세상/2022년2월/11,200원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G. D. H. 콜/좁쌀한알/2021년2월/15,000원



3월9일 대통령 선거 결과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의 격차는 불과 0.73%, 투표수 차는 24만 표에 불과했다. 우리가 보기엔 민주당이 ‘친노동’ 정당은 분명 아니지만 어쨌거나 민주당의 박빙의 패배에 아쉬워하는 조합원들이 적지 않다. 대통령 취임(5월10일) 17일 후에 사전투표가 진행될(본 투표 6월1일) 지방선거가 대선과 사실상 패키지 성격을 지닐 걸 생각한다면(5.18과 5.23 노무현서거일이 중간에 끼어있다.) 연이은 대선-지방선거 결과가 당장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끼칠 후폭풍이 적지는 않을 것이기에 이런 실망 어린 소회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진보정당 또는 진보후보가 얻은 표를 보면, 또한 정치, 사회운동 진영의 선거 대응 자세와 과정을 생각하면, 상당 기간 진보정당운동의 좌초는 계속될 거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혹자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2.37%, 80만 표)를 포함해 이백윤, 오준호, 김재연 등 범 진보(?)계열 후보의 총 득표수 86만 표는 민주노총 조합원 수보다 적다며,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역사적 실패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비관적 상황은 모두가 예상했던 것이기도 하거니와, 개개인이나 특정 정파가 노력한다고 해서 금방 빠져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이명-박근혜 시대가 지났고, 문재인 5년도 허송세월하며 지났다. 긴 세월동안 켜켜이 쌓인 실패와 좌절과, 무기력의 체지방이 구호와 공학 만으로 빠질 수 있겠는가? 진보세력도 진보세력이지만 민주당도 급격한 추락곡선에 올라탔다.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줬지만,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못지않게 그 어느 것도 실천에 옮기지 않았고, 코로나 사태로 인한 유동성 증가로 철퇴를 맞았다. 조국이니, 386이니, 내로남불이니 하는 것은 거대한 산불의 밑불 또는 휘발유가 되어 주었다.


문제는 노동자가, 민중들이, 시민이 이를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의회제의 한계, 첫 번째, “유권자는 의원을 통제할 수 없고, 임기가 다 끝나 선거를 새로 실시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혼쭐을 내주고 싶어도 다음 선거는 5년 뒤(또는 4년 뒤)에나 온다. 둘째, “대의할 사람이 1인(국회의원 1인, 대통령 1인 등) 밖에 없다”. 1인 대표자가 나의 모든 문제를 대의해 주지 않는다. 임대차 3법은 민주당 의견에 찬성하지만, 언론중재법은 반대할 수 있고, 경제정책은 반대하지만, 남북관계 개선은 찬성할 수 있다. “합리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항상 이 문제는 이 사람과 동의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는 다른 이와 동의할 게 틀림없다”.(《길드 사회주의》 43쪽) 그러나 나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는 단 4년, 또는 5년에 한 번 있는 선거밖에 없으며 그것도 오직 1/4천4백만 명(총 유권자수)의 비율로만 반영될 뿐이다. 한정된 비례의석 속에서 절반이 사표가 되고 만다. 더군다나, 선출된 대표자는 수많은 의제들에 대해 나의 견해와는 대부분 다르다. 정치 영역에 한정된 민주주의는 대부분의 기간에 거의 모든 의제에서 나의 뜻이 반영되지 않는다. 요컨대 작은 결과에 절망하기보다는 보다 큰 자유민주주의 자체의 결함을 봐야 되는 시기다. 노동조합운동, 진보정당 운동의 ‘좌초’를 슬퍼하기보다는, 애초 우리가 갖지 않았던, 우리가 가지 않았던, 우리가 보지 않았던,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방법과 내용을 갖춰 나가는 것이 이 시대를 견뎌나가는 유일한 방도일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 저자가 쓴 귀중한 책 두 권을 마주하게 된다. 영국의 저명한 사상가이자 사회주의자 G.D.H.콜(조지 더글라스 하워드 콜, 1889~1959)이 쓴 《길드 사회주의》(1920)와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1957)가 그것이다. 이 오래된 책이 2021년 2월, 2022년 2월, 1년여의 사이를 두고 연달아 번역되어 나왔다. 전간기(戰間期) 영국 노동당의 이론가 G.D.H. 콜은 유명한 역사가들(에릭 홉스봄, E.P. 톰슨, C.W. 밀즈, 도널드 사순)의 책에 자주 소개되고는 했는데, 오랫동안 한국에서는 번역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전설처럼 떠돌기만 했었다. G.D.H.콜의 스승격이자 영국 복지국가와 사회주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시드니 웹, 비아트리스 웹 부부의 책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근에 G.D.H.콜과 웹 부부의 저작들이 활발히 번역되어 나왔다. 콜의 가장 중요한 저서 《사회주의 사상사 총 7권》과 《1914년 이후 노동당사》만 나오면 중요한 저작들은 대체로 번역되어 나오게 되는 셈이다. 번역자 장석준은 2012년에 재출간된 G.D.H.콜의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1980년 김철수 역)와, 이번에 나온 두 권의 책 《길드 사회주의》,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에 모두 총합 180여 페이지에 달하는 충실한 해제를 붙여놨다.


앞에서 얘기한 자본주의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관련해 G.D.H. 콜의 선배 격인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웹 부부는 자본주의 대의제 한계를 지적한다. “모든 사람이 가장 잘 아는 직업 영역(산업 영역)에서는 ‘하인’으로 남아 있는 반면, 특별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회 전체의 일반적 이해관계(예컨대 정치)에 대해서는 주권자로 인정 받는” 것은 어딘지 이상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지적이다. 안그래도 불완전하기 그지없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그 외 부문에서는 흔적조차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라는 관념 그 자체가 정치적인 관계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관계도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웹 부부의 지적으로부터 G.D.H. 콜은 시작한다. 콜은 묻는다. “오늘날 정치 영역에서 우리 모두는 투표할 권리를 지닌 시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동료 인간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생산을 담당하는 영역에서는 왜 우리 모두가 정치 영역과 마찬가지로 시민이어서는 안 되는가?” 이러한 권리를 획득해야만 우리는 사회적 시민권(social citizenship)에 머물지 않고 산업적 시민권(industrial citizenship)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행의 과정은 거저 거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에서부터 노동계급의 세 가지 무기가 노동조합운동, 노동자 정치운동(당운동), 협동조합운동이며, 노동자 개인은 이 세 가지 영역을 넘나든다. 그리고 세 가지 운동이 상호 연결되고, 발전되면서 노동자들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들을 마련하게 된다. 콜이 말하는 길드 사회주의가 그것이다. 민주주의는 협소한 대의제 정치 영역을 넘어 생산과 소비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하고, 이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운동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예컨대 산별노조)이 생산 영역의 중요한 권력자원이기는 하지만 길드 사회주의에서 말하는 생산 영역의 자치조직으로 그대로 전화될 수는 없다. 그 대신 등장하는 것이 산업길드의회이다.(영국노총 TUC의 congress와 산업길드의회의 congress가 같으며 ‘회의’,‘의회’라는 뜻에 주목하자.) 소비 영역의 자치조직은 ‘집합 공공재 평의회’ 또는 미래의 진화된 협동조합운동이 담당할 것이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은 탈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일종의 ‘진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기존의 노동조합이 부정적 기능, 즉 브레이크만 쥐고 있었다면, ‘진화’의 과정에서 긍정적 기능, 즉 ‘운전대’도 쥐어야 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산업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과정이 바로 ‘진화’의 과정일 것이다. 콜은 단순히 노사협의제나 노동이사제를 넘어 기업과 산업 안에서 노동자가 협업자 지위(partner(ship))를 획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협업자 자격은 “노동자가 해고당하기에 충분한 잘못을 스스로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해고당할 위험이 없는 기업 내 지위”를 말한다.


발상의 출발점을 다시 지적하자면 이렇다. 자본주의의 대의제는 오직 하나(국회)로 단일화 되어 있다. 이런 단순한 대의제는 “정치 엘리트들의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따라서, 수많은 수준에서, 영역에서, 지역에서 대의제가 필요하며 이러한 대의제들을 ‘기능적 대의제’라 하고 콜의 ‘길드 사회주의’는 ‘기능 민주주의’가 현존 민주주의에 절망한 대중들에게 가장 필요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길드의 구성과 운영에 있어서 ‘풀뿌리 민주주의’와 ‘상향식 민주주의’가 철저하게 원칙으로 지켜져야 함을 강조한다.


G.D.H. 콜의 사상을 살펴보면서 주목해야 할 것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왜곡된 상을 콜을 통해 교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콜에게 있어 사회주의는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즉 ‘국가 사회주의’가 아니며, 동어반복이지만 ‘사회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본연의 사회주의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또한 ‘국가 사회주의’의 관료적이고 억압적인, 그리하여 비민주적인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필수불가결한 사회주의, 자본주의의 민주주의를 확장해 사회 전반에 민주주의적 제도가 뿌리내리는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일명 민주적 사회주의이다. “계급없고 문명된 사회를 모색하면서, 그러한 운동은 민주주의가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C.W.밀즈, 《마르크스주의자들》, 458쪽)

윤석열 5년이 끔찍하기야 하겠지만 생소한 광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익숙하게 경험했던 것들일 것이며, 또한 노무현, 문재인 정권이 저지른 일들도 반복될 것이다. 노동운동이, 당운동이, 진보적 사회운동이 지금 부딪히고 있는 쇠퇴와 침체가 단순히 윤석열 국힘 정권 때문도 아니고, 이들 때문에 급속하게 심화될 거라 보지도 않는다. 운동의 동력 저하가 촛불혁명을 거치며 반등되지 못했다는 것도 자명해졌다. 보다 내재적 원인을 따져보고, 사상적 동력을 숙성시키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고, 모순이 심화되더라도 극복되지 못할 수도 있다. 세계 최고의 프리미어리그 축구팀들도 전성기를 회복하는 데에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하물며 빛을 발한 적도 없는 한국의 척박한 노동조합운동, 당운동에 마음은 아프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아껴주고 보살피는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정말로 역사에 비약이 없다면 비루한 우리의 실력은 많은 사람들이 그저 채우고 가꾸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G.D.H. 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나쳐버린 수많은 지적 자원들을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G.D.H. 콜이 말년에 관심을 가졌던 유고슬라비아 자주관리운동도 그 목록에 들어갈 것이다. 콜은 말했다.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면 선거에 이긴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책도 없이 선거에 승리한다는 것이야말로 다음 선거에서 지고 자파의 지지자들 속에 낙담과 환멸을 퍼뜨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C.W.밀즈, 《마르크스주의자들》, 167쪽)


민주당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을 통해서 정책도 없이 승리했고, 이번 대선에서 패배함으로써 자파 지지자들 속에 낙담과 환멸을 퍼뜨리고 있다. 우리 운동은 민주당이 범한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긴 시간 씨뿌리는 과정을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하겠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G.D.H. 콜과 G. D. H. 콜, G.D.H.코올 등으로 저자 표기가 나눠져 있어 검색의 어려움이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책>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G. D. H. 콜, 김철수 옮김/책세상/2012년9월/37,000원

《영국 협동조합의 한 세기》/G.D.H. 콜, 정광민 옮김/그물코/2015년12월/30,000원

《로버트 오언》/G. D. H. 콜, 홍기빈 옮김/칼폴라니연구소/2017년2월/16,800원

《사회주의 사상사 1》/G.D.H. 코올/신서원/1992년5월/절판

《영국의 위기 속에서 나온 민주주의》/김명환/혜안/2009년7월/24,000원

《산업민주주의 1,2,3》/비어트리스 웹, 시드니 웹, 박홍규 옮김/아카넷/2018년1월/각각 23,000원, 25,000원, 21,000원

《마르크스주의자들》/C.W.밀즈, 김홍명 역/한길사/1982년3월/4,800원

유권자가 의원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없고 임기가 끝날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만 교체할 수 있어서 사실상 선택의 폭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유권자가 자신을 대의할 사람을 1인만 선출하도록 요구받는다는 점이다. - P43

길드 사회주의 입장의 핵심은 사회가 모든 구성원에게 개인적, 집단적 자기 표현의 기회를 가능한 최대로 보장하도록 조직되어야만 하며, 이는 능동적 자치를 사회의 모든 부분으로 확대함을 뜻한다는 신념에 있다. - P23

전국 코뮌에는 전국 농업, 산업, 공익 길드의 대표자들, 경제와 공익 영역의 전국 평의회 대표자들, 광역 코뮌 자체의 대표자들이 참여하게 될 것이다. - P151

길드 사회주의의 핵심적 방법은 산업이나 상업에 존재하는, 아니면 재창조를 하든 파괴를 하든 어쨌든 접수해야 하는 정부 기능 안에 존재하는 모든 전략적 위치에서 노동자가 자본가를 대체하는 것이다. - P224

길드 사회주의는 민주주의를 사회주의 실현의 주된 경로로 본다는 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통합하여 바라본다는 점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였다. - P267

이 책은 길드 사회주의자 전체나 다수가 인정하는, 길드 사회주의의 공식 선언서라 자임하지는 않는다. 다행히도 엄격한 길드 정통 교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 전개될 내용의 대부분은 개인적인 의견의 표명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검토한 사안들이 전국길드연맹의 실제 대회 결의의 주체가 된 것을 보고 나의 관점이 연맹의 공식 발표와 대체로 일치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 책은 대회 결의의 주요 내용 대부분을 담은 연맹 발간 보고서들의 참고 문헌이라 할 수 있다. - P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