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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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21년 봄호(통권 제59호)

책담(冊談)


그럭저럭 버티는 동료에게 보내는 안부인사


양솔규 / 편집위원장



《죽은 자의 집 청소》/김완/김영사/2020년5월/13,800원




2016년 새해를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느닷없는 신문기사를 보고 너무 깜짝 놀라고 말았다. 창원의 한 비정규직 사업장의 전 노조지회장이 고독사를 한 지 두 달 만에 발견되었다는 기사였다. 가끔 장을 보러 마트에 가다보면 마주치곤 했던 농성텐트와 방송차가 생각났다. 자세히는 몰랐지만, 지회장 등 몇몇 지회간부를 제외하고 나머지 조합원들은 복직(직접고용?)하고 투쟁을 마무리하는 걸로 정리되었다는 지인의 전언이 생각났다. 물론, 자세한 내막을 들은 건 아니어서, 투쟁 과정에 어떤 고민과 힘겨움이 있었는지 세세한 내막도, 심지어 지회장의 얼굴조차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놀랐던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고, 이를 위해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동력이 ‘노동운동’, ‘노동조합운동’인데, 그 담당자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고독사 했다는 점이었다. 극과 극의 현실은 노동운동의 막막한 현실을 극적으로 드러내 주었다. 이 사건은 단편적인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무언가 불길한 구조적인 변화의 징후로 보였고, 최근에도 노동운동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고립은 이제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삶의 조건이 되고 있다. 지난 호에서 소개한 책 《비혼1세대의 탄생》에서도 얘기한 바 있듯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토대부터 무너지고 있다. 2019년 전체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중은 29.9%로 6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아울러, 2014년 1,374명이었던 무연고 사망자는 2018년 2,447명으로 5년간 77.4% 증가했다. 《비혼1세대의 탄생》은 이러한 사회적 고립에 맞서기 위해서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붙잡고 있기보다는, 새로운 다양한 결합의 형태를 받아들이고, 사회적 연대를 적극적으로 실현하자고 주문한다. 경제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고독사 비율은 남성이 압도적인 이유는 여성들의 공감능력과, 유연한 ‘돌봄’ 노동의 발휘가 아닐까 하는 해석도 덧붙인바 있다.

코로나19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방역을 위한 필수적인 행동규칙으로 강제했다. 코로나19 초창기에는 그래서 이 용어의 부정적 뉘앙스를 대신하기 위해 ‘물리적’ 거리두기로 부르자는 제안도 나오고는 했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아무튼, 자본주의 사회가 강제하는 경제적 궁핍과 개인의 원자화(책임의 개인화)가 확산되면서 사회적 약자들의 ‘고립’ 상태가 확산, 심화될 수밖에 없는데, 코로나19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고 있다. 비대면과 거리두기는 ‘고독사’의 연료로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자살률은 일시적으로 줄어들었지만, 전문가들은 자살이 일시적으로 보류되었을 뿐이며, 오히려 위험군은 증가(적체)되고 있고, 이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적인 몰락은 무엇보다 사회적 고립의 제1원천이다. 가족의 해체 뒤에는 해고, 폐업, 빚, 신용불량자, 계약해지 등이 놓여 있다. 고독사의 형태가 자살인지, 병사인지 다를 수는 있지만, 그(그녀)의 사회적 고립은 경제적인 궁핍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고독사 뒤에는 남는 것이 있다.


“그가 살던 202호 현관문에는 ‘전기공급 제한 예정알림’이라는 굵은 고딕체의 제목이 붙은 노란 딱지가 붙어 있다.”


우편함에 빼곡한 각종 독촉장들과 현관문에 붙어 있는 체납딱지들은 고독사한 ‘불량시민’을 추방하려는 부적 같다.


2020년 여름, 최장 기간의 장마가 닥쳤다. 그리고, 그 장마 속에서 ‘기후 우울’이라는 용어도 생겼다. 2020, 2021년은 그래도 그나마 나아졌다고 하지만, 미세먼지, 초미세먼지도 사회적 고립에 일조한다. 2020년 겨울은 유난히 춥기도 했고, 눈도 많이 왔다. 코로나도 힘든데, 날씨도 안도와줬다. 2020년 부산의 대중교통 이용량이 시내버스는 24.3%, 광역·도시철도(지하철)는 27.1%가 감소했다. 많은 평범한 대중들의 이동도, 만남도 끊겨버린 것이다.


일명 특수청소부. 누군가 홀로 죽으면 그 죽음의 현장에 가서 청소를 하는 ‘청소부’이자 작가인 김완이 쓴 《죽은 자의 집 청소》(2020년)는 죽음, 특히 고독사와 특수한 형태의 죽음들을 다뤘다. 2020년, 생각지도 않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이 책의 흥행의 이면에는 죽음의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요한 고민꺼리가 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흔히 복지국가를 표현할 때,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수식어를 덧붙이곤 하는데, 출생과 육아뿐만 아니라 죽음의 문제 역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접근하고 준비하며 받아들일 것인가가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박완서의 소설 《그 남자네 집》에 보면, 곡소리 내는 상갓집 상주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는 장례식 풍경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장례식의 형태, 장사(葬事) 방법도 많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사실은 우리는 모두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점이다. 도처에서 벌어지는 ‘불편한 죽음’의 모습이 나의 모습일 수도 있고, 산 자들이 죽은 자를 잘(?) 보내주는 축제의 모습으로 끝이 정리될 수도 있다. 비록 고단한 삶이었겠지만 외롭게 보내지는 않아야 하는 게 맞지 않겠나.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난해지면 더욱 외로워지는 듯하다. 가난과 외로움은 사이좋은 오랜 벗처럼 어깨를 맞대고 함께 이 세계를 순례하는 것 같다.”


단지 임금인상과 고용안정만으로 노동운동의 역할을 기계적으로 좁게 해석할 수는 없다. 실제로도 노동운동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궁핍으로 인한 고통을 줄이고,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을 벗어나게 하는 것, 그래서 사회적으로 나와 네가 함께 어깨를 맞대고 나와 너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만들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노동운동이었으니까. 죽음을 앞에 두고 생각해보는 인간 존엄의 문제가 노동운동의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앞서 얘기한 비정규직 지회장의 고독한 죽음은 노동운동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외롭다면 또 다른 누군가도 어딘가에서 홀로 외로울 것이다.”


지금, 연대가 고프다.


<함께 보면 좋은 책>

-NHK 무연사회 프로젝트팀 / 《무연사회》 / 용오름 / 2012년7월 / 13,000원

-성유진 외 / 《남자 혼자 죽다》 / 생각의힘 / 2017년 / 17,000원

-소준철 / 《가난의 문법》 / 푸른숲 / 2020년11월 / 16,000원

"지금 여기에서 내가 외롭다면 또 다른 누군가도 어딘가에서 홀로 외로울 것이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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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1세대의 탄생 - 결혼에 편입되지 않은 여성들의 기쁨과 슬픔
홍재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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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소식지 <연대와소통> 2020년12월(겨울호/통권58호) 



책담(冊談)

 

변화 말고 다른 길은 없다

 

 


양솔규 / 편집위원장


 

비혼1세대의 탄생/홍재희/행성B/20207/16,000

 

얼마 전 일본인 출신 방송인 사유리의 출산 소식이 전해졌다. 가십거리로 넘길만한 연예기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갑론을박으로 시끄러웠다. 바로 비혼(非婚) 출산이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전제로 출산해야만 한다고 보는 전통적인 관점이 아직도 지배적인 현실에서 사유리의 결심은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비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20~30대 여성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사유리의 선택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비혼 출산을 선택한 사람은 비단 사유리 뿐만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방송인 허수경도 비혼 출산을 한 바 있다. 당시에는 후폭풍이 지금보다 더 거셌다. 허수경은 두 번의 이혼 뒤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시험관아기로 출산했다. 사회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헤쳐 온 허수경의 삶과 선택은 사유리를 비롯한 청년 여성들의 생애 전망을 더 다양하게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신년이 되면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동아일보 등 여러 신문을 사서 읽곤 했었다. 200011일 각 신문에는(정확히 21세기의 시작은 2000년이 아니라 200111일이긴 하지만) 21세기에 대한 전망으로 가득 찼다. 그 중 21세기에 없어질 것 10선에 일부일처 핵가족이 꼽혔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20년이라는 시간은 짧은 거 같기도 하지만, 또 긴 시간이기도 하다. 소설가 김영하는 비자 미소지로 추방당해야만 했던 2005년 상해에서, 현실사회주의를 확인하기 위해 갔던 1990년 중국 상해로의 여행을 떠올려 여행의 기술에 기록했다. 불과 15년 만에 남루한 인민을 거느린 중국은 첨단 국가자본주의, G2로 거듭났다. 마찬가지로 과연 일부일처 핵가족이 없어질까?’ ‘만일 없어진다면 남는 건 무엇인가?’ 전혀 상상이 되지 않던 가족제도는 보시다시피 밑바닥에서부터 변화되고 있다. 부부관계에 기반한 자녀 둘의 핵가족을 정상가족으로 보는 시각에서 보자면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붕괴로 보겠지만, 가족의 형태와 구성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보는 시각에서는 이는 불가피한 변화일 것이다.


 

비혼1세대의 탄생의 저자 홍재희는 영화감독이자 작가이다. 비록 흥행을 보증하는 인기 상업영화감독은 아니고, 영화 찍는 날보다, 다른 일로 밥벌이의 고단함을 견디는 일이 많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책도 3권이나 냈고, 영화로 제법 상도 많이 탔다. 그런 그가 말하는 비혼1세대의 시작은 70년대 이후 태어나 90년대에 대학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다. 일명 X세대(필자 포함)로부터 출발했다. 그렇다고 ‘1세대를 꼭 연령층의 세대구분으로 딱 잘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결혼의 상대적 개념으로 비혼을 전면에 내세운 것일 뿐, 저자는 결혼비혼이라는 이분법으로 가족구성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족구성의 가능성을 열어두자고 제안한다.

 

저자가 보기에(그리고 모두가 알듯이) 비혼의 근저에는 남성중심 가부장제와 신자유주의의 결합이 깔려있다고 본다. 여성들에게 고통스러운 가부장제이긴 하지만, 그나마 이전에는 가장으로 대표되는 가부장제가 여성들의 생존을 보장해 주었다면(이 역시 따져봐야 할 문제이다. 정확히는 보장해준다고 여겨졌지만), 신자유주의는 그런 가능성 자체를 거세해 버렸다. ‘결혼의 안정성이 무너지자 성별 분업체계 역시 무너져 버렸다. 여기서, 우리는 비혼이 오로지 가임기 여성들의 이기적인 전략적 선택이라고 보는 관점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는 성차별과 성별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이다. 성별 임금격차, 경력단절에, 독박육아에, 최장 가사노동시간이 여성들 앞에 놓여 있다. 누가 결혼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나마 결혼이라도 하는 사람들의 상황은 숨통이 트여 있어 가능한 것이다

 

2019년 통계청 조사를 보면, 1인가구는 6148000가구로 전체 가구 중 가장 큰 비중인 30.2%를 차지했다. 가구원수 통계 집계 이래 처음으로 1인가구 비중이 30%를 넘었다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생각도 흥미롭다. 13세 이상 인구 중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51.2%, 10년 전인 201064.7%에 비해 수치가 13.5%p 하락했다.(통계청) 결혼을 하지 않아도 같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59.7%2012년 이후 계속 증가하고 있고,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30.7%를 차지했다.

 


그럼 1인가구, 비혼으로 사는 것은 행복하기만 할까? 저자는 결혼은 싫지만 혼자도 두렵다고 얘기한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필요로 하며, 서로 돌봄을 나누는 존재이다. 당연히 비혼 1인가구라고 해서 고립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여성 1인가구의 삶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경제적 결핍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적 불평등의 문제와 더불어,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소비욕망의 메커니즘을 거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서로 돌봄을 나누는 다양한 가족 형태, 친밀한 공동체를 확장하자고 말한다. 자유의 공동체이다.

 

흥미로운 점은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사회적으로 더 위험하고, 더 열악하며, 가난하게 사는데도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고독사가 더 적은 점이다. 1인가구 고독사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85%이며, 연령별로는 4,50대가 56.8%에 달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 원인을 여성들의 돌봄 능력에서 찾는다. 이것 역시 가부장제의 결과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성들은 살림을 해 나가는 법을 알고, 자신과 남을 돌볼 줄 알며, 상대방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이 없는 남성들은 생활에 무능하고, 공감하지 못하니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일상 불능자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우리가 비혼과 더불어 다양한 형태의 대안적 공동체가 필연적이라면 살림하고 서로 돌보는 능력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의 가장 큰 피해자는 남성일지 모른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나는 사회적으로 독거남성들에게 요리법 등 살림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대대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건강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싼 가격으로 균형 잡힌 식사를 하기 위해서라도 요리법은 필수다. 건강보험공단은 왜 이런 거에 손을 놓고 있을까?

 


아무튼, 이제는 한국에서 혼자 될 가능성이 특수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상이 될 것이다. 아무리 용을 쓰더라도 여성들이 모두 결혼으로 골인하는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 저출산, 저출산을 정말로 타개하고 싶다면,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평등한 일터가 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그렇게 하더라도 정상가족의 비율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다양한 가족제도에 대해 인정하고, 무엇이 사회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게 저출산문제가 시급하다면 비혼출산등에 대한 인식 재고와 포용적 제도접근이 필요하다. 스웨덴, 프랑스 등 서구 여러 나라의 저출산 흐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3단계 직전이다. 1,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날마다 나오고 있다.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일상이 회복되고, 해외여행 가고, 외식하러 가는, 그런 날을 꿈꿀지 모르겠지만,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97IMF 위기, 2008년 세계금융위기 등은 우리에게 다른 길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졌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우리는 그 물음에 근본적인 수준에서 진지하게 고민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비혼1세대가 던지는 물음도 다르지 않다. 가부장제와 신자유주의가 강제하는 억압과 착취의 사슬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청년들이 비혼1세대로 화답하고 있는 것이다. ‘따로 또 같이 더불어 사는 길이 길을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다.

 

어떤 문제들은 반복함으로써 해답을 얻는다. 그러나 또 다른 어떤 문제들은 반복하지 않음으로써, 또는 다른 것을 해봄으로써 지식을 얻기도 한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익숙한 메아리가 아니라 처음 가보는 오솔길이다. 이미 후속 세대들은 그 길로 들어섰다.

 

 

<함께 보면 좋은 책>

홍재희 / 그건 혐오예요/ 행성B / 20175/ 15,000

김희경 / 이상한 정상가족/ 동아시아 / 2017/ 15,000

강한별 외 / 비혼수업/ 넥서스BOOKS / 2020/ 15,900

권미주 / 비혼 여성, 아무튼 잘 살고 있습니다/ 이담북스 / 2020/ 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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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살았던 20세기 사상가들 - 미래는 과거에 있다
장석준.우석영 지음 / 책세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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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20년(가을호, 통권57호)


책담(冊談)


과거에서 찾은 미래, 명쾌한 행동지침으로!


양솔규 / 편집위원장


21세기를 살았던 20세기 사상가들/장석준, 우석영/책세상/20198/16,900

 

90년대 후반, 스웨덴 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한국에도 번역되었다. 그녀는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라다크라는 지역을 방문했는데, 온화한 가족공동체를 기반한 유목 사회를 자세히 살피는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주었다. 예를 들자면, 과거를 극복한 현재, 현재의 모순을 극복한 미래, 이런 식의 직선형 시간에 기반한 근대적인 계몽 사고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그것이다. 여성의 권한이 강한 유목 사회의 가족구조, 생산소비의 순환시스템, 생태학적 균형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 등은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단초들을 제공해 주었다. 오래된 과거에서 미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이 책제목의 역설은 다음의 책에서 다시 등장한다. 21세기를 살았던 20세기 사상가들이 그것이다.

 

이 책에는 총 30명의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있다. 우리 땅에 살았던 한국인(조선인)도 있고, 저 멀리 남미나, 유럽의 사람도 있다. 비교적 오래 전인 20세기 전반기의 사람도 있고, 아직도 생존해 있는 사람도 있다. 서른 명의 사람도 적은 숫자는 아닌데, 그들의 사상을 한 책에 담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듯하다. 이 책은 그들의 방대한 사상을 성공적으로 소화시켜 요약해 준다. 그런데 우리가 참조할 만한 서른 명의 사상가들을 마구잡이로 나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사상가들을 한 큐에 엮는다면 다음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다. “진보정치가 추구해야 할 생태 사회주의의 내용과 방도아마도 한국(조선)의 정치가, 혁명가들을 등장시킨 것은 이러한 실천이 다름 아닌 이 땅에서 우리 자신이 벌여 나가야하기 때문일 테고, 다소 생소한 생태주의 사상가들은 전지구적 기후위기가 작금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현실 사회주의 역시 이러한 위기를 부추긴 당사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랠프 밀리밴드의 이중 민주주의나 노먼 토머스가 벌인 미국에서의 진보정당 운동은 실천 과정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지침 같은 것이다.


이 책에는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과 관련한 선구적인 사상가 앙드레 고르(Andrè Gorz)도 소개하고 있다. 고르가 보기에 생산과정의 자동화가 직접적인 개별 노동의 소멸을 가져오면서 임금노동 없이도 가능한 소비력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조건은, ‘생태주의적 사회 전환 비전과 결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기본소득과 관련해서는 미국의 사회당 운동가 노먼 토머스(Norman Thomas)도 말년에 주목했다. 1963년 토머스는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소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뉴딜식 복지를 넘어 모든 시민에게 충분한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 생소한 사상가들도 몇 명 등장한다.

안데스의 체 게바라, 남반구의 그람시로 불리는 페루의 사상가이자 페루사회당을 만들과 활동한 운동가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José Carles Mariátegui)” 이다. 마리아테기는 인디오 농민들을 중요한 변혁의 주체로 상정하면서, 그들의 농경공동체의 공유와 협동의 전통이 자본주의 이후의 씨앗이라 주장한다. 마치 마르크스가 러시아 농촌공동체가 탈자본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봤던 것처럼 말이다. 그야말로 오래된 미래라 할 수 있다.

 

독일에서 활동한 구스타브 란다우어(Gustav Landauer) 역시 생소한 사상가다. 아나키스트인 그는 1918년 독일 혁명 이후 로자 룩셈부르크, 칼 리프크네히트와 함께 희생당하고 만다. 어쨌든 그의 독창적인 점은 진보사관을 비판하면서 인류가 돌아가야 할 질서를 농촌공동체, 자치도시, 장원과 길드 같은 중세의 질서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사회주의운동 내부의 과학기술 만능주의국가 숭배에 경각심을 갖게 한다. 그는 역사 속 특정한 원인이 특정한 결과를 낳는 인과관계를 부정하면서, 과거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역사의 기나긴 사슬 중 맨 끝 고리가 변하면 과거의 사슬 전체가 바뀐다고 본다.

과거 자체가 미래다. 과거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과거는 항상 생성되는 중이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과거는 늘 변화하고 형태를 바꾼다.”21세기를 살았던 20세기 사상가들을 가장 축약해 주는 사상가는 구스타브 란다우어일 것이다.

 

제임스 러브룩과 마찬가지로 지구를 하나의 가이아(Gaia, 대지의 여신)로 보고 박테리아가 가이아의 인프라며, 지구를 스스로 자율 조절하는 생물권들의 시스템이라고 보는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러시아 혁명 당시 생산 현장 출신 금속노동자이자 노동조합 지도자로서, 스탈린에 맞서 노동자 반대파로 활동했던 알렉산드르 실리아프니코프(Alexander Shliapnikov)의 노동자 통제 이론 등도 주목할 만하다. 70년대 칠레 아옌데 정권에 합류해 사이버넷(Cybernet)과 사이버신(Cybersyn)을 구축하고, 미국 CIA가 사주한 칠레 자본가들의 파업에 맞서 민중의 직접적인 경제 통제에 일조한 영국의 사상가 스태퍼드 비어(Stafford Beer)는 흥미롭다 못해 경이롭다. 과연 우리가 지나 온 20세기에 다시 훑어보고 발견해야 할 치트 키가 얼마나 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시대를 앞서간 이들의 삶과 실천에 빚져 다시 우리도 새로운 여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시작해야 할 때. 가만가만 사상의 조각들을 음미해 봐야 할 때이다.

 

<함께 보면 좋은 책과 자료>


바르테크 지아도시 감독 / 다큐멘터리 존 버거의 사계/ 2016

김윤성, 권재준 / 그림으로 이해하는 생태사상/ 개마고원 / 2009/ 12,000

장석준 / 사회주의/ 책세상 / 2013/ 9,500

이성형 엮음 /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사상/ 김창민,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 : 창조적 마르크스주의자/ 1999/ 12,000


과거 자체가 미래다. 과거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과거는 항상 생성되는 중이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과거는 늘 변화하고 형태를 바꾼다. <혁명> 1907 - 구스타프 란다우어 - P224

세상에는 억압받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 처음에는 이들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러다가 마치 투명 인간과 같던 이들 사이에서 신음이 새어나온다. 웅얼거림은 이내 외침이 되고 아우성이 된다. - P19

역사라는 거대한 사슬은 마지막 고리가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라 사슬 전체가 바뀐다는 란다우어의 역사관처럼, 지금 우리의 선택과 결단에 따라 촛불의 승패도, 그것이 남긴 정신도 바뀐다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 P231

마리아테기는 이를 인디오 농민들 사이에 잔존한 원시 공산주의라 파악했다. 그가 보기에 이는 사멸할 수밖에 없는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페루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선 새 사회를 건설하는 데 중요한 토대였다. 자본주의 ‘이전‘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후‘의 씨앗이라는 것이었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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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조선소 노동자 - 배 만들던 사람들의 인생, 노동, 상처에 관한 이야기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기획 / 코난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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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52(2019년 여름호)

 

병든 조선소와 사회를 바꾸는 용기 있는 증언

 

, 조선소 노동자/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코난북스/20194/15,000

   

       

양솔규(편집위원장)

 

지난 연대와소통(51) 책담에서는 “‘조선소 3부작을 통해 본 갈림길에 선 조선산업이라는 제목 하에 조선소와 관련된 책 3권을 다룬바 있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현대조선 잔혹사, 누운 배가 그것인데, 이번 호에도 조선소에 대한 책을 다뤄야겠다. 조선소 현실에 대해, 특히 하청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서술한 중요한 책이 발간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을 기록해 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 조선소 노동자20175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마틴링게 프로젝트에서 벌어진 크레인 충돌 참사로 6명이 숨지고, 25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에 대한 책이다.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이 기획을 하고, 심리상담사, 기록노동자, 활동가 등이 생존 노동자 9명의 구술을 정리해 엮어 냈다. ‘노동절에 근무하다가 벌어진 이 참사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많은 사망자와 부상자 뿐만 아니라 최소로 잡아 161명의 노동자들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위험군으로 분류되었다. 그만큼 끔직한 사고였다. 그러나 때는 박근혜가 탄핵 당한 뒤 대통령 선거가 한참 진행중인 시기였다. 사고 뉴스가 나오긴 했지만, 다른 뉴스에 가려, 또는 관심이 없어서, 놀러가느라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던 듯하다.

    

책 제목은 책의 내용을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내 주기 마련이다. 이 책의 제목 , 조선소 노동자는 영국의 유명한 좌파 영화감독 캔 로치가 만들어 2016년 그에게 두 번째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긴 영화 <, 다니엘 블레이크>를 연상시킨다. 영화에서 심장병에 걸려 실직한 다니엘 블레이크는 어이없는 자본주의 관료주의의 벽에 막혀 실업급여 수급에 실패하자 복지과 벽에 , 다니엘 블레이크라고 스프레이로 휘갈긴다. 이후 부당한 실업급여 지급 거부에 항소하지만, 심장마비가 와 결국 재판정에 서지도 못한다. 항소 법정에서 읽기 위해 그가 쓴 메모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아왔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으며,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개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다니엘 블레이크가 잃어버린 자존심을 찾기 위해선, 밀려오는 수치심을 덜어내기 위해선 내가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선언해야만 했다.

    

다시 거제로 돌아오자. 왜 이 책의 제목이 , 조선소 노동자이어야 하는지 분명해진다.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 사람만이 자기의 정체성을 온전하게 드러내는 법이다. 그러나 2년 전 노동절에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또한 삼성중공업 자본 측이나 산재와 치료를 담당하는 공무원들과 의료진들도 이들을 존중하지 않는다. 사건 당사자인 원청인 삼성중공업은 진짜 문자 한 통, 전화고 지랄이고 아무 것도 없었고, 노동부는 모르겠고, 노동조합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힘을 행사할 기관들, 국가 기관들이 안전에 대해서 관심을 더 가져야 할 것 같아요.”(149) 노동자들을 소모품으로 취급하고, 오로지 공기단축을 위해 투입하는 생산요소로만 생각하는 산업시스템 속에서 그들에게 노동자로서의 자부심을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무리한 일이다. 그러나 끔찍한 산업재해 현장에서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목소리를 내고 난 뒤 한동안 또 악몽에 시달리고 약을 늘려야 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상존하는 조선소 노동현장과 그날의 사고에 대해서 증언했다. 더 이상 끔찍한 사고가 노동현장에서 사라지기를, 아무 잘못 없이 죽어가는 동료가 더 이상 없기를,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힘겹게 증언하는 그들의 용기는 캔 로치의 영화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삼성중공업 조선소장, 과장, 부장, 법인 등은 1심에서 업무상과실치사상·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골리앗크레인 신호수와 보조 신호수, 조작 관계자 등에게는 금고에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 말하자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의 죽음에 책임질 사람도, 잘못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수없이 죽어도 멀쩡한 세상이다. 아무리 산재와 직업병과 노동환경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금세 꺼지고 마는 거품처럼 달아올랐던 관심은 사그라들고 만다. 우리 역시도 이러한 현실의 공범에 다름 아니었다. 사회구성원들이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현실이 되고, 기록이 되며, 힘이 될 수 있다. 세월호 투쟁에서 가장 많이 외쳤던 구호,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단순한 약속이 하나하나 모여 거대한 광장의 촛불로 타오르지 않았던가.

 

사고 난 이후 제가 가장 감동했던 때가 세월호 부모님들께서 자식 잃은 아픔 속에서도 계속 말씀하시는 걸 봤을 때예요. 그런 분들 보면서 저도 용기를 가져요.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같은 게 통과될 날이 오겠죠. 그러니 기록을 남겨야죠. 저는 살아 있으니까요. 불쌍한 제 동생의 인생이 이렇게 기록이라도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173)

 

사고 유가족인 동시에 부상자인 형의 다짐이 바로 증언 노동자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아마 누구라도 이 책의 첫 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마치 자신이 사고 현장에 있는 듯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묘사에 두근두근한 마음, 떨리는 자신의 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고 현장 곳곳에 있던 증언자들의 눈과 기억이 카메라가 되고, 구술기록자들은 전쟁의 포화에 무너져 내린 참혹한 현실을 고발하는 종군기자들처럼 꼼꼼하다. 사고현장에 대한 기록만 그렇다는 게 아니다. 그들이 각각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이곳 땅끝 거제도 삼성중공업에 흘러들어왔으며, 어떤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은 쉬는 노동절날 사고 현장으로 모여들었는지, 사고 후 그들의 말 못할 트라우마와 고민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현장에서 살아남은 구술자들은 공통적으로 환청과 환영, 불면과 짜증, 무기력과 분노표출이 지속되고 있으며, 오로지 이들 가족들과 자신 스스로가 책임지고 있다.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피해 노동자들의 구술이라고 해서 단순하게 사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사고 구술이 아니다. 우리나라 산업 시스템의 민낯을 보여주는 생생한 고발장이다.

 

초보자들이 일을 배우면 하청회사 입장에서는 돈을 더 줘야 하잖아요. 그러기 싫겠죠. 그래서 일부러 가르치지 않고 그냥 계속 숙련되지 않은 채로 두는 거예요. 구조가 정말 구려요. 초보자들은 일을 잘 모르니까 더 느려지고 더 위험해지고요. (37)

 

그런 게 얄미운 거예요. 말로는 안전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납기일에 쫓긴다 싶으면 위에서 용접하고 밑에서는 페인트 바르고, 그러다 사고 나면 일하는 너그들 책임이다 하고. 우리가 페인트 바르려고 오는데 용접하고 있으면 작업자들끼리 싸워요. 위에서 이렇게 지시를 내려놓고는. 일은 꿀벌들이 하고 꿀 먹는 놈은 삼성이고. (239~241)

 

조선소 일을 ‘3D 업종이라고 하잖아요. 이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요. 크레인 일, 조선소 일, 더럽고 시끄럽고 위험한 걸 바꾸려고 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젖어 들어서 당연하다 생각하는 거예요. (98)

 

사내하청과 물량팀, 돌관작업, 혼재작업, 계절노동, 이주노동 등을 담당했던 그 현장의 노동자들이 생생하게 온몸으로 견뎌 내면서 보고 겪었던 산업현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끔찍하고, 상상했던 것보다 더 뿌리 깊게 비인간성이 착근되어 있다. 왜 끔찍한 사고 이후에도 삼성중공업에서, 대우조선해양에서, STX에서 똑같은 사고가 반복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구조가 기록되어 있다.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제대로 몰랐던 진실……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무뎌짐과 오만함이, 혹여 노동자들의 죽음을 방조한 것은 아닐까묻는 기획자의 질문이 아리게 다가온다. 조선소를 일종의 막장이라 부르고, 세상의 끝이라 부르지만, 또 한편으론 산업의 최전선이다. 서울과 대척점에 선 그곳. 다수인 수도권의, 젊은, 비생산직 인구는 상상할 수 없는 산업현실. 그리고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날이 무뎌져 버린노동운동. 과연 이런 책이 80년대 나왔다면 어떤 파장을 불러왔을까? 이미 87년이 40년도 넘게 흘렀는데 과연 노동산업현장이 좋아졌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경상남도와 국립민속박물관이 2013년도에 펴낸 <조선소 도시, 거제>에는 이런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이 없다. 이미 당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비율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산업재해 역시 여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노동자들의 현실은 아직 과거가 되지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626) 여영국 의원실 주최로 국회에서는 , 조선소 노동자북 콘서트가 열린다. 고 노회찬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입법화하기 위한 활동도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2001~2017년 매년 평균 2,366명이 일하다 목숨을 잃었으며, 한국의 산재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로 일본, 독일의 5배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피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 뿌리 깊게 착근되어 있다고 해서 뿌리 뽑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병든 사회에서, 병든 현장에서 몸과 마음의 병을 얻은 노동자, 그러나 그 노동자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또한 현장과 사회를 바꾸기 위해 나섰다.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낸 용기 있는 증언은 무뎌진 우리에게도 용기를 주고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자료>

-몸은 사회를 기록한다/시민건강연구소/낮은산/20187/14,000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피해노동자 지원단 활동보고서/마틴링게프로젝트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피해노동자 지원단/2019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 사고조사보고서/20188/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

조선소 일을 ‘3D 업종’이라고 하잖아요. 이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요. 크레인 일, 조선소 일, 더럽고 시끄럽고 위험한 걸 바꾸려고 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젖어 들어서 당연하다 생각하는 거예요. - P98

그런 게 얄미운 거예요. 말로는 안전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납기일에 쫓긴다 싶으면 위에서 용접하고 밑에서는 페인트 바르고, 그러다 사고 나면 일하는 너그들 책임이다 하고. 우리가 페인트 바르려고 오는데 용접하고 있으면 작업자들끼리 싸워요. 위에서 이렇게 지시를 내려놓고는. 일은 꿀벌들이 하고 꿀 먹는 놈은 삼성이고. - P239

초보자들이 일을 배우면 하청회사 입장에서는 돈을 더 줘야 하잖아요. 그러기 싫겠죠. 그래서 일부러 가르치지 않고 그냥 계속 숙련되지 않은 채로 두는 거예요. 구조가 정말 구려요. 초보자들은 일을 잘 모르니까 더 느려지고 더 위험해지고요. - P37

사고 난 이후 제가 가장 감동했던 때가 세월호 부모님들께서 자식 잃은 아픔 속에서도 계속 말씀하시는 걸 봤을 때예요. 그런 분들 보면서 저도 용기를 가져요.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같은 게 통과될 날이 오겠죠. 그러니 기록을 남겨야죠. 저는 살아 있으니까요. 불쌍한 제 동생의 인생이 이렇게 기록이라도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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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 산업도시 거제, 빛과 그림자 질문의 책 22
양승훈 지음 / 오월의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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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통권51호(2019년3월)

책담(冊談)

‘조선소 3부작’을 통해 본 갈림길에 선 조선산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양승훈/오월의봄/2019년1월/16,900원

《현대조선 잔혹사》/허환주/후마니타스/2016년5월/15,000원

 

《누운 배》/이혁진/한겨레출판/2016년7월/13,000원

 

 

 

양솔규(편집위원장)

 

 

조선산업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2018년 3분기 조선업 일자리는 2017년과 비교해 1만5천개나 감소했다. 경남 지역으로 보면, 성동조선은 860여명 중 700명이 무급휴직을 진행 중이며, STX조선은 500명이 무급휴직 중이다. 또한 RG(선수금지급보증·Refund Guarantee) 발급이 미뤄지고 있다. 이에 더해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이 인수하기로 결정하면서 지역경제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조선산업은 IMF 구제금융 당시 수출에 있어 일익을 담당하면서 경제위기의 충격을 극복하게 해준 효자산업이었다. 더군다나 조선산업은 고용지수가 매우 높은 조립산업으로서 실업에 빠진 국민경제의 충격을 완충지대가 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 경제의 비약적 발전에 힘입어 최대 호황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호시절은 지나갔고 침체는 지속되고 있다.

조선산업 위기는 한국 제조업, 더 나아가 한국 경제의 위기이기도 하다. 보수언론, 그리고 수도권의 젊은 연령대를 중심으로 조선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산업은 동남권 경제, 더 나아가 수출의존적인 한국 경제에 여전히 중요한 산업이다.

어떤 산업이든 좋은 날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예측이 가능해야 하고, 먹고 살 수는 있어야 한다. 사람의 생사가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걸 잘 하라고 경영진이 있는 것이고,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조선업 구조조정은 반대의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사람을 산업폐기물 취급”하며 공장에서, 시장에서, 지역에서 내몰고 있다.

통계청이 2018년 8월에 발표한 2018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특별시, 광역시 제외조사) 결과를 보면 경남 거제가 7%로 가장 높고, 경남 통영이 6.2%(2013년 하반기엔 1.2%였다.)로 2위를 기록했다. 군산도 4.1%에 달했다. 2018년 4월 울산의 실업률은 5.9%로 전년 동월에 비해 2.3% 증가했다. 고용위기가 닥치면서 지역을 떠난 인구를 감안한다면 조사된 실업률도 현실에 비해선 그나마 양호한 결과일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고용위기, 산업위기가 가져온 고통을 노동자들에게만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많은 사무관리직 노동자들이 회사를 떠났고, 생산직의 경우 주로 공정 지연 일정을 만회하기 위해 투입되는 ‘돌관 작업’(돌파해 관철)을 맡았던 이른바 ‘물량팀’이 제일 먼저 제거되고, 본공(사내하청 정규직)이 그 다음이다. 원청은 일종의 공사대금인 일명 ‘기성금’을 후려치기 하고, 적자에 시달리는 하청업체 사장은 야반도주하기도 하고, 체불임금으로 줄소송 당하기도 한다. 중소조선소의 경우 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무급휴직의 터널 속에 놓여 있다. 중소조선소의 몰락은 하청업체, 선박설계업체, 선박기자재 업체 등 조선업 생태계의 동반몰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빅3 더 나아가 빅2(현대, 삼성)로의 집중이 정답인 양 몰아가고 있지만, 지역경제와 조선산업의 다변화를 생각한다면 강도 높은 구조조정만이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연착륙’과 생태계를 보전하는 입체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2016년에 나온 《현대조선 잔혹사》(허환주)와 2019년에 발간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양승훈)은 조선산업에 대한 냉철한 관찰기이다. 그런데 관찰대상과 방향성이 약간 다르다. 프레시안 기자인 허환주는 2012년 창원의 작은 조선소에 위장 취업해 12일을 버텼다. 노가다와는 차원이 다른, ‘생명을 위협’하는 조선소를 경험한 기자는 6년여 간의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조선산업 노동자들에 대한 취재의 결과를 자신의 경험과 버무려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냈다. 제목이 시사하듯이 조선소의 위험한 작업환경, 산재를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과 가족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깨지는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또다른 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쓴 양승훈은 대우조선에서 5년간 사무관리직으로 근무하고 지금은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산업에 대한 거시적 관찰과 전망, 조선산업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중공업 가족’의 형성과 해체, ‘중공업 가족’의 외부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2001년 사상 최초 수주량 세계 1위를 차지했던 한국 조선산업. 2008년에는 전 세계 상위 10대 조선소 중 7개가 한국 회사였다. 호시절은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끝이 났다. 무역물동량이 줄어들었고, 수주량이 급감했다. 더군다나 2000년대는 한국 조선소들이 호황기를 맞아 대거 설비를 늘려갔고, 중국 조선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본 조선소들도 조선산업에 대한 기존의 회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재생을 추진하고 있었다. 경쟁이 격화되는 것은 당연했다. 조선산업 설비투자 과잉은 선박공급 과잉을 낳았다. 중국경제 등으로 인한 선박 수요와 물동량의 증가보다 더 많은 생산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신원철, 2017)

 

 
2010년대 조선소들은 해양플랜트를 새로운 먹거리로 삼고자 했다. 유가가 상승하면서 엑슨 모빌 등 초국적 에너지 회사들이 심해유전을 개발하기 위해 시추선 등 해양플랜트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현대, 대우, 삼성 Big 3는 무작정 해양플랜트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조선과는 다르게 해양플랜트의 80%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담당하게 되었다. 자연히 사내하청 비율은 급속도로 늘어났다.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숙련도가 떨어지는 사내하청 노동자, 그리고 일천한 경험, 높은 외국자재 비중, 낮은 마진의 조건 속에 도전한 해양플랜트 제조는 쉽지 않았다. 내부를 ‘잘 비우는’ 것이 중요한 조선과 내부를 ‘잘 채우는’ 해양플랜트는 성격이 매우 다른 공정이었다. 공기는 길어지고, 그만큼 부담해야 할 추가비용은 늘어났다. 계약금 20%를 먼저 받고, 나머지 80%를 마지막 인도 시에 한꺼번에 받는 해양플랜트의 헤비테일(heavytail) 결제 방식과 럼섬-턴키(Lump sum-turn key, 일괄도급 계약) 방식도 위기를 부추겼다. 유가의 급락으로 인한 고객사들의 인수 연기는 엎질러진 기름에 불을 댕기는 격이었다. ‘배움’과 ‘성장’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해양플랜트의 실패는 조선업 전체의 구조조정의 도화선이 되었고, 크나큰 실패로 귀결되고 만다.

 

그리고 이러한 조선업의 실패에는 노사의 암묵적인 담합이 존재한다. 두 책 모두 언급하듯이, 2000년대 이후 원청 정규직들의 암묵적인 또는 공식적인 묵인 하에 사내하청과 물량팀은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현장 대의원들과 현장 생산관리팀 사이에서…(이루어진) 사내하청의 확대는 정규직 노조에서 나타난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노사담합’이 만들어 낸 결과”라는 것이다. 조선산업을 이끌었던 직접생산을 담당하던 정규직들은 생산 지원 업무로 많이 빠지기를 원했다. 산재 이후 현장복귀 시 조합원은 생산 지원 업무를 택했고, 노조는 이를 도왔다. 자연히 위험하고 힘든 일은 하청 노동자들이 맡게 되었다. 회사 역시 노무관리상의 이유로 쉽게 통제하고 쉽게 수량을 조절할 수 있는 사내하청을 활용하고자 했다. 한진중공업을 보자면, 2008년 정규직 노동자 1,385명, 사내하청 노동자 3,652명 이었다. 2010년 정규직 1,093명, 사내하청 2036명으로 –1,616명이 사라졌다. 2011년 말 정규직 770명, 비정규직 501명, 2012년 말 비정규직 0명이 된다. 희망버스운동이 벌어졌던 2011년 전후로 비정규직 규모는 계속 꾸준히 줄어들고 있었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읽다보면 저자의 의견에 갸우뚱 하는 부분도 있다. 저자는 “만약 생산직과 엔지니어 둘 중 한쪽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질문하는데 후자에 기울어진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동의의 정도는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그리고 노동운동사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대우조선노조가 금속노조와 전노협 창립을 주도했다는 언급 등) 그럼에도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강점은 조선산업의 위기를 입체적으로 살핀다는 데 있다. 노동자 숙련문제와 인력배치의 문제, 임금체계의 문제, 기자재업체, 설계 업체 등 조선업종 생태계 전반에 대한 관찰이 녹아 있다. 무엇보다 조선산업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새겨들어야 할 거 같다. 근거없는 낙관주의는 결국 위기를 반복하게 할 뿐이다. 해양플랜트 수주 과정에서 드러난 실책들은 한국 조선산업이 반복해서 곱씹어야 할 반면교사가 되어야 한다.

《현대조선 잔혹사》는 2016년에 나온 책이다. 더구나 2012년에 저자가 12일간 위장취업을 한 경험을 생각한다면 꽤 시간이 지난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조선산업 노동자들이 마주했던 암울한 현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비인간적 처우와 폭력적인 갑질을 보다 보면 매일매일 ‘PD수첩’을 찍고 있는 조선노동자들의 현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전체 산업의 미래를 보더라도 이러한 ‘아래로의 경주’가 조선산업의 토대를 갉아먹고 있다. 물량팀과 사내하청의 활용은 결국 노동자 숙련의 결핍을 가져왔고, 체질을 허약하게 만들었다.

조선산업의 위기는 당장 ‘인력 유출’을 야기하고 있다. 지금 현재는 LNG 선박 제조에 있어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있다고 하지만, 중소조선소가 대거 정리되면서 설계 등을 담당했던 핵심 엔지니어들의 중국 기업으로의 취업이 가속화되고 있다. 또한 2015년 이후 가장 먼저 이탈한 사람들은 “구조조정이 목표물로 삼은 근속 20년 이상의 사무직 시니어들이 아니라, 근속 10년 이내의 대리, 과장 이하 직급의 사무직 주니어층”이었다. 특히 수도권 출신 직원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로 이직했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조선산업의 ‘핵심인력’을 잘 지켜내고, 새로운 인력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 숙고하지 않으면 설사 호황기가 오더라도 기회를 잡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누운 배》는 이혁진 작가가 써서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중국으로 이전한 한국의 중형조선소이다. 소설의 도입은 진수식을 마친 배가 누우면서 시작한다. 이후 회사는 원칙이 무너지고, 편법과 무사안일이 지배한다. 그러다 신임 황철주 사장이 부임하면서 조선소의 분위기는 180도 바귄다. 나머지는 스포일러가 될까봐 생략한다.

카뮈는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희망을 잃었다고 해서 반드시 절망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근거없는 낙관주의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삶이 지속되는 한 자포자기할 수만은 없다. 최근 빅3의 수주량이 조금 늘어난다고 해서 예전으로 돌아갈 수만은 없다. 양승훈 저자의 논지를 빌리자면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는 깨져 버렸다. ‘대우가족’, ‘또하나의 가족’에서 배제된 생산직 노동자들, 사냥이 끝나자 버려진 사냥개가 되어버린 사무관리직 노동자들, 호황이 끝나자 끊어진 원하청 관계는 조선산업 내 ‘신뢰’를 무너뜨렸다. 결국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조선산업 내 사회적 주체 간에 새로운 규율과 신뢰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장, 일방적으로 한쪽에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공평하게 분담하는 관행, 장기적 전망을 담보할 수 있는 당사자들간의 진지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함께 보면 좋은 자료>

-KBS 추적60분 1236회 <무너지는 조선업, 한국판 러스트벨트의 경고>(2017년2월15일)

-다큐멘터리 <땐뽀걸즈>, 2017년, 이승문 감독

-“해운 및 조선산업의 금융화와 과잉투자”, 신원철,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2017년 상반기(통권 31호)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흥청망청‘ 서사는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도시를 섬세하게 들여다보기도 전에 비하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선은 도시와 시민들을 살아 있지도 죽지도 않은 ‘좀비‘로 만들 따름이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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