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산업 위기는 한국 제조업, 더 나아가 한국 경제의 위기이기도 하다. 보수언론, 그리고 수도권의 젊은 연령대를 중심으로 조선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산업은 동남권 경제, 더 나아가 수출의존적인 한국 경제에 여전히 중요한 산업이다.
어떤 산업이든 좋은 날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예측이 가능해야 하고, 먹고 살 수는 있어야 한다. 사람의 생사가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걸 잘 하라고 경영진이 있는 것이고,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조선업 구조조정은 반대의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사람을 산업폐기물 취급”하며 공장에서, 시장에서, 지역에서 내몰고 있다.
통계청이 2018년 8월에 발표한 2018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특별시, 광역시 제외조사) 결과를 보면 경남 거제가 7%로 가장 높고, 경남 통영이 6.2%(2013년 하반기엔 1.2%였다.)로 2위를 기록했다. 군산도 4.1%에 달했다. 2018년 4월 울산의 실업률은 5.9%로 전년 동월에 비해 2.3% 증가했다. 고용위기가 닥치면서 지역을 떠난 인구를 감안한다면 조사된 실업률도 현실에 비해선 그나마 양호한 결과일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고용위기, 산업위기가 가져온 고통을 노동자들에게만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많은 사무관리직 노동자들이 회사를 떠났고, 생산직의 경우 주로 공정 지연 일정을 만회하기 위해 투입되는 ‘돌관 작업’(돌파해 관철)을 맡았던 이른바 ‘물량팀’이 제일 먼저 제거되고, 본공(사내하청 정규직)이 그 다음이다. 원청은 일종의 공사대금인 일명 ‘기성금’을 후려치기 하고, 적자에 시달리는 하청업체 사장은 야반도주하기도 하고, 체불임금으로 줄소송 당하기도 한다. 중소조선소의 경우 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무급휴직의 터널 속에 놓여 있다. 중소조선소의 몰락은 하청업체, 선박설계업체, 선박기자재 업체 등 조선업 생태계의 동반몰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빅3 더 나아가 빅2(현대, 삼성)로의 집중이 정답인 양 몰아가고 있지만, 지역경제와 조선산업의 다변화를 생각한다면 강도 높은 구조조정만이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연착륙’과 생태계를 보전하는 입체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2016년에 나온 《현대조선 잔혹사》(허환주)와 2019년에 발간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양승훈)은 조선산업에 대한 냉철한 관찰기이다. 그런데 관찰대상과 방향성이 약간 다르다. 프레시안 기자인 허환주는 2012년 창원의 작은 조선소에 위장 취업해 12일을 버텼다. 노가다와는 차원이 다른, ‘생명을 위협’하는 조선소를 경험한 기자는 6년여 간의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조선산업 노동자들에 대한 취재의 결과를 자신의 경험과 버무려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냈다. 제목이 시사하듯이 조선소의 위험한 작업환경, 산재를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과 가족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깨지는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또다른 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쓴 양승훈은 대우조선에서 5년간 사무관리직으로 근무하고 지금은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산업에 대한 거시적 관찰과 전망, 조선산업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중공업 가족’의 형성과 해체, ‘중공업 가족’의 외부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2001년 사상 최초 수주량 세계 1위를 차지했던 한국 조선산업. 2008년에는 전 세계 상위 10대 조선소 중 7개가 한국 회사였다. 호시절은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끝이 났다. 무역물동량이 줄어들었고, 수주량이 급감했다. 더군다나 2000년대는 한국 조선소들이 호황기를 맞아 대거 설비를 늘려갔고, 중국 조선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본 조선소들도 조선산업에 대한 기존의 회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재생을 추진하고 있었다. 경쟁이 격화되는 것은 당연했다. 조선산업 설비투자 과잉은 선박공급 과잉을 낳았다. 중국경제 등으로 인한 선박 수요와 물동량의 증가보다 더 많은 생산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신원철,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