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 산업도시 거제, 빛과 그림자 질문의 책 22
양승훈 지음 / 오월의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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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통권51호(2019년3월)

책담(冊談)

‘조선소 3부작’을 통해 본 갈림길에 선 조선산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양승훈/오월의봄/2019년1월/16,900원

《현대조선 잔혹사》/허환주/후마니타스/2016년5월/15,000원

 

《누운 배》/이혁진/한겨레출판/2016년7월/13,000원

 

 

 

양솔규(편집위원장)

 

 

조선산업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2018년 3분기 조선업 일자리는 2017년과 비교해 1만5천개나 감소했다. 경남 지역으로 보면, 성동조선은 860여명 중 700명이 무급휴직을 진행 중이며, STX조선은 500명이 무급휴직 중이다. 또한 RG(선수금지급보증·Refund Guarantee) 발급이 미뤄지고 있다. 이에 더해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이 인수하기로 결정하면서 지역경제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조선산업은 IMF 구제금융 당시 수출에 있어 일익을 담당하면서 경제위기의 충격을 극복하게 해준 효자산업이었다. 더군다나 조선산업은 고용지수가 매우 높은 조립산업으로서 실업에 빠진 국민경제의 충격을 완충지대가 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 경제의 비약적 발전에 힘입어 최대 호황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호시절은 지나갔고 침체는 지속되고 있다.

조선산업 위기는 한국 제조업, 더 나아가 한국 경제의 위기이기도 하다. 보수언론, 그리고 수도권의 젊은 연령대를 중심으로 조선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산업은 동남권 경제, 더 나아가 수출의존적인 한국 경제에 여전히 중요한 산업이다.

어떤 산업이든 좋은 날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예측이 가능해야 하고, 먹고 살 수는 있어야 한다. 사람의 생사가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걸 잘 하라고 경영진이 있는 것이고,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조선업 구조조정은 반대의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사람을 산업폐기물 취급”하며 공장에서, 시장에서, 지역에서 내몰고 있다.

통계청이 2018년 8월에 발표한 2018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특별시, 광역시 제외조사) 결과를 보면 경남 거제가 7%로 가장 높고, 경남 통영이 6.2%(2013년 하반기엔 1.2%였다.)로 2위를 기록했다. 군산도 4.1%에 달했다. 2018년 4월 울산의 실업률은 5.9%로 전년 동월에 비해 2.3% 증가했다. 고용위기가 닥치면서 지역을 떠난 인구를 감안한다면 조사된 실업률도 현실에 비해선 그나마 양호한 결과일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고용위기, 산업위기가 가져온 고통을 노동자들에게만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많은 사무관리직 노동자들이 회사를 떠났고, 생산직의 경우 주로 공정 지연 일정을 만회하기 위해 투입되는 ‘돌관 작업’(돌파해 관철)을 맡았던 이른바 ‘물량팀’이 제일 먼저 제거되고, 본공(사내하청 정규직)이 그 다음이다. 원청은 일종의 공사대금인 일명 ‘기성금’을 후려치기 하고, 적자에 시달리는 하청업체 사장은 야반도주하기도 하고, 체불임금으로 줄소송 당하기도 한다. 중소조선소의 경우 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무급휴직의 터널 속에 놓여 있다. 중소조선소의 몰락은 하청업체, 선박설계업체, 선박기자재 업체 등 조선업 생태계의 동반몰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빅3 더 나아가 빅2(현대, 삼성)로의 집중이 정답인 양 몰아가고 있지만, 지역경제와 조선산업의 다변화를 생각한다면 강도 높은 구조조정만이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연착륙’과 생태계를 보전하는 입체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2016년에 나온 《현대조선 잔혹사》(허환주)와 2019년에 발간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양승훈)은 조선산업에 대한 냉철한 관찰기이다. 그런데 관찰대상과 방향성이 약간 다르다. 프레시안 기자인 허환주는 2012년 창원의 작은 조선소에 위장 취업해 12일을 버텼다. 노가다와는 차원이 다른, ‘생명을 위협’하는 조선소를 경험한 기자는 6년여 간의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조선산업 노동자들에 대한 취재의 결과를 자신의 경험과 버무려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냈다. 제목이 시사하듯이 조선소의 위험한 작업환경, 산재를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과 가족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깨지는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또다른 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쓴 양승훈은 대우조선에서 5년간 사무관리직으로 근무하고 지금은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산업에 대한 거시적 관찰과 전망, 조선산업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중공업 가족’의 형성과 해체, ‘중공업 가족’의 외부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2001년 사상 최초 수주량 세계 1위를 차지했던 한국 조선산업. 2008년에는 전 세계 상위 10대 조선소 중 7개가 한국 회사였다. 호시절은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끝이 났다. 무역물동량이 줄어들었고, 수주량이 급감했다. 더군다나 2000년대는 한국 조선소들이 호황기를 맞아 대거 설비를 늘려갔고, 중국 조선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본 조선소들도 조선산업에 대한 기존의 회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재생을 추진하고 있었다. 경쟁이 격화되는 것은 당연했다. 조선산업 설비투자 과잉은 선박공급 과잉을 낳았다. 중국경제 등으로 인한 선박 수요와 물동량의 증가보다 더 많은 생산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신원철, 2017)

 

 
2010년대 조선소들은 해양플랜트를 새로운 먹거리로 삼고자 했다. 유가가 상승하면서 엑슨 모빌 등 초국적 에너지 회사들이 심해유전을 개발하기 위해 시추선 등 해양플랜트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현대, 대우, 삼성 Big 3는 무작정 해양플랜트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조선과는 다르게 해양플랜트의 80%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담당하게 되었다. 자연히 사내하청 비율은 급속도로 늘어났다.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숙련도가 떨어지는 사내하청 노동자, 그리고 일천한 경험, 높은 외국자재 비중, 낮은 마진의 조건 속에 도전한 해양플랜트 제조는 쉽지 않았다. 내부를 ‘잘 비우는’ 것이 중요한 조선과 내부를 ‘잘 채우는’ 해양플랜트는 성격이 매우 다른 공정이었다. 공기는 길어지고, 그만큼 부담해야 할 추가비용은 늘어났다. 계약금 20%를 먼저 받고, 나머지 80%를 마지막 인도 시에 한꺼번에 받는 해양플랜트의 헤비테일(heavytail) 결제 방식과 럼섬-턴키(Lump sum-turn key, 일괄도급 계약) 방식도 위기를 부추겼다. 유가의 급락으로 인한 고객사들의 인수 연기는 엎질러진 기름에 불을 댕기는 격이었다. ‘배움’과 ‘성장’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해양플랜트의 실패는 조선업 전체의 구조조정의 도화선이 되었고, 크나큰 실패로 귀결되고 만다.

 

그리고 이러한 조선업의 실패에는 노사의 암묵적인 담합이 존재한다. 두 책 모두 언급하듯이, 2000년대 이후 원청 정규직들의 암묵적인 또는 공식적인 묵인 하에 사내하청과 물량팀은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현장 대의원들과 현장 생산관리팀 사이에서…(이루어진) 사내하청의 확대는 정규직 노조에서 나타난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노사담합’이 만들어 낸 결과”라는 것이다. 조선산업을 이끌었던 직접생산을 담당하던 정규직들은 생산 지원 업무로 많이 빠지기를 원했다. 산재 이후 현장복귀 시 조합원은 생산 지원 업무를 택했고, 노조는 이를 도왔다. 자연히 위험하고 힘든 일은 하청 노동자들이 맡게 되었다. 회사 역시 노무관리상의 이유로 쉽게 통제하고 쉽게 수량을 조절할 수 있는 사내하청을 활용하고자 했다. 한진중공업을 보자면, 2008년 정규직 노동자 1,385명, 사내하청 노동자 3,652명 이었다. 2010년 정규직 1,093명, 사내하청 2036명으로 –1,616명이 사라졌다. 2011년 말 정규직 770명, 비정규직 501명, 2012년 말 비정규직 0명이 된다. 희망버스운동이 벌어졌던 2011년 전후로 비정규직 규모는 계속 꾸준히 줄어들고 있었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읽다보면 저자의 의견에 갸우뚱 하는 부분도 있다. 저자는 “만약 생산직과 엔지니어 둘 중 한쪽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질문하는데 후자에 기울어진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동의의 정도는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그리고 노동운동사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대우조선노조가 금속노조와 전노협 창립을 주도했다는 언급 등) 그럼에도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강점은 조선산업의 위기를 입체적으로 살핀다는 데 있다. 노동자 숙련문제와 인력배치의 문제, 임금체계의 문제, 기자재업체, 설계 업체 등 조선업종 생태계 전반에 대한 관찰이 녹아 있다. 무엇보다 조선산업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새겨들어야 할 거 같다. 근거없는 낙관주의는 결국 위기를 반복하게 할 뿐이다. 해양플랜트 수주 과정에서 드러난 실책들은 한국 조선산업이 반복해서 곱씹어야 할 반면교사가 되어야 한다.

《현대조선 잔혹사》는 2016년에 나온 책이다. 더구나 2012년에 저자가 12일간 위장취업을 한 경험을 생각한다면 꽤 시간이 지난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조선산업 노동자들이 마주했던 암울한 현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비인간적 처우와 폭력적인 갑질을 보다 보면 매일매일 ‘PD수첩’을 찍고 있는 조선노동자들의 현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전체 산업의 미래를 보더라도 이러한 ‘아래로의 경주’가 조선산업의 토대를 갉아먹고 있다. 물량팀과 사내하청의 활용은 결국 노동자 숙련의 결핍을 가져왔고, 체질을 허약하게 만들었다.

조선산업의 위기는 당장 ‘인력 유출’을 야기하고 있다. 지금 현재는 LNG 선박 제조에 있어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있다고 하지만, 중소조선소가 대거 정리되면서 설계 등을 담당했던 핵심 엔지니어들의 중국 기업으로의 취업이 가속화되고 있다. 또한 2015년 이후 가장 먼저 이탈한 사람들은 “구조조정이 목표물로 삼은 근속 20년 이상의 사무직 시니어들이 아니라, 근속 10년 이내의 대리, 과장 이하 직급의 사무직 주니어층”이었다. 특히 수도권 출신 직원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로 이직했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조선산업의 ‘핵심인력’을 잘 지켜내고, 새로운 인력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 숙고하지 않으면 설사 호황기가 오더라도 기회를 잡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누운 배》는 이혁진 작가가 써서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중국으로 이전한 한국의 중형조선소이다. 소설의 도입은 진수식을 마친 배가 누우면서 시작한다. 이후 회사는 원칙이 무너지고, 편법과 무사안일이 지배한다. 그러다 신임 황철주 사장이 부임하면서 조선소의 분위기는 180도 바귄다. 나머지는 스포일러가 될까봐 생략한다.

카뮈는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희망을 잃었다고 해서 반드시 절망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근거없는 낙관주의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삶이 지속되는 한 자포자기할 수만은 없다. 최근 빅3의 수주량이 조금 늘어난다고 해서 예전으로 돌아갈 수만은 없다. 양승훈 저자의 논지를 빌리자면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는 깨져 버렸다. ‘대우가족’, ‘또하나의 가족’에서 배제된 생산직 노동자들, 사냥이 끝나자 버려진 사냥개가 되어버린 사무관리직 노동자들, 호황이 끝나자 끊어진 원하청 관계는 조선산업 내 ‘신뢰’를 무너뜨렸다. 결국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조선산업 내 사회적 주체 간에 새로운 규율과 신뢰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장, 일방적으로 한쪽에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공평하게 분담하는 관행, 장기적 전망을 담보할 수 있는 당사자들간의 진지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함께 보면 좋은 자료>

-KBS 추적60분 1236회 <무너지는 조선업, 한국판 러스트벨트의 경고>(2017년2월15일)

-다큐멘터리 <땐뽀걸즈>, 2017년, 이승문 감독

-“해운 및 조선산업의 금융화와 과잉투자”, 신원철,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2017년 상반기(통권 31호)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흥청망청‘ 서사는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도시를 섬세하게 들여다보기도 전에 비하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선은 도시와 시민들을 살아 있지도 죽지도 않은 ‘좀비‘로 만들 따름이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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