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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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 없는 길을 간다!  <더 로드 the Road>(코맥 매카시,2008, 문학동네)

 

양솔규 블로그 : http://blog.naver.com/dohwasun

 

 

지루하다. 아버지와 아들의 기나긴 여정은.

식인의 추적을 피해 가고자 하는 고단한 여정은 당연히 조우를 배제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완전히 파괴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한다. 그러나 그 탈출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막연히 남쪽, 바다를 상상할 뿐이다.

하지만 그 바다는 최종적으로 검은 절망을 안겨준다.

아버지는 죽는다.

아들은 살아남아 다른 어느 가족과 다시 여정을 시작한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최근의 영화와 소설 등에서 다루는 '파괴 이후'를 다루는 그 흐름에 같이 서 있다.

 

영화 <해프닝>,<나는 전설이다> 등과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와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더이상 80-90년대 식으로 세상의 종말을 막고자 하는 과정을 영웅을 등장시켜 그리지 않는다.

역자가 지적하듯이 <더 로드> 역시 배경이 세계가 완전히 파괴되는 '과정 자체'가 아니라, 파괴된 '이후'의 세계이다.

무엇이 이러한 끔찍한 묵시록적 상황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러한 '과감한 생략'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바는 과거미래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다.

 

그 결말 역시 희망적으로 말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이 책의 결론, 식인을 하지 않는,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을 만난다는 이유만으로 희망을 말할 수는 없다. 마치, 영화 <미션>에서 탈출을 감행하는 원주민 아이들로 제국주의에 대한 '희망'을 얘기하는 것은 부족한 것과 같다. 더군다나 이 새로운 가족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역시 불명확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길에서 만난 노인이 말한다.

 

이런 때에는 말을 적게 할수록 더 좋은 거요. 무슨 일이 일어났지만 우리가 살아남아 길에서 만난 거라면 우리는 할 말이 있을 거요. 하지만 우린 살아 남은 게 아니오. 그러니까 우린 할 말이 없소.(195쪽)

 

바로 이것이 파괴된 세계의 진정한 비극이다. 살아 남았으되, 살아 남은 것이 아니라는 점.

주제 사라마구의 <죽음의 중지>는 이 문제에 대해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쨌든 2005년과 2006년 1년 상간으로 나온 현 시대를 대표하는 미국의 작가와 포르투갈의 작가가

완벽하게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공통적으로 인식한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침내 우리가 모두 사라지면 여기에는 죽음 말고는 아무도 없을 거고 죽음도 얼마 가지는 못할 거요. 죽음이 길에 나서도 할 일이 없겠지. 어떻게 해볼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죽음은 이럴 거요. 다들 어디로 갔지? 그렇게 될 거요. (197쪽)

 

 

주제 사라마구나 코맥 매카시가 보여주는 바는 소설의 스케일이 단순히 책의 두께나 등장인물의 수로 켜켜이 쌓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소설이 상상력의 산물인 만큼, 독자의 상상력과 작가의 상상력이 만나 발휘되는 증폭되는 것 같다. 또한 소재의 묵직함 역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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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은 후 영화 <더 로드>를 보았다.

책 표지에 등장인물 사진이 있었기 때문에 상상한 정도의 그림이 나왔다.

아버지 역할을 맡은 '비고 모르텐슨'은 체중감량과 수염 때문에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반지의 제왕>에 나온 아라곤이더라.

요즘 읽고 있는 주제 사라마구의 <돌뗏목>에 보니, 아라곤은 또한 스페인의 북동부 지방 명칭이기도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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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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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감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 알랭 드 보통 

 

얼마 전 교보문고에 갔다가 본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가 누나 집에 놓여 있다.
맵싸한 겨울 바람을 이겨내고 누나 집에 오자 책이 있다.
빵집아저씨가 줬나보다.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이 영국 런던의 항공 허브인 '히드로 공항'에서 일주일동안 취재를 한 결과물이다.

책의 한 쪽엔 공항에서 벌어진 사진, 책의 다른 한 쪽엔 취재글이 놓여 있다.
다시 말하면, 총 200쪽 중 사진 100쪽, 글 100쪽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쉽게 술술 넘어간다.
마치 공항을 지나치는 여행자들의 발걸음처럼 말이다.
책으로 보는 영국판 <다큐멘터리 3일> 정도라고나 할까? 

이 책은 마치 여행자의 시간적 흐름을 쫓아가듯 구성되어 있다.

1. 접근, 2. 출발, 3. 게이트 너머, 4. 도착

 그러나 다시 발걸음은 공항으로 이어지게 된다...
역자 정영목은 그러나 그 것이 단순한 환원이 아니며, '상승 나선운동'이라 정의한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는 점차 행복을 이곳이 아닌 다른 곳(예를 들어 프랑스)과 동일시하는 일로 돌아간다...
(다시)우리는 짐을 싸고, 희망을 품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 욕구를 회복한다.
곧 다시 돌아가 공항의 중요한 교훈들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205쪽)

라고 말한다.

하지만, 다시 우리는 현실, 즉 발딛는 곳으로 또다시 올 것이다. 
지금 발레오 공조 노동자들은 먹튀자본과의 투쟁을 위해 프랑스에 가 있다.
CFDT를 비롯한 프랑스 노동조합들이 결합했다고 한다. 국제연대의 정신이다.
그들은 다시 파리 드골 공항을 통해, 혹 또다른 나리타공항 등을 추가로 경유해서 귀국길에 오를 지 모른다.
수많은 사연들이 공항에 있다. 그들에게 출국과 귀국은 어떤 의미일까?
결단이다. 삶의 진전을 위한 결단, 가족의 행복을 위한 결단이었을 것이다.
 

"결단의 전조로서의 여행이라는 개념은 한때 종교적 순례의 핵심적인 요소였다.
순례는 내적 진화를 촉진하고 강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 모든 것이 이 답사를 쉽게 잊지 못하도록 도와주는 시련에 불과했다.
(201쪽)

 
그 뿐만이겠는가? 이주 노동자의 피눈물나는 귀향이 있고,
사랑하는 연인의 애닮은 이별이 있고,
부모 자식간 이별과 만남이 있을 것이다.
바로 '각 사람의 지위와 그에 따른 불안'이 드러나는 곳이다.
 

"터미널이라는 살아 있는 혼돈의 실체에 비하면 책이란 얼마나 얌전하고 정적인 것이냐"
(83쪽)

라고 저자는 반문한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가 네로 황제를 위하여 쓴 '분노에 관하여'라는 논문,
그 중에서도 특히 분노의 뿌리는 희망이라는 명제가 떠올랐다.
(57쪽)

 
이 글을 보며 소위 87년의 항쟁과, 87년 노동자대투쟁의 발생 원인을 생각하게 한다.
분노의 뿌리인 '희망'이 그 시대엔 응축되고 폭발력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과연 지금의 20대들, 소위 88만원 세대들에게 희망이란 존재하는가?
위의 명제를 뒤집으면 '희망이 없으면 분노도 없다'가 된다.
희망은 단순한 개인 감정의 창조물이 아니라, 사회적 과정의 결과이다.
역설적이다. 희망은 지극히 주관적 감정이지만 사회 속 형성을 거쳐여만 하기에 그렇다.

 
"예수는... 가장 축복받은 존재였음에도 지상에 사는 동안 내내 가난했으며...
올바름과 부 사이의 직접적인 등식을 배제하는 것... 능력주의에 따른 특권의 설명에 흠집을 내는 것"
(129쪽)
 

이것이 대한민국 국민들, 돈 없어 공부 못하는 10대와 자율사립고,
비싼 등록금에 좌절하는 대학생과 유학가는 자녀들간의 간극에 대한 저자의 분명한 설명이다. 
 

이 책에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상품사슬과 노동력사슬, 공장식 패스트푸드의 기내식 도입도 보여준다. 

"터미널에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스위스 회사 게이트 구르메 소유의 창문이 없는 냉각된
공장에서는 방글라데시와 발트 해 연안의 여러 나라들에서 온 여자들이 15시간 이내에
대류권 어딘가에서 먹게 될 아침,점심,저녁 8만 개를 만들고 있었다.
대한항공은 소고깃국을 내놓을 것이고, 일본항공은 연어 데리야끼, 에어프랑스는 당근 퓌레를 깔고 그 위에 치킨 에스칼로프를 깔아 내놓을 것이다.
(135쪽)

 

하지만, 주로 생존을 위해 노동력을 '옮겨와 정주하며 파는' 사람도 있지만,
주로 실현(어떤 실현인지는 다양하겠지만)을 위해 노동력을 '옮겨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
 

"밤이면 공항은 유목민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의 본거지가 된다.
어떤 한 나라에 헌신할 수 없는 사람, 전통을 보면 뒷걸음질치고 안정된 공동체를 수상쩍게 여기는 사람,따라서 다른 어느 곳보다 현대 세계의 중간지대에서, 등유 저장 탱크, 비즈니스 파코, 공항 호텔로 인해 풍경이 상처를 입은 곳에서 오히려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다."
(157쪽)

 

사실 풍경이 상처를 입은 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이러한 노마드적 삶만이 아니다.
발터 벤야민을 비롯한 도시 관찰자들은 근대 대도시들의 삶의 성격을
바로 이와 같이 묘사한 것이다.
그것의 글로벌 축소판이 바로 공항인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구획은 분명하다.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후 사람들이 접하는 최초의 장벽아닌 장벽은
영국인/비영국인, 영어권/비영어권, 유럽/비유럽의 장벽이다. 

"권력은 이곳에서 자신만만하다. 출생이라는 우연에 의해서 특권을 누리며
이곳을 비켜가는 사람들에게는 삼가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만큼 자신이 있다."
(179쪽)

 저자가 말하듯이 "화성인이 온다면 구경시켜 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장소가 공항"인 이유는
그곳이 바로 글로벌 자본주의의 가장 발전된 모습을 응축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생산과 유통, 소비의 적나라한 모습이 바로 공항에서 구현된다.
때론 화려해보이나 슬픈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공항 그 자체도 글로벌 자본주의의 경쟁하는 자본이기도 하다.

베이징 공항, 카타르 도하 공항, 그리고 이 책의 배경인 히드로 공항,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등이
현재 벌이고 있는 유래없는 대규모 확장공사는 바로 유통 허브로서 시장력을 넓히기 위한
자본의 경쟁 그 자체인 것이다. 

200쪽에 글로벌 자본주의의 축소판을 100장의 귀한 사진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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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과 진보당 - 한 민주사회주의자의 삶과 투쟁 커리큘럼 현대사 3
정태영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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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도민일보 - 책이 희망이다 2009.7.31> 

조봉암과 진보당 - 한 민주사회주의자의 삶과 투쟁

정태영 / 후마니타스 / 19,000원

죽산 조봉암 서거 50주기를 기리며



최근 각계에서는 한국 진보정당운동의 선구자인 죽산 조봉암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 움직임이 활발하다. 비운의 정치인인 조봉암과 ‘진보당’이 외쳤던 ‘민주주의’, ‘민주적 사회주의’, ‘평화통일’은 당시에는 매우 불온한 슬로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해방 이후 사회(민주)주의자의 입장을 갖고 서구적인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또한 1956년 5월 15일 치러진 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220만표(23.8%)라는 놀라운 지지를 얻기도 했다. 이러한 지지세를 모아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진보정당인 ‘진보당’이 창당되었다.

하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눈엣가시였던 이승만 정권은 조봉암과 ‘진보당’에게 북한의 지령에 의해 활동했다는 누명을 씌운다. 구실로 삼은 것은 이승만의 ‘무력통일론’에 반대되는 ‘진보당’의 ‘평화통일론’이었다.

1959년 7월30일, 변호인단이 올린 대법원 항소는 기각되었고, 하루만인 7월 31일 죽산 조봉암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조봉암과 함께 활동을 해 온 저자는 2006년 7월 31일 47주기에 이 책을 발간했으며, 오늘은 그가 사형된 지 50주기이 되는 날이다.



“이 박사는 소수가 잘살기 위한 정치를 했고 나와 나의 동지들은 국민 대다수를 고루 잘살게 하기 위한 민주주의 투쟁을 했다. 나는 이 박사와 싸우다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죽음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 발전에 도움이 되기 바랄 뿐이다.”



죽산 조봉암이 남긴 유언이 50년의 세월을 넘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양솔규 (진보신당 경남도당 정책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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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타협하기
그레고리 앨보 외 19인 지음, 리오 패니치.콜린 레이스 엮음, 허남혁 외 14인 옮김 / 필맥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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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08년 7월호에 실릴 글

“자연과 타협하기” 위한 길찾기에 나서자.

 

양솔규(노동사회교육원 2기 졸업생, 회원)

연일 촛불이 타오르고 있지만, 고유가 행진도 계속되고 있다. 작년 이맘때쯤 유가가 1배럴당 70달러였던 반면, 지금은 147달러를 돌파했다. 두 배 이상 오른 것이다. 유가는 더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급기야 7월 6일 오늘, 정부는 고유가에 대한 에너지 대책을 내놓았고 사실상 3차 오일쇼크를 선언했다. 또한 오늘 충남 태안에는 국내 최대 태양광 발전소가 가동되었다.

물론, 이러한 석유 고유가에 대해서 많은 전문가들은 국영기업, 헤지펀드의 책임 문제를 제기한다. 일명 ‘투기설’이다(윌리엄 엥달 등). 여기에 대해 폴 크루그먼 같은 학자들은 ‘투기설’이 엉터리라며 반론을 제기한다. 일명 ‘수급불균형설’이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에너지 절약이니, 새로운 생활패턴이니 하면서 금방 대안적인 생활에 대해 얘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또한, 적어도 일주일에 한 두 번씩은 괜찮은 ‘재생에너지, 기후변화’에 대한 뉴스 또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다. 적어도 이러한 문제가 먼 얘기가 아니라, 당장 피부에 와 닿는 얘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분명, 작년과는 매우 다른 상황임에 틀림없다. 이런 ‘고유가’ 시대의 전환적 사고가 실제 현실이 될지는 모르겠다. 이런 ‘고유가’ 상황 속에서도 국제자본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신당이 만들어질 때, ‘녹색’과 ‘적색’의 결합 등을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다. 이에 대해 ‘녹색’과 ‘적색’의 결합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당위적으로 결합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 쪽 색깔이든, 그렇다고 자기 색만 가지고 말하기도 참 껄끄러운 시절이기도 하다.

내일(7월 7일)부터는 일본에서 G8 정상회담이 열린다. 이 자리에는 탄소배출을 해온 선진국 G8뿐만 아니라, 새로운 탄소배출‘강국’(?) 중국, 브라질, 인도, 남아공 등도 참가한다. 이 회의에서 지구온난화와 관련해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한다. 탄소배출 국제기준인 교토의정서는 2012년에 완료될 예정이기 때문에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가 진행중인 것이다. 공교롭게도 세계적으로 유가와 곡물가가 급등하면서 전세계 수억의 생존이 분초를 다투고 있다. 당연히 G8에게 수억의 생존보다도, 자본의 생존이 더 중요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어쨌든, 지구온난화의 문제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점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의 필요성이 확대되어 가고 있는 지금에 우리가 참고할만한 책이 있다. 좌파 잡지 Socialist Register 의 편집자 리오 패니치가 엮은 <자연과 타협하기>가 그것이다. “Socialist Register”는 각 해마다 한 주제에 따라 여러 필진들의 글을 모아 발행하는데, 2007년의 주제가 바로 ‘자연’ 및 ‘환경문제’였다.

이 책은 교육원 회원들이 참 읽기 힘든 책일텐데, 무엇보다 번역된 책이라는 점, 많은 필자들이 참여했다는 점, 그리고 생소한 환경문제에 대한 글이라는 점, 그리고 책의 분량이 만만치 않다는 점(518쪽)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와, 생태환경문제를 자본주의와 연결시켜 이해하고, 대안사회를 반자본주의뿐만 아니라, 반환경파괴사회로 상정하고자 한다면, 이 책만큼 종합적인 현안 분석과 폭넓은 대안을 제시해주는 책도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는 17명이나 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필자들이 17개의 주제에 걸쳐 다양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그 중에서 닐 스미스가 쓴 2장 “축적전략으로서의 자연”과 엘마 알트파터가 쓴 3장 “화석자본주의의 사회적, 자연적 배경”은 이 책의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2장에서 닐 스미스는 자연이 자본에 실질적으로 포섭되는 현재의 국면에 대해 강조한다. 그는 맑스가 단순제조업에서 근대산업으로 넘어가면서, 노동자는 자본-임노동관계 뿐만 아니라, 노동과정 속에서도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주도권을 빼앗기는 과정을 분석한 것을 인용하면서, 이와 유사하게 자연도 자본에 형식적 포섭 단계에 있던 단계(예를 들어 식민지 자원 약탈)를 넘어 자연이 곧 자본축적전략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자연에 대한 금융화(석유펀드, 곡물 펀드, 광석 펀드 등)가 이를 주도하고 있고, 자연에 대한 변형(유전공학 등)과 자연과 관련한 (의제)상품과 시장의 출현(탄소배출권 시장 등)이 그것이다.

3장에서 앨마 알트파터는 이러한 자본주의와 화석에너지가 결합한 현대 자본주의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석유정점과 화석에너지의 위기에 따라 유지될 수 없고, 대안은 재생에너지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대안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 기술적 처방보다는 새로운 사회시스템, 예를 들어, ‘연대의 경제’ 혹은 ‘도덕적 경제’가 재생에너지와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앨마 알트파터의 주장은 얼마 전에 번역 출판되었던 그의 책 <자본주의의 종말>(동녘)의 요약본이라 할 수 있다.

각 나라의 실상에 대한 글들도 많이 있다. 5장 바버라 해리스 등이 쓴 글은 “영국의 재생가능에너지 정치”에 대한 글이다. 7장은 “중국의 초고속 발전과 환경위기”에 대한 글인데 필자인 데일 원은 우리나라 <녹색평론>(2007년 7-8월호)에서도 중국과 관련한 생태문제에 대한 글이 소개된 적이 있다. 중국 외에도, 6장 허리케인으로 인한 뉴올리언스 사태를 분석한 글, 8장 아프리카의 생태포퓰리즘과 관련한 글, 16장 녹색당 유럽의회 의원이었고, 예전 민주노동당 기관지에서도 글이 소개된 적이 있는 프리더 오토 볼프가 실패한 독일 녹색당 기획의 교훈에 대한 글도 소개되고 있다. ‘적색’과 ‘녹색’의 결합을 갈망했던, 또는 불가능하다고 봤던 진보신당의 당원들이나 ‘당’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한번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주제별 분석으로는, 9장 세계를 먹여 살리기, 농업, 발전, 생태, 10장 물, 돈, 권력 등이 있다. 수돗물 민영화 등이 당장 현안이 되어 있고, 거의 해체상태에 놓여 있는 농업 문제는 한반도 식량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는 관측들이 있는 상태에서 서구와 세계농산물시장 등에 대한 이 장의 분석들은 보다 넓은 범위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위치짓게 한다.

13장 “더 많이 일하고, 팔고, 소비하기”라는 글에서 코스타스 파나요타키스는 맑스가 주장하는 자본주의 1차모순, 생태맑스주의자인 제임스 오코너가 주장한 자본주의 생산관계/생산력과 자본주의 생산조건간의 모순인 ‘2차모순’을 넘어 자본주의 소비주의 속에서의 강박적인 경제성장 추구를 ‘자본주의 3차모순’으로 개념화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현실분석보다는 대안 위주의 글들이 배치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도 많이 소개되어 있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필자들이 눈에 띄는데, 미셸 뢰비와 그레고리 앨보가 그런 사람들이다. 15장 “생태사회주의와 민주적 계획”이라는 글은 미셸 뢰비의 글이고, 17장 “생태지역주의의 한계-규모, 전략, 사회주의”는 그레고리 앨보의 글이다.

당연히 이 글들의 필자들은 ‘생태사회주의’를 지향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앨마 알트파터는 3장에서 자본주의의 지속불가능성을 주장했지만, 4장에서 대니얼 벅은 ‘자본주의가 생태위기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이 다른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우리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지 않는 한, 자본주의든 그 무엇의 체제든 간에 재앙에 가까울 것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책은 결코 쉬운 책은 아니다. 각주만 해도 60쪽이 넘는다. 17개의 주제들에 500쪽이 넘는 분량은 접근을 힘들게 한다. 생태주의 문제에 대한 글들을 엮었지만, 자본론과 관련한 언급들, 맑스주의의 주요한 이론가들, 역사가들부터 현실 정치인들까지, 환경과 관련한 제도의 문제에서, 좌파의 역사, 민주주의와 사회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론들과 개념, 분석과 사람들이 동원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환경생태문제를 이제 곁다리로 한번 언급해 보는 장식품 정도로 취급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바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대면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대안사회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힘들게라도 독서모임을 조직해서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이미 자본은 기후변화와 에너지문제에 대해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자본주의의 지속을 위해 그들은 준비하는 것이다. 생태문제는 이미 시장화, 상품화 단계를 거치고 있다. 즉, 우리의 생존을 위해 고민해야 할 문제를 넘어, 자본의 새로운 축적의 영역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둬서는 수십억의 세계 민중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는 게 이 책이 우리에게 수많은 사례를 통해 제시하고 있는 교훈이다.

지역 사회에서도 이러한 요구와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태양의 시대’로 가는 ‘태양혁명’을 준비할 것인가? 아니면, ‘화석연료’ 중심 경제체제를 유지하면서 주는대로 먹고사는 20세기형 자본-노동타협 경제체제를 유지할 것인가? 생태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 다음에 고민해야 하는 차선의 문제가 아니다. 작금의 변화는 생태 문제를 이렇게 안일하게 바라봐서는 안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제 생태 문제는 바로 안전하게 ‘먹고 사는’ 문제이며, ‘분배’의 문제이며, ‘정의’의 문제이다. 따라서 ‘정치’의 문제이고, ‘경제’의 문제이다. 중산층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그 길목에 서 있다.

문제는 사람들과 어떤 꿈을 함께 꿀 것인가? 꿈의 상에 대한 것이다. 그 꿈은 단지 생태환경적으로 ‘올바른’ 것일 뿐만 아니라 ‘실현가능한’ 것이어야 하며, ‘사회경제적 대안’의 모습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상상력의 주체는 소수의 전문가들이 아니라, 생활 속에 뿌리박고 사는 우리들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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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구해근 지음, 신광영 옮김 / 창비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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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 소통> 2008년 1-2월호 (2008년 1월 8일)

‘막’ 형성된 계급에게 놓인 두 갈래 길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구해근 지음, 창작과비평사, 2002년

  양솔규(교육원 졸업생, 회원)

그리 길지 않은 한국현대사 속에서 숫자는 ‘역사적 투쟁’의 법칙성을 나타내 주는 것처럼 보였다. 예를 들면, 1960년의 4.19 혁명, 1980년의 5.18 광주민중항쟁과 같이 10-20년 단위의 년도가 그러하다. 작년은 1987년 6월항쟁과 7,8,9 노동자대투쟁이 일어난 지 20주년이 되던 해였다. 또한, 1996-97년 노동자대투쟁이 일어난 지 10주년이 되던 해였다.

사람들이 이러한 시간적 흐름을 단지 ‘표지’해 주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그것 자체에 어떤 주술적 힘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뭔가 극복 가능한 희망을 찾고자 하는 심리적 동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학자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숫자가 반복적인 ‘시간적 주기’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따라서, 숫자적 의미로만 본다면 1987년 노동자대투쟁과 1997년의 노동법개악 반대 총파업 투쟁이 일어난 지 10, 20주년이 되는 해인 2007년은 뭔가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해봄직한 해였다. 그리고 그 내용은 거대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적, 정치적 주체형성과 투쟁의 고양을 의미했다. 하지만, 작년 한 해 그 어떤 주술적 힘도 벌어지지 않았다. 역사에는 비약이 없다는 점을 믿는다면, 우리 노동운동은 아직 이러한 발전을 이루어낼 만한 실천을 하지 못한 것일 테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시 1987년 노동자대투쟁과 한국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시작해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의 출발은 한국 노동운동사에 대한 이해와 이에 기반한 풍부한 논의일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2007년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조직노동 외 계급적 대표성을 갖추기 위한 활동에 게을리 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역사에 대해 제대로 기록할만한 능력도, 의지도 없었고 그나마 기록된 자기 역사에 대해 그 구성원들과 나누고자 하지 않았다. 기껏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에서의 몇몇 정리만 있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회원들에게 책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구해근 하와이대학 사회학과 교수가 쓴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창작과비평사, 339쪽, 13,000원)이다. 이 책은 2001년에 구해근 교수가 영어로 쓴 책을 2002년에 신광영 선생이 번역을 해 출간되었다. 나는 이 책을 2004년 3월에 구입했는데, 몇 년 동안 읽지 않고 있다가, 2008년 신년에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저어했던 이유는 이 책이 1987년 이후의 노동운동사에 대해서 글의 비중상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이것은 1987년 이후의 역사가 중요하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한국 노동운동의 긴 역사를 ‘단절적’이기 보다는, ‘연속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구해근 선생의 특별한 시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60년대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이르는 긴 시간의 흐름을 ‘계급 형성’이라는 핵심 단어로 묶어 내고 있는 것이다.

구해근 선생의 ‘특별한 시각’은 바로, 책 제목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영국의 맑스주의 역사학자 E.P. 톰슨의 기념비적인 저서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의 제목을 차용한 것과 같이 톰슨의 관점, 즉 계급을 역사주의적, 구성주의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관점을 수용한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계급을 “구조로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범주로도 보지 않”고 계급을 “사회적․문화적 형성으로서…다른 계급과의 관계 속에서만 정의될 수 있는 것…그 정의는 시간을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계급은 (코카의 주장처럼) “항상 형성 또는 소멸의 과정 속에 또는 진화나 퇴화의 과정 속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한국의 노동계급의 현재의 상태를 고정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정치적, 문화적 계기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실체로 파악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시각 속에서 한국의 노동계급 형성을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비교연구적 관점에서 대만이나 서구와는 다르게 나타나는 한국의 노동운동의 양상을 서술하고 그 원인을 밝히고자 한다. 

이 책은 한국 노동운동사에 대한 모든 내용들을 섭렵하여 담고 있지 않다. 자세한 내용과 관련해서는 다른 역사적 자료들이나 논문들이 더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하기 때문에 더욱 강점을 지닌 책이 될 수 있었다.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주요한 테마로 보고, 이의 계기와 과정, 조건과 이를 돌파하는 계급형성의 힘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다. 

흥미롭게 볼 만한 점은 뒷부분에서 많은 외국의 노동분석가들과는 달리 구해근 교수는 한국의 경우 브라질, 남아공과는 다르게 ‘사회운동 노동조합주의’가 발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점이다. 구해근 교수는 그 원인을 첫째, 기업별 노조에 가해진 법적, 정치적 제약, 둘째, 낮은 실업수준과 적은 비공식 부문 규모, 셋째, 노조운동이 공장 특유의 문제에 몰두하면서 지역의 문제에 천착하지 않은 점 등으로 설명한다. 결국 한국의 노동운동은 그 운동의 폭발성, 전투성과는 상관없이 경제노조주의로 귀결되었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IMF 이후, 현재의 조건 속에서 한국의 노동운동이 사회운동 노동조합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들이 이전과 달리 무르익고 있는가, 아닌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새로운 노동조합주의를 상상하면서, 과거의 우리 행동의 선택지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기업별 노조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었던 조건, 정당운동의 지체와 학출 활동가들의 조급함, 자본과 비교해서 “전략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의 불균형”을 초래한 원인들 등, 역사 속에서 배울 수 있는 수많은 오류와 실패들을 사심없이 지켜봐야만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노동운동이 더욱 힘든 구렁텅이로 밀려들어가고 있고, 수많은 비정규직들과 민중들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80년대 말 형성된 한국 노동계급은 그러나 현재 ‘소멸’ 혹은 ‘퇴화’의 과정에 있을 지도 모른다. 

구해근 교수가 결론적으로 얘기하듯이 한국의 노동운동은 아직 조직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약하고 허물어지기 쉬운 계급이다. 앞으로 이 계급이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계급조직을 갖추고 건설적인 미래상을 제시하면서 성숙한 노동계급으로 성장하는 길”이며, 또다른 길은 “협소한 노동조합주의에 몰두하면서 내부적으로는 분열되고 외부적으로는 고립되는” 길이다.

이 두 가지 갈래 길은 사실은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나타났으며, 미래의 순간순간마다 나타날 것이다. 그 갈래를 결국 선택할 주체는 한국 노동계급이며 그 선택 자체가 바로 계급을 고유의 모습으로 빚어내는 과정일 것이다.

이명박 시대가 시작되는 지금, 노동운동과 당 운동이 몰락과 쇄신의 갈래에 있는 지금, 우리는 지난 노동운동의 가장 빛나던 시대를 돌아보면서 새로운 선택을 위한 지혜와 결단력을 공급받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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