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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를 권하는 사회 - 주눅 들지 않고 나를 지키면서 두려움 없이 타인을 생각하는 심리학 공부
모니크 드 케르마덱 지음, 김진주 옮김 / 생각의길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혼자를 권하는 사회>, 지은이: 모니크 드 케르마덱, 옮긴이: 김진주,
출판사: 생각의 길(아름다운 사람들), 초판 1쇄 발행: 2019년 2월 15일, 페이지: 254쪽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요즘 한창 유행했고, 얼마 전 종영했던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었다. <혼자를 권하는 사회>의 제목만 보면 관계에 치여 정말 혼자 있기만을 원하는 사람들의 개인 심리에 대해 다루고만 있을 것 같은데, 읽다 보면 이 드라마에서 다루고 있는 아슬아슬한 감정선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들이 꽤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드라마에 그치지 않고, 현실 상에서도 내가 학생이었을 때부터 사회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었기에 마스킹 테이프로 밑줄을 주욱 그어가며 열심히 읽었다. 실은 '소확행'과 나만의 '캐렌시아'에 집중했던 2018년부터 이런 마음을 지니고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 스스로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다른 감정도 받아들일 마음자리가 준비될 것이라고 여겼던 시기가 꽤 길게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고독 또한 우리가 발전하고 정신을 꽃피우는 데 필수적'이라는 말에 굉장히 공감하며 책을 폈고, 덮을 때 역시도 한 번 더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책의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한 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혼자만의 시간 없이 이루어지는 고찰도 없거니와 그런 고찰 없이 발전한 자아·관계일수록 사상누각이기 때문에. 어떠한 자극이 주어져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기반을 쌓아올리기 위해서는 고독은 필수적이다. '타인과 함께 있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인간의 욕구이지만, 이런 욕구를 누리기 위해서는 철저히 혼자인 시간도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서적인 성숙이 일어나야 하나의 개체로, 제 삶의 주인으로 설 수 있다는 견해에도 굉장히 공감하는 바이고.
아울러 책의 내용 중 스카이 캐슬과 연결하여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내용 중 하나를 언급하자면, 아무래도 '미디어가 제안하고 있는 이상적 모델'이다. 스카이 캐슬 안에서도 마찬가지. '우등생'이나 '재벌가'라는 단어에서부터 연상되는 이미지들. 그리고 그에 맞게 고급스럽고 편안하고 행복해 보이는 연출(소품부터 시작해 삶의 모습, 그리고 사람의 외모나 성격에 이르기까지)들이 이어지는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그 '사실'에 오히려 괴리감을 더 느끼는 나 같은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드라마를 보는 동시에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왜 저게 정상일까?' '왜 저런 모습을 당연하게 연출할까?'
아주 예전에 방영했던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를 볼 때,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 있다. 왜 여주인공은 빈곤한 가정 살림에 우는 소리를 하면서 메고 다니는 가방이나 입고 다니는 옷은 왜 하나 같이 명품이냐고. 귀여우면서도 꾸미고 나면 굉장히 아름다운 외모에 솔직하고 털털한 성격까지 장착하고 나면 이건 정말 '사기캐(릭터)'다. 그와 다르게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에서의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또 사랑에 쉽게 울고 웃고 망가지는 주인공을 보면서 사람들은 왜 그렇게도 공감했었나. '꽃보다 남자'와는 달리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혹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꽤 흡사했기 때문 아닌가? 그런데 왜 사람들은 우리네 삶과는 사뭇 다른 스카이 캐슬 주민들에 그리도 뜨거운 반응을 보낸 걸까.
스카이 캐슬 안에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 그리고 그에 맞는 형식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이어지고 있다. 스카이 캐슬 입주민은 당연히 돈이 많고, 당연히 학벌도 좋고, 당연히 그에 따라 혜택을 누려 입주의 권한을 얻었다. 3대째 의사 가문을 만들기 위해 아이는 당연히 전교 1등을 해야 하고, 희생자가 있음에도 몇 억을 들여 제 아이를 과외 선생에게 보내 공부시키는 모습이 이어지는데도 떨떠름하게 받아들이는 시청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드라마니까, 하며 허구라고만 생각한다기에는 무언가 반응이 남달랐다.
순위권 안에 드는 아이의 족보나 입시 정보를 얻기 위해 학부모(거의 대부분 엄마이지만) 사이에 촘촘히 벌어져 나열된 서열. 심지어 숟가락을 들어 죽을 한 술 뜰 때도 순서를 기다리며 눈치를 보기까지. 드라마가 너무 과하게 연출하는 것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아! 이건 현실을 그린 드라마구나, 그래서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로구나, 갑작스레 실감이 났다. 심지어 이 드라마를 보고 과외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는 이야기도 놀랍지가 않았다. 놀랍기도 새삼스럽다. 그들이 (비록 그 금액이나 삶의 모습이 서민과 사뭇 다를지언정) 주고받는 양적·질적 교류가 우리네 모습과 아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는 거다. 첫 직장에서 일하며 학구열이 뜨겁기 그지 없는 입학 설명회를 두세 번 돌아보고도 이런 반응에 의아해 했다니. 나도 참…….
서두가 스카이 캐슬 이야기 뿐이라 지루하셨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고독감과 이런 심리는 아주 당연하게도 맞닿아 있어 이야기 꺼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의 개인으로 사회에 발돋움하기까지, 아이들은 가정 안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양분을 빨아들인다. 양분이라 함인 즉슨, 가족이 부어 주는 사랑과 관심이다. 나 자신이 세상에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족과 나의 관계가 건강하게 맺어져야 또 다른 타인과의 관계도, 그것이 확장되어 세상과의 관계도 건강하게 맺어질 수 있다.
스카이 캐슬 안에서는 성적을 올리기 위해 공부를 하는 아이, 상장의 수와 출결과 독서와 성적 전반을 관리하고 감독하며 전교 1등을 무사히 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엄마의 모습이 아주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지만 '아이가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더라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는 모습이나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지금의 마음·심리 상태는 어떠한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고독하고 싶은 때는 없는지' ... 등을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부모의 과정은 드러나 있지 않다. 그저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한다면,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성공가도를 달리며 분명 이러한 선택을 하도록 했던 부모의 마음을 읽는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에 매달려 아이들을 열심히 피라미드 끝자락에 올리려 노력한다. 그러나 부모도, 아이도 모두 외롭기 그지없다.
본인의 기준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들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보면 자연스레 고독해진다.
영재들이 호소하는 고독은 그들의 인생에 공유라는 개념이 없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또한 타인의 말과 타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이미지, 그리고 타인의 이해와 사랑, 경청으로 얻는 위안, 자신의 고통조차 경청해주는 존재에게서 얻는 위안이 없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타인과의 어떠한 교류도 없는 사람의 일시적 또는 지속적 상태'로서의 고독. 과연 영재보다 고독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것이 비단 영재라고 표현되는 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뿌리깊은 고독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이들이 요즘 얼마나 많은가. 200쪽을 조금 더 넘기다 보면 이런 고독을 타파(?)하기 위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제안이 빼곡히 적힌 페이지들을 읽을 수가 있는데, 너무 쉽고도 당연해서 왜 이런 내용이 써 있을까... 의문이 드는 독자도 있을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요즘 한창 러닝과 요가, 필라테스 등에 빠져 사는 나로서는 이 방법들이 꾸준하게 지키기 어려운 것들로 차 있다고 생각했다. 난이도의 문제라기보다 의지의 문제에 가깝다. 그러나 쉽게 해결될 일이었다면 이런 책이 나오지도 않았겠지. 어떤 일이든 시간과 노력을 할애한 만큼, 딱 그만큼 얻어낼 수 있다.
그래서 요는, 나와 거리 두는 시간을 가져 보라는 것. 다른 사람들과(가족에만 국한하지 않고) 평등하게 교류하라는 것. (자칫 나에 대한 불만과 불신의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SNS와 같은 간접적인 정보들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지금보다 줄이고, 걷고 뛰면서 내가 살아숨쉬고 있음을 체감하고 운동을 통해 내 몸과 직면해보기도 하는 시간들을 가져 보라는 것. 그 과정 속에서 현재를 충실하게 살고 있다는 감각을 하게 된다면, 타자에 대한 궁금증도 생기고 좀 더 열렬하게 관계 맺게 되리라는 것.
사회가, 미디어가, 주변의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미지에 흔들리지 않고 단단히 서려면 진정 혼자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감성에 기대어 쓴 당연한 이야기들에 물렸고, 통계와 수치를 통해 설득력 있게 풀어낸 단단한 글-그중에서도 심리학-을 읽고 싶다면, <혼자를 권하는 사회>를 읽어 보시라 권하고 싶다. 또 스카이 캐슬과 어느 면이 맞닿아 있는지도 찾아내는 즐거움도 있으시리라, 살짝 귀띔도 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