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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연한 고양이
최은영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0월
평점 :

공공연한 고양이, 최은영-조남주-정용준-이나경-강지영-박민정-김선영-김멜라-양원영-조예은(수록 순),
자음과 모음, 189쪽, 초판 발행일_2019년 10월 25일, 13,000원
고양이를 좋아한 지는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 실은 반려 동물이라면 강아지를 더 먼저 떠올리곤 했다. 동물을 키워 본 것도 아주 어릴 적의 일이라 어렴풋하다. 당시 나는 작고 하얀 마르티스 한 마리를 입양 받아 키우고 있었다. 아이 이름은 장군이었다. 하얗고 자그마한 친구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작고 하얀 강아지에게 뭔가 아기자기하고 이국적인 이름을 짓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결국 그 아이의 이름은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지어졌고, 처음에는 툴툴거리던 나도 금세 그 이름에 익숙해져(실은 그 아이에게 빠져들어) 이름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아질 만큼 강아지 이름을 자주 부르고, 어르고, 같이 놀았다. 그것도 오래 되지 않아, 1년 정도 키우다 그 아이가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10시간이 넘어가자 부모님은 말 못하는 강아지 생도 짧은데 너무 안 되었다며 공기 좋고 물 맑은 할아버지 댁으로 아이를 입양 보내셨다. 할아버지도 강아지를 좋아하셔서 입양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는데, 그때 이후로 나는 집에 동물을 들이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던 어른들 말씀을 어린 나이부터 빠르게 깨달은 탓이었다.
책 제목에 어울리는 디자인, 작고 아담한 책 크기, 구석 구석 숨어 있는 고양이 일러스트까지. 마음을 이끄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가볍기도 해서, 책을 쥐고 출근길에 한 편, 퇴근길에 한 편 조금씩 나눠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반려 동물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예상을 조금 벗어나는, 그야말로 '짧은 소설'이라는 소제목에 잘 어우러지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소설 몇 가지가 눈에 띄었다. 각각의 소설을 읽으면서 기존에 좋아하던 작가님들의 소설은 그들을 다른 작품에서 만난다는 반가움에 좋았고, 알고 있지는 않았으나 이 소설을 통해 만나면서 다른 작품이 궁금해졌던 작가님들도 있어 그 역시 좋았다.
이런 작품들을 모아 책 한 권으로 엮는 데에 편집 공력도 많이 들었을 것이지만, 그들의 수고로움과 이런 책을 만들겠다는 기획 의도 덕분에 탄생한 이 책 덕분에 새로운 작가님들을 소개 받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들의 데뷔작이며 최신작을 골라 읽을 생각을 하니 읽을 거리들 리스트가 차곡차곡 쌓여 부자가 된 듯한 기분도 들었다고 하면 너무 그러한가. 여하간 <공공연한 고양이>는 고양이에 대한 호감 때문에 집어든 책이었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얻어간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이라, 그 또한 좋았다.

책을 읽다 보면 그 소설에만 국한되지 않는 글귀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내가 겪었던 일들에 대한 기억(그것이 좋은 기억이든, 슬픈 기억이든, 거칠어 가끔 사포질하고 싶은 기억이든. 그게 뭐든.)을 건드리는 어떤 심경, 표현 등을 보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 순간의 내가 떠올라 가슴이 두방망이질 친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고, 돌아가고 싶지 않기도 하고. 그 모든 심경이 어우러져 그렇다. 책 속의 인물들을 보면 꼭 그랬다. 그들은 그때를 떠올리면 돌아가고 싶기도 하고, 또 반대로 그 순간에 멈춰 있기도 하고,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각자 처한 상황은 다르고 인물 하나하나의 이름도, 성격도, 취향도, 모습도 다르지만 그들 모두가 '고양이' 하나로 묶여 있다는 점만은 같았다. 다만 그 고양이라는 매개 하나가 이렇게도 다양한 감각을 만들고, 또 그들에게 끼친 영향도 달랐다는 점에서 이 다양하고 짧은 소설들이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고양이 시점'이라는 것이 좋았다. 인간에 얽매여, 성별에 얽매여 살아야 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는 고양이. 지구에서의 삶, 주인의 품 속에서 살던 그 삶을 포기하고 일면 비장함까지 갖춘 고양이. 영혼이 되어 또 다른 고양이를 지켜보는 고양이. 그 모두의 시선을 좇아 그들의 감정을 함께 느끼고 같이 생각하고, 그들이 걷는 장소들을 같이 걸어 보고 하는 시간 동안 편안하기도 하고 눈물이 나서 눈을 깜박이기도 했다. 현실의 내가 짊어진 어떤 짐들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좋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깨달아지는 바도 있고.
회사 근처에는 고양이들이 어슬렁거리며, 뛰며, 늘어지게 누워 있으면서, 사람들 근처를 배회한다.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사람 앞에 천연덕스럽게 앉아 츄르를 얻어 먹기도 하고, 경계의 눈초리로 쳐다 보다 가까워지는 차에서 나는 클락션 소리에 놀라 저만치 멀어져 버리기도 하고, 다리 근처를 배회하다가 옆구리로 다리를 슬쩍 쓸어보고는 멀어지기도 하는 희한한 녀석들. 그들의 시선이 나는 항상 궁금했던 것 같다. 가까우면서도 먼 친구들. 그런데 정을 많이 줘서 또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아 경계하게 되는 친구들. 항상 근처에 있겠지만, 그들의 생각을 궁금해 하겠지만, 또 어느 정도의 간격은 만들고 싶은 녀석들. 그런 고양이들의 생각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아주 짤막하지만, 또 아주 정겹고, 또 아주 슬프게. 그런 생각이 궁금한 누군가라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