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맘에 들지 않는 점은 

내가 언제 죽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언제 죽는지만 알아도 인생을 훨씬 더 재미있고 알차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기대수명에 점점 다가가는 부모가 나보다 더 삶에 대해 가열한 욕망을 보이는 걸 보노라면

나도 늙으면 악착같이 살려고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두려움이 엄습한다.


때때로 더더욱 자주 환갑이라는 나이가 환갑잔치가 될 수 있었던 시절이 부럽기도 하다.


여전히 삶에서 생존과 번식 이상의 것을 바란다.

번식과 생존은 현대 사회에선 너무나 시시하다.

차라리 길고양이의 번식과 생존이 더 위대할 정도다.


언제 죽는지 모르기에 

인생을 계속 낭비하고 있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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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처서였다. 처서는 나에게 계절을 유턴하게 하는 날이다. 


이미 8월 초부터 즐겨찾는 쇼핑몰에서는 가을 옷이 업데이트 되고 있었다. 방금 전에도 신상이 뭐 있나 훝어봤다. 신장 173cm의 백인 모델에게 입혀두면 어쩌자는거야? 하면서도 내가 입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음..수선을 한다해도 허수아비 꼴을 면하지 못하겠다 싶다. 


곧 가을이다. 쉽게 말해서 2019년도 끝자락이라는 말. 뭔가 좋아지길 바라기보단 상황이 나빠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되는 지혜를 조금씩 배워나가고는 있지만 고작 이게 다야? 하는 한자락의 푸념을 놓지 못하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빨래를 하고 옥상(건축학적으로 말하면 교과서적인 베란다, 즉 지붕이 없다)에 널었다. 햇볕이 좋고 바람도 부니까 3시간 내에 완벽히 건조될 걸로 예상된다. 탈수가 되긴 했으나 물기를 머금은 빨래가 가득한 바구니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 것은 조금 귀찮긴 하지만 나는 아직은 자연의 건조기를 사용 중이다. 옥상에 올라가서 맞은 편 앞집 옥상을 보면 언제나 빨래가 널어져있다. 노부부가 사는 집인데 노인이라서 그런지 아침잠이 없다. 항상 나보다 먼저 빨래를 넌다. 빨래 건조대에 가지런히 걸려 있는 수건이 바람이 살살 흔들리면서 햇빛을 받고 있는 걸 보면 느긋해진다. 


지겹다. 호강에 겨워서 튜브를 끼고 권태의 수영장에서 둥둥 떠 있는 기분이다. 인간은 욕구를 충족시키고 나면 이내 권태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진실일지도 모르지. 절박하지 않으면 여유가 찾아올 줄 알았는데 지겨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래서 한동안 스릴러물에 몰두했다가 요즘은 그것도 시시해져서 목관악기 교향곡을 들으면서 릴렉스 중이다. 


뉴스를 보면 한국인의 절박함은 크게 2가지다. 아파트와 자식교육. 그 두 가지 덫에 걸리지 않은 나는 여유와 권태라는 또 다른 덫에 걸려서 허우적 거리는 중이다. 권태의 덫의 불행한 점은 타인에게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 역시 딱히 공감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타인의 눈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면 외동으로 곱게 자라는 중인 어린애가 반찬투정하는 거 같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은 생존을 요구하는 데 있으므로 만일 생존 자체에 어떤 적극적인 가치나 충실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면 권태가 따를리 없으며, 살아 있기만 하면 우리에게 만족을 줄 것이다. 그런데 실제는 어떠한가. 우리가 어쨌든 자기의 생존을 다소 즐기는 경우란,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동안이나 순수한 지적인 활동에 몰두하고 있을 동안뿐이다. 

<쇼펜하우어 인생론 2. 인생의 허무에 대하여>


어쩌면 나에겐 생존 그 자체는 아무 의미도 없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지겨운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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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와 쇼펜하우어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살다보면 깨닫게 된다.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내가 "인생은 고통이야. 인생=고통이라고 할 수 있지."라고 했을 때 성격좋은 K의 표정에는 작은 물음표가 하나 생겼으나 바로 이어지는 나의 설명을 듣더니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었다. "일단 매일 아침 억지로 일어나는 거 부터가 심히 고통스럽지. 매일 아침, 아침에 일어나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죽을 때까지 이 고통은 사라지지 않을거야. 살아있는 인간인 이상엔 일어나야 하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그 자체로 힘들고 잘 만큼 늘어지게 자고 난 후 정오 전후로 일어나는 건 또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문명인이라면 으레 자괴감을 느끼게 될테니까 그건 또 그것대로 고통스러운 거지." 


학생 때는 스스로 일어나지 못했다. 늘 엄마가 아침알람을 대신해서 내 이름을 20번 정도 불러야 간신히 깨곤 했다. 아마도 엄마라는 유능한 알람시계를 믿었기에 그런 대책없는 아침잠이 가능했으리라. 대학생이 되고 혼자 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익혔다. 익혔다기보단 저절로 일어나졌다. 신기하게도. 그리고 지금은 늦잠을 자는 것이 불가능해진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기특하다고 해야할지 슬프다고 해야할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 아니 압박감이 늦잠 본능을 굴복시킨 것이다. 더욱 처참한 것은 아침알람 몇 분 전에 내가 먼저 깬다는 사실이다. 늦잠을 자면 아침 스트레칭을 여유롭게 할 수 없고 그 스트레칭을 하지 않으면 하루종일 허리통증에 시달리게 된다는 자명한 내 육체의 법칙으로 인해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망할 놈의 몸뚱아리'를 원망하면서 새벽에 일어나 부스럭부스럭 요가 매트를 펴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미리 펴두고 자도 되지만, 펴놓고 자면 절박함이 옅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방해스럽다. 


하루치의 허리통증을 완화시켜주는 10분 스트레칭을 하면서 깨달은 여러가지 중에서 한가지를 뽑자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위대한 소설가라는 것이다. <태엽감는 새>,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고2때. 그때는 단순히 이야기가 재미있었기에 책을 읽어나갔다. 또한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지금 공부를 하지 않고 있는 나 자신에게 나름의 면죄부가 되어 주었으므로.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날이면 날마다 억지로 일어나서 출근을 해야하는 나에게 이 소설은 생존지침서이다. 아침마다 이 소설을 되뇌인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바로 이 스트레칭이 나의 태엽감기다!! 어디선가 매일매일 성실하게 이 세상의 하루치 태엽을 감는 태엽감는 새의 현실버전인 것이다. 나에게는 이런 식으로 재해석 하게 된 소설이 2편 더 있다. 처음은 카프카의 <변신>이었다. 변신은 존재의 불안에 관한 소설이라기보다는 매일 아침 일어나기 싫었던, 그것에 더해서 일어나서 출근하기 싫었던 카프카가 그 마음을 소설로 표현한 것. 두 번째는 <분노의 포도>, 이것은 자본주의와 경제대공항을 기록하는 소설이 아니다. 이것은 교통체증에 빡친 스타인벡이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쓴 1000페이지에 달하는 거대장편소설인 것이다. (아니면 중고자동차 영맨에게 속은 마음이거나.) 꽉 막힌 도로에서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놈들에게 직접적으로 화를 낸 것이 아니라 그 화난 마음을 1000쪽에 달하는 소설로 승화하여 노벨문학상까지 받아내는 현명함을 보였던 것이다. 본받자. 내 이웃의 멍청함과 아둔함에 화내지 말고 그것을 나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이용하자. 라고 나를 다독이지만 꽉 막힌 도로의 무법자들을 보면 영화 <좀비랜드>의 우디 해럴슨이 되어 '저것들은 인간이 아니고 좀비다' 라고 해버리고 양손에 권총을 들고 빵야빵야 해버리고 싶은 것이다. 그 마음을 고이고이 담아 나는 <좀비랜드> ost를 출근bgm으로 깔고 교통체증을  견뎌가며 날이면 날마도 회사로 향하고 있다. 


이 짓을 죽을 때까지 견디던가 아니면 포기하고 노숙자가 되던가 둘 중 하나뿐이다.


인생이 苦라는 것은 멀리 있지 않다. 신발 속에 작은 돌맹이가 든 상태에서 4키로 구보를 한다던가 눈 안에 모래가 든 상태에서 하드렌즈를 낀다던가 하는 작은 고통 속에 인생의 苦가 숨어 있다. 인간은 거대한 환희에는 금방 둔감해지지만 작은 통증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 적응하지 못하고 고통을 느끼는 존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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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만큼 책을 열심히 많이 읽는 것은 아니지만 독서는 여전히 나의 1위다. 그래서 언제나 노안을 걱정했었다. 그런데 눈보다 허리가 먼저 고장이 날 줄은 몰랐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이제 나는 업무와 업무 사이의 틈을 기습하여 읽는 독서에서는 아무런 재미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집중력이 떨어졌다는 거겠지. 책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최소 2시간 정도의 시간의 덩어리를 마련해야만 한다. 주로 주말에 몰아서 책을 읽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재미가 떨어져서 책을 끝까지 읽지 않게 된다. 그런 적이 너무 많았다. 

인생을 살아내면 살아낼수록 잡무가 늘어나서 공부말고는 아무런 근심도 할 일도 없었던 학생시절만큼 독서에 마음을 할애할 여유가 없어진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르카레 소설을 읽는 것보다는 그 시간에 좀더 실용적인 부동산 세법 공부라던가 자동자 정비에 관한 카페글을 읽는 게 훨씬 경제적인 삶일테지만, 그 돈이 책을 대신 읽어주는 건 아니니까. 르카레의 스파이 소설을 1박 2일 허리병 도져가면서 읽는 재미는 돈주고 살 수 없는 것이므로 이번 주말은 르카레와의 데이트다!!


다만 좀 문제는 내가 빌린 책이 열린 책들에서 2006년에 출판한 책인데 아....이게 글자가 너무 작고 줄간격이 너무 좁은 관계로 목과 허리가 견뎌내질 못한다는 점이다. 이 점이 소설의 재미를 좀 갉아먹는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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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쉬 옹께서 일상이 무료하고 지겨운 나를 위해서 좀비코메디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여 폭염과 넷플릭스라는 거대한 두 장애물을 뛰어 넘어 극장으로 갔다. 나는 '웃겠다 확실하게 웃어 주겠다'라는 각오로 극장에 갔는데 다른 사람은 아니었는지 혼자 크게 웃었던 장면이 여러개. 


두 주인공 경찰이 순찰차의 라디오를 켠다. '데드 돈 다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이때 클리프(빌 머레이)가 "이 노래 너무 익숙해. 많이 들어 본 노래야."라고 이상하다는 듯이 말하자 로니(아담 드라이버)는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영화 주제곡이잖아. 그래서 익숙한 거야." 라고 답한다. 이 장면 은근히 웃기고 생각하면 할수록 웃겼는데 영화 후반부에 더더 노골적인 대사가 나와서 더 웃겼다. 스포라서 쓰진 않으련다. 


이 영화의 가장 웃낀 점은 내가 이 영화를 엄마와 같이 봤다는 점이다. 원래는 예정에 없었다. 영화 보러 가기 전에 잠시 부모님 집에 들러 중요한 서류 하나를 건내 주었다. 그리고 돌아서는데 엄마가 "니는 이제 어디 가노?"하길래 "영화보러 갈 껀데." 라고 했더니 엄마의 눈빛이 몹시 따라 가고 싶어하는 그런... 

그래 뭐, 살면서 짐 자무쉬 영화 1편 정도는 극장에서 보는 것도 해 볼만 하지...(이해는 못하더라도)

그래서 나는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엄마, 좀비가 뭔지 아나?"

"알지, 그거 <부산행>에 나온 그런 거 잖아. 움직이는 시체."

"내가 오늘 볼 영화가 좀비영화인데, 그렇지만 부산행 같은 공포 영화는 아니고 웃긴 영화야. 보러 갈래?"

라고 했더니 엄마는 당장 외출 준비를 했다. 

내가 웃을 때마다 엄마는 "니는 뭐가 재미있어서 웃노. 나는 하나도 재미없다."라고 속닥였고 나중에는 "잠온다." 라더니 마지막에는 큰 교훈을 얻고는 "나도 이제 집에 가면 물건 다 버릴란다. 꼭 필요한 것만 두고 살아야지." 라고 했다. 아...이건 좀비코메디인데...큰 교훈이라뉘... 영화 제목이 어렵다면서 영화 팜플릿도 1장 소중히 챙기셨다. 


스트리밍 사이트에 검색을 했더니 마침 '데드 돈 다이'가 있어서 1곡 반복재생 모드로 들으면서 집으로 왔다. 해는 이미 져서 시간은 밤으로 가고 있었고, 휴대폰은 차량용 충전기로 실시간 충전되고 있었다. 내가 좀비로 부활한다면 나는 어떤 말을 반복할까?? 지금으로썬 "넷플릭스 넥플릭스"일거다 아마도 ㅋㅋㅋㅋㅋㅋ 



<데드 돈 다이>는 현재 전국 7개 상영관(서울4, 경기1, 부산1, 경남1)에서 상영중이고 현재 관객(개봉 11일차)9847명이다. 인상깊은 포털의 영화평은 '속지말자, 예고편. 딱 서양놈들이 좋아할만한 영화다.'이다. 내가 본 상영관에서도 팔 다리에 문신을 한 백인 남자 3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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