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시간이 샌다. 분명하다. 이번 주에 첨으로 책상에 앉았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아무 일도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발만 씻고 침대에 누웠다가 씻고 다시 잔다. 책도 하나도 못읽었다. 나는 그냥 잔다. 잔다. 잔다. 그리고 일어나서 출근하고. 그게 전부다.


살기위해 살 뿐.
실존주의자들 말마따나 아무 이유없이 태어나서 개고생만 하고 살다가 느닷없이 죽는 게 인생, 이라는 것에 눈물나게 동감한다. 이마에 피가 나도록 벽에 머리를 박고 싶을 정도로 동감한다. 

이상하다. 올해는 유독 시간이 급격하게 빨리 흘러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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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안하고 매일 도서관에서 책만 빌려 읽으면서 살다 죽었으면 좋겠다. 퇴근길에 도서관에 들러서 <2666>을 빌렸다. 3권만 빌릴까하다가 5권까지 다 빌렸다. (볼라뇨 책은 이게 처음) 오늘은 하루 종일 퇴근하고 '도서관'에 가서 <2666>을 빌린다는 생각이 조금 들떠 있었다. 어젠 봉준호의 신작 <기생충> 예고편 공개 덕분에 조금 들떴었다.


지난 주에는 매일 <다가오는 것들>을 봤다. 이번 주는 <패터슨>이다. 이 두 영화를 적당히 편집해서 한 편으로 만들면 그게 바로 내 인생이다. 인연을 끊고 싶지만 인연을 끊을 방법은 죽음 말고는 없는 이젠 자식의 도움 없이는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없는 노인이 된 부모와(당연하지만 내겐 바람난 남편은 없다) 매일 아침 성실하게 일어나 성실하게 출근하고 성실하게 일한다는 점에서(당연하지만 나에겐 껴안고 잘 배우자는 없다) 나는 두 영화의 주인공에게 1000000% 공감하고 있다. 보고 있으면(본다기 보다는 걍 서브 모니터에 켜 두고 나는 맥북으로 다른 일을 하지만) 매우매우매우 위안이 된다. 


내 주변에는(인간관계가 매우 협소) <다가오는 것들>이나 <패터슨>이라는 영화를 본 사람도 아는 사람도 없다. 나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지 않았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다. 그들은 일년에 영화를 한 두 편 보는데 <보헤미안 랩소디>는 본 것이다. 한 평생 늘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별 불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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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둘째 주에 이르러, 나는 대학 교육이란 전혀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나는 대학 생활을 무료함을 견디는 훈련 기간으로 삼기로 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대학을 그만두고 사회에 나가 뭔가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매일 학교에 나가 강의에 출석하고, 필기를 하고, 빈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자료 조사를 했다.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

서른 중반에 이르러, 나는 인생이란 전혀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나는 인생을 무의미를 깨닫고 견디는 훈련 기간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딱히 죽고 싶은(죽음은 엄청난 두려움을 동반하기에, 고통없이 잠드는 것처럼 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나는 별 망설임 없이 죽음을 택할 것이긴 하지만) 의지도 없고 다른 직업을 택해서 뭔가를 특별히 하고 싶지도 않기에. 그래서 나는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고, 카페인을 섭취 후 각성한 영혼으로 멀고 먼 길을 운전하여 매일 출근하고, 여가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고 싶지 않기에 이것저것 검색을 해서 그나마 내가 인생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즐기곤 한다.
무의미의 시대/ 먼데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태어나지 않는 것보다는 낫고 좋은 점도 많다고 그러니 '생'은 좋은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 일것이다. 그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즐겁든 행복하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면 되는 것인데 어떤 사람은 자신의 종교를 적극적으로 전도하는 신자처럼 나한테 '인생의 즐거움과 의미로움'을 전도하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웃낀다. 너도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어쩌고 저쩌고=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이 느끼는 생에 대한 소중함과 다를바 없는 착각에 지나지 않은 거 같은데...

인생이 소중하고 의미있다면 그건 '나 자신'이 존재함을 통해서이지, 나 자신보다 소중한 누군가(그 누군가가 자식이든 연인이든 부모든 상관없이)가 있고 내가 그 사람을 돌봐주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의미를 찾는 거라면 그건 착각이며, 당신은 자신의 존재부터 자각하고 보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 없는 내 인생'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건 멍청함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씨는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하면서도 사는 걸 보면 엄청 의욕적으로 잘 사는 거 같아요. 그건 아마도 의미를 찾고자 하는 절박함에서 나오는 거 겠죠? 
라고 평소 즐겨 대화를 나누는 지인이 말했다. 
내 대답은 '절박함'도 한 원인이겠지만, 그것보다는 나는 방탕과 퇴폐미, 조르바형 인간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럴 거예요. 내 인생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에 대해서 불만불평만 늘어놓으면서 먹고 마시면서 늘어져 있는 삶의 태도는 질색이고, 그런 이유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행동할 뿐인데 그것이 세속 사람들의 눈에 의욕적이고 진취적으로 사는 것처럼 보인다면 더욱 인간들에게 실망이네요. 더더욱 고작 그 정도 문제해결의지도 없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인생이 의미로 가득 차 있다고 떠들어 댄다는 점에서, 고작 음식과 알코올에 의존해서 삶이 즐겁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이 엉망칭창인 세상에 자식을 무책임하게 낳고 자식 키우는 즐거움을 느끼다는 점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낍니다. 
라고 구어체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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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으로 펼쳐진 경치가 좋은 카페의 테이블에 노트북을 펴놓고 앉아서 잡담이나 끄적대고 싶다.

손열음&강주미가 연주하는 브람스와 슈만을 들으면서 말이다.


출근, 너무 하기 싫다.


하지만 또 자동차의 시동을 켜고 핸들을 잡는 순간 노예모드로 완벽하게 변신하겠지만...


늘 하는 푸념이지만

어쩌다 태어나서 이 개고생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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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 같은 건 뭐 됐고 

난 뭐 그저 아주 '단정하고 빈 틈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

바닥에 촥 밀착해서 작은 먼지 하나도 놓치지 않는 섬세한 쓰레받기같은.


권력의지 같은 건 1도 없지만

누군가가 내 영역을 침범해 오는 것을 단 1초도 참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본다면

나는 아마도 조금은 '니체의 초인'같을지도 모르겠다.

정작 나는 내가 '종말의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다면 

나는 타인이 상처를 받건 말건 이치를 따져서 바로 잡을 뿐.

이 놈 저 놈의 상처를 다 보듬어 안아야 한다면 

세상은 완전 개판, 진상천국이 될 테니까.

나는 그 꼴을 절대 두고 보지 못하겠으니까.


왜 '굳은 살'을 만들지 않는가?

왜 스스로를 단련시키지 않는가?

왜 요즘 사람들은 피부다 다 벗겨진 화상환자처럼 행동하는 걸까?

왜 항상 자신은 약자이고, 자신은 늘 상처받고, 남은 언제나 나를 모욕하고 어쩌고 저쩌고...


표정이 터프하고 발바닥의 굳은 살은 갈라진 용맹한 길고양이들이 좋다.

날 때의 귀여운 표정과 아기때의 야들야들한 발바닥을 가진 채 늙어가는 애완고양이는 질색이다.

요즘은 많은 인간들의 표정이 그러하다. 애완의 표정, 애완의 야들야들한 발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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