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가족이 싫다고 10대 때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내가, 부럽고 미웠을까.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동생을 돌보느라 정신없던 언니에게 나는 수차례 '그만두라'고 말을 했다. 언니는 그때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가족이 필요하다'며 울었다. 언니가 필요로 했던 가족은 아마 건강한 가족이었겠지만, 우리가 가진 가족은 너무 허약했고 결핍투성이였다. 언니는 그들에게 힘을 보태느라 자기 힘을 다 소진해버렸다.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 이랑>


가수 이랑의 노래를 좋아한다. 정확히는 노래 가사를 좋아한다. 이 책에 의하면 이랑은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잘했다고 한다. 글짓기 대회에서 항상 상을 받았다고 함.


이랑의 언니가 죽었다는 것을 어느 팟캐스트에서 이랑에게서 들었다. 여동생에게 가수 이랑에 대해서 말을 하다가 최근에 언니가 죽었대라고 하니 여동생은 "왜 죽었어?" 하고 물었다. 나는 "몰라, 사인은 말 안 하던데."라고 하니 여동생은 "그럼 자살이네, 자살로 죽으면 왜 죽었는지 말 안 해. 대부분은."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자살이 아니더라도 살해당하거나 하는 강력 사건이면 말 안 할 수도 있지."라고 했더니 여동생은 "아니다, 그런 건 말한다. 자살만 말 안 해."라고 확신했다.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이랑의 언니는 가족을 부양하다가 소진사했다는 것을. 다시 말해 자살했다. 여동생과 했던 저 대화가 기억이 났다. 확실히 여동생은 나보다 인간사에 대한 안목이 더 있다. 여동생은 인간사의 더러운 면에 내성이 강하다. 불륜, 강력범죄, 자살 같은 거에 대한 촉이 좋고 그런 인간사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리고 인간성의 어둡고 더러운 면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인간의 아름답지 않은 면, 인생의 고난을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반면 나는 인생의 어두운 면이 싫다. 받아들일 수 없다. 사실 그래서 이번 악뮤의 신곡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도 싫다. 처음 듣자마자 생각한 건 뭐여 CCM이야? 완벽히 잊고 있었던 가수 서영은(CCM 가수 출신)이 생각난 순간이었다. 이번 악뮤 노래는 CCM같다. 슬픔, 고통, 고난을 예쁘게 포장하는 게 종교 아닌가. 궁극의 천국 운운하면서. 천국 같은 소리 하네, 천국이 그렇게 좋으면 왜 태어나는지? 태어나지 말고 바로 천국 가면 더 좋은 거 아닌지? 태어났다면 최대한 빨리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게 이득 아닌지? 그래서 나는 사후 천국설을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인간은 '믿음'이 필요해서 '신'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궁여지책으로 믿는 거라는 걸 알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 책은 그 어떤 책 보다 쉽게 술술 읽혔고, 분량도 그 어느 책 보다 적다. 하지만 이걸 쓰는 사람은 그 어떤 책을 쓰는 것보다 힘들었을 거 같다. 솔직히 나는 이랑의 부모 같은 부모가 존재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가정학대가 존재할 수 있다니! 호러 그 자체였다. 56쪽~58쪽의 학대는 아리 에스터 감독의 영화 <유전> 같은 류의 호러였다. 뒤틀린 폭력과 정서학대... 집에 산더미처럼 쌓인 책을 아이에게 막무가내로 집어던지는 문학과 책을 사랑하는 국문학과 출신의 부모라...

내 부모도 결코 좋은 부모라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폭력적이진 않았다. 내 부모는 돈벌이에 모든 시간과 체력을 쏟았기 때문에 우울할 시간도 자녀를 학대할 시간도 없었다. 그저 방임했을 뿐. 더 정확히는 인색했다. 자녀에게 돈을 거의 쓰지 않았다(이것은 부메랑이 되어서 나는 부모에게 돈을 거의 쓰지 않는다, 굳이 부모에게 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기도 하고. 그 점에서 내 부모는 성공한 듯. 경제적 여력이 있는 노인이니까). 그 방임 속에서 나는 내가 나를 키우면서 매우 독립적으로 자랐다. 부작용은 그 누구도 믿지 않고, 의지하지도 않는다는 것. 어렸을 때 부모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자란 내가 굳이 어른이 된 지금 타인 혹은 종교(신)에게 의지할 이유가 없지! 그래서 이랑의 언니의 '나는 가족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가족은 없으면 없을수록 좋은 거 아닌지? 이랑의 언니는 너무 착했던 것 같다. 나였다면 부모랑 절연했을 것이다. 절연을 위해서라면 이민이라도 갔을 것이다. 


이랑의 노래, 특히 가사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가사의 거름이었던 것이 저토록 무시무시한 가정사였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가수 이랑은 아니야, 아니야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난 이랑의 고등학교 자퇴가 여유로워 보였다. 교사인 부모를 둔 둘째 딸의 여유(영화 <3학년 2학기>에서 주인공이 실습생을 그만둘 수 없었던 것 같은 여유 없음. 하지만 주인공의 절친은 실습을 그만둔다, 비빌 언덕이 있었기 때문). 나의 경우 경제적 자립이 인생 목표였기 때문에 절대 자퇴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대학교-취업에 단 하루의 공백도 있어서는 안 된다, 무조건 최대한 빨리 취업이 목표였고 그것이 내 적성이고 진로였다. 자퇴도 휴학도 취준도 모두 여유 있는 집안의 자식들이나 하는 호사였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내 여동생은 휴학도 하고, 어학연수도 하고, 취준도 했다. 그것이 바로 K-장녀와 K-차녀의 결정적 차이다. 내 여동생도 "엄마 없이는 살아도 언니 없이는 못 살 거 같다."라고 말해서 엄마는 비분강개했지만 그게 진실! 엄마는 자식들을 방임했지만, 나는 동생들을 방임하지 않았거든.


나의 엄마는 집이 가난해서 부모와 같이 살지 못하고 여유가 있는 이모집에서 살았다. 엄마의 이모는 엄마를 중학교까지(만) 보냈다. 졸업 후에 엄마는 의류 공장에서 일하다가 공장일이 힘들어서 시집을 가면 좀 편해지려나 하는 어리석은 희망을 품고 시집을 갔다. 전업주부가 되고 싶었지만 남편이 돈을 잘 벌지 못해서 장사를 시작했고 장사에 인생을 올인했다. 나도 가끔은 엄마의 장사를 도왔는데, 현금 장사는 정말 재미있었다(아마 내가 고등학교 자퇴를 했다면 엄마는 뺨을 때리는 대신 내일부터 시장에 나와서 장사나 거들어라고 했을 것이다.) 몇 천 원짜리 물건들을 팔아서 현금을 십만 원씩 묶는 재미는 그 어떤 재벌의 장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희열이 있었다. 반면 이랑의 엄마는 명문 여대를 중퇴하고 평생을 무직으로, 우리 엄마가 되고 싶었던 전업주부로 살았지만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한 생각은 이랑의 엄마도 현금 만지는 장사를 했다면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 텐데, 비록 자식들은 방임했을지라도.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 엄마를 버티게 한 것도 경제적 자립, 내가 지금 존버하면서 살아내는 것도 경제적 자립이다. 하루하루 쳐내야 하는 업무 속에서는 우울할 여유가 없달까? 내 엄마는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되는 지금의 은퇴 생활에 만족하는 거 같았다. 비록 자식들을 방임한 인색했던 부모였지만 그런 부모였던 덕분에 경제적 자립을 한 성공한(?) 노인이 되었으니까.


김하나의 <힘 빼기의 기술>을 읽을 때 김하나의 여유가 부러웠다. 나는 힘을 뺄 수 없었으니까. 나에겐 성인 버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읽혀서 저 책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전부다 여유로운 집 자녀들의 한가한 투정 같이 읽혔다. 김하나의 아빠와 이랑의 아빠의 직업은 같은데 어떤 집은 그림같이 화목해 보이고, 또 어떤 집은 악령을 그린 그림처럼 불행해 보일까. 하필 김하나를 떠올린 이유는 이 책의 추천사 중 김하나의 추천사가 있었기 때문. 김하나는 이랑의 이 책을 반도 이해 못 할 거 같은데...


그가 평생 사랑을 찾고 꿈을 좇았다는 걸 알기에, 그럼에도 삶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었을 그 사람의 시간을 떠올리면 내가 아프다. 그 누구도 기쁜 마음으로 삶을 내려놓지 않는다. 너무 지쳐서, 기운이 없어서, 기운을 다 써서, 지치고 지쳐서, 슬퍼하기도 지친 몸과 마음으로 삶을 그만둔다.

그렇게 누군가가 그만둔 삶을 나는 살아간다. 고통을 느끼면서 그 고통에 아파하면서 살아간다.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한다. 그래도 나는 내 삶을 아까워한다. 그래서 또 살아간다.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내 인생. 단 하나의 고유한 세팅 값.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 이랑>


자살의 과정이 잠드는 것처럼 고통스럽지 않다면 나도 자살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딱히 사는 게 가치 있다거나 재미있다거나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무난한 지겨움의 반복일 뿐이니까(물론 이제는 안다, 무난한 지겨움의 일상을 산다는 자체가 엄청난 기적이라는 걸. 그 어려운 미션을 내가 해 냄!!). 그걸 80살, 90살, 100살까지 반복할 정도로 삶을 목숨을 맹목 하지 않기 때문에. 인생을 맹목적으로 사랑(?)했다면 자녀를 낳았겠지만, 딱히 태어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기에 낳지 않았다. 무난한 지겨움의 반복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이야기이고, 그래서 나는 소설과 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이 겪는 사건(시련)은 겪고 싶지 않다. 너무 힘들잖아. 그것보다는 무난한 지겨움이 낫지... 그러니까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거지. 무난한 지겨움의 안전망 속에서 개고생 하는 가상의 인간들을 보면서 가상 체험을 하는 정도가 내가 이승을 존버하는 방법이다. 아픈 건 딱 질색이다. 나에게 아픔은 복통이다. 식은땀이 줄줄 흘러서 옷이 흠뻑 젖을 정도의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복통. 실제적인 육체의 통증을 피하고 싶기 때문에 자살하지 않는 것일 뿐, 사는 게 좋아서 사는 건 아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불행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불행하지 않다. 비유하자면 식탐이 있는 사람이 다이어트하면 괴롭겠지만, 나는 식탐이 없어서 그 사람들이 다이어트할 때보다 더 적게 먹는데도 힘들지 않다. 간헐적 단식이 하루 세끼 먹는 것보다 더 쉽다. 인생을 사랑하고,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면 당연히 사는 게 힘들지. 그러다 보면 배터리 0이 되어 죽기도 하고. 


요즘은 매일 AI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읽을 수 없고, 여러 편의 영화도 볼 수 없는데, AI는 그게 가능하니까. 인간으로 충분히 살았으니 여생은 AI로 살면서 이야기만 탐닉하고 싶다. 책 읽을 시간, 영화 볼 시간, 일기 쓸 시간이 부족해서 돈벌이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돈을 버는 사람이라는 자아 없이 제대로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일단은 출퇴근을 계속할 생각이다. 돈을 버는 지금 가장 좋은 점은 조카들에게 인색하지 않게 사주고 싶은 선물을 마음껏 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조카들이 크면 아이폰과 맥북 정도는 쉽게 사 줄 수 있는 이모, 고모가 되고 싶다!


p.s

내가 처음 안 이랑의 노래는 <신이 놀이>였다. 이야기에 대한 가사가 좋았다. 이랑은 이 앨범(2집)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노래상을 수상하고, 수상 소감을 함과 동시에 같은 무대에서 트로피를 팔아 버린다. 그 소식을 듣고 역시 내 안목은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다. 노래 <신의 놀이>를 만든 가수만이 할 수 있는 퍼포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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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와이즈먼(1930년~)은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내가 이 감독을 처음 알게 된 건 <내셔널 갤러리>(2016.8.25. 개봉)가 개봉했을 때였다. 그 다음에 본 건 <뉴욕 라이브러리에서>(2018.10.11.개봉). 수시로 보고 싶어서 구글 영화에서 두 편 다 구매했는데 최근에는 잘 안 본 것 같다. 장삼이사 인간들에 대한 혐오가 치밀어 오를 때 보면 감정이 순화된다. 세상에는 악인보다는 선량한 사람이 다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안심하게 되기도 하고.


와이즈먼 회고전에서 본 다큐 네 편과 영화 한 편을 기록해 보겠다.


프레더릭 와이즈먼 다큐의 평균 러닝타임은 180분 정도가 아닐까 싶다. 3시간 넘는 다큐가 2/3 정도. 3시간이면 보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3시간 순삭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멍 때리면서 보면 된다. 일상브이로그 센트럴파크 편, 일상 브이로그 법원 편, 일상 브이로그 주 의회 편, 일상 브이로그 시청 편. 특별한 줄거리가 없기 때문에 졸리면 잠시 자면 되고, 눈은 화면을 보면서 머리로는 다른 생각을 해도 된다. 특별한 내용이 없기도 하거니와 사실 다 아는 일상의 말들이다. 주 의회나 시청에서 하는 말들이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대충 정치 유튜브 보듯 듣듯 하면 된다. 이미 아는 내용 90%+ 새로운 뉴스 10% 정도의 난이도. 


<센트럴 파크> 1989년작 176분.

이번 회고전에서 제일 보고 싶었던 작품. 한때 나는 센트럴 파크 뷰의 파크 하얏트 뉴욕의 스위트룸에서 1박을 해보는 것이 로망(현재는 전혀 아님)이었기 때문. 

공원에서 노숙하는 사람, 러닝 하는 사람, 결혼식 하는 사람, 풍경화 그리는 사람들, 공원의 꽃과 나무를 가꾸는 자원 봉사자들이 연속으로 나오다가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는 멋진 공원 풍경 영상들 ㅋㅋㅋㅋ 공원의 오래된 테니스 코트의 유지&보수 또는 철거에 대한 회의, 각종 행사들(에어로빅 행사가 압권 ㅋㅋ), 달리기 대회 등등. 계절은 여름. 영화 <뉴욕의 가을>에서 보이던 단풍 든 센트럴 파크도 나올까 했는데 여름 한 철의 센트럴 파크에서 끝남. 약 3시간짜리 영상이었는데, 30분짜리 일상 브이로그 감상한 정도의 피로감이었다. 


<시티 홀> 2020년작 272분

주연: 2014~2021 보스턴 시장 마티 월시, 바이든 정부 노동부 장관,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물론 다큐에 주인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 다큐 촬영 당시 보스턴 시장으로 다큐에 가장 많이 출연함)


도널드 트럼프 2기의 미국 정부 시절에 이 다큐를 보니 뭔가 매우 이질적이었다. 불과 6~7년 전의 미국이 저렇게 휴머니티와 민주주의가 넘쳤다고???????? 협의와 합의와 토의와 토론과 절차가 지켜지는 행정 과정, 약자와 이민자를 위한 행정 등등. 

다큐에서 인상 깊었던 것 몇 가지, 매년 열리는 재향군인 추모 행사와 불법주차 과태료 발급과 소명. 다 알면서도 그들의 사연에 속아주는 시청 공무원의 사려 깊음 ㅋㅋㅋ 벌금 면제 해줌. 어쩌면 시간을 들여서 시청에 소명하러 가는 그 절차 자체가 벌칙인지도. 또 영업이 잘 되지 않는 슈퍼마켓에 시청 직원이 직접 찾아가서 슈퍼마켓 사장과 함께 상생 방법을 논의하는 것. 즉 사장은 우리 슈퍼마켓을 이렇게 저렇게 리모델링하면 영업이 잘 될 것 같으니 시청에서 공사를 허가해 주고 지원도 좀 해주쇼 하는 읍소였고 시청 직원은 슈퍼마켓 투자자라도 되는 듯 매우 진지하게 들음. 원래 진지한 건지 유명 다큐멘터리 감독이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으니 저절로 진지해진 건지는 의문. 다큐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말을 청산유수로 잘 함. 막힘이 없달까. 




<가정 폭력 2> 2002년작 160분

처음 시작 10분 정도는 경찰이 주택가 골목에서 가정 폭력의 가해자를 체포하는 장면. 나머지 150분은 전부 재판임. 세 곳의 재판정에서 가정 폭력 재판을 받는 부부 또는 피해자 또는 가해자가 정식 재판장 또는 판사의 사무실(아마도 기소 전 절차?)에서 소명하는 장면.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부는 엘리트 부부(특히 남편은 가정폭력 예방 수업 강사로 봉사활동도 하는?)의 남편이 술을 마시고는 아내를 위협하기 위해서 허리띠를 풀어 아내가 서 있는 뒤쪽 벽을 내리쳤는데, 아내는 남편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더 위험한 사고(더 심한 폭력 혹은 음주운전)를 일으키는 것을 막고자 경찰에 신고했는데 이에 남편은 가정폭력 가해자로 형사 기소 당하게 됨. 미국에서 가정 폭력은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라서 아내의 해명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남편은 폭력범이 됨. 아무튼 그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영화의 엔딩은 영화의 배경인 힐스버러의 도로변 상점들을 촬영한 장면들이다. 맥도널드, 주유소, 이런저런 상점들, 빌딩들. 맘에 들었다.  인간들이 살아가는 현재의 공간을 미화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줘서 좋았다!!


법원은 플로리다주 힐스버러 카운티라고 한다. 




<주 의회> 2007년작 218분


아이다호주 보이시 주 의회가 배경이다. 다큐는 돔 지붕을 가진 황토색의 고풍스러운 벽돌 건물인 주 의회 건물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된다(기억된다). 살아오는 내내 정치에 관심이 없다가 윤석열의 내란 이후에서야 정치 뉴스를 보고 법사위원회를 보고 했던 게 전부였던 나는 아이다호 주 의회 의원들은 진지하고 예의 바른 회의 모습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이다호주 주 의회에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헛소리를 반복해서 하는 국민의힘 의원 같은 자들이 없나 보다. (주진우, 송언석 이런 자들이 법사위에서 내뱉은 말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빡침. 특히 주진우는 말의 내용도 견디기 힘들지만 그 코맹맹이 목소리는 더욱 견디기 힘듦. 돈이 많아도 비염 걸린 목소리 같은 건 치료가 안 되나 봄???) 

안건과 안건에 대한 근거를 발표할 때의 차분함과 안정적인 발음과 억양, 논리 정연함! 저것이 참 민주주의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연출 아닐까? 아니면 지나치게 촬영을 의식한 겉치레?' 하는 의심도 들었다. 현재의 도른 자 도람프와 그 졸개들을 생각하면 한때라도 미국의 주 의회가 언행은  엘레강스하고 내용은 민주주적이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 사실!!!!! 


이 다큐에서 좋았던 점: 한 번의 회의가 끝날 때마다 천고가 높고 내부가 대리석 같은 비싸고 단단해 보이는 돌로 마감된 의회 건물 중앙 계단을 비춘다. 그렇게 보이는 복도에는 고급진 자가드 천이 덧대어진 싱글 침대보다 커 보이는 카우치가 놓여 있는데, 이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매우 매우 좋았다!! 


기억에 남는 회의가 하나 있다. 건축업 면허제 실시 여부에 관한 회의였다. 아이다호주 의회에서는 건축업자들에게도 면허를 발급하고 면허를 발급받은 자들만 건축업을 할 수 있게 하려고 하자, 건축협회 회장(당연히 직업은 건축업)이 나타나 이것은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짓이라면서 결사반대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국가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모든 면허를 반대한다라며 내가 참 리버럴이다!!라고 외친다. 이에 한 의원이 하나씩 질문한다. 대답은 예, 아니오 둘 중 하나만 해야 한다. 

너는 미용 면허에 반대하니? 반대다!

너는 변호사 면허에 반대하니? 반대다!

너는 의사 면허에 반대하니? 어.. 음.. 저 그러니까 나는 기본적으로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규제를 최소화하는 것이 정의다!

그래서 너는 의사 면허에 반대한다는 거야 찬성한다는 거야 찬반으로 말해. - 음 저 그러니까 나는 규제를 최소화하고 

그럼 다음 질문. 교사 자격증은? - 반대다. 

여러 가지 면허와 자격증이 발급되는 직업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다가

그런데 너는 그동안 다른 직업들에 대한 면허제가 실시될 때는 침묵하다가 왜 건축업 면허제 실시에만 나타나서 자유를 주장하니? 면허제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닌 거 같은데?라는 의원의 질문에 또 어버버 거린다. 국정감사에 출석한 비리 검사들(엄희준, 강백신, 박상용: 상용아 멋지다 너의 그 검정 버버리 코트, 새 거 같던데 국정감사를 위해서 새로 산 거야?, 정일권: 남의 자식은 공공재, 내 새끼는 개인정보 ㅋㅋㅋ아주 구냥 깨알 같다ㅋㅋㅋㅋㅋ 니 애새끼 그래 참 소중하구나) 같았다. 

이후 회의에서 건축업 면허제는 가결된다. 


**와이즈먼 다큐를 보면서 든 의문점

다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촬영 카메라를 의식해서일까 하나 같이 말을 논리 정연하고 차분하게 잘하지? 

판사든, 하원의원이든, 시청 공우원이든, 불법 주차 과태료를 받은 운전자든, 가정 폭력을 저지른 이민자 출신의 하층 노동자든 간에 말이다. 말을 더듬지 않고, 말을 멈추지 않고, 말이 삼천포로 빠지지 않고(이게 진짜 신기함) 자연스럽게 미리 준비한 연설문(+프롬프트)을 읽듯이 자신의 의견과 근거를 잘 말한다는 것이다. 이건 단순히 그들이 영어로 말하기 때문에 내가 적당히 미화해서 듣기(읽었기) 때문일까? 


**와이즈먼 다큐의 부작용

다큐를 다 보고 나면 천리마 노동마저도 긍정하게 되는 어엿한 산업 역군 근로자로 정신이 개조되어 버린다는 것. 즉 긍정해서는 안 되는 것 마저도 긍정하게, 안주하도록 만들어 버린다는 것.

자신의 일터에서 근면성실하게 소명을 다하는 근로자(노동자X)들 때문에 지금의 도날드 트럼프가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쟁=돈이니까. 가정에 비유하자면 가정폭력을 일삼는 가부장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가출하지 않(못하)고 그 집에 같이 살기 때문 아닌가? 근면성실한 근로자(납세자)와 민주시민은 어떻게 보면 도람프(+베냐민 네타냐후) 같은 전쟁광의 숙주(호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한나 아렌트 식으로 말하면 근면성실함=악의 평범성(악의 단조로움?)



<마지막 편지> 2002년작, 62분

와이즈먼 너마저.... 에휴.... 나치 점령하의 우크라이나에서 아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는 여자의 일인극인 흑백 영화. 62분 동안 편지를 읽는 게 전부다. 에휴... 홀로코스트 관련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게 유대인 자본으로 돌아가는 미국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자의 생존을 위한 통과 의례인가 보다. 이건 마치 박정희 유신 시대 건전 가요 필수 1곡 수록 같은 건가 ㅋㅋㅋㅋㅋㅋㅋ? 와이즈먼도 암흑의 유대인 자본 세력에게 협박받아서 이 영화 만든 건가요????


남이 나를 때린 것 폭력죄이고, 내가 남을 때리는 건 정당방위라는 유대인식 논리를 참을 수 없었던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나치)들은 인류를 위해 유대인들을 제노사이드해 버리기로 한 건가? 대의였나?? ㅋㅋㅋ 하는 자조를 하게 되는 요즘이다. 


한나 아렌트가 살아 있다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왜 히틀러보다 더 심한 학살자가 되어 버렸나? 저승에서라도 답을 달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홀로코스트 영화를 마오쩌뚱이 문화 혁명하듯 불살라 버리고 싶은 기분이니까. 마오라면 홀로코스트 영화의 감독, 제작자, 출연자들은 모두 처형. 영화 감상자들도 처형, 파일 유포자도 처형... 했겠지만 나는 착하니까 사이버범죄 수사과 엘리트 경찰만 불러서 영화 파일만 영구 삭제하는 휴머니즘을 발휘해 보겠다. 


일단 <힌드의 목소리>(2026.4.15.개봉 예정)를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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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다시는 미국이 지구를 구한다는 식의 sf 영화(소설) 만들지 마라

그리고 유대계 인종들은 다시는 홀로코스트 영화(소설, 다큐) 만들지 마라

아주 그냥 두 번만 '리얼 페인' 했다가는 온 우주를 상대로 수익 창출을 위한 학살을 하겠구나!!! 


영화 <리얼 페인>(2024년)은 홀로코스트 탈출 유대인을 할머니로 둔 두 손자의 (유대인으로서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리얼 페인(찐 고통?)에 관한 징징댐이다. 홀로코스트의 상처는 정신적으로도 유전된다?  이 영화의 감독이자 주연인 영화배우 제시 아인젠버는 유대인이다. 베냐민 네타냐휴가 가자 지구를 상대로 미친 전쟁놀이를 하고 있는 때에 제목부터 졸렬하기 짝이 없는 이 영화를 만든 것부터 기가 찼는데, 더 기가 찼던 것은 이 영화의 수상이력이다. 실로 화려하다. 97회(2025년) 아카데미에 두 리얼 페인 중 좀 더 심각한 페인은 남우조연상을 받는다. 그렇다면 남우주연상은 누구인가? 남우주연상은 홀로코스트 시절 존버하는 유대계 천재건축가를 연기한 애드리언 브로디가 받았다. 참고로 애드리언 브로디는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을 두 번 받았는데 두 번 모두 홀로코스트 생존 유대인 예술가 역으로 받았다. 베냐민 네타냐후가 가자지구를 상대로 16개월째 제노사이드를 하고 있는 때에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는 두 개의 남자연기상을 모두 홀로코스트 생존 유대인에게 주었다. 97회 남자주연, 조연상을 보고 졸렬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졸렬함이 2026년의 베냐민 네타냐후와 도널드 트럼프의 든든한 뒷배가 아닐까 싶다. 



영화<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러 가기 직전에 내 손에 들어온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 그렇다면 소설 먼저 쨉싸게 읽고 영화 봐야지 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소설 속 미국과 2026년 3~4월 현재의 미국은 너무나 반대라서 읽는데 속도가 나지 않는다. 절반쯤 읽었는데 이걸 계속 읽을 가치가 있을까 싶다. 미국(인)은 같은 지구인을 죽이지나 마라. 지구를 구하는 한 명의 멋진 백남이 주인공인 영화 다시는 마들지 마라. 시발 진짜 좆같다!!!! 이 소설 도입부터 피식했던 게 주인공은 근육질의 백남이야 ㅋㅋㅋㅋㅋ 



42쪽

"아니, 모르겠어. 예전에는 나도 그런 줄 알았지. 지금은 태양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밖에 몰라." 머리사가 말했다. "이유도 모르겠고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태양이 죽어가고 있는 건 확실해."

"어떻게..." 나는 이마를 찌푸렸다.

머리사는 남은 술을 다 삼켰다. "대통령이 내일 아침에 대국민 연설을 할 거야. 동시에 발표하려고 다른 세계 지도자들과 협의 중인 것 같아."

현재 미국대통령은 1946년생 한국나이로 81세인 도널트 트럼프. 

"대통령이 오늘 밤 트루스 소셜에 메시지를 남길 거야. 네타냐후와 얘기가 끝난 거 같아."

로 수정해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41쪽

"난 도덕에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스트라트가 말했다.

"진짜로 관심 없어요." 내가 말했다.

"나는 인류를 구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온실효과를 일으키세요. 박사님은 기상학자입니다. 우리가 27년을 버틸 수 있게 해 줄 뭔가를 생각해 내세요. 난 인류의 절반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인류를 구하는 데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전쟁을 일으키세요. 박사님은 경제학자입니다. 우리가 27조 달러를 수익낼 수 있는 뭔가를 생각해 내세요. 난 내 이익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로 수정해야지 ㅋㅋㅋㅋㅋㅋ 


283쪽

법정 관리인이 앞으로 나왔다. "선생님, 법정의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제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나라 군대를 동원할 생각인가요?" 스트라트가 물었다.

군복을 입은 무장한 남성 다섯 명이 법정으로 들어와 스트라트 주위에 늘어섰다. "저한테는 미군이 있거든요." 그녀가 말했다. "되게 괜찮은 군대죠."


"진짜 말 그대로 미친 군대죠." 

라고 수정해야지.



1946년생 도날트 트럼프와 1949년생 베냐민 네타냐후. 

우리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에 태어난 동년배들.

동년배 전쟁광들.  

우리가 2026년 현재 이스라엘과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건 천운이야! 

이 두 리얼 페인들아.

핵전쟁에의 열망이 유전자에 새겨져 진 채로 수정됐던 거냐?

80살씩이나 처먹고 고작 하는 짓이 전쟁이냐


UN은  UN헌장에 2026년부터 홀로코스트 영화 제작 금지, 미국인이 인류를 구하는 영화(소설)제작 금지 항목 넣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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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요아킴 트리에. 2026.2.18.개봉

수상이력: 2025년 78회 칸 영화제 그랑프리(심사위원 대상), 2026년 98회 아카데미 영화제 국제장편영화상(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남주연상 등 9개 부문 후보였으나 수상은 국제장편영화상 1개)

주연: 레나테 레인스베(2021년 74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스텔란 스카스가드(영화 듄의 하코넨 남작ㅋㅋ)


이 영화를 통해서 요아킴 트리에는 나와는 결이 맞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별 기대 없이 보았던 <the worst person in the would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도 그저 그랬는데(영화 시작 부분 오슬로 시내를 전망하는 장면에서는 호감이었지. 오래전 나의 오슬로 여행을 추억하게 해 주었으니까) 호평이 자자한 이번 영화는 기대가 있어서였을까, 칸에서 2등 상, 아카데미 9개 부분 후보라는 후광 때문이었을까 실망이 컸다. 


올리비에 아사야스(남)의 < 그 여름의 시간들>(코로나로 인해 프랑스의 많은 도시가 봉쇄되었을 때 넓디넓은 가족 별장에서 휴가 같은 격리 생활을 하는 문화 금수저 두 형제의 미숙함을 다룬 소소한 영화로 감독의 자전적 코로나 격리 경험담을 토대로 만든 영화),  마렌 아데(여) <토니 에드만>(68혁명 세대의 아버지와 2008 금융위기 이후 세대인 딸 사이의 세대 간 불화를 다룬 영화. 아버지는 68세대 답게 여전히 이상을 꿈꾸는 철없는 기성세대이고 딸은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정리해고와 기업이윤에 따라 냉정하게 움직이는 일 중독자다) 두 영화가 얼핏 얼핏 연상되었지만 어딘가 불협화음이었다. 뭔가 억지스러웠다. 그 억지스러움은 문화 금수저 남자 감독이 성공한 아버지와 불화를 겪는 딸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만든 탓인 거 같다. 딸의 마음을 아들, 그것도 문화 금수저인 니가 어찌 알아? 하는 마음이었달까.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가중되었다.  


노라의 아빠인 영화감독 구스타프는 영화 <그 여름의 시간들>에 맏형으로 투입하여 이들을 천방지축 금수저 삼 형제로 하면 마침맞을 정도로 미성숙하다. 라면조차도 끓이지 못할 것 같은 류의 미숙함이다. 영화 속에서는 키친타월사용법을 모르는 것으로 연출된다. 노라는 두 자매 중 맏이이며 무대 공포증을 심각하게 앓는 중인 연극배우이다. 같은 극단의 유부남(조만간 이혼 소송 예정인)과 내연 관계로 관계가 진지해지는 것이 싫어서 유부남을 사귀는 중이다. 둘째이자 막내인 여동생 아그네스는 노라와는 달리 남편과 함께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역사학자 워킹맘이다. 이런 대조적인 설정부터 진부했고 나를 빡치게 했다! 자매가 있으면 누구든 한 명은 배려심 있고 사려 깊게 가정을 꾸리고 부모를 돌봐야 한다는 (남자들의) 생각이 구렸다. 이건 전인류적으로 딸들에게 씌우는 멍에인가? 노르웨이 딸들도 쉽지 않네, 돌봄 노동!!


영화는 두 자매의 엄마 장례식 뒤풀이(?)에서 시작한다. 뒤풀이 장소는 자매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자매의 엄마가 죽을 때까지 살았던)이다. 장례식 뒤풀이는 당연히 아그네스가 준비했다. 음식도 홈메이드인 듯하다. 이런 아그네스를 노라는 출장 뷔페를 부르지 그랬냐라고 타박한다. 이때 느닷없이 전 부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던 구스타프가 뒤풀이에 나타나서 노라는 놀람과 동시에 불쾌해하며 아그네스에게 "니가 연락했어?!!"라고 물으며 또 타박하고, 아그네스는 그래도 아빤데 연락해야지라고 대답한다. 두 자매의 대조적 성향을 보여주는 장면이지만, 역시 너무 뻔하다. 이 무슨 KBS 저녁 일일연속극 같은 설정이란 말인가! 두 딸과 아내를 버리고 바람나서 가출한 저명한 영화감독 아빠의 등장이라뉘!!! 딸들아 (너네 엄마가 죽었으니 이제 너희에겐 나뿐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니?) 이제 우리 잘 지내보자꾸나 하고 등장하는 철부지 아빠라니!!!!!!!! 빡치네!!!!!!!!!! 심지어는 자매가 어린 시절에 살았고 엄마가 죽기 전까지 살았던 그 집은 100% 전남편의 소유였던 것으로 밝혀져!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집은 구스타프가 그의 모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집니까. ㅋㅋㅋㅋ 두 자매는 그 집을 상속조차 받을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집은 매우 심각하고 우울한 사연이 있던 집이었다는 것이 구스타프의 새 시나리오로 밝혀진다. 철들 수 없는 예술하는 부모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딸아 내 상처를 니가 보듬어다오라니 ㄷ ㄷ


한 때 잘 나가던 예술영화감독이었던 구스타프는 십 수년 째 장편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가 전 부인의 장례식 뒤풀이에 낄낄빠빠하지 못하고 나타나서는 연극배우인 딸에게 "나는 연극이 싫다, 하지만 너의 연기는 다 보고 있단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아직 보지 못했구나. 다시 말하지만 나는 연극이 싫다. 그러나 너는 훌륭한 배우지, 재능이 있어. 그래서 너를 위해 준비했다. 이번 내 영화의 주인공이 너란다. 너를 염두해 주고 시나리오를 썼단다. 어때? 아빠 짱짱맨이지? 비록 바람나서 너희 자매를 버리고 떠났긴 했지만, 이런 멋진 아빠 본 적 있니?"라고 주접을 떨어댄다. 노라는 이런 직진에 분노하고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구스타프 식으로 화해를 요청하는 사람 극혐이다. 이기적이다 정말 이기적이야!!!!!


장소는 어느 극장. 엘 패닝(헐리웃 스타)이 관객석에서 넋 나간 표정으로 영화를 보고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극장 밖으로 뒤쳐 나간다. 엘 패닝이 감동한 영화는 해안가 도시의 어느 영화제의 구스타프 감독 기획전에서 상영한 구스타프의 대표작이자 둘째 딸 아그네스가 아역으로 출연하여 천재적 연기를 펼친 영화다. 엘 패닝은 비공개 저녁 식사 자리에 구스타프 감독을 초대하고 장녀 노라에게 거절당한 구스타프는 엘 페닝에게 구애(?)하여 새 시나리오의 주인공 캐스팅에 성공하게 된다. 


장면은 구스타프의 낡고 늙은 사연 많은 하우스! 눈치 빠른 아그네스는 구스타프 소유의 집에 있는 엄마의 물건들을 치운다. 엄마의 유산을 혼자 맘대로 처분하는 게 맘에 걸려서 언니 노라도 오라고 해서 상속권(?)을 행사하게 해 준다. 난 이 장면이 참 싫었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딜 가나 아그네스 같은 딸들이 있다. 파투 위기의 집안을 홀로 온몸과 온마음으로 지키는 딸들. 마치 백범 김구가 홀로 남아 상해임시정부를 지키듯이. 뒤늦게 나타난 노라는 아그네스가 맘에 들어하는 꽃병을 자기도 맘에 든다면서 가져가 버린다. 물론 고의는 아니다. "아빠도 오기로 했어."라는 아그네스 말을 듣고 뒷문으로 도망가는데 하필 손에 꽃병이 들려 있는 우연!


둘째 딸 아그네스를 자신의 영화에 아역으로 출연시켰던 구스타프는 둘째 딸의 아들(구스타프에겐 하나뿐인 손자)을 또 영화에 출연시키려 한다. 아그네스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맘대로 손자에게 접근하여 출연 허락을 받아낸달까?? 천사 같던 아그네스도 이점에 대해서는 구스타브에게 화를 내면서 아들을 영화에 출연시키지 않겠다고 자신의 의견을 확실히 주장한다. 


구스타프 신작의 주인공이 원래는 노라였다는 것을 알게 된 레이첼(엘 패닝)은 더더욱 연기에 몰입하지 못하고 이 배역은 내 것이 아닌 노라의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영화에서 하차한다. 엘 패닝이 주연이라서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댄 것 같던데 이는 어찌 되는 건지 궁금했지만 영화에서 따로 언급은 없다. 한편 구스타프의 시나리오를 읽은 아그네스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언니뿐이다는 확신으로 시나리오를 들고 노라를 찾아가서 '읽어보기라도 해'라고 하면서 미끼를 던진다. 


영화의 엔딩은 이렇다.

노라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엄마가 죽을 때까지 살았던, 구스타브가 그의 모친에게 상속받은 낡고 늙은 사연 많은 그 집은 현대적으로(곡선보다는 직선이 많은 현대 북유럽스타일?) 인테리어를 다시 한다. 화이트와 그레이 컬러에  직선이 강조되는 모던 키친에서 노라가 아들(아그네스의 아들이자 하나뿐인 노라의 조카)을 등교시키고 안방으로 가서 천장에 줄을 매단다. 이때 아들이 다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고 노라는 거실로 나가서 "왜 왔니?" 물으니 아들은 "휴대폰을 두고 갔어." 하면서 휴대폰을 들고 다시 나간다. 노라는 다시 안 방으로 들어가서 하던 일을 마저 하려고 하고 카메라는 이 모든 것이 영화 세트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세트장에서의 삼대 즉 구스타프, 노라와 아그네스, 그리고 아그네스의 아들은 화기애애해 보인다. 


이 영화에서 쫌 웃겼던 장면은 구스타프가 손자에게 준 생일 선물이다. 그것은 dvd 두 장인데 한 장은 미카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이고 또 한 장은 모니카 벨루치 주연의 <돌이킬 수 없는>이다. 하... 나는 대학생 때 <돌이킬 수 없는>을 보고 난 후 한 동안 무서워서 지하터널 통행로를 이용하지 못했다. 그런 영화를 초딩 손자에게 생일 선물로 주는 구스타프는 어떤 사람일까? 개그캐?? 착한 아그네스는 "dvd플레이어가 없어서 이건 볼 수 없어."라고 말하며 웃고 만다(역시나 배려심 깊은 아그네스). 이 장면이 구스타프가 어떤 사람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세상만사 자기 위주, 주변사람 특히 가족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 물론 구스타프 식 개그를 표현한 선물일지도 모르지만, 상대방에게 필요한 선물이 무엇일지 생각하는 시간조차도 낭비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보였다. 


ps. 2026년 여성의 날 기념 알라딘 굿즈 1) 페미니스트 찻잔 세트 2) 여성 참정권 우드트레이를 소장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 영화가 곱게 감상될 리가 없었다는 것을 밝힌다. 솔직히 구스타프는 너무 자녀를 우려먹는 거 아닌지? 노라를 위해 쓴 시나리오가 아니라 자신의 상처(사연 많은 하우스)를 치유하기 위해서 쓴 것이고, 모친에게 받은 상처를 딸로부터 보상받으려고 하는 거 아니냐? 꼽사리로 손자까지 출연시키고. 좋게 보려고 해도 그렇게 안 봐진다. 


(아래는 마지막에 남겨둔 결정적 스포일러??)






ps2. 그 낡고 늙은 집의 사연은 이렇다. 젊은 시절 노라의 할머니 즉 구스타프의 엄마는 나치반대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나치에게 끌려가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가혹한 고문을 당한다. 고문의 구체적인 형태는 역사학자인 아그네스가 도서관을 뒤져가면서 찾아낸다. 이 가족에게 아그네스는 절대적 구원자인 듯. 고문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구스타프의 모친은 침실의 천장에 목을 매고 자살한다. 그 집을 구스타프가 상속받는다. 결혼 후에 그 집에서 가족들과 살다가 바람나서 가출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구스타프의 모친이 자살한 그 방은 구스타프 부부의 방이었다가 이혼 후에는 노라 엄마의 방이 된다. 노라 엄마는 그런 사연을 모른 채로 평생 그 방에서 살았던 것. 이것도 참 별로다. 이 이야기가 이번 구스타프의 신작이고 노라가 자살한 할머니 역할, 아그네스의 아들이 구스타프 역할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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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 2026.2.19.개봉

감독: 김동호

장르: 장편 다큐멘터리

출연: 김동호,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고레에다 히로카즈, 탕웨이(꼽사리 김태용), 뤽 베송, 데르덴 형제, 차이밍량, 임권택, 문소리+장준환, 심재명(명필름), 한재덕(사나이픽쳐스, 이 다큐 제작, 한재덕이 제작한 영화는 셀 수도 없지), 정지영(감독), 장재현(파묘 감독), 강제규(쉬리 감독), 윤가은(세계의 주인 감독), 박정민, 이정재, 김남길, 황정민, 고아성 등등. 출연진이 너무 많고 엄청나서 다 기억하기엔 무리무리. 


관객수: 2026.3월 22일 현재 간신히 1000명 넘어서 1090명. 내가 봤을 땐 700명 초반이었다. <왕과 사는 남자>는 1400만 명을 넘었다는데. 참고로 나는 <왕과 사는 남자>와 <휴민트> 둘 다 연휴 때 봄. 두 영화 모두 잘 되길 바랐는데 <휴민트>가 흥행 못해서 눈물이 ㅠㅠ <왕과 사는 남자>와 개봉 시기가 겹치지 않았다면 더 흥행했을 텐데... 이 두 영화 감상문은 임시저장으로 길게 있는데 살릴지 말지 고민 중. 


무기력할 때, 인생 활력이 0에 수렴할 때, 만사 귀찮고 때려치우고 싶을 때 보면 활력을 얻을 수 있는 영화!!


김동호는 초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었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김동호이다. 

이 다큐를 보고 김동호에 대해서 알게 된 점: 전공은 법. 하지만 법조인이 되지 않고 관료가 되어 문화부에 발령받아 어쩌다 보니 영화관련 행정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 

영화 속에는 80살은 충분히 넘었을 것 같은 김동호가 다큐를 찍기 위해서 촬영 감독에게서 카메라 온 오프부터 배우는 장면, 고령의 나이에도 매년 독일 등등 영화제에 참석하는 장면, 엄청나게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쓰고 독수리 타법보다 느린 타자로 원고를 쓰는 장면 등등 깜짝 놀랄 장면들의 연속으로 나와서 내 뒤통수를 후려친다(엉엉). 내일모레면 90살이 되는 김동호는 나보다 더 왕성하게 움직이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1937년에 태어난(처음 본 영화를 말할 때 625 전쟁으로 피난 가서 본 영화라고, 그때가 중학생 때라고) 김동호는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아마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문화공보부 공무원으로 입사하여 퇴직할 때까지 문화 관련(특히 영화) 주요 행정일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스크린 쿼터제 관련 업무도 처리했을 듯하고, 이때 영화 종사자들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 다큐 속 정지영 감독과의 면담에서 얼핏 나온다. 


2026년 3월 현재 한국나이로 90세, 만으로 88세. 자신의 만든 첫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는 건 어떤 느낌일까. 문화(특히 영화) 관련 행정부 공무원이 되었을 뿐인데 삶이 온통 영화로 채워지는 세상 부러운 삶!!! 김동호가 스포츠 관련부서에 발령받았다면 아마도 이 다큐는 '미스터 김, 축구장에 가다'가 되었을 지도. 장르가 뭐였든 열심히 했을 것 같은 사람이다. 


봉준호 언제 나오나 오매불망 기다렸는데 역시나 봉감독은 주인공(?)이라서 말미에 나온다. 끝까지 기다려야 해!!


다큐의 주요 테마는 전세계라고 하지만 주로는 유럽과 아시아의 오래된 극장에 찾아가서 관련자들과 인터뷰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터뷰는 상영관 의자, 영화관 로비의 테이블에서 이루어진다. 필수 질문은 '당신에게 영화관은 무엇인가?' 


누구더라. 박찬욱이었나. 영화관은 학교라고 했다. 나 역시 이 말에 매우 동의함! 확실한 것은 같은 영화라도 영화관에서 보면 더 잘 봐진다는 것이다. 인강과 직강의 차이랄까. 기계가 읽어주는 교과서 본문보다 선생님이 직접 읽어주는 본문이 뇌에 더 오래 남는 것과 비슷한 이치.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교실에서 선생님이 본문을 읽어주면 더 오래 기억에 남고 이해도 더 잘 되었다. 그래서 공부할 때, 지금도 이해가 잘 안 되는 내용의 책을 읽을 때는 작게 소리 내어서 또박또박 읽곤 한다. 그러면 이해가 잘 됨. 


영화 속에서 인터뷰 하는 영화감독, 영화배우, 영화 제작자, 영화 제작 종사자, 영화관 종사자들 대부분은 영화관의 미래를 암울하게 보고 있다. 더 나아가 영화의 미래도 좋게 전망하지 않고 있다. 나는 전망이 나쁘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지금, 있을 때 후회가 남지 않도록 충분히 감상하자는 주의다. 


임권택 감독이 나오는 장면. 1937년 생인 김동호는 인도네시아던가 그 쯤 나라의 어떤 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 특별전을 하는데, 이 특별전에 1936년 생 임권택 감독을 모시고 참석하겠다면서 임권택 감독 섭외를 시도한다. 김동호에 비해서 활력이 많이 없어 보이는 임권택 감독은 해외여행을 망설이는 눈치다. 이 장면에서도 도대체 김동호의 저 활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불가사의할 뿐이었다. 나는 저 나이에 살아있지도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ps. 올해의 작은 목표: 인디영화 관람 스탬프 10개 다 모으기. 인디영화 1편당 스탬프 1개. 현재 4편 봄. <맨홀> <한란> <세계의 주인>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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