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는 아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가끔은 아빠가 용서받지 못할 끔찍한 일을 한 가지 저질러서 딱 그것만 원망하며 살고 싶어. 그런데 그런 게 없고 매일 자잘한 일만 있지. 찔끔찔끔." 큰 상처 대신 자잘한 상처가 쌓이는 곳이 바로 집이다.
(중략)
"사랑해요. 용서할게요. 용서해주세요. 굿바이."
<영화 보고 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 / 김중혁>
#1. 넷플릭스 드라마 <광장>
장르불문 절대 피할 수 없는 K-가족 판타지
이준혁이 출연한다길래 본 넥플릭스 드라마 <광장>을 보면서 '아, 씨, 동생의 죽음에 대한 복수라고 했을 때, 바로 그때 피했어야 했네.' 하는 생각을 100번 정도 했다. 공중파의 멜로드라마도 웹툰 원작의 넷플릭스 드라마도 피할 수 없는 한국인의 인장은 바로 가족 판타지!
오늘도 나는 어디서 생겨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집 안의 날벌레들을 생명체라기보다는 제거해야 하는 얼룩 정도로 생각하면서 살충제를 뿌리고 휴지로 집어서 쓰레기봉투에 넣는다. 나에게 날벌레=제거해야하는 얼룩일 뿐이다. 사람을 날벌레 죽이듯 하는 조직폭력배의 두목인 봉산과 주운, 그 두 양아치가 자신의 자식(딸 아님, 아들임)에 대해서만 특별히 성모 마리아급의 자애를 베푸는 모습에서 나는 폭소하고야 말았다. 배꼽 가출하는 줄. 가족 판타지 없이는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는 제작이 불가능한 것 아닌지 요즘 진지하게 생각 중이다.
주운이 금손에게 큰 소리로 말하며 절규한다 "다 너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금손은 "아버지는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어요."라고 김 선생에게 말한다. 금손의 저 말이 K-부모 종특임. 이주운(허준호 배우)은 전형적인 한국의 이율배반적인 부모상이다. 자신의 부도덕한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자식 핑계를 대고, 모든 건 다 자식을 위한 것이라고 울부짖지만 그 부모들이 말하는 자.식.이라는 것은 부모라는 자들의 머릿속에만 들어있는 망상 속 자식인 것이다. 그 자식이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독립적인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다. 자식은 부모의 미니미라는 생각 말고는 없는 것이다. 최근에 읽은 소설 <파친코>도 이점에서는 가족 판타지다. 양진과 선자가 서로를 원망하는 부분을 읽은데 내가 복장을 얼마나 쳤는지. 아주 그냥 누가 더 희생했고 누가 더 억울한가 배틀 대환장 파티. 애초에 낳지를 마라고 이 사람들아. 가장 억울하고 불쌍한 건 '노아'잖아. <파친코>를 읽은 후 미국태생의 작가도 한국인의 유전자가 있는 한 가족 파타지로부터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건가 하는 생각을 좀 했다. 어쩌면 K-컬처로 흥행하려면 필수 양념으로 가족 판타지가 꼭 들어가야 하는 걸지도. 그게 아니면 <오징어 게임>처럼 지독하게 잔인하거나.
소지섭과 이준혁이 연기하는 기준, 기석 형제의 우애를 보면서도 저 형제가 손에 들어야 하는 건 칼이 아니고 볏짚으로 만든 쌀가마니지 쌀가마니야 하고 생각했다. 느와르판 K-의좋은 형제.
p.s.
늘 궁금한 점. 떼로 싸울 때 아군과 적군은 어떻게 구분하지?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의 광장에서의 곡괭이 도끼 살육 장면에서 '죽여야 할 상대방을 어떻게 구분하지? 옷차림이 똑같은데 말이야.' 하는 의문이 많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드라마 <광장>에서도 봉산파, 주운파 구분 없이 조폭들은 전부 검정 슈트에 흰 셔츠 차림인데 어떻게 적을 구분하지? 이 의문은 영화 <하얼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p.s.2
K-조폭 장르를 볼 때마다 이질감이 느껴진다. 절대 적응 안 됨.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류의 영화들을 보면 이상하게도 뭔가 모르게 쪽팔린다. 양아치들이 좋은 양복 차려입고 나와서 거들먹거리면서 그 속에서 도덕을 찾고, 의리를 찾는 게 웃기고 부끄럽다. 아, 홍콩 조폭 장르도 좋아하지 않는다. <무간도>를 볼 때도 몸 둘 바를 몰랐다. 폭력, 서열, 의리를 따지는 인간 군상들을 보면 나는 뭔지 모르게 불편하고 부끄럽다(내란우두 머리 윤 씨가 자신의 인권 운운하는 걸 볼 때의 부끄러움 같은 것. 부끄러운 짓을 하는 인간을 볼 때 느껴지는 부끄러움!). 내가 조폭 장르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조폭 장르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을 이해 못 하는 것과 같겠지. 정략결혼에서 사랑 운운하는 것과 양아치들이 의리 운운하는 것 중에 뭐가 더 이율배반적인가... 어려운 문제다 ㅋㅋㅋ
#2. 영화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김중혁의 영화감상문 모음집 <영화 보고 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에서 영화 <마이어로위츠 이야기>에 대한 감상문을 읽고 그날 당장 보고 싶어서 수면 시간을 어겨가면서까지 영화를 다 보고 평소보다 늦게 잠들었다. 내가 경험한 가족이 그 영화 속에 있었다! 자기중심적이며 철저하게 이기적인 부모, 부모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한 경쟁을 했던 관계가 소원한 삼 남매, 부모의 재산 처분에 대한 삼 남매의 서로 다른 생각, 부모의 병 수발에 대한 억울함, 나를 방관했던 부모에 대한 원망, 그렇지만 뇌혈관이 터져서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다 늙은 부모의 육체를 봤을 때의 연민, 하지만 회복한 부모가 또다시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울화가 치민 자녀. 내 부모가 나에게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상처받았지만, 정작 본인도 자신의 자녀에게 고대로 행동하는 작태(이 장면 정말 좋았다!!) 등등 이 영화는 어느 한 장면 버릴 것이 없는 리얼 가족 다큐 그 자체다. 픽션인데 다큐보다 더 놀랍도록 현실 그 자체임! 특히 식당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대화하는 장면! 서로 상대방의 말은 1도 듣지 않고 자기 할 말만 계속 함.
#3. 넷플릭스 드라마 <애나 만들기>
<애나 만들기>에 등장하는 애나의 부모의 태도가 맘에 들었다. 자신의 자식이지만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고 하면서 거리를 두는 그 태도가 맘에 들었다. 드라마 <광장>의 봉산이 아들 준모를 대하는 태도와 매우 대조적. 내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덮어두고 편들고 보호하는 게 K-부모식 자애인데, 그건 자애가 아니고 내란수괴 윤 씨의 내 인권만 소중해라고 행동하는 지독한 자기중심적 행동과 똑같다. 혹은 "내 개는 안 물어욧!" 하는 반려 부모들의 이기적인 자기 반려동물 애호 거나. 영화 <마더>에서 봉준호가 풍자하는 K-모성. 김혜자의 명대사 "너 엄마 없어?"
#4.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그러나 K-컬처에도 훌륭한 가족 그리고 우정에 관한 영화가 있다. 우정 판타지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긴 하지 ㅋㅋㅋ. 이 영화에는 가족 판타지도 우정 판타지도 없다. 가족사진 속에서 자신을 도려내고 출가를 하는 태희(배두나 배우), 무리로 친하게 지냈던 여고 친구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그 무리도 흩어지고.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는 그런 면에서 가족 판타지, 우정 판타지의 대환장 쇼! 솔직히 나는 눈 뜨고 보기가 힘들었다. 3화까지 보고 포기.
#5. 마무리
나의 정서심리구조가 일반적인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는 요즘이다. 이 정도로 고립(?)되어 있으면 인간이 그릴울 법도 한데, 그 어느 때보다 편하고 좋다. 심지어 건강검사 결과도 좋아짐. 한국 드라마가 보여주는 가족상, 친구상, 애인상에 졸라 가스라이팅 당해서 자연발생적인 그런 인간관계들을 굳이 내치지 않고 반평생을 보내버린 것이 억울하기까지 하다.
요즘처럼 박제된 듯(일상의 루틴에서 벗어나지 않고 사는 것)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고 싶다. 내가 죽었다는 것조차 모르게 그렇게 흔적도 없이 소멸해버리고 싶다. 늘 조르지오 모란디의 물병들이 그려진 정물화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림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하지만 정물화의 핵심은 안정감이 느껴지는 구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안정감있게 정지되어 있지만 계속 바라고 보고 있으면 역설적이게도 역동성이 느껴지는. 요즘은 드디어 내가 조르지오 모란디의 물병 정물화 같은 생활을 완성했구나 감탄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충동도 절망도 없이 매일 하루를 버텨내는(살아내는) 중이다.
나도 내가 이렇게 혼자서 잘 지낼 줄 몰랐다. 혼자 잘 지내는 것에 천재적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그리운 인간, 보고 싶은 인간 한 명이 없다는 것은 내가 인격적, 사회적으로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내 주변에 머물렀던 자들의 인격과 사회성이 문제였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