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내가 마지막으로 강연회에 참석했던 건 작가 김훈의 강연회였다. 12월 21일, 정독도서관에서 열렸는데, 작가의 명성을 입증이라도 하듯 빈자리가 없어 몇몇은 서서 강연을 들을 정도였다. 사실 나는 김훈 작가의 강연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3년전쯤이던가? 작가가 <남한산성>을 펴냈을 때 참석한 적이 있었다. 김훈 작가의 강연회의 특징은 작가는 늘 혼자 강단에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3년 전에 어느 문학평론가의 사회로 강연에 임했는데, 이날 역시 권희철 문학평론가의 사회로 강연이 시작됐다.
(사진 출처: 마담웬디님)
권희철 문학평론가가의 작가 소개로 강연이 시작됐는데, 그 소개가 나름 재밌다. 김훈 작가는 서울 출생이란다. 그런데 여기서 꼭 밝히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서울 출신 치고 사대문 안이냐, 밖이냐가 중요한데, 당연 작가는 사대문 안에서 출생하셨다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우리가 잘 아는대로 작가는 자전거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의 특기겸 이력에 자전거 레이서라고 밝힌단다. 사실 자전거 레이서란 공식 직함은 없다. 작가가 만들어낸 것이다. 김훈 작가가 자전거 말고도 등산을 좋아해 알피니스트란 직함을 갖게되길 원했는데, 알피니스트라면 적어도 히말리야는 다녀와야 하는데 아직까지 한번도 다녀와 본 적은 없고, 북한산이나 도봉산은 완주 했는데, 그것 가지고는 알피니스트라 명함도 내밀 수가 없어 자전거 레이서로 만족하기로 했단다. 이로써 또 한 번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왜 작가가 되었는가 관해
사실 강연회라고는 하지만 김훈 작가는 말을 아끼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따로 준비해서 들려줄 강연은 없고, 바로 질의응답식으로 들어갔는데, 사이 사이 사회를 맡은 권희철 씨가 보충 질문을 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작가는 제일 먼저, 왜 작가가 되었으며,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묻는 질문부터 시작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이 질문은 작가가 어딜 가도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아닐까 싶다. 그 질문에 대해 그는 본래 소설가는 자신이 원하던 삶은 아니라고 했다. 자신은 오히려 대기업의 생산자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말하자면 평범한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는 말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자신은 1950년대생으로서 바로 자신의 시대부터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그 이전까지는 해마다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굶어 죽어 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그처럼 밥을 못 먹는 나라에서 밥을 먹는 나라로 발전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의 비리, 즉 밑바닥에 깔린 악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때부터 소설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고, 그것은 지금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고 했다. 그 질문을 했던 사람은 20대 후반의 작가지망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실 한 가지의 꿈을 가지고도 이룰까 말까인데, 원하지 않았는데 어찌하다 보니 무엇이 되어있더라 하면 좀 좌절이 느껴지지 않을까? 하지만 작가 김훈에게도 그 같은 뚜렷한 동기 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이 나라 밑바닥에 깔린 악의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동기. 희망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동기. 무엇이든 그런 강력한 동기가 그 사람을 가장 꿈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김훈 작가에 대해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에 관해
김훈 문학의 화두는 역시 '남자'일 것이다. 또 그러니만큼 그를 두고 '마초'니 '가부장'이니 말이 많은 것에 대해, 그는 가부장은 인정하지만 마초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가부장이란 단어가 부정적 이미지로 씌여서 그렇지 원래 그것은 한 가정을 지키고, 부인과 아이를 돌보는 상당히 신사적인 의미라며 자신은 그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마초는 남자의 허세를 뜻하는 말로써, 자신은 그 단어를 아주 싫어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의 이상한 이론들, 이를테면 아들은 엄마를 좋아하고, 아빠는 딸을 좋아한다는 외디푸스 컴플렉스니 일렉트라 컴플렉스에 대해서 작가는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아버지와 아들은 몰라도 딸과 어머니는 대체로 잘 지내잖냐며 반문한다. 작가의 그런 말을 들으니 나 역시 엄마하고 잘 지냈나? 왠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순간이었다.
또한, 그는 정말 역사 소설을 쓰는 작가일까?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 <현의 노래>등을 보면 정말 그런 것도 같다. 게다가 지금 소설로 쓸지 안 쓸지 모르겠는데(내가 볼 땐 곧 쓰지 않을까 한다. 단지 말을 극히 아끼는 작가의 성정을 보면, 독자들과도 함부로 약속 같은 건 안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느꼈다) 우리나라의 천주교 박해를 공부 중이라고 하는데, 이런 것들을 볼 때 작가는 역사에 천착을 하고 그것을 소설로 쓰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부인했다. 단지 자신에게 있어 역사란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재료일뿐 역사 소설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남한산성>은 그 시대의 야만성을 얘기하려고 했고, <칼의 노래>는 남자의 고독을, <현의 노래>는 무기와 악기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런 것처럼 소설을 쓰는 전략적 판단에 의해 선택되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만일 우리나라의 천주교 박해를 소설로 쓰게 된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신앙을 지키는 쪽이 아닌 목숨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신앙을 버릴 수 밖에 없는 사람의 입장을 쓰고 싶다고 했다.
어디서 영감을 얻는가?
작가는 좋은 문장을 쓰는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나도 그렇지만 그의 문학을 읽는 거의 대부분의 독자는 그가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알고 싶어했다. 특히 그의 간결하고도 시적 문체를 보면 정말 시를 많이 읽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어떤 독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떤 시를 읽냐고. 그런데 돌아오는 답은 의외였다. 작가는 시를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읽는 것은 의외로, 법전이나 소방실무지침 같은 책이라고 한다. 법전은 진화된 언어면서 그 언어가 갖는 명석함과 문장의 선명함 때문에 좋아하고, 소방실무지침 같은 책은 실제로 (위기상황에서) 사는 방법을 설명해 놓고 있기 때문에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좋아한다고 한다(과연 생각이 많은 사람에겐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구나 싶다). 단지 <칼의 노래> 같은 작품은 문장을 생각할 때 한 칼에 쓰는 문장을 생각했다고 한다. 또한 빨리 쓰는 문장 즉 음악에서 휘모리나 자진모리를 생각했고, 전쟁소설이었던만큼 무사의 문체와 비장미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자연 따라오는 어디서 영감을 얻을까란 의문에 그는 부러 언급을 회피했다. 영감 같은 것은 없다. 단지 노동만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확실히 작가다운 명확한 대답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생각하기에 따라선 영감을 어디서 얻느냐는 이 질문이 작가의 속내를 알고 싶어하는 얄팍하고도 진부한 질문일수도 있을 터. 작가에게 있어 이 대답외에 할 수 있는 말이 달리 또 있을까 싶다.
김훈 작가, 스피드를 권하는 오늘날의 세태에 대해
강연 도중 작가는 상당히 인상적인 얘기를 했다. 이를테면 그는 정부의 복지정책을 보면서, 복지의 무조건적 확장에 대해 반대했다. 기율 즉 무상으로 먹는 밥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무상으로 밥을 먹게 해 주기 보다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한 우리의 청소년들이 왜 그토록 스피드에 목숨거는지 아냐며, 예를들면 아이들이 오토바이를 사기 위해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단다. 그런데 배달에 조금 늦기라도 하면 배달시킨 집에서 득달같이 주인에게 항의가 들어가고 그러면 주인은 배달나간 그 아이의 알바비에서 천원을 깎는다고 한다. 그러니 청소년들이 그렇게 스피드에 목을 매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나도 잘 몰랐던 사실이다. 그러면서 작가는 그렇게 피자배달을 오면 배달 온 그에게 반드시 팁을 줘서 보내라고 당부했다. 술집에 가면 전혀 생면부지의 여자들에게 팁을 잘 찔러주면서 왜 그런 아이들에겐 팁을 주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호응을 받았다. 그것은 확실히 생각해 볼 사안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마무리...
그날의 강연회 분위기는 정말 활기찼다. 특히 작가는 사람을 그다지 잘 기억 못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래서일까? 권희철 문학평론가도 작가를 사석에서 만나고 또 얼마만에 다시 만나면 누구냐고 그러고, 뭐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건, 작가의 어느 열혈독자가 전에 작품 하나를 필사하고 보여드렸더니 잘했다고 칭찬했었는데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기억한다고 했다. 바로 그가 이번에는 <내 젊은 날의 숲>에 나오는 꽃 하나를 책에 나온 설명 그대로 그려서 액자에 넣어 작가에게 선물을 해 박수를 받았다. 나도 얼핏 그림을 보았는데 작품속에 나오는 조연주의 세밀화만큼이나 꼼꼼하게 잘 그렸다. 과연 열혈 독자라면 이 정도의 열의가 있어야하는 거구나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선입견일지 모르겠지만 김훈 작가를 보면 쉽게 말을 섞기가 어려운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강연이 끝나고 사인을 받을 때 그는 일일이 사인 받으러 온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사인을 했다. 내 이름도 그의 입에서 불렸는데, 그때 잠깐 친절한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선입견은 또 말그대로 선입견은 아닐지? 의문 겸 기대를 가져본다. 지금도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자신은 지금 이렇게 나이 먹고 늙어가는 것이 좋다고. 인생을 다시 살아도 실수와 방황이 많은 젊을 때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그러고 보면 이제 더 이상 젊다고만 할 수 없는 나에게도 남은 건 어떻게 하면 회춘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늙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작가는 현재 60대 초반인데 70이되면 글을 못 쓸 거라고 말하며 앞으로 자신이 쓸 수 있는 작품의 수는 고작해야 두 세 작품이 될거라고 했다. '고작해야'는 적어도의 또 다른 말이 아닐까? 나는 작가의 이번 작품을 대했을 때야 비로소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조금 감이 잡히는 것도 같았다. 소재는 다양하지만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작품을 쓰는 작가는 그다지 많지 않아보인다. 부디 강건해서 그의 생의 나날이 다하기까지 좋은 작품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