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 인간 - 좋아하는 마음에서 더 좋아하는 마음으로
한정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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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은 놀랍도록 나와 비슷해서 자꾸 표지를 다시 보게 된다거나, 책의 앞면, 옆면, 뒷면을 살피게 된다. (어디서 누가 나 보고 있는 거 아니야?) "살아있을 때 재미있으면 좋으니까 '여러 이름'을 뒤집어쓰고 '여러 존재'로 환승하며 살아봐야지."라는 저자의 생각은 이름을 바꿔쓰는 것 빼놓고 평소 내가 매일같이 하고 다니는 말과 완전히 같다. (나는 계속해서 '박찬선'이고 싶은데, 이때의 '박찬선'이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안고 산다. 세모 모양의 박찬선과 네모 모양의 박찬선, 타원형의 박찬선과 육각형의 박찬선이 있었으면 좋겠다) 재미와 의미가 삶의 1순위인 나는 재미x의미 지수가 떨어질 때마다 더 재미있는 일, 혹은 더 흥미 있는 일로 환승해왔는데- 어쩐지 세상 모든 일에 멍해지는 순간이라던가, 세상 모든 일이 재미있어 보일 때는 난감해져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기도 한다. (그런 지점 역시 저자와 비슷해서 흠칫. 저자는 이런 순간을 '흥미 대출 정지 구간'이라 불렀고- 그래서 그녀는 소설을 직접 썼다. 재밌는 소설을 발견하지 못해서 쓰는 소설이라니. 정말 내 스타일이야!) 뭐, 언제는 안 그랬냐마는 또 한 번 흔들리는 시기라- 아주 강력한 안정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책의 마지막 문장에 색연필로 밑줄을 긋기도 했지만- 우리는 안다. 이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푸하하핳)


결국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최초이자 최후의 환승지는 자기 자신이다.


정말 좋은 사랑이라는 기준은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온전한 ‘나’가 남는 것이다.


오롯이 나로 환승하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69쪽


+ 저자와 내가 비슷한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반복해 확인하면서, 그가 골라 소개해 주는 책들 역시 읽고 싶어졌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 <부적>, 이인성 작가의 <한없이 낮은 숨결>, 마틴 러드윅의 <지구의 깊은 역사>, 차이밍량 감독의 <안녕, 용문객잔>도 곧 마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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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넘기
이안 지음 / 키위북스(어린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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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여덟 살의 최대 난제, #줄넘기


하나씩 하나씩 겨우 같이 넘던 친구들이 어느 순간 휙휙 스무 개, 서른 개씩 해내자 우리 집 여덟 살은 더욱 위축되었다. (이제 아예 안 하려고🤣…) 그런 아이에게 선물하고 싶어 준비한 그림책 <줄넘기>. 숨도 차고, 힘들기도 하고, 발맞추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하다 보면 재미있을 거라고 으샤으샤해주는 그림책을 넘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당장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줄넘기하는 그림책 속 친구들의 표정이 어찌나들 밝은지!) 

 


사뿐사뿐 휙휙, 리듬을 타며 손과 발의 움직임을 맞추는 일이 파도 타는 일처럼 자연스러워질 때 진짜 가벼워질 수 있겠지. 같이 나가보자! 줄넘기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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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흐르는 강물처럼, 하회마을 시간을 걷는 이야기 4
김유경 지음 / 키위북스(어린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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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마을을 상상할 때 우리가 흔히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이를테면 마을 한 가운데 우뚝 서있는 600년 된 느티나무, 울퉁불퉁 돌이 박힌 돌담, 나란히 선 좁다란 골목, 방 안에 걸린 근사한 소나무의 자태같은 것. 물론 하회마을에도 그런 것들이 있다. 하지만 하회마을의 특별함은 고즈넉한 옛풍경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포크레인이 기와를 고쳐 얹고, 마루에 앉아 수박을 나누어 먹으면서도 어제 주문한 택배를 설레는 마음으로 뜯어보는 일상에 있다. 옛것은 소중하지만, 옛것이기만 할 때 지키기 어려워진다. 고치고 보태어가는 과정 모두가 역사의 일부이고, 그 모든 시간이 소중해질 때 역사는 지난 날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살아 남는 것 아닐까.



편하고 쉬운 것을 좇는 바쁜 세상 속에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쓰시던 물건을 소중히 간직하고,

낡은 곳은 조금씩 고쳐 나가며,

600여 년을 한결같이 살아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얼마나 귀한 일인지.

(그림책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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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시
김휘훈 지음 / 필무렵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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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어둠 사이로 두 개의 빛이 반짝, 빛난다. 거북의 눈동자다. 거기 있었구나, 한참을 찾았어. 나와 함께 오르자꾸나, 하는 다정한 문장 뒤로 무표정한 거북의 얼굴이 보는 이를 짓누른다. 이렇게 깊은 데 까지는 아무도 안 온다고, 그러니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거북의 말을 따라 위로 오른다. 찬란한 빛이 있는 세상,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강화 유리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거기, 거북이 나타났다. 다들 꽤나 놀란 눈치였고, 아이들은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아니, 나는 너를 해치지 않아. 하지만 무표정하고도 커다란 거북은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의 눈가에 노란 리본이 눈에 띈다. 한때는 모두의 가방이나 핸드폰에 달려있기도 했던 노란 리본. 어느 순간부터 '아직도?'이기도 했고, 많은 순간 잊고 지내기도 했다. 그렇게 아홉 번째 4월 16일을 맞이하는 사이 우리는 4월 16일을 잊고 지난 364일과 하루의 4월 16일들을 보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거북의 표정이 왜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아진다. 정말로 잊고 지낸 날들. 정말로 찾지 않았던 날들이 그렇게나 많았다.


문화는 개개인이 각기 책임의 경로를 다할 때만이 발생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책무를 인식하고 수행한다면, 진실은 발현될 것이다. 전체 국가의 문화는 어떤 다른 것들 위에서도 세워질 수 없다(케테 콜비츠, 1915)


반짝이는 다섯 개의 별을 올려다보며 다시, 표지로 돌아온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창 안에 우리를 찾아온 거북이 있었다. 너무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았던, 애써 봐야 겨우 찾아낼 수 있었던 거북은 일 년에 한번 찾아오는 4월 16일일까. 많은 순간 잊고 지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어김없이 어떤 날에는 너희들을 생각한다고. 아마도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4월 16일은 너희를 생각할 거라고. 그렇게 규율을 통해 실현될 수도, 종결될 수도 없는 애도를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계속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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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과의 결별
구본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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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한 욕망은 그러므로 흐르는 대로 놓아두어야 한다. 깊은 내부로부터 흘러나와 감동으로 휘몰아치는 욕망을 받아들임으로써 자랑스러운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다시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회귀는 바로 일상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모든 시간을 그것에 소모해야 한다. 인생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때 자신의 삶이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된다. ('초판 서문' 중에서)

 


'나'는 누구일까. 어디에 살고 있고, 어떤 학교를 다녔고, 어떤 일을 하며, 어떤 관계 속에 있는지 말고- 그냥 '나'를 설명해 볼 수 있을까. 직업도, 관계도 아닌 '나'는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 안에는 어떤 것이 속할 수 있을까. 지금 읽는 책, 요즘 듣는 음악, 오늘 검색했던 키워드. 그런 것들은 '나'일 수 있을까. ...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 나는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가. 아주 돈이 많아진다면, 그래서 일을 하지 않아도 좋다면- 나는 일을 하지 않을까? 그때의 삶은 어떤 모양새일까. 그게 과연, 지금과 얼마나 다를까.


(당연히) 쓸만한 돈이 있고, 가족들이 건강하고, 하는 일이 잘 되면 좋겠다. 그런데 여기서 쓸만한 돈이란 얼마나 되어야 하는 것일까? 지금보다 분명히 많은 금액일 텐데 우리는 어떻게 그만큼을 벌 수 있을까? 가족들이 건강하기만 하면 될까? 아이의 성적이 좋지 않아도, 건강하니 되었다며 하하 호호 웃을 수 있을까? 잘 되면 좋겠다는 내가 하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벌써 지나온 직업만 예닐곱 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큰 고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녹아내리기도 하고,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의외의 취약성을 내비치기도 한다. 동시에, 우리가 숱한 타인의 말속에 살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거긴 좋은 직장이니 절대로 놓치지 말라거나 마흔 이후에는 직장 옮기는 거 아니라는 말,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겠냐는 말 같은 것들은 논리적인 근거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이 들어 세뇌의 형태로 우리에게 각인되었다. 



그리하여 다시,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를 욕망해 본다. 하루에 여섯 시간쯤 책을 읽고 싶다. 책상에 앉아 밑줄 치고 노트하며 공부하는 독서다. 그리고 나서는 한두 시간 오늘 알게 된 것에 대해 쓰고, 오락을 위한 읽기를 한두 시간 이어간다. (때로는 영화를 한 편 봐도 좋고!) 그 가운데 몸을 움직이는 것이 귀찮지 않았으면 좋겠고, 야채를 꼭꼭 씹어 먹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삶이면 좋겠다. 물론, 아이와 남편과도 좋은 관계 안에서 지내고 싶다. 어쨌거나- 배우고 익히는 것이 즐거움임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그것을 나누는 일을 사명처럼 여기며 살면 좋겠다. (나눌 사람이 있으면 더 좋고!)



이런 삶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할까? 되물어보면, 별것 아닐 수 있다. 어쩌면 지금 당장 실천 가능한 영역의 삶이다. 그런데 왜, 궁극의 삶을 눈앞에 두고도 실천하지 못하는가? 이것은 두려움의 문제다.


사람들은 익숙한 인생의 사이클에서 박차고 나와야 한다.

도약은 어려운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되살리고 자신의 사랑을 다시 살리고 싶은 그 순간에

그 신념, 그 사랑과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나이스 닌 '일기'중에서


책을 읽는 내내 '변화'라는 키워드 안에 머무른다. 변화를 일상의 원리로 받아들이는 것, 그 유연한 삶의 태도는 우리를 명함의 주술로부터 벗어나게 할 것이다. 보다 자유롭게,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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