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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봄을 건너는 법 ㅣ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정은주 지음, 김푸른 그림 / 우리학교 / 2025년 11월
평점 :
정은주 작가의 이전 작품인 <기소영의 친구들>은 죽음과 상실을 다룬 동화였습니다. 이번에는 장애 학생의 학교 생활을 다룬 작품을 쓰셨다는 소식에 놀랍기도 하고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동화에서 쉽게 다루기 힘든 주제들을 연이어 꺼내 독자들이 새롭게 생각해보는 기회를 만들어 주시는 작가님의 용기와 자신감이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우리가 봄을 건너는 법>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낱말은 '그라데이션' 이었습니다. 그라데이션은 주로 색상을 표현하는 데 이용되지요. 그라데이션 속의 한 지점을 집어내어 그 색깔을 자세히 살펴보아도, 그 색상이 정확히 어떤 색인지 이름 붙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봄을 건너는 법>에는 '장애'와 '비장애' 사이 끝없이 늘어진 그라데이션 위에 서 있는 여러 아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현실의 학교 속 학생들과 마찬가지로요. 알맞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 아이들을 '일반 학생'과 '특수 학생'으로 구분하지만, 과연 그 기준이 알맞은가, 그리고 단순히 그렇게 이분법적으로만 나누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듭니다.
이야기는 선아, 산에, 햇살, 민준이라는 네 명의 아이들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이 중 산에와 햇살이는 염색체 이상으로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아이는 의사소통이 어렵고, 관심사를 쉽게 바꾸지 못하며, 기본적인 욕구를 잘 통제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산에가 진단을 받기 전인 유치원 때까지 산에와 아주 친하게 지냈던 선아는, 5학년이 되어 전학을 와서는 자신에게 아는 체를 하고 친근하게 구는 산에가 부담스럽습니다. 반면 햇살이가 민준이에게 친근하게 굴고, 민준이가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선아는 산에와의 거리를 고민하면서, 교실에서 단짝을 만들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주눅이 들기도 합니다. 이 책은 이런 네 아이를 중심으로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마치 실제 교실을 옮겨 놓은 것처럼, 모든 등장인물이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생동감 있게 묘사된다는 것입니다. 중심 인물인 네 아이뿐만 아니라 나현, 지현, 지후, 윤하 같은 주변 친구들도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주변 인물이라고 해서 단순히 '착한 아이', '나쁜 아이'로만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특히 보호자와 선생님들의 말과 행동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더욱 몰입하게 됩니다. 장애를 받아들이고 아이가 일상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돕는 산에의 어머니와, 아이의 장애를 부정하고 등급을 받는 것조차 거부하는 햇살이의 어머니가 대비되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야기가 끝나고, 마지막 작가의 말에는 카를 슈르츠의 명언이 등장합니다. "이상은 별과 같다.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처럼 그것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기준으로 항로를 찾을 수는 있기 때문이다." 저는 아직 학교 안에서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동등한 친구가 된 것을 본 적이 없고,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상상해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봄을 건너는 법>을 읽고 그런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기적은 이런 작은 상상으로부터 생겨났을 테니까요. 언젠가는 그 상상했던 모습을, '장애'와 '비장애'로 규정되지 않는 그라데이션 속의 우정을 교실 안에서 실제로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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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서가: 초등교사 꿀벌의 어린이책 북큐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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