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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 죽이기 - 2004 제2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주희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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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맞지 않는 건 교복만이 아니었다. 내 작은 체구는 훌쩍 커버린 영혼을 담기엔 역부족이었다. -36쪽

사랑이나 죽음이나 주변에 쓰레기처럼 굴러다니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랑이 재활용 쓰레기인데 반해 죽음은 폐기처분용이다. -44쪽

살아 있는 것들은 뻔뻔하다. 내가 방에 갇혀 있었을 때 놀아달라고 짖어대던 피테쿠스의 개들만 봐도 그렇다. 학교에서 태연하게 사람을 만나고 다녔던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태연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애인이 말하길,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고 감정을 털어 놓는 건 아이들이나 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상처를 함부로 까발리지 말라던 첫 번째 애인의 충고와 일맥상통하는 말이다.-47쪽

"꿈? 그건 깨라고 있는 거지. 장래 희망하고는 다른 거야. 선생님, 간호사, 군인. 이런 건 장래 희망이다. 노력하면 이룰 수 있어. 꿈이란 건 말이다. 약 같은 거야. 정우같은 놈이 먹으면 비타민, 우리같은 사람이 먹으면 마약. 먹을수록 중독되고 정시만 몽롱해져."
두 번째 애인이 말하길 우리 나이가 되면 꿈만 꾸고 살아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꿈만 꾸고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꿈에서 깨어난 친구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혼자 견딜 수 있는 사람만이 꿈을 지키는 파수병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55쪽

"나 스머프에 빠진 것 같아."
"슬럼프겠지?"
언어장애인가? 나는 위기감을 느꼈다.-75쪽

"떼 돈 버는 게 다 성공이냐? 자본주의에 세뇌 당한 놈. 우물이 날 알아주는 게 성공이지?"-81쪽

두 번째 애인과 헤어진 후로 나는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뒤는제 깨우치는 아이들에겐 감수해야 하는 짐이 있다. -92쪽

당장 -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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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경영 서돌 CEO 인사이트 시리즈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김형철 옮김 / 서돌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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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마이 라이프

 [카르마 경영]. 제목에서 예상한 대로 경영인이, 예상치 않게 일본인이 쓴 책이었다. 경제나 경영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는데다 전생에 유관순이라도 된 듯 일본에 반감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썩 내키는 책이 아니었다. 게다가 집 근처 도서관과 서점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도 없었으며 겨우 대구까지 나가 손에 쥔 후줄근한 표지 디자인은 읽기도 전에 좋지 않은 인상들을 가득 심어주기 충분했다. 표지 속 할아버지의 ‘오겡끼데스까?’하는 표정과 책을 권하시던 선생님의 온화한 표정이 아니었더라면 쉽게 책장을 넘기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경영과 관련된 책들은 딱딱하고 재미없다. 어떤 식으로 시간을 관리하고, 사람을 만나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매뉴얼을 늘어놓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제목과 화려한 표지에 현혹돼 책을 펼치고 삶의 진리를 얻으려는 찰나에 보이는 것은 성공한 자들의 자기 자랑이거나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조롱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류의 책들에는 쉬이 손이 가지 않는다. 남의 삶을 보고 한숨을 쉬느니 자신의 삶에 맞는 방식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이 책은 좀 다른 방식의 책이길 바라면서 서점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펼쳤다.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27세에 3,000만원으로 교세라를 창업해 세계 100대 기업에 들고, 그 후로도 수많은 사업에 성공한 사람이라고 한다. 특별한 점은 퇴직 후 탁발승이 되었다는 것, 어쩐지 이 책에서는 자랑 매뉴얼이 아닌 삶의 철학을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라 글귀와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일은 영혼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일이라는 구절이 눈에 띄었다. 책을 쓴 사람이 그렇고 그런 성공한 경영인은 아닌 것이 확실했다.

 ‘카르마’란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으로 이 책에서는 현상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으로 부르고 있다. 생각한 것이 원인이 되며 그 결과가 현실이 되어 나타나는 하나의 인과응보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강렬히 원하고, 생각하고, 실현시키려 노력하다보면 어느새 그것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것, 인생은 마음에 그리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뉴턴이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물음을 품고 그것을 구하려 애썼기 때문이었다. 어떤 인생을 살고 싶다면 우선 생각을 하고, 구체적인 시뮬레이션을 상상하고, 그것을 강렬히 바랄 것, 그렇다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저자가 특히 강조한 것은 꿈을 크게 꿀 것과 실천할 것이었다. 무언가 마음에 착 닿는 느낌, 내가 꾸고 있는 꿈의 크기와 실천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인생의 결과 = 사고방식 × 열의 × 능력’이라는 공식이 나온다. 여기서 능력은 타고난 재능이나 지능을 뜻하며, 열의는 노력의 정도를 뜻한다. 공식이 곱셈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큰 의미를 품고 있다. 셋 중 하나라도 0일 경우 결과는 없으며, 능력이 별로더라도 열의가 크다면 얼마든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사고방식인데, 이것은 나머지 둘과 달리 -값을 갖는다. 따라서 부정적인 생각은 결과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이는 인생에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나타내주는 것이다. 원리와 원칙을 근간에 두고 필사적으로 살았던 저자의 삶이 어째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인지가 보인다.

 이타심으로 살라,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를 경영한다는 사람이 했다고는 보기 힘든 이야기이다. 이기심으로, 나와 관련된 것들을 중심으로 수익을 올려야 성공할 것 같은 세상에서 이타심으로 살라니 눈앞에 보이는 이득을 쫓지 말아야 한다니 의아하다. 저자는 이타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시야가 넓어질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말을 한다. 멀리 보고 길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야 말로 현대인들이 이나모리 가즈오 씨에게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위의 세 부분을 제외하고도 인상 깊은 부분이 많았다. 저자가 삶이라는 것을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는지 성공적인 사고방식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곳, 그처럼 살기 위해 제시된 무척 평범하지만 어려운 원칙, 그리고 이나모리 가즈오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부분들이 그런 것들이다. 한 번 읽고 지나치기에는 아쉽다싶을 정도의 삶의 자취, 그래서 그가 참 부럽고 멋지게 느껴진다. 그래서 멀리서나마 이렇게 외쳐본다, 브라보 유어 라이브.

 이나모리 가즈오 씨의 삶의 방식들을 살펴보았으니 이제 내 차례다. 비록 성공한 경영인도 아니고 아직 세상을 경험했다고 할 만한 이력도 뚜렷하지 않다. 그러니 삶의 방식이 어떤지를 판단하기도 이르다. 다만 나는 나의 리듬에 맞춘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고자 하며 어떤 것들이 이나모리 가즈오 씨의 것과 겹치기도 하여 기쁜 마음이다.

 강렬하게 바라는 꿈이 있다. 세상에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그것들에게 존재로서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모두가 좀 덜 외롭도록, 더 웃을 수 있도록 소통과 기록의 매개자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일생을 그 일을 하면서 살면 행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시뮬레이션이 없다. 머리는 커다란 꿈을 품고 있지만 발은 차가운 땅을 디디고 서 있어야 한다. 머리와 발이 따로 놀아서야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그래서 나침반을 마련했다.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인생의 결과를 구하는 공식에 나를 대입해 보았다. 사고방식은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열의는 넘치고, 능력은 최소한 0 이상이므로 꽤 좋은 값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자리에서건 내 몫을 해내겠다고 다짐하며 살고 있다. 남을 배려하며 사는 것에서도 큰 보람을 느끼고 있으니 이타심으로 사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목표를 정한지 오래되었고, 내 방식대로의 좌표도 정했으며, 펄펄 뛰는 심장을 달고 있으니 이제 달려갈 일만 남았다.

 카르마, 마음에 그린대로 이루어진다는 것. 한번 믿어 볼 작정이다. 최선을 다해 생각하고, 노력하겠다. 내 방식대로 우주와 조화를 이루고, 타인을 위해 마음을 쓰겠다. 스스로 세상에 큰 몫을 할 자라고 믿는 것이 가장 큰 힘이지 않겠는가? 나를 믿는다, 잘 해낼 것이다. 내 존재의 우주적 의미를 밝히는 날까지 브라보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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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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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 퐁. 핑. 퐁 -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렁그렁, 크지도 않은 눈망울에 커다란 물방울이 고였다. 펑펑, 흘러내리지 않고, 그렁그렁 고드름처럼 매달려만 있다. ‘못’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60억 인류를 생각하면서, 지구의 미래를 위한 ‘언인스톨’을 떠올리면서, 울고 있었는데도 그것들을 흘려버릴 수 없었다. 이렇게 아프고 속상한 이야기, 그렇게 담담하게 흘러가는 문체, 그리고 박민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은 나를, 인류를, 지구를 정말로 ‘언인스톨’할 때가 되었거나 박민규가 천재이거나 둘 중에 하나를 명백히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왕따와, 인류와, 지구와, 탁구의 이야기 - 내가 당신들을 만난 것에 감사드린다.  

  중학교 2학년 무렵의 왕따라면 내 주위에도 있었다.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이 특별한 인간의 눈 밖에 나 특별하게 정신적으로 다쳤던 아이. 그가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을 때, 두려웠다. 다수에서 밀려나는 것은 아닐지, 함께 왕따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 내가 잘 할 수 있는지. 그래서 내가 선택한 일은 모두와 친구가 되는 것, 그래서 아무와도 친구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다수인 척 할 수 있었고, 항상 소수의 곁에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건 세상에서 가장 비겁하고 비열한, 아니 사악한 것이었다. 용감하지 못했던 나를 돌이켜 보며 ‘못’과 ‘모아이’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또 말한다. 그 때 나와 그 아이에게도 탁구라는 것이 있었다면, ‘핑퐁’ 대화의 틀을 이용해 소통할 수 있었다면, 나는 좀 덜 사악했을 것이고, 그는 좀 더 든든하지 않았을까. 이제라도 ‘정말 미안해’라는 핑을 날리면 ‘괜찮아’라는 퐁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비겁하고 비열한 나에게 손 내밀어 준 그에게 ‘고마워’라고 핑, 가면 속에서 스스로 왕따하고 있었던 나에게 ‘괜찮아’라고 퐁, 혼자라도 핑. 퐁. 핑. 퐁. 탁구를 친다. 

  왕따에게 주어진 탁구, 그것은 썩 괜찮은 위로다. 가볍고 작은 공은 자신감을 주며, 격하게 부딪치지 않을 거리에서 서로를 향해 날리는 게임 방식은 그들을 무장해제하게 만든다. 몸이 슬슬 풀리고 호흡이 맞춰지면 ‘핑퐁’ 경쾌한 소리와 함께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 그 옛날 미국과 중국마저 그랬던 것처럼. 핑퐁-작지만 밝게 빛나는 공을 통해서 작가는 왕따를 위로하고 싶었던 게다. 차라리 못이면 좋겠다던 ‘못’에게 대화할 수 있도록,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던 게다. 그래서 못과 모아이도 핑. 퐁. 핑. 퐁. 탁구를 친다. 

  ‘지구가 멸망해버리면 좋겠다. 라는 생각은 나도 종종 한다. 아무리 괜찮아 잘 될 거야 나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거려도, 잘 될 것 같은 미래나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힘들어졌다. 명품으로 치장을 한 발랄한 부익부와 굶주림으로 밥을 먹는 흐릿한 빈익빈의 세상에서, 인간은 인간으로서 존엄성이나 행복추구권을 가진다던 사회 교과서의 구절들은 그저 성경 말씀이 된 요즘, 차라리 지구가 멸망해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나에게 세상은 누구나 꿈을 꿀 수 있고 그 꿈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배울 수 있고, 치료받을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으며, 그 속에서 꿈을 꽃 피울 수 있는 곳,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여기는 그런 곳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제도권 교육을 마치고 세상에 발을 디디려는 순간,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부익부가 아니면 빈익빈이 되는 세상을 내가 꿈꾸는 세상이라고 착각하고 살았던 것이다. 열심히 핑. 퐁. 핑. 퐁. 탁구공을 날려보아도 부지런히 핑. 퐁. 핑. 퐁. 탁구공은 돌아오므로, 세계는 듀스 포인트로 변하지 않고 주욱 부익부 빈익빈으로 달려온 것을 모르고 말이다. 

  9볼트짜리 해악을 가진 인간들이, 매수당해야만 살 수 있는 세상에서, 왜 사는지도 모른 채 던져진 지구라는 공간은 과연 괜찮지 않은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만들어진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못’과 ‘모아이’는 왕따를 당하고, 노인은 매수당하기를
기대하고, 버스에 탄 사람들은 다수인 척 노력하고, 대부분의 인류는 왜 사는지조차 모르며 살아간다. 그러니 ‘핼리혜성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임’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혜성을 기다리는 간절함만큼 세계는 부패했으니 역시 듀스 포인트다. 

  그렇다면 선택은 한 가지, 지금껏 지구를 지배해왔던 거대한 시스템을 제거하는 것이다. 선택권은 지금껏 소외되었던, 배제되었던, 무관심의 대상이었던 ‘못’과 ‘모아이’에게 있다. ‘지금 이대로, 변함없이’를 선택할 만큼 부패하지 않은 중학생 둘은 언인스톨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이제 세계는 서서히 언인스톨되고 있다. 공룡이 지구에서 사라졌던 것처럼 인류 또한 사라질 것이다. 화석 연료의 사용으로 인해 진행된 지구 온난화, 무분별한 자연 파괴로 인한 기상 이변은 그 작은 증거들이며, 인류가 지금 이대로, 변함없는 태도로 세계를 일궈나간다면 그 진행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잘 된 일이라고, 인류가 뿌린 씨를 거두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말하려니 미워도 다시 한 번 기회를 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미련스러운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혹시 언인스톨에 반대하거나 지금 이대로의 세계에 애정이 있는 인류가 있다면, 누구라도, 이제라도, 왜 살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세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다시 ‘못’과 같은 아이가 나타나 “적응이 안돼요, 다들 결국엔 자기 할 말만 하는 거잖아요, 얘길 들어보면 누구도 틀렸다고는 할 수는 없어요, 왜 그럴까요, 왜 아무도 틀리지 않았는데, 틀린 곳으로 가는 걸까요, 내가 이렇게 사는 건 누구 책임일까요, 무엇보다 그걸 용서할 수 없어요, 60억이나 되는 인간들이, 자신이 왜 사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거잖아요, 그걸 용서할 수가 없어요.”라고 하며 울지 않도록. 

  그렁그렁, 작은 눈을 가득 채운 눈물이 책을 덮은 지 한참 만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핑. 퐁. 핑. 퐁. 미안해, 미안해. ‘못’과 ‘모아이’, 60억 인류, 그리고 지구에게 미안했다. 그저 다수에 편입되기를 바라며 보냈던 시간들이, 내가 사는 세상은 문제가 없다고 믿었던 세월들이, 그래서 깜빡하고 지냈던 그들이 생각나서 자꾸만 미안했다. 이제라도 핑. 퐁. 핑. 퐁. 탁구를 치며, 대화를 시도하고, 희망을 만들어가겠다. 뭐, 어차피 지구가 언인스톨될 것이라고 해도 그건 미래의 일이니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왜 살고 있는지, 이 세계는 어찌하면 좋을지 당신도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 ‘못’과 ‘모아이’와 60억 인류와 지구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 핑. 퐁. 핑. 퐁 - 실버스프링의 핑퐁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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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을 사다 시작시인선 74
성선경 지음 / 천년의시작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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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몽유도원을 사다]를 집다
 

시 - 너무 먼 당신
  진실하고 솔직한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지상 최대의 선(善)이다. 숨기거나 속이거나 빙빙 돌려 어렵게 말하는 것은 비겁하고 알차지 못한 것이라 여겼다. 그런 이유로 나는 자연스레 ‘시’와 멀어졌다. 코찔찔이 초등학생 시절의 의성어와 의태어가 잔뜩 들어간 동시를 읽으며 느꼈던 말의 재미, 수능 공부에 매달리며 읽었던 문학사에 길이 남의 시들을 배워간다는 즐거움, 그런 것들이 내가 가지고 있는 시에 대한 좋은 인상의 전부이다. 동시는 유치해서 싫어졌고, 교과서에 나오는 시들은 시험을 치기 위한 암기였기에 부담스러웠다. 수많은 시인들이 많은 생각을 압축해 담아 놓은 시어들도 무거워 보이기만 했다. 시는 원래부터 나와는 피부터 다른 사람들이 즐기는 일종의 브랜드 소품처럼 여겨졌다. 생각을 함축하고 고운 언어로 정제하는 작업을 하는 그들의 손은 논일과 밭일로 거친 손을 갖게 되는 내 아버지의 손과는 너무도 동 떨어진 것이었다. 그들만의 세계, 그들만의 언어, 그들만의 즐거움 - 그런 생각이 들수록 시는 나에게 너무 먼 당신이 되어갔다.


시집(몽유도원을 사다)을 집다
  ‘몽유도원을 사다’는 우연한 기회에 나와 인연이 닿았다. 도서관에서 필요한 책을 찾다가 주황색 표지와 인상적인 제목을 보게 되었다. 마침 찾던 책이 대출 중이었고 빈손으로 대출실을 나오기가 뭣해서 아까 그 제목의 책을 대출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몽유도원을 사다’였다. 얇고 가벼워서, 주황색 표지가 썩 마음에 들어서 별 거부감 없이 책을 펴고 읽기 시작했다. 물론 그 때까지도 시는 여전히 나와 먼 당신이었기에 큰 기대 없이, 빌려 온 책이므로 읽어야겠다는 의무감으로 그렇게 글을 읽어나갔다. 

 
  “나는 내 詩에서 간자반처럼 소금기가 느껴지길 원한다. / 내 살아온 날들의 눈물과 땀과 소금발의 냄새가 / 간자반처럼 짭짤하게 느껴지길 원한다. /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 육 남매의 맏이로 / 그렇게 살아온 날들이 눈물처럼 / 안개처럼 은은하게 번졌으면 좋겠다. / 가끔 산다는 것이 땅강아지같이 느껴질 때 / 살맛이 없어 입맛조차 잃었을 때 / 문득 그리워지는 간자반처럼 / 문득 그리워지는 바다처럼.”

   서문을 읽고 마음에 작은 물결이 일었다. 내가 그토록 멀리 여겼던 시라는 것이 내 마음 아주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각 시어들에 또 어떤 함축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고, 문학적인 표현이 있을 것이고, 나는 또 그런 것들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글을 봤겠지만, 분명 내 마음이 찌릿, 시인과 통하는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간자반의 소금기’라는 것, 시인이 살아왔을 삶이라는 것, 산문이 아니라 운문으로, ‘시’라는 것으로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 - 어쩌면 더 진솔한 당신
  사실을 사실로 구구절절하게 기록하는 것이 진실이라 믿었던 내 생각은 성선경 씨의 시를 만나면서 깨졌다. 그의 글은 지금까지 가졌던 우아하고 고귀한 인상의 시가 아니었다. 생활을 소재로 삼았고 그 속에서 누구나가 느낄 수 있는 정서를 표현했다. 그렇다고 감정이 철철 흘러넘치는 사랑 타령이나 버터 잔뜩 발린 허위의 탈도 보이지 않는다. 불혹의 나이를 살아온 한 인간으로서의 진실하고 솔직한 심정들이 시 속에 고스란히 녹아 읽는 족족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고 있었다. “내 마음의 무릉도원 한 세트”를 사 들고 온 가장의 모습, 아내와의 싸움에서 “내 가슴 속에 사는 부처님”을 느끼는 어른, 아내와의 사소한 다툼에서 “그럼 나는 무어냐” 질문하는 남자, 감을 보며 어머니를 떠올리는 아들 등 인생이 하나씩 묻어 있는 글들을 보고 시가 얼마나 솔직한 문학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구구절절 풀어 쓰지 않아도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참 멋지지 아니한가. 시란 어쩌면 더 진솔한 글일지도 모르겠다.

시 - 이제는 멀지 않는 당신.
  다행스럽다, 이제라도 시와 조금 가까워진 느낌을 지니게 된 것이. 시인의 바람처럼 시집에서는 간자반처럼 짭잘한 소금기가 느껴진다. 그가 살아온 세월들도, 앞으로 살아갈 모습들도 간자반처럼 짭잘할 것만 같다. 그럼에도 그가 참 좋아 보이는 것은 맘에 품고 있는 따뜻함이 보이기 때문이다. 고향을 떠올리며 쓴 글들과 앞으로의 자신의 다짐을 쓴 글들이 그를 증명한다. 참 좋게 보이는 사람이 쓴 참 좋은 글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짭잘한 간자반을 보면, 달콤한 황도를 보면 이 따뜻한 글들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글을 통해 자신을 내보인다는 것, 그것만큼 투명한 것이 없다고 한다. 시는 짧고 압축적이라 그 정도가 가장 덜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다른 글들이 얇은 천이라면 시는 실오라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진실하고 솔직한 시와 자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를 읽는 기쁨을 알게 된, 시집을 집어 들었던 그 날에 나는 '몽유도원'으로 가는 티켓을 집었다. 몽유도원이 따로 있던가, 여유롭게 누워 진솔한 글 한 편 만날 수 있으면 그 곳이 바로 몽유도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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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아침
이경자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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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누구에게도 아름답거나 충만하지 않다.
오히려 젊음은 우리 모두에게 미숙한 지혜, 불안한 미래, 가난한 일상을 선사할 뿐이다. 그 시기의 사랑 역시 결핍과 오류와 허상으로 빚어진다. 훗날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우리는 젊은 날 사랑의 이름으로 행한 과오나 악행에 대해 알아차리게 된다. [천 개의 아침]에는 바로 그와 같은 사랑의 과정이 공감할 만한 서사 구도를 통해 묘사되고 있다. 젊은 시절의 자신을 용서하고, 그 시절의 상대방과 화해하고, 사랑의 한 과정을 마무리 짓는 여정이 세밀하면서도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 된다. 

- 김형경(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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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글이 표지에 써 있는 소설을 한 권 읽었다.
아름답거나 충만하지 않은, 모두에게 미숙한 지혜, 불안한 미래, 가난한 일상을 선사하는 '청춘'의 중후반 즈음에 서 있는 내가 그 청춘을 지난 이의 글을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었다.

읽으면서 궁금증은 일종의 연민으로 변했고, 가슴 한 구석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나와는 거리가 있는 그들의 삶이기에, 다행이도 소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안타까운 사연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박정환의 한 많은 청춘과 최수영이라는 가여운 청춘이 만나 사랑이라는 것을 하더라. 오해와 이해를,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함께 있음을 행복이라하고 사랑이라 하면서 불행한 시간을 따뜻하게 보내려 하고 있더라. '사랑이 사치인 존재', 그들이 참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작가의 말에도 있듯 이 글은 작가를 위로하기 위해 쓴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듯하며, 읽고 난 뒤 마음이 헛헛해진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런 시절을 보내기때문에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좀 더 참신한 문체나 특별한 소재의 글이 좋다. 징징거리는 옛날 연애는 좀 진부하지 않은가.

글이란 독자에게 힘을 주는 것이었으면 한다. 장르가 어찌되었든, 무슨 이야기가 되었든 읽고 나면 머리에 한참 동안 남아서 울리고 있을 큰 힘을 지닌 것이 되었으면 한다. 삶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아도, 보기에 따라 또 쓰기에 따라 다른 의미를 발산하는 액체성 개념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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