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을 사다 시작시인선 74
성선경 지음 / 천년의시작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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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몽유도원을 사다]를 집다
 

시 - 너무 먼 당신
  진실하고 솔직한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지상 최대의 선(善)이다. 숨기거나 속이거나 빙빙 돌려 어렵게 말하는 것은 비겁하고 알차지 못한 것이라 여겼다. 그런 이유로 나는 자연스레 ‘시’와 멀어졌다. 코찔찔이 초등학생 시절의 의성어와 의태어가 잔뜩 들어간 동시를 읽으며 느꼈던 말의 재미, 수능 공부에 매달리며 읽었던 문학사에 길이 남의 시들을 배워간다는 즐거움, 그런 것들이 내가 가지고 있는 시에 대한 좋은 인상의 전부이다. 동시는 유치해서 싫어졌고, 교과서에 나오는 시들은 시험을 치기 위한 암기였기에 부담스러웠다. 수많은 시인들이 많은 생각을 압축해 담아 놓은 시어들도 무거워 보이기만 했다. 시는 원래부터 나와는 피부터 다른 사람들이 즐기는 일종의 브랜드 소품처럼 여겨졌다. 생각을 함축하고 고운 언어로 정제하는 작업을 하는 그들의 손은 논일과 밭일로 거친 손을 갖게 되는 내 아버지의 손과는 너무도 동 떨어진 것이었다. 그들만의 세계, 그들만의 언어, 그들만의 즐거움 - 그런 생각이 들수록 시는 나에게 너무 먼 당신이 되어갔다.


시집(몽유도원을 사다)을 집다
  ‘몽유도원을 사다’는 우연한 기회에 나와 인연이 닿았다. 도서관에서 필요한 책을 찾다가 주황색 표지와 인상적인 제목을 보게 되었다. 마침 찾던 책이 대출 중이었고 빈손으로 대출실을 나오기가 뭣해서 아까 그 제목의 책을 대출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몽유도원을 사다’였다. 얇고 가벼워서, 주황색 표지가 썩 마음에 들어서 별 거부감 없이 책을 펴고 읽기 시작했다. 물론 그 때까지도 시는 여전히 나와 먼 당신이었기에 큰 기대 없이, 빌려 온 책이므로 읽어야겠다는 의무감으로 그렇게 글을 읽어나갔다. 

 
  “나는 내 詩에서 간자반처럼 소금기가 느껴지길 원한다. / 내 살아온 날들의 눈물과 땀과 소금발의 냄새가 / 간자반처럼 짭짤하게 느껴지길 원한다. /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 육 남매의 맏이로 / 그렇게 살아온 날들이 눈물처럼 / 안개처럼 은은하게 번졌으면 좋겠다. / 가끔 산다는 것이 땅강아지같이 느껴질 때 / 살맛이 없어 입맛조차 잃었을 때 / 문득 그리워지는 간자반처럼 / 문득 그리워지는 바다처럼.”

   서문을 읽고 마음에 작은 물결이 일었다. 내가 그토록 멀리 여겼던 시라는 것이 내 마음 아주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각 시어들에 또 어떤 함축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고, 문학적인 표현이 있을 것이고, 나는 또 그런 것들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글을 봤겠지만, 분명 내 마음이 찌릿, 시인과 통하는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간자반의 소금기’라는 것, 시인이 살아왔을 삶이라는 것, 산문이 아니라 운문으로, ‘시’라는 것으로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 - 어쩌면 더 진솔한 당신
  사실을 사실로 구구절절하게 기록하는 것이 진실이라 믿었던 내 생각은 성선경 씨의 시를 만나면서 깨졌다. 그의 글은 지금까지 가졌던 우아하고 고귀한 인상의 시가 아니었다. 생활을 소재로 삼았고 그 속에서 누구나가 느낄 수 있는 정서를 표현했다. 그렇다고 감정이 철철 흘러넘치는 사랑 타령이나 버터 잔뜩 발린 허위의 탈도 보이지 않는다. 불혹의 나이를 살아온 한 인간으로서의 진실하고 솔직한 심정들이 시 속에 고스란히 녹아 읽는 족족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고 있었다. “내 마음의 무릉도원 한 세트”를 사 들고 온 가장의 모습, 아내와의 싸움에서 “내 가슴 속에 사는 부처님”을 느끼는 어른, 아내와의 사소한 다툼에서 “그럼 나는 무어냐” 질문하는 남자, 감을 보며 어머니를 떠올리는 아들 등 인생이 하나씩 묻어 있는 글들을 보고 시가 얼마나 솔직한 문학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구구절절 풀어 쓰지 않아도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참 멋지지 아니한가. 시란 어쩌면 더 진솔한 글일지도 모르겠다.

시 - 이제는 멀지 않는 당신.
  다행스럽다, 이제라도 시와 조금 가까워진 느낌을 지니게 된 것이. 시인의 바람처럼 시집에서는 간자반처럼 짭잘한 소금기가 느껴진다. 그가 살아온 세월들도, 앞으로 살아갈 모습들도 간자반처럼 짭잘할 것만 같다. 그럼에도 그가 참 좋아 보이는 것은 맘에 품고 있는 따뜻함이 보이기 때문이다. 고향을 떠올리며 쓴 글들과 앞으로의 자신의 다짐을 쓴 글들이 그를 증명한다. 참 좋게 보이는 사람이 쓴 참 좋은 글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짭잘한 간자반을 보면, 달콤한 황도를 보면 이 따뜻한 글들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글을 통해 자신을 내보인다는 것, 그것만큼 투명한 것이 없다고 한다. 시는 짧고 압축적이라 그 정도가 가장 덜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다른 글들이 얇은 천이라면 시는 실오라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진실하고 솔직한 시와 자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를 읽는 기쁨을 알게 된, 시집을 집어 들었던 그 날에 나는 '몽유도원'으로 가는 티켓을 집었다. 몽유도원이 따로 있던가, 여유롭게 누워 진솔한 글 한 편 만날 수 있으면 그 곳이 바로 몽유도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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