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출근하는 일상에 무료일간지가 빠질수 없게 된지도 한참되었다.  전철역 입구마다 대여섯가지의 무료일간지들이 나란히 서서 손님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이제 담벼락에 벽돌이 박혀있는 것처럼 당연한 풍경이 되었다. 

사실 어쩌다 한번씩 집어들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광고로 가득찬 일간지를 속으로 '쓰레기 양산자'라 부르며 몇장 뒤적이다가  그나마 5분안에 전철 선반에 올려놓고 만다. 그러면 정말 5분안에 어느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쓰레기로 수거해가버리고.  

그래도 남들이 들고 있는 모습이나 사무실에 널부러진 무료일간지가 눈에 띄는 것까지 아예 피할수는 없는 일이어서 화장실에 남겨진 것을 뒤적이거나 다른 사람 자리를 지나가면서 스쳐보곤 하는데 최근에 보니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무료일간지를 통해 엄청나게 광고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수 있었다.  나름 '전면광고'인데다가 매번 보이는걸 보니 꾸준히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쓰면서 계속 걸려서 하는 소린데, 무료일간지를 폄하할 의도는 없다. 다만 내 취향은 아니라는 것일뿐 나름의 기능과 한계는 이해하고 있다) 

나도 얼마전 일독한 책이라 반갑기는 했지만, 사실 이런 책이 이렇게 널리 읽힐 책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왠지 무료일간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많이 어렵다고 할수는 없지만 뒤로가면 술술읽히는 편도 아니고(아직도 공리주의라는 말이 귀에 울리는듯. 제대로 된 뜻도 모르는데)  딱히 재미있거나 실용적인 책도 아니고 충격을 주는 내용도 없기 때문이다.   

무료일간지에 실린 책광고를 가만히 보다보니 '삼성을 생각한다'가 불현듯 생각났다. 무료일간지에서조차 광고가 거절되어서 더 유명해진 책. 경향인가 한겨레인가 조차도 (아니면 둘 다던가) 벌벌떨며 광고를 실어주지 않던 그 책.

불의한(했던) 양심도 정의를 말할수 있다며  대기업의 실체를 폭로하고 정의를 외쳤던 그 책은 정작 사람들 앞에 나설 기회를 갖지 못하고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물음을 제목으로 한 책에 한참을 밀린 꼴이 참 아이러니하고 쓴웃음이 났다. (최근에는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죽어간(가는) 직원들의 이야기가 몇몇 애쓰는 분들에 의해 전해지곤 하던데 이런 목소리는 여전히 마이너이고 감추어지는 것을 보면 우리의 정의는 아직 한발자국도 앞으로 내딛지 못한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국의 서울대만큼은 아니어도 저자가 강의중인 하버드 출신들이 자국 정부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을텐데, 그동안 미국정부가 해왔고, 하고있는 일을 보면 '정의란 무엇인가' 공부하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과는 상관관계가 크지 않은것 같다.  정의를 실천하는 책이 침묵을 강요받고 정의를 정의하는 책만이 대접을 받는 서울시내 전철역앞 무가지의 모습은 그런 한국판 사례가 아닐런지.  

암튼 이렇게 두 책을 엮어서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사실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정의'와 김용철 변호사의 '정의'는 출신 국가만큼이나 방향이 꽤 다르다.  한사람은 철학을, 다른 한 사람은 현실을 말한다. 이렇듯 국적과 의도가 다른 두 책이 만나니 이런 결론이 나온다. 

정의란 무엇인가?  삼성을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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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6-29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의란 무엇인가 를 최고의 강의로 꼽으며 듣고 나간 하버드 졸업생들이 미국 정부 고위관료가 되어 배운 정의를 실현하고 있는가...생각해볼 주제네요.

안철수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길 - 생각과 말이 그 사람이 아니라, 선택과 행동이 그 사람이다. 투표할때 정치인이 어떤 사람인가 알려면 공약이 아니라 과거에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해왔는지 보면 된다.
김어준님도 비슷한 말을 하셨죠. - 고민이 아니라, 선택의 총합이 너 자신이다.

좋은 리뷰에 댓글이 없다니...추천합니다!^^

귀를기울이면 2010-06-29 18:05   좋아요 0 | URL
안 교수님의 말씀은 이 페이퍼를 쓴 저에게도 해당되겠지요. 자랑스럽지는 못해도 부끄럽지 않으려 노력할 뿐입니다.
 

첫번째.

추리소설이나 형사물 극영화를 보면 범인을 찾는 도중, 또는 잡은 뒤에라도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범행 동기다. 법적인 면은 자세히 모르겠으나 합당한 동기가 있어야만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럴것으로 짐작한다.   타당한 동기가 없다면 한마디로 '미친 놈'이라는 뜻이고 그렇게 되면 정신병원에 처치될지언정 정상적인 형을 내리기가 불가능하기때문이리라. 

그만큼 모든 범행에서 '동기'란 중요한 것이기도 하고 미친 놈을 제외하고는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서 , 일단은 정부의 발표를 근거로 몇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물론 나는 정부가 과거에도 자주 거짓말을 했었고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선거에서 무슨 (거짓)말을 못하겠냐"고 한 만큼 선거 일정에 맞춘듯한 사태수습 내용에도 거짓말이 포함될 수 있다는 타당하고 합리적인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의견은 소수 30%란다)  그러나 잠시나마 개인적인 의견은 접고,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과연 북한의 범행 동기가 무엇인지가 생각해 보았다.  

1. 남한의 방위태세를 확인 (이건 또 왜 확인해 보려고 했는지 설명이 필요함)

2. '나 아직 죽지 않아어!'  북한의 존재 부각

3. 잠수정/어뢰성능확인  

4. 서해상의 몇 번의 패전에 대한 복수

5. 매파 군부세력의 입지강화를 위한 독자적인 행동

etc... 

짧은 지식으론 솔직히 납득할만한 동기를 찾기는 쉽지 않다.  빤히 예상되는 득실을 고려하면 전부 그냥 '미친 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튀어나온 못에 걸려 넘어질뻔 했는데 안넘어지려 손을 짚는다는게 그만 어뢰 발사 버튼을 잘못 눌러서'가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게 하필 남한 선거철에 일어났다는게 재수좋았던듯. (선거탓에 정부의 태도가 더 의심스러워지고 남한내의 갈등이 고조된 면이 있다)   

이젠 어뢰설을 지지하는 누군가가 북한의 도발 동기에 대해 분석한 내용을 설명해주었으면 좋겠다.  

 

두번째.

한편, 동기를 찾기 어려워서 거꾸로 이 사건으로 이득을 얻는 이가 누구인지 추측해 보았다.

1. 북한 :  적전함 1척 파괴. 그 외에는 엄청난 역효과만 존재

2. 남한 정부 : 선거전 활용. 햇볕정책폐기/강경입장강화 등 정책(?) 맘껏 펼수 있는 환경조성

3. (미국)군수업체 : 무기판매기회 확대 

4. 미/일 정부 : 북한에 대한 압박카드 득템, 한반도의 분단/긴장상태 유지.(이거 하나로 여러모로 한국을 계속 이용해먹을수 있음. 반대로 우리는 주도권을 잃고 질질 끌려다닐 예정..-.-;)

5. 중국 : 북한에 대한 영향력 증가. 국제무대에서의 역할증대.

전쟁은, 예상되는 결과에 비춰볼때 우리에겐 선택사항이고 저들에겐 종말을 맞는 방식의 하나이다. 그러니 선택권은 북한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고 본다. 그래서 결국 전쟁은 피할수 있다고 볼때, 이번 사건의 최후/최대 수혜자는 현정권과 군수업체들일 것이다.  도발 동기가 저들에겐 보이지 않고 오히려 우리쪽에 보이니 아이러니다.

이래저래 피해는 한반도에 사는 백성들만 보게 생겼다. 전쟁이 나든 안나든. 다들 제대로된 지도자를 두지 못한 탓이라고 하고 싶지만..... 돌고 돌아 결국 자신의 책임이 된다. 공개된 지지율만 보면...그렇다.
 


세번째. 


검증가능하고 무결한 증거를 제시해야 내가 믿는 진실(?) 또는 확신하는 시나리오를 이야기 할 수 있다는게 좀 짜증난다. 특히 이번 사건이 군사문제여서 진실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고, 협소한 분야의 깊숙한 지식이 필요한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실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A가 전문가라고 나와서 '어뢰'라고 하면 믿고 갈수밖에 없고 B가 웃기는 소리라며 '좌초'라고 하면 또 거기에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블로거에게 증거가 무엇이냐는 식의 반문은 무의미하다.

군사전문가의 이야기를 믿으라?  법률전문가는 용산에서 불타죽은 자들이 유죄라 했고, 행정전문가들은 휴게실에서 적의 기습에 속수무책 당한 군을 영웅이라 칭하고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북한전문가는 북한이 왜 이러는지 모르며 경제전문가는 다 알고 있는 어제의 경제를 해석만 할뿐이고 기상전문가는 오전에 예측한 오후의 날씨를 틀린다.  기술도 지식도 철학도 매우 불완전하다는 말이다.(일반인보다야 나을수도 있지만 그게 진실을 담보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번 사건은 당사자가 자신의 책임까지 포함한 모든 사항을 조사한 상황이다. 당연히 신뢰도가 떨어진다. 대한민국 정부가 조심해야 할 점 중 하나는 다수의 성인 민간 남성이 군대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인데 지금과 같은 군대의 자기변호같은 발표는 의혹해소보다는 신뢰도의 하락을 가져오기 쉽다. 

천안함 조사에 외국 전문가들까지 참여시켰다고는 하지만 반대로 우리나라가 다른 첨예한 갈등지역에 파견되었을때 얼마나 주도적으로 초빙(?)국의 군사정보를 객관적 또는 반대입장에서 파헤칠 수 있을지, 얼마나 우방국에 '아니오'라고 독자적인 소리를 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거의 들러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실과 정의보다는 파워가 말을 하는 세상이라는 건 중학교에서도 배우지 않는가! 베트남 참전이 그러했고 이라크 파병이 그러하다.  


한마디로 그냥 나를 믿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상황이다. 그래서 전문가의 말대신 다른 판단근거를 만들어 본다. 당분간은 내가 가진 직관을 믿을 참이다.  그런 나의 판단 근거는 현재까지는 이것들이다. (증거가 아니라 근거...) 

1.북한은 분명 예측불가능한 괴이한 사회지만 외교적으로는 챙길건 챙기는 능숙한 조직이다. 

2.선거철마다 간첩이 잡히고 도발이 일어났다. 심지어 정부가 도발을 요청했던 전력도  있다.  

3.자해공갈로 이권챙기기는 역사적으로 흔한 일이다. (개화기때의 서구열강들, 베트남전의  통킹만 사건이 그러하며 가깝게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도 비슷한 예)  

4. 희생장병과 그 가족들을 제외하면  북한은 이번 사건으로 가장 손해보는 쪽이 될 것이다. 

5.국군이 전방상황에 대해 거짓정보를 공식발표하곤하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다.  

6.사건 관련자가 많아서 진실이 따로 있다면 그 진실을 오래 숨기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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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7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8 0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직까지 3D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 이번에는 꼭 보고싶었는데 함께 봐야할 아이가 3D로 보면 더 무서움을 타서 더빙된 2D영화로 보게되었다.  석가탄신일, 휴일 같아서 아이들관객로 만석이 될꺼라 생각했지만 오전10시반 영화라 그런지 생각보단 빈자리가 좀 있는듯 했다.    뭐... 다들 3D하는 옆 상영관으로 갔겠지... 부럽부럽..  

 

영화의 대충은 이렇다. 드래곤의 약탈때문에 대립하던 바이킹족들은 드래곤을 박멸하고 싶어하나 바이킹족 족장의 약골 아들 히컵은 우연한 기회를 통해 드래곤과 우정을 쌓는다. 꼬리날개를 잃어 날지 못하는 투스리스(주인공격인 드래곤 이름)에게 인공꼬리날개를 붙여준 것이다. 히컵은 우연히 드래곤들의 약탈이 거대한 왕초(??)드래곤의 횡포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왕초를 물리치게되고 그 과정에서 위기에 빠졌던 바이킹 동족들도 구해내며 드래곤과 바이킹의 평화 공존을 이루어낸다..... 는 이야기가 골격이다. 

물론 드림웍스에서는 그 골격에 살을 붙이면서 여러가지 의미를 첨가했다. 약골이기 때문에 진실성마저 의심 받는 주인공의 처지와 고정관념을 바꾸지 않으려는 어른들의 구태의연함, 족장인 아빠의 기대와 아들의 희망사항이 일으키는 부자갈등, 침략자(드래곤)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개심과 그너머에 있는 또다른 진실의 존재가능성, 약골 남자와 씩씩한 여자의 성역할 전도 등등  

사실 그런 정도라면 다른 영화에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는 것이므로 이 영화는 '3D로 보았을때 뭔가 제대로 다른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의 출현'이란 의미로만 남을 착한 애들 영화였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이 뭔가 조금 달랐고 그 지점에서, 솔직히 작은 충격을 받았다. 가까스로 살아난 주인공이 자기집에서 깨어나면서 자신의 한쪽 다리를 새롭게(?) 발견하는 그 장면!  마지막 전투중에 투스리스의 헌신적인 구출작전으로 히컵은 살아났지만 한 쪽 다리에 의족을 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  기존의 아동용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이(그것도 어린이가) 장애인이 된다는 설정은 내 기억으로는 없다. 오히려 개구리가 왕자님이 되고 야수가 훈남 성주로 변하는 일은 있어도 말이다.  (아차차... 슈렉이 있었군. 장애인은 아니지만 공주가 푸른괴물로 변하는 것 역시 고정관념을 확 깼었지..)

의족을 단 히컵과 의익(翼)을 단 드래곤의 병치는 이 영화가 주는 마지막 미덕이다. 나만해도 어렸을 적에 의족을 단 사람을 신기한듯 쳐다보고 자랐는데 (물론 영화 한편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내 옆에 있는 이 아이는 그러지 않기를, 외양만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기 바란다. 그것도 무의식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은 이미 차별하며 너와 나를 구분하고 있다는 의미일테니 말이다. 

어쨌든 이 영화는 애니에 닳고닳은 어른조차 식상함에서 벗어나게할수 있는 그런 영화다. 다만 비행장면이 가득한 이 영화를 3D로 못본것은 여전히 아쉽다.    

 

ps. 기타등등 

1. 주인공이 타는 드래곤에게 붙여준 이름 투스리스. 이빨이 없다는 뜻인데  우연인지 몰라도 블루투스를 연상시킨다. 내가 알기로 블루투스는 바이킹의 전설적인 영웅이었다는데 그걸 의식한 작명이었는지도.. 

2. 역시 투스리스 이야기.  거칠땐 무섭게 보이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순할땐 일본 만화영화 주인공중의 하나인 '토토로'를 연상시킨다.  이빨, 발톱 그리고 가로로 긴 얼굴에 선해보이는 인상까지. 토토로가 프로토타입이었다해도 믿을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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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레인으로 강바닥을 파헤치면 일자리가 생기고 닌텐도DS나 아이폰을 보고
우리는 왜 이런거 못만드냐는 멍청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MB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직은 한국의 대부분의 조직이 겪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는 마케팅 책들, 성공사례, 실패사례,조직관리,경영인이야기 책들.
CEO들은 이런 책을 읽으며 또 이런 책들을 읽어보라고 추천한다.
저들은 남들과 다르다. 그러니 우리도 좀 해보자. 저들처럼...
 
허무한 소리다.
남들과 달라서 성공한 이야기를 교훈삼으려면 무엇이 달라서 성공했는지를 보고
똑같이 따라할 것이 아니라  왜,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고 
우리식으로 그들과 달라지려고 해야 할것 아닌가? 
언제나 그랬듯 달라진 결과만 보고 좇아가니
결국은 도토리 키재기하는 군소 후발주자들,
레드오션에 뛰어들어 죽어라 고생만하고 겨우 생명만 부지하는
기업들의 패턴을 반복할 뿐이다.
 
창의적이돼라, 창의성을 가져라, 창조력이 힘이다다다다다...
 
안다고, 알아.
근데 새벽부터 자정까지 꼼짝말고 책상에서 모니터를 봐야 일하는 걸로 인정하면서,
쉬는 시간도 쪼개서 오로지 당장 써먹을 업무관련 책만 보게 만들면서,
휴일도 평일처럼 일해야 뭔가 제대로 된다고 안심하면서
창의성은 어디서 구하라는 건가?  입닥치고 말하라고? 큰소리로 속삭이라고?
정확하게 대충, 규정대로 빨리 일하라고?
...사람, 바보나 안만들면 다행.
 
경영진들도 올해의 단기 실적에 따라 자신의 모가지가 오락가락한다는 것을 잘알고 있고
그래서 미래의 한 그루 사과나무보다는 햇빛가리고 속성으로 키운 콩나물이나
팔고 싶어한다는거 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노랗게 얼굴이 뜬다.
 
세상돌아볼 시간도, 여유도, 여건도 허락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따라잡다 못해
세상을 앞서가라 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웃기는 질타
"남 탓 하지마라. 아이폰이 미국에서 나온게 수년전인데 그때 무엇을 고민했었는가?"
 
하고 싶은 대답
" '오늘은 집에 갈 수 있는지'를 고민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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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같은거 못만드느냐는 우문에 대한 답의 요약을 누군가 올려놓았는데  IT관련 일을 하는 입장에서 관심이 가서 오마이뉴스의 원문 기사까지 찾아보았다.   

애플로 시작해서 인문학교육으로 끝나는 흥미롭고 유익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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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뉴미디어를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깨달은 게 있다. 기술과 사회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기술이나 혁신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사회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소멸하는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사회적 형성'이라는 관점으로 한국사회를 살펴보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우선 "우린 이런 거 왜 못 만드냐"는 질문에서 시작해 보자. 최근 들어 정계와 재계의 지도자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이다. 애플의 아이폰과 닌텐도의 게임기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윗분들'의 훈계 속에 양념처럼 들어가기 시작한 '유행어'기도 하다.

 

당사자가 의도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기술과 사회의 관점에서 '우린 이런 거 왜 못만드냐'는 물음은 상당히 전복적인 의미를 갖는다. '우리 사회는 왜 이 꼴이냐'고 묻는 셈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회'는 그가 몸담은 조직과 그 조직을 포함하고 국가 모두를 의미한다. 

 



애플 사의 오랜 모토는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다.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기업으로 평가 받는 애플의 저력이 어디서 왔는지를 보여주는 사훈이다. 위계적인 기업의 문제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윗사람'의 생각이라면 특히 더. 



못 만드는 이유?

 

결론부터 말해 보자. 흔히 '질문 속에 답이 있다'는 말을 한다. 이 상황에 정확히 부합하는 말이다. '이런 거 왜 못 만드느냐'고 묻는 것은 질문자가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백하는 것이다(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만들자'고 말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모두 지도자들이다. 조직에서 가장 강한 권력과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사람들 말이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거 왜 못 만드냐'고 묻는 지도자가 많을수록 그걸 만들어 낼 가능성은 낮아진다.

 

두 번째는 이런 질문을 태연히 던질 수 있게 하는 위계적 사회구조다. 위계 사회에서 '왜 못 만드냐'는 말은 질문이 아니라, 질타이고 추궁이며 명령이다. 여기서 자신의 책임은 빠져있다. (자기는 방법을 모르지만) '어떻게든 만들어 내라'고 요구하고 있을 따름이다. 

 

위계적인 조직일수록 소통은 막혀있기 마련이다. 이런 경직된 소통구조 속에서 창의력이 꽃 피기를 바라는 것은 '우린 왜 못 만드냐'는 질문만큼이나 어리석다. 그런 질문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 조직이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 수 없을만큼 위계적이고 경직되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게 두 번째 답이다.   

  

나머지 기사는  접힌부분에...

>> 접힌 부분 펼치기 >>


출처 : 우리는 '이런 거' 왜 못 만드냐고?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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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입대 즈음해서부터 (군대에서 사고방식이)경직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곤했다. 노인이 공경의 대상에서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의 대상물이 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부터였던것 같다. 얼마쯤은 실패한듯하지만 저게 온전히 내 책임이 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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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5-07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고 좋은 글...공감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