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가 납작해졌다. 얇고 건조하고 메마르게. 낙엽처럼. 낙엽 지는 계절에 (취해서) 듣던 브람스를 낙엽 그 자체로 만들어 버리는 데서 오는 아연한 충격. 파격적인 한편으로 대단히 묵상적이고... 다른 사람들의 브람스가 가을이라면 굴드의 브람스는 한겨울인 듯.
무솔리니가 선전포고를 하던 야만의 시절, 말레나라고 하는 어떤 하나의 고귀하고 무결한 대상이 참혹하게 유린되고 파멸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소년은 어른이 된다. (말레나를 닮은 여자와의 성매매를 통해 그 역시 집단 유린의 현장에 상징적이고 간접적으로 가담함으로써) 무자비한 야만 사회의 일원이 되는 셈... 방종한 죄로 추방당했던 말레나는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다. 불구가 되어버린 남편과 함께. 돌아온 말레나를 받아주는 사회. 천연덕스럽게 다시 부인으로 호명되는 말레나. 영화는 반문한다. 뻔뻔한 쪽은 누구인가. 부덕과 몰염치는 과연 누구의 몫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