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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어떻게 내 삶을 움직이는가 - 세상의 이면을 파헤치는 실전경제학 입문서
모셰 애들러 지음, 이주만 옮김 / 카시오페아 / 2015년 2월
평점 :
이번에 읽은 <경제학은 어떻게 내 삶을 움직이는가>는 참 간단치 않은 책이다. '세상의 이면을 파헤치는 실전경제학 입문서'라는 부제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경제학에 기초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읽기엔 좀 어려울 듯하다. 이론경제를 어느 정도 알고 세상사에 관심을 가지는 독자라면 읽으면 읽을수록 자기 판단의 잣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배움이 있을 듯하고... 보통의 경제 관련 서적과는 다르게 우리가 알고 싶은 중대 사안(테마)을 던져놓고 이렇게도 설명되고 저렇게도 설명되는 대립적 개념과 이론을 헷갈리게 제시한다. 뭘 이렇게 딱 떨어지지 않고 모호한 듯한 설명을 하시나 싶은데, 어라? 이게 곱씹을수록 어떤 편향된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시대의 경제적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게 해주네. 그렇다면 이 책은 좋은 책이라 해도 되겠다.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이야 개인의 정체성에 따라 다양하겠으나, 저자는 경제학을 구성하는 두 가지 기초, 즉 '경제 효율성'과 '임금 이론'을 중심으로 일상의 경제를 설명해 나간다. 그런데 현실의 경제를 설명하는 이 두 가지 축이 최근 우리나라를 뒤흔드는 부동산 임대료, 연말정산, 무상급식, 증세 논란, 부의 불평등, 최저임금, 고용과 실업 등의 경제적 문제에 대한 답변 같기도 하여 더욱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더라. 1부 <‘경제 효율성’ 은 어떻게 내 삶을 움직이는가>의 소제목을 보면, 부자가 더 부자가 되면, 우리 모두 더 부자가 될까? 경영자가 일반 노동자보다 임금을 431배 더 받는 이유는? ‘무상교육’은 돈을 낭비하는 일일까? 굶주리고 아픈 사람에게 최소한의 보조금만 주는 까닭은? 등등 바로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왜 그런지 궁금증을 던져주는 사안들이다.
얼마 전 뉴스를 보면 기업이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최고경영자(CEO)는 거액의 연봉을 챙긴다고 비난 여론이 일었다. 모 회장님의 연봉은 최저임금 노동자의 1540년 치 연봉에 해당한다면서 이게 우리 사회의 두 얼굴이라는 투의 기사도 있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제의 핵심을 성장(경제성장)과 복지(소득분배) 중 어디에 포커스를 두는지도 관심거리다. 전 정권부터 파이를 키우는 성장을 중시하여 대기업 친화적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대기업이 많이 벌면 우리 모두의 소득이 늘기는 느는 걸까? 무상급식과 무상교육의 문제도 첨예한 대립의 관심사이다. 저자는 '파레토의 효율성 개념'_부자와 빈자의 효용성이 다르다는 입장, 재화의 재분배가 파레토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은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의 경제 원칙과 상통하네_을 통하여 현대 경제의 재분배 흐름을 보여준 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결론으로 유도한다.(내가 둔하여 이 책을 두 번 읽었는데도 얼른 와닿지 않더라.)
오늘날의 경제는 가치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추세이다.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는 효용 가치의 상대성이 반영되어 소득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저자는 "불평등 자체가 파이의 크기를 줄인다."고 말한다. 경제학자는 파이의 크기를 가격으로만 따질 뿐 그 안에 구성물이 얼마나 알찬지는 따지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그래서 경제학자는 대다수가 경기가 후퇴한다고 느끼는 상황에서도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란다. 어째 우리 경제학자나 정책당국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서민들이 느끼는 경제의 체감온도가 다른 이유를 아주 잘 대변하는 거 같지 않은가.
독점기업은 소득 분배가 불평등 할 때 가난한 소비자를 무시해 버리고 부자만 상대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된다. 이것이 과연 공리(효용)에 맞는 일일까? 그런데 바로 이것이 '220인승 비행기를 48인승으로 개조한 까닭'이기에 독점적 신자유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좋은 이유라 하겠다.
경제학자가 경제 규모라는 파이를 측정할 때 소득 분배의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파레토 효율성_이 표현이 좀 생소하지만 몇 번 읽으니 나름 이해가 된다_을 척도로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면 파레토 효율적이지 않은 '최저임금'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정부가 나서서 임금 불평등을 줄여야 하지 않을까? 이는 2부 <'임금이론'은 어떻게 내 삶을 움직이는가>에서 설명되는데, 이 또한 만만찮은 난이도로 나를 맞이한다.
2부의 문을 열면 "자유시장은 노동자가 그들이 생산하는 재화의 가치만큼 임금으로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한다. 정부가 개입해 인위적으로 보수를 조정하면 실업을 유발한다. 만약 정부가 법안을 마련해 고용주에게 임금을 더 많이 지급하라고 강제한다면, 이는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해고통지서를 날리도록 만드는 셈이다. 연간 수천만 달러를 받는 경영자는 회사를 위해 연간 수천만 달러어치의 재화를 생산한다는 것일까? 과연 우리는 어떤 기준에 의해 어떻게 임금을 받고 있는 것일까?"고 묻는다.
임금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면 실업을 유발한다고? 그래서 임금 불평등은 당연한 것일까? 바로 이 임금이론에서 '고전파'와 '신고전파'가 나누어진다는 것을 새삼 다시 상기하게 되었다. 정부의 어떠한 개입도 결국 실업을 유발한다는 신고전파 주장에 대해, 고전파는 정부가 개입하더라도 실업이 발생하지 않고 임금 평등도 증진할 거로 예측한다. 오늘 날 노동자 개인의 한계생산성을 분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신고전파 이론이 경험적 관찰에 근거해 그것을 분리할 수 없다고 밝힌 고전파 경제학의 임금이론을 대체했지만, 저자는 신고전파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실증적 증거는 '없다'라고 단언한다. 이 문제는 '우리는 성과에 따라 보상받고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최근 각계에선 최저임금 시급 1만원 인상과 생활임금 쟁취를 부르짖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정말 고용주는 노동자를 적게 고용할까? 미국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이 반드시 고용 감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결과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결과들의 논거를 보면, "생산은 팀으로 수행되고, 한 구성원의 생산물은 전체 팀의 생산물에서 분리할 수 없다."데 있다. 이거 돼지꼬리 땡땡~ 밑줄 쫙, 별 다섯개! 공부꺼리이다.
결국 이 책이 다루는 모든 것은 '불평등의 문제'로 귀결된다. 부자와 이를 섬기는 사람들은 소득 재분배를 문제 삼는 일은 비생산적이고 속 좁은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소득 분배가 불평등하면 빈곤층과 중산층은 고통을 받는다. 그들이 가난해서가 아니라 부자에 비해 더 가난하기 때문이다. 소득 격차가 심해지면 판매자는 부자만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을 책정한다. 정부는 모든 시민을 평등하게 섬겨야 하는 의무를 저버리고, 부자는 제한된 자원을 자기가 가져야 할 정당한 몫 이상으로 차지한다(150쪽)." 그러면 정말 소득을 재분배해도 별 효과가 없을까? 저자는 단박에 '허튼 소리'라고 일축해 버리면서 우리 같은 중산층과 서민은 주류 경제학자의 주장을 무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주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되새기고 있다. 부자에게 어떻게 하면 부담 없는 핸디캡을 적용하여 소득의 재분배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참 어려운 문제이지만 더불어 행복해지는 세상을 위해 반드시 어떻게든 실현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은 이런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우리 경제와 다소 동떨어진 문제를 다룬다는 느낌도 잠시 들지만, 처음 읽었을 때보다 두 번째 읽었을 때 이 책의 가치를 더욱 깨닫게 되었다. 복잡한 설명 속에 생각의 여백이 많은,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