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후 세 곳의 장난감 가게에 들렀다.
뮤지컬 극장 옆 타임스퀘어에 있는 TOY R US. 이곳은 우리 집 근처에도 여러군데 있기때문에 그다지 흥미로울 것도 없었지만 규모는 우리 동네에 비할 게 아니었다. 동네에 있다고는 하지만,크기는 한국 대형 할인마트 단층정도의 넓이는 되니 분명 작은 건 아님에도,뉴욕 타임스퀘어의 복판에 있는 이곳은 3층 건물로 매장내에 관람차가 있어 매장 전체를 둘러 볼 수도 있고,천정에 자동차를 떠 받치고 있는 슈퍼맨,거미줄로 이동 중인 스파이더맨,레고로 만든 엠파이어 빌딩을기어올라가는 킹콩과 쥬라기 공원의 거대한 공룡,바비샵 등 우리 동네와는 규모도 규모려니와 일단 질적으로 다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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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미국에 처음 와서 동네에 있는 TOY R US에 가보고 매장 전체가 장난감과 어린이 용품으로 꽉 차있는 걸 보고 참 이런 세상도 다 있구나.했었다. 장난감 매장 뿐 아니라 미국엔 상점들이 세분화 전문화 대형화 되어 있어서 애완견 상품을 위한 매장,취미 생활을 위한 매장-여긴 뭐든 자신이 만들어 쓸 수 있는 재료들로 가득한데 칠 되어 있지 않은 나무들,단추,실,천,액자,종이,구슬...등등 뭐든 다 있고 그 종류가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다. 그 다양함이 더욱 놀라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 이월 상품만 파는 곳,사무용품만 파는 곳,주방,화장실용품 파는 곳,모자만 파는 곳. 그 밖에 미국에서 2년이나 살았으면서도 간판만 보고 지나가는,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뭘 파는 지 잘 모르겠는 상점들...
TOU R US에서 지하철을 타고 센츄럴파크 바로 아래쪽으로 이동했다. 거긴 FAO schwarz라는 조금 더 고급스럽고 전문화된 장난감 매장이 있다. 헤리포터 코너가 따로 있었는데 영화에서 보던 소품들이 거의 다 상품화 되어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구경 못했던 것들이었다. 또 어른의 허박지 높이까지 올라오는 크기의 작은 인형의 집과 그 집에 크기에 맞는 작은 집기들. 사람이 사는 공간에 필요한 모든 집기들이 축소되어 들어 있다. 확대 시킨다면 바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하고 야무져 보였다. 넓직하고 잘 정돈되어 있는 매장이 인상에 남는다. 1층 입구에서 신기하게 생긴 다양한 젤리를 한 봉지 사들고 다음 코스인 디즈니 스토어까지 걸어 갈 때 하나씩 하나씩 꺼내 이건 무슨 맛일까 궁금해하며 한 입씩 깨물었던 생각이 난다. 나중에 다시 한 번 더 가서 몇 봉지 사오자고 했는데 다시 가지는 못했다. 뉴욕엔 정말 갈 곳이 많았다.
디즈니 스토어는 우리집 근처 아울렛에도 있기때문에 낯설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역시 규모는 비교가 안되게 크고,내용도 다양했다. 플로리다 올랜도 디즈니 월드내에서 볼 수 있었던 많은 캐리터 상품들을 뉴욕에서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뭘 봐도 갖고 싶은 것들 뿐이었지만 워낙 고가의 물건들이니 눈으로만 즐길밖에.
하루 종일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못하고 걷고 헤매고 또 걷는 게 우리 여행의 대부분이었다. 작은 아이가 그나마 유모차에 얹혀있으면 속도를 낼 수 있지만, 큰아이가 잘 걸어주지 않아 들쳐 업고 다니려니 서너배는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어른인 우리도 지치는데 아이는 더 힘들었겠지만.
이 날은 디즈니 샵에서 3개 정도의 street을 내려와서 MOMA근처의 유명한 노란 케밥차에서 저녁을 배부르게,배터지게 먹었더랬다. 아주 유명한 노점이라고 명성이 자자한 곳이라서 줄 서서 30분 이상 기다린 후 받아든 케밥은,죙일 굶주린 탓도 있었지만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길바닥 화단 벤치에 앉아서 매콤한 빨간 소스를 얹어 먹는 치킨과 노란밥,약간의 샐러드.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우리들 입맛에 딱이었고,그 맛을 못잊어서 며칠 후 MOMA에 왔을 때 다시 찾게 되었다. 달리 먹을 만한 곳도 없었지만 뉴욕에서 두 번 들른 장소가 이곳이 될 줄이야. 뉴욕에 가면 먹을 것이 많을 것 같은데 막상 우리들이 먹을 만한 곳 찾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다. 맥도날드등 패스트 푸드점은 열외시고. 그래서 한 끼는 소문난 곳에서 먹어 보고자 맛있다는 곳을 일정 속에 끼워 넣어서 다녔더랬다. 첫 날은 피자,둘째 날은 케밥.....셋째날..
나야 미리부터 이번 여행이 엄청나게 힘들 것이라고 각오를 하고 출발한 터라,조사한 대로 이곳 저곳 다니는 것이 신나고,즐거웠지만, 남편과 아이들은 예상외로 굉장히 지치고 재미 없어 하는 것 같았다. 패키지로 편하게 올 것을 괜시리,뉴욕은 발로 다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곳이라는 어줍잖은 고집으로 식구들을 고생 시키나 싶어 미안했고 한편으론 나의 노력과 준비가 별것 아닌 게 되어가니 기운 빠지고 화도 나도 서운하기도 했다. 비행기,공항 버스,지하철7일권,버스,박물관 무료 관람,뉴저지 한인 민박,발로 다니는 일정 등 우리가 선택한 뉴욕는 다른 동료 가족들이 시도하지 않은,젊은 배낭 여행객들이나 선택하는,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있는 우리 가족에겐 어쩌면 무모한 접근이었다. 배 이상의 경비 절감의 효과는 있었지만 대신 뉴욕 '탐험'이 될 수도 있었다. 소경 코끼리 만지는 심정으로 시작한 뉴욕에 대한 자료 수집은 거의 두 달에 이르렀는데, 이 기간동안 골목 골목 뉴욕을 알아가는 즐겁고 뿌듯한 경험이 어쩌면 진정한 여행의 기쁨이 아니었나 싶다. 정보 수집과 조사만으로도 난 뉴욕에 수십 번은 드나든 것 같은 충족감을 느꼈으니까.
패키지 여행은 먹여주고 재워주고,데려다 주니 몸은 편할 수 있었겠지만, 여행이 어디 편하고자 떠나는 것이던가. 우린 패키지로는 비교 할 수 없는 진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진짜 뉴욕을 봤다고 믿는다. 뉴욕이 보여 주고자 하는 곳 뿐 아니라 우리가 보고자 하는 곳을 불쑥 들여다 볼 수 있었다. 5박6일이 아니라 10일만 됐어도 좀 쉬엄 쉬엄 다닐 수 있었을텐데 라는 기간에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고. 그래도 5살 10살 아이에겐 무리였다는 건 우겨봤자 엄연한 사실임은 인정한다.
며칠 전에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은 후 내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 나도 오염된 곳에서 숨쉬듯 갑갑했다. 인간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마각을 드러내는 욕구와 욕구를 보면서 분노와 환멸을 느꼈으나 며칠 지나니 자연스레 묽어 진다.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