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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 페일리 : 진화론도 진화한다 지식인마을 1
장대익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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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생물선생님이셨다. 젊은 나이에 도전하셨던 사업은 보기좋게 실패했다. 동거동락을  하며 형제같았던 절친한 친구는 그나마 있던 몇 푼마저 훔쳐서 야반도주했다. 아버지는 백수 상태로 꽤 지냈다. 그리고 그 맘때 그의 첫아들이 세상에 나왔다. 외갓집에서 조금씩 분유값을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촌에 새로 생기는 사립고등학교 교원모집을 보고 이력서를 냈다. 북한에서 내려온 자수성가한 이사장은 성실해보이는 사람이 고생하는게 딱해보였는지 취직을 시켜주었다. 그리고 몇 해 전 퇴직하시기 전까지 아버지는 한 학교에서 30년이라는 시간을 생물선생으로 지냈다. 교장 교감은 해보지도 못했다. 퇴직할 때 주는 이름 모를 훈장과 선심쓰듯 이름만 주는 교감 호칭만이 남았다.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 때 지구과학 선택이어서 생물선생을 아버지로 둔 덕을 그다지 보진 못했다. 나와 생물학은 내 아버지와 나의 거리만큼 가까왔지만 늘 강 건너 있었다.

 <과학동아>는 올해 첫 번째 기획특집으로 '다윈과 진화론'을 다루었다. 당연한 일이다. 올해는 다윈 탄생 200주년이 아니던가.  현재의 한국지질연구원 출신의 권영인 박사는 다윈의 비글호 항로기를 따라 탐사여행을 하고 있다. 그가 타고 있는 요트의 이름은 '장보고호'이다. 하여간 올해는 전세계적으로 다윈과 진화론에 대한 좋은 책들과 좋은 다큐멘터리들이 많이 제작될 듯 하다. 대중문화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이런 돈되는 아이템들을 놓칠 일은 거의 없다. <과학동아>에서는 몇 권의 진화론 관련 서적들을 소개했다. 이 쪽 분야에 문외한이라 메모를 들고 서점에 가서 한 권 씩 확인을 했다. 에른스트 마이어의 <진화란 무엇인가>는 작은 판형이 보기 좋았지만 책형태처럼 너무 딱딱해보였다. 데이빗 버스의 <욕망의 진화>같은 책들은 진화심리학에 대한 이야기이기때문에 지금 맞추고 있는 내 핀트와 맞지 않았다. 찰스 다윈이 쓴 <나의 삶은 천천히 진화해왔다> 도 아니었고, 결국 <종의 기원>을 뒤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결론은 " 쉽게 가자" 였다. 어차피 진화론에 코박을 것도 아니고 진화론의 내부논쟁에 달려들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생물학을 포함한 과학은 중요한 부분이지만 내가 독서하는 방향의 메인스트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동아>를 비롯한 여러 군데서 추천한 <다윈의 식탁>을 바구니에 넣었다. 하지만 <다윈의 식탁> 역시 내가 시작하고 싶은 출발선과는 조금 달랐다. <다윈의 식탁>의 메뉴는 '근대적 종합' 이후 진화론 내부의 4가지 주요 쟁점들이기 때문이다. <다윈의 식탁>과 이 책 <다윈 & 패일리>의 저자인 장대익은 논쟁의 4대 기둥을 '변이의 생성, 자연선택의 힘, 이타성의 진화, 진화의 속도에 관한 논쟁' 이라고 정리한다. 실제 <다윈의 식탁>은 가상 토론회 형식을 빌어 이 4가지 주제를 놓고 '도킨스 팀 vs 굴드 팀' 이 서로 으르렁거리게 만든다. (실제로도 이들은 으러렁 거렸던 듯 하다.) 결국 <다윈의 식탁>에 다윈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후예들은 우글거리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가장 만만해 보이는 <다윈 & 패일리>를 <다윈의 식탁>과 함께 계산대에 올렸다. 

<다윈 & 페일리>는 시간을 150여년전으로 돌린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로 가기 이전에 흰색 출발선을 긋는다. 우리는 다윈이 '진화론'의 출발점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 이전부터 진화론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했었다. 물론 지배적인 것은 '창조론'이거나 '지적 설계론'이었다. 하지만 다윈이든 페일리든 용불용설로 다윈마저 걸려넘어지게 했던 라마르크든 모두 같은 질문을 고민했다. 위대하며 세대 유전되는 본원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 이렇게 정교한 기능을 가진 생명체들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세상사 모두 그렇지만 문제는 하나인데 답은 여러개로 나뉘었다. 페일리는 도킨스가 돌려치기 한 시계공의 비유를 들면서 '지적인 존재의 설계'를 주장한다. '창조론'과 '지적설계론'은 신학 논쟁에도 가끔 나오는 것인데 거칠게 그 차이를 말하자면 '설명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창조론을 강하게 주장하는 측에서 신의 영역은 불가지의 영역이다. 결코 '설명'의 영역이 아닌 믿음의 영역이다. 반면 신학 내부에서도 이를 지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종교전통이다. '지적 설계론'과 '창조 과학'은 신의 조각들을 가지고 귀납적인 설명을 통해 신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한다. 실제로 '창조론'과 '지적 설계론'은 같은 선상에 있다. 다만 그 표현방식에서 다른 논증을 택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이건 내가 거칠게 이해한 방식이다.) 

다이제스트판 책답게 <다윈 & 페일리>는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공적을 몇 가지로 정리한다. 첫번째 진화에서 자연선택의 중요성을 발견한 것. 진화의 패턴을 계단형에서 수목형으로 바꾸어 이해한 것. 그리고 성선택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한 것이다.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은 아니지만 곰곰히 생각해 볼 수록 혁신적이다. 다윈이 20년 동안이나 <종의 기원>의 출간을 두고 끙끙거리고 또 여러차례에 걸쳐서 판본을 바꾼것이 단지 그의 소심함때문만은 아닐 듯 하다. 별 것 아닌 아이디어같지만 다윈의 생각은 세상을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보는 지평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자여서 팔이 안으로 감겼다는 비판을 가할 수는 있지만 다니엘 대닛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아이디어를 준 사람으로 다윈을 꼽은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로이트 덕분에 인간은 의식 영역 말고 빙산 아래 가라앉은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세계를 얻은 것이다. 그보다 더 실제적인 관점에서 다윈은 인간을 전혀 새로운 물질과 장구한 진화의 시간 위에 던져놓았다. 다니엘 대닛은 물질영역과 생명영역을 통합한 공이 인류 역사에 다윈이 준 선물이라고 말한다. 

<다윈 & 페일리>의 책 절반은 앞서 말한 다윈의 학문적 성과와 그에 바탕이되거나 영향을 받은 동시대인들의 상호관련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다윈이 영향을 받은 지질학자 라이엘, 인구론의 멜서스, 사회진화론이라는 말을 말들어낸 스펜서 등등이 그들이다. 물론 다윈과 다른 지평에서 상호관계된 페일리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의 나머지 절반 부분은 '다윈 이후' 진화론의 분화와 관련된 것이다. 앞서 말한 진화론의 4대내부논쟁을 중심으로 이후 중요한 진화론의 범주 확장과 중심인물들을 다룬다. 크게는 '적응주의자'와 '반적응주의자'로 구분하여 구분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이기적 유전자>의 도킨스, 집단유전학의 해밀턴, <마음의 진화>의 다니엘 대닛, <사회생물학>,<통섭>의 윌슨등이 전자이다. 반대쪽으로는 <풀하우스>의 굴드, <DNA독트린>의 르윈튼 등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다윈의 식탁>에서 조금 더 흥미진진하게 다루어진다.  

<다윈 & 페일리>는 입에 쏙 들어갈 크기만큼의 작은 주먹밥처럼 다윈을 이야기한다. 한 권 안에 진화론의 여러 주제에 대해 언급해야 하다 보니 다윈에게 약간의 양보를 요구할 수 밖에 없었던 듯 하다.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이나 최근에 나온 굴드의 <다윈 이후>가 어떨지 모르겠다.) <다윈의 식탁> 부록에 저자는 이 책이나 중고서점에서 상당히 싼 가격에 산 칼 짐머의 <진화>를 논쟁적인 진화론으로 들어오기 위한 에피타이저라고 말한다.(칼 짐머의 <진화>는 그렇게 에피타이저는 아니다. 설명은 평이하나 판형이나 분량이 부답스럽다.) 어쨋거나 에피타이저는 맛을 봤으니 이제 슬슬 포크를 들어볼까. 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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