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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사회 -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김동춘 지음 / 돌베개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조국의 원수들이 짖밟아 오던 날을/맨 주먹 붉은피로 원수를 막아내어/발을 굴러 땅을 치며 울분에 떤 날을/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이제야 빛 내리 이 나라 이 겨레/.......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며 자랐던 세대는 이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아마 이 가사를 보며 그동안 잊혀졌던 멜로디가 입에서 흥얼거려짐을 느낄 것이다.요즘도 이 노래를 배우는지 모르겠다.가사를 되짚어 바라보니 황당하다.이게 초등학생에게 가르쳐야 될 노래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냉전세력은 교과서를 통해 폭력과 원한에 사무친 단어들을 천진무구한 어린 아이들의 머릿 속에 주입시켰다.이런 교육을 받으며 자란 세대,또는 전쟁을 겪으며 한쪽의 시각 외에는 어느 다른 의견도 꺼낼 수 없었던 세대에게 '한국전쟁'은 여전히 '6.25 동란'이다.김동춘 교수는 책을 시작하며 6.25란 말이 가진 인식의 단편성에 대해 지적한다.6.25라는 것은 통상적으로 전면전의 발발 시점을 말한다.이 날을 전면전의 고유명사화 하여 사용하는 것은 전쟁을 누가 시작했는가에만 촛점을 맞춰 이데올로기 강화에 이용한 대한민국의 과거 정권들의 시각일 뿐이라는 것이다.김동춘 교수는 전쟁의 시점을 해방 이후 부터로 본다.그가 바라보는 한국전쟁은 남북 양쪽에서 완전한 근대국가를 형성을 위한 도구였다. 여순사건,제주4.3등으로 상징되는 좌우대립이 한국전쟁의 시초였다면 6.25 이후 남북간의 쟁패는 전면전의 단계였다.그리고 휴전은 전쟁의 중지상태가 아닌 반쪽 근대국가의 전쟁내면화 단계인 것이다.즉 과거 현대사는 1945년부터 -1953년 이후까지를 통상적으로 세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해방 이후 좌우대립/한국전쟁/휴전협정 이후 가 그것이다.김교수는 과거 해석에 비해 조금더 적극적으로 이 세 단계의 인과성을 강조한다.굳이 정리하자면 한반도 내에서는 1950년 6월이전에 전쟁이 진행 중이었고 1953년 7월 이후에도 전쟁이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이다.그 한 복판에 남북간의 전면적인 내란이 있었다.그러므로 한국전쟁은 남북 양쪽의 사회 전체에 분수령이 되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던 셈이다.
이 책은 과거 한국 전쟁을 다룬 책과 달리 전쟁을 둘러싼 보통사람들의 이야기에 촛점을 맞춘다. 김동춘 교수는 남북 정권이 전쟁 이후 국민만들기 과정에 강요했던 선/악 구도를 깨고 민중들의 시각에 한국전쟁의 내밀한 부분을 더듬는다.책은 크게 <피난><점령><학살>이라는 세가지 장으로 구분된다.<피난>의 장에서는 인민군의 서울 입성에 관련된 1차피난과 1.4후퇴로 상징되는 2차 피난,그 과정과 민중들의 태도에 대해 설명한다.사실 개인적으로 피난이라는 부분과 점령 상태에 남아있던 사람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그런면에서 <피난><점령>이라는 장은 숨겨진 이야기를 듣는 것 처럼 새로왔다.인민군의 서울입성에 대게의 서울시민들은 피난을 가지 않았거나 가지 못했다.하지만 한강철교의 폭파 사진으로 남아 있는 피난에 대한 인상은 북한 인민군의 입성에 두려워 모두 남하하는 서울사람들로 기억된다.이러한 이미지는 분명히 과거 반공교육때문일 것이다. 내가 새삼 놀란 것은 반공 교육에 대해 전체적인 비판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나였으면서도 전체적인 비판만 가지고 있을 뿐 부분 부분 남아 있는 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권이 내게 주입했던 기억들을 조각모음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인민군의 서울 입성에 즈음하여 145만 서울시민 중에서 40만명이 피난을 갔다.그 40만 중 80%는 월남한 사람들이었고 나머지는 인민군 입성에 의해 처형이 불보듯 뻔한-물론 월남민들도 마찬가지였지만-정부 공무원,경찰,우익관련 가족들이었다.실제 평범한 서울 시미들의 대다수는 잔류를 선택한 것이다.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공산주의를 적극 환영했거나 아니면 적극 환영은 아니어도 뭔가 기대를 했던 사람들이었을까? 김동춘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1차 피난에서 잔류한 사람들의 대개의 정서는 북한정권이 들어서도 크게 피해를 보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특히 뭐 잘 못한 것도 없는데 좌익이든 우익이든 생명과 안전에 크게 위해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하지만 이들의 판단은 남한이 다시 서울 재탈환하면서 달라진다.이승만정권과 그들의 하수인들은 자신들이 다리를 끊고 버리고 간 그 사람들을 '부역한 자'들로 파악하고 적으로 규정한다.일제 시대 부터 전제주의적 가치에 익숙해있던 권력집행자들의 속성과 전쟁 중에 생긴 사적 복수심은 '적'에 대해 비인간적 행동들을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이승만 정권은 스스로 국민을 버리고 간 정치적 책임을 잔류파 국민들에게 뒤집어 씌우기 위해 이를 용인했다.
물론 북한측도 민중들에 대한 폭력은 똑같았다.특히 북한은 점령지에서 농민이나 하층민,남한측 좌익들의 복수심을 이용하여 민중들에게 가혹한 폭력을 행사한다.남북 양쪽이 제도화된 국가권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적폭력을 용인하고 있었던 것이다.김일성 정권은 점령기 동안 친일,친미,반공활동 세력들을 제거한다.하지만 북한 정권은 여기서 지나치게 급진적인 방법을 택한다.결국 유교적 문화가 이데올로기적 소구보다 컷던 당시 민중들은 북한의 처분에 등을 돌리게 된다.
잠시 이 책을 읽다가 생긴 에피소드를 하나 하자.이 책에는 김동춘교수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자신의 가족이 겪었던 한국전쟁>의 예들이 들어있다.나 역시 좀 궁금해졌다.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언젠가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 안쪽에 계셔서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으셨다고 했다.기회가 닿아서 장모님께 여쭈어 보았다.그때 장모님은 6.25를 '여름난리' 라고 하셨다.아마 중공군이 재진입했을 때를 '겨울난리'라고 하여 구분하는 것 같았다.당시 장모님은 14살이셨고 충북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고 계셨단다.피난을 가려고 짐을 싸놓았는데 할머니가 무척 아파서 결국 짐을 내려놓았다고 한다.전쟁통에 그다지 큰 일은 없었다고 한다.대게 똑똑한 사람들이 공산당이 많았다고 하셨다.(흔히 들었듯이)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하고도 학교는 계속 나갔었다고 한다.학교에서 북한쪽 국가 같은 걸 매일 불렀다고 한다.그 멜로디와 가사를 아직도 기억한다고 했다.또한 어른 들 중에는 남쪽 군인들이 다시 밀려오고 얼핏 그런 노래 흥얼거리가다 끌려간 사람도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가족중에 혹시 끌려간 사람 없느냐고 질문했다. 고모의 아들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둘이나 있었다고 했다.무척 선량하고 어진 사람이었단다.그런데 그 사람이 '보도연맹'이라고 끌려갔단다.장모님은 '그 때 그냥 농사 짓는 사람들이 뭐 여기 저기 손도장 찍으라면 찍었는데 ...나중에 그게 보도연맹 뭐라 해가지고 결국 끌려갔지' 라고 하셨다.며칠 지나고 시신을 찾으려고 갔는데 여기 저기 시체 천지여서 시신도 못찾을 뻔했다고 한다.당시 그 분의 아내가 남편이 입고 있던 속옷을 기억하고 어떻게 시신은 염했다고 한다.
이 내용들은 <전쟁과 사회>에 거의 판박이 처럼 전부 나온다.한국 전쟁중 백만 이상의 사람들이 장모님의 고종사촌처럼 영문도 모른채 학살 당했다.한국전쟁의 학살은 야만적이고 참혹했다.국가권력에 의한 학살은 물론이고 사적인 폭력까지 동원되었다.빨갱이나 반동분자는 같은 동족은 물론이고 인간이 아니었다.학살은 과거 어느 전쟁에 비해 잔인했다.김동춘 교수는 한국전쟁에서의 학살을 크게 3가지로 나눈다.작전으로서의 학살,처형이라는 형태의 학살,사작 보복형태의 학살이 그것이다.제주 4.3항쟁이나 거창 양민 학살처럼 군인들의 초토화 작전에 의한 대량학살이 작전으로서의 학살이다.처형으로서의 학살은 국민보도연맹 학살처럼 검속을 통해 직접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적과의 내통이 우려된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에 대한 학살이다.마지막은가장 야만적이고 잔인한 양상을 보인 사적 보복으로서의 학살이다.이는 남북한의 국가가 형성되지 못하며 밀고 당기는 과정중에서 크게 발생하였다.김동춘 교수는 폭력기구의 국가 독점력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발생한 학살이라고 말한다.한국 전쟁 중의 학살에 대한 민중들의 입장을 가장 잘 밝힌 인터뷰 내용이 있다. 소백산맥 주민들이 말한 내용이다.
"안 가면 죽인다니까 산에 들어 갔고 나오면 죽인다니까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양쪽에서 똑같이 보호받지 못했으니 두 곳 다 똑같이 무섭기만 했다."
저자는 학살의 배경으로 몇 가지를 이야기한다.우선 미국의 역할이다.6.25 기간동안 미국은 공군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폭격을 가하낟.노근리 사건 같은것이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학살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이에 앞서 미국은 해방 직후 좌익과 민족주의 세력을 배제하면서 대규모 저항적 폭력을 양산한다.미군정은 반공주의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에 부합되는 세력이면 친일,지주의 여부를 구분하지 않고 재등용한다.여기서 민중들의 원초적인 분노가 좌익세력에 목소리에 힘을 더해주며 대규모 폭력으로 발생한다.미군정은 친일의 기억이 있는 공권력과 우익 폭력단의 용인하며 이를 제압한다.이를 통해 우익과 자유주의세력 주도의 국가 건설에 위협이 되는 학살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된다.여기에 불을 지핀 것이 이승만의 마키아벨리적 속성이다.이승만은 국가건설과 권력욕만이 있었을 뿐 국민이라는 개념은 없었다.그는 미국이 모든 열쇠를 쥐고 있다는 현실적 판단을 하고 있었다.그에게 전쟁은 남한과 북한의 전쟁이 아니었다.그것은 미국과 북한 내지는 소련과의 전쟁이었다.그러므로 한국전에서의 피해라든가 전쟁과정이라든가 하는 제반 모든 것이 미국의 책임이었다.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국민의 보호를 미국에 넘긴 상황이다 보니 국민의 안전 같은것은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대신 권력의 안정성에 위배되는 세력들의 척결에는 사자의 발톱보다 날카로운 비수를 뽑아든 것이다.또한 학살 배경중 하나는 일본군의 전통과 민주주의 정신의 결여에 있다.즉 군인들이 국민의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는 근대국가의 군인관이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일제 시대처럼 국민위에 군림하는 봉건영주의 모습을 가졌던 것이다.당연히 민간인의 목숨을 대수롭지 않았을 것이다.또한 남북한이 '임시국가'로서 불완전한 국가 형태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학살과 연관이 있다.남북 양쪽은 서로를 '외세의 앞잡이 반역자'로 취급했다.이렇다 보니 반국가-외세 앞잡이에 대한 폭력에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또한 '전근대적 반역담론'을 통하다 보니 학살이 잔인하고 야만적인 양상을 띌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결국 한국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38선의 남북에 거부했다가 각각 대한민국이 국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이 되어 버린 이름없는 민중들이었다.그들은 불완전한 국가간의 내전 속에서 야만적 폭력 상황에 아무런 대책없이 버려지고 이용당한 것이다.
결론에서 저자는 한국전쟁을 '피난의 정치,희생양의 정치,무책임의 정치,부역자 처벌의 정치,학살의 정치'라고 말한다.그 의미를 하나씩 짚어보면 이 책 <전쟁과 사회>가 짚어내고자 한 담론들을 읽어낼 수 있다.김동춘 교수는 한국전쟁을 바라보던 그 간의 시점에 변화를 주고자 한다.먼저 국가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 나야 한국 전쟁의 내밀한 부분을 샅샅이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국가 대신 민족 중심적 시각으로 이를 대체 해야한다.또한 전쟁의 책임,전쟁의 양상들에 대한 연구보다 전쟁 당시 사회구성원들의 고통과 희생에 대한 접근으로 한국전쟁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이렇게 될 때 한국전쟁의 부정적인 결과를 딛고 한반도 내의 항구적 평화를 도모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전쟁과 관련된 책들은 여러 시각이 존재한다.<전쟁과 사회>는 전쟁의 최대 피해자이자 60년전 나와 똑같은 모습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김동춘 교수의 이름없이 사라져간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객관적인 접근이 돋보인다.별 다섯 개도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