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오브 시베리아>(1998)라는 영화다. 몇 곡의 유명한 클래식 음악과  러시아의 하얀 눈밭이 기억의 잔설처럼 남아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러시아 제국의 궁전들... 

이 영화에서 좋아하는 3개의 장면이 있다. 

1. 시베리아로 유형가는 열차에 탄 주인공 안드레이. 그를 동료 사관생도들이 찾는다. 하지만 수십량의 수송열차 중 어느 칸에 친구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제 기차는 기적을 울리고 출발한다. 좋았던 시절 함께 부르던 노래를 시작한다. 동료들 모두 울먹이며 '안드레이, 우리가 여기 와 있다.' 라는 듯 울먹이며 노래를 따라한다. 수송열차 안에 안드레이 역시 죄수들 사이에서 그 안타깝고 반가운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평소 자주 불렀던 '나는 이 마을의 일인자 Largo al factotum della citta' 라는 오페라 아리아를 부른다. '친구들아. 슬퍼하지 마라.그리고 고마워'라고 말하는 듯. 동료들은 친구의 밝지만 슬픈 아리아가 새어 나오는 객차를 향해 뛰면서 다시 못 볼 동료에게 끝까지 손을 흔든다. 기차는 뿌연 새벽 안개를 헤치고 작은 점이 된다. 

 

2. 영화의 엔딩 부분이다. 젊은 날 만나 짧은 사랑을 나눈 안드레이를 찾아 시베리아로 간 제인. 안드레이는 추방되어 그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다시 돌아가는 마차에 오른 제인. 이 사실을 알게된 안드레이는 가을 자작나무 숲이 펼쳐진 시베리아 벌판을 달린다. 산을 뛰어 넘는다. 20년을 기다려온 만남이다. 아마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안드레이는 연인을 단 한번 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산을 달린다.그리고 노란 자작나무 숲 사이로 사라지는 그녀의 모습을 아주 멀리서 지켜본다. 남은 것은 겨울을 준비하며 노랗게 물들어가는 자작나무 숲. 담배 한 모금으로 평생을 걸친 사랑과 삶의 회한이 모두 날아가 버릴 일이야 없겠지만...

삶이란 한번 피었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과 형제다. 

3. 영화에는 숨은 또 하나의 스토리라인이 있다. 제인과 안드레이의 짧은 사랑의 결실인 그의 아들. 아버지를 닮아 고집이 세다. 신병 훈련소에 들어간 그는 모차르트의 사진을 벽에 붙여 놓는다. 미친 개라는 선임하사는 '누가 여자 사진을 올려놓았느냐'며 다그치고.  모차르트가 누군지 전혀 모르던 그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아들을 괴롭힌다. 연병장에 신병들을 방독면 쓰고 집합 시킨다.그리고 '모차르트는 개똥도 아니다' 라고 외치게 한다. 그걸 외친 신병만 방독면을 벗게 한다. 아들은 끝까지 '모차르트는 위대한 작곡가' 라고 말한다. 그는 이제 방독면을 쓴 상태에서 모든 훈련을 받는다. 아니 잠을 잘 때 조차 방독면을 쓰고 있는다. 

그리고...어느 새벽. 이 고집 센 신병에게 질린 선임하사는 도대체 모차르트가 뭣이관데..라며 회유한다. 이 때 신병은 선임하사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을 연주한다. 새벽 여명을 뚫고 조용히 울려퍼지는 모차르트에 선임하사 역시... 

유투브를 보니 그 장면이 있다. 유투브 4:00대를 보면 선임하사와의 마지막 대결 장면이 나온다. 유투브 상에서는 음악이 좀 편집되었다. 그리고 그 뒤에 보면 아들과 선임하사간의 결말이 나온다.   

...생각해본다. 나는 언제 한번 저렇게 자기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싸웠었는지.  

지푸라기 하나를 가지고도 위대하게 싸워야 하는 것인데...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3번 2악장 연주다. 칼뵘과의 협연. 젊은 날 남긴 폴리니의 몇 안되는 모차르트 연주. 그가 몇 년 전부터 다시 모차르트 음반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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