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여우님의 딸기 사진을 보면 가슴이 콱 막힙니다. 한시 중에 그런 시가 있었는데 제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요....매화를 보고 지은 시입니다. 나라는 망해도 매년 스스럼 없이 피는 매화를 보면서 읆었던 시입니다. 망국에도 불구하고 세상사에 초연한 듯 피어난 매화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들법합니다. 경주 남산에 가서 오래된 마애불을 볼 때 또는 어느 시골 마을 어귀에서 오래된 법수를 볼 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것들은 얼마나 오래 변화하는 사람들을 보아왔을까? 어린 손자의 손을 잡고 지나가는 할아버지의 손자때 모습도 기억하고 있겠지... 무한성은 가끔 끔찍함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떠난 자리마저 지켜야 한다는 것은 무너진 궁전의 댓돌만큼 쓸쓸한 것입니다. 

빚만 남기고 떠난 주인, 그 자리에 지난해 처럼 팔리기를 바라며 피어난 딸기꽃...무심하게 자라나 떠난자들의 그림자를 짙게합니다. 사람들은 또 어딘가에서 삶을 이어갈 것이고 영문몰라 하는 딸기밭도 내년이면 갈아엎어지거나 다른 용도로 쓰이겠지요. 

전 '안되면 농사짓지' 하는 말은 무책임한-좀 심하게 말하면 싸가지 없는 말-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서 집안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도 다시 촌에 들어가서 농사 지으려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한다고 합니다. 마지못해 등떠밀려 밭일 하던 것과 자기의 농사를 짓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지요. 거기에 도시물로 노곤해진 근육을 가지고는 감당해내지 못할 일입니다. 가끔 아내와 다투는 일 중에 하나는 아내가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한다는 겁니다. 제 생각에는  일할 때 하고 쉴 때 쉬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럼 아내는 늘 똑같은 말을 합니다. "집 안 일이 그런 줄 알아.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하지 않으면 바로 표나고...그런거야"   농사일도 이와 비슷할 겝니다. 거기에 다른 점은 농삿일은 '자연'이라는 변수와 '정책'이라는 변수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집 안 일을 하지 않았다고 빚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농사일은 애써 1년을 품팔고도 얻는 것은 빚 뿐일 때가 있습니다. 귀농에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보면 첫번째 절대 짧은 기간 내에 이익을 얻으려 하지 말하는 말을 합니다. 내가 농사꾼이 다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되고 기회가 맞으면 수확을 얻을 수 있다는 거지요. 

전 가끔 시골을 꿈꾸지만 결코 농사를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단 한번도 제 손으로 농사를 지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농사일을 허투로 생각치도 않습니다. 아마 시골에 간다면 그냥 나와 내 가족, 가까운 친척들에게 줄 수 있을 정도의 텃밭 정도나 꾸릴 수 있겠지 생각합니다.  

지난 해 인가 저희 손위 처남이 배를 타러 내려왔습니다. 한 몇 개월 놀다가 마지막으로 선원 모집을 보고 온거지요. 처지를 아니까 길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밤에 아내와 누워서 '왠만하면 막고 싶다" 고 했습니다. 다음 날 처남은 알선 업체를 다녀온후 그냥 고향으로 올라갔습니다. 만나서 사람들과 이야기해보고 나니까 호기롭던 사람도 덜컥 겁이 났던거겠지요. 바람이 조금 이는 날 고깃배 타고 1시간정도만 나가면 왠만한 사람은 자기 속에 들어간 모든 내용물들을  눈 앞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이나 칸트 할아버지가 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속의 토사물을 보면 진짜 물질성이 뭔가 확 깨우치게 됩니다. 그게 물질성이지요. 느릿 느릿 카지노가 구비된 여객선에서 MP3로 낭만적인 음악과 함께 만나는 바다와는 완전히 다르지요. 돈이고 나발이고 다 떠나서 그냥 발을 댈 수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든 내리고만 싶어집니다.  처남은 나중에 돌아온 이유에 대해 '여기까지 가서는 안되겠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배를 타는 일을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 세상에 가장 험한 일중에 하나가 뱃일이고 함부로 덤벼서는 안된다는 말이지요. 처남은 지금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보험일을 합니다. 여건히 녹록치는 않지만 그래도 먹고 살만은 한가 봅니다. 

아내는 아이와 과일을 먹을 때, 또는 아이가 음식을 함부로 취급할 때 반드시 '이거 만든 햇빛과 물과 농부 아저씨들을 생각해봐. 그러면 되겠어?' 라고 아이를 가르침니다. 저 역시 그렇게 따라하지만 또 가끔 잊고 삽니다. 제가 한살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농부와 소비자가 서로를 안다는 사실입니다. 농사와 유통의 거리가 길어지면서 생산자와 소비자는 서로 벽에 대고 이야기하지요. 생협이나 한살림같은 운동의 취지는 이런 벽을 없앰으로써 가격보전의 효과도 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 거리를 없애는 것이지요. 소규모의 공동체는 그런면에서 더 윤리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이의 아토피때문에 시작한 일이지만 지금은 작은 정치적 실천이기도 합니다. 식탁에서 소식지를 보곤 합니다. 가격 폭락때문에, 지난 장마로, 냉해가 일찍와서...등등의 글들을 보면 마음이 안쓰럽습니다.   

주인이 떠난 자리에 피어난 딸기를 보면서 하루 종일 마음이 심란합니다. 떠난 사람은 어떻게 생을 이어갈지, 또 그 아이들은 다른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덩그러니 남을 딸기는 또 어떻게 외로울지.... 예전에 노숙자가 되는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저랑 별반 다르지 않은-그러니까 평범한 회사원이었을- 그런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몇번의 실패를 연달아 겪고 나면 서울역 천장을 지붕삼을 수도 있는 거지요. 자본은 늘 그런 공포를 무기로 이용하고 스스로 그런 공포에 휘말리지 않도록 심지를 굳힙니다만 가끔은 두려울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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