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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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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6.25 전쟁. 외세의 이데올로기 싸움 속에 휘말려 어설프게 모더니즘을 따라하던 당시 해방된 조선 민중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우리는 이미 『한국 현대사 산책 - 1950년대』편을 통해 6.25 전쟁이 실제로 우리 민중의 삶에 어떻게 다가왔는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고 있었지요.
 

가장 무서웠던 것은 같은 마을에서 서로 이웃끼리 믿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앞집, 윗집, 아랫집을 서로 모르고 지낸다는 차원을 넘어선,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다름이 아닌 '틀림'을 찾아내려고 했던 것. 당시 사회를 살았던 이 분들을 숨막히게 만들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이것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소설을 통해 그 현실 속으로 들어가 한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각각의 인간의 눈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었구요.
 

황석영씨의 마지막 남기는 글에도 나와 있듯, 조선 왕정 시대의 계급사회, 일제의 강압 속에서 억눌려 살고 있던 조선 민중. 특히 이북지역에서의 기독교라는 종교와 공산주의,사회주의는 곧 당신들에게 '개화'와 '혁명'을 말하는 것이었지요.
 

부모님 말 잘 듣는 모범생이었던 학생이 처음으로 사랑에 빠져, 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빠져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 그런 모습 속에서 당시 당신들의 모습이 보였다고 하면 비슷한 비유일까요? 
 

처음이다 보니 모든 것에 대한 처세가 서툴렀으리라 보여집니다. 하나의 성장통이었겠지요. 처음으로 무언가에 빠져보고 그에 따른 처세에도 서투른 실수를 하면서 스스로 깨닫는 과정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해방 전후, 어설픈 모더니즘을 '따라'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사랑을 하며 살아야겠다고 행동했던 조선 민중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 저자 황석영이 말하고 싶어 주인공 류요섭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자신들의 서툴렀던 실수에 대한 반성과 자각. 모두를 용서하자는 말. 어차피 새로운 세대는 우리 세대를 넘어 그들의 역사를 써야 한다는 것. 바로 피드백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우리는 양쪽(기독교도&공산주의자)이 모두 어렸다고 생각한다. 더 자라서 사람 사는 일은 좀 더 복잡하고 서로 이해할 일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되어야만 했다.

지상의 일은 역시 물질에 근거하여 땀 흘려 근로하고 그것을 베풀고 남과 나누어 누리는 일이며, 그것이 정의로워야 하늘에 떳떳한 신앙을 돌릴 수 있는 법이다.  


야소교나 사회주의를 신학문이라고 받아 배운 지 한 세대도 못 되어 서로가 열심당만 되어 있었지 예전부터 살아오던 사람살이의 일은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p. 176


 

소설 속의 주인공 류요섭 목사의 소메 삼촌. 안성만은 기독교도이면서도 당원으로서 일종의 처세를 잘해 양쪽 모두가 얽히고 설킨 상황에서도 살아남게 되죠. 소설을 읽다 소메 삼촌의 독백에서 눈에 띈 구절이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고, 좋아한다는 일에 빠져 행동으로 옮기던 모범생도 과정 속 서투른 실수에서 분명 반성하고 자각하는 점이 있어야하겠지요. 자신이 잊고 있었던 것, 자신이 그 성장통을 통해 더 커져 가며 가지게 된 삶에 대한 의연함 내지는 겸손함 같은 비스므레한 것들 말입니다.
 

이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서툴렀던 이 때. 우리가 이미 경험했던 것을 또 경험해서는 분명 안되겠지만 잊혀져 가는 것은 더욱 슬플테니까요.
 

아픔을 통해 더 성장하고 커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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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처럼
공선옥 외 지음 / 풀빛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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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총 8편의 단편소설로 이뤄진 책입니다. 80년 5월 광주 민주화 항쟁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광주 민주화 항쟁을 조명해보고 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단순히 『한국현대사산책』의 서술적인 사실전개 형태 (물론 과격한 표현도 종종 보이지만,) 로만 접하는 것과 우리 주변 이웃의 이야기로 들어보는 것은 분명 느낌도 틀렸습니다.

당시 5.18 이라는 사건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던 진짜 피해자들의 입장과 그 진짜 피해자들의 주변 인물들, 그리고 가해자라는 이름으로 또다른 제2의 피해자가 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제2의 피해자는 진압 명령을 받았던 공수부대원들"


총 8편 중 2편의 소설. 『얼굴』, 『십오방 이야기』는 실제 5.18 당시 공수부대원 출신으로 시민 학살에 가담했던 인물들이 그 과격한 폭력성을 표출한 이후 얻게 된 정신적 수치심 속에서 인생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단적인 예를 보여줍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위 두 소설이 가장 흥미로웠는데 여지껏 우리들은 단순히 5.18 당시 실질적인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았지요. 하지만 상부의 명령을 따라야만 했고 '데모가담인물은 불순 분자이고 때려죽일 놈들이다' 라고 훈육받아야만 했던 군대 하부 계층 구조의 군인들 또한 당시 민간 시민들 학살로 인해 제2의 피해자의 입장에 놓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굴』에서 주인공은 일반병으로 공수부대원으로 차출된 후, 원치않은 군생활에 원치않은 진압작전에 투입되게 됩니다. 제대 후, 시작한 사회 생활에서도 주인공은 공수부대원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 사회적 비난을 두려워하게 되고, 심지어 민주화 항쟁을 기록했던 당시 영상 자료는 모조리 구해다가 자신의 얼굴이 나오지 않았는지 찾아보게 되고 이런 행동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됩니다.


『십오방 이야기』는 민주화 항쟁 당시 데모로 구속되 수감된 운동권 학생 출신 태원과 당시 공수부대원으로 진압작전에 투입되었던 만수가 교도소 15번 방에 함께 투옥되어 전개되는 일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둘 사이의 갈등이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없으나 시민군이었던 자신의 동생을 자신의 소대장이 쏴 죽이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마는 만수는 당시 광주 사태의 시민군에 대해 알수 없는 증오심을 가지게 되면서도 한편으로 사랑하는 동생 만수를 시민군들의 모습에 투영시키며 그들의 모습을 이해하려고 애쓰기도 합니다.


온전히 상부의 명령을 따라야만 한다는 이유로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진압작전에 투입되었던 당시 공수부대원들의 모습 속에서 저는 일종의 '체념' 의 심리를 발견했습니다. 집권층과 반발하는 국민들 사이 어정쩡하게 끼어 있는 형국인 진압군들의 입장에서는, 대신 처리하라고 등을 떠미는 상부의 모습과 건너편에 보이는 친구들과 동생, 형, 누나, 그리고 부모님의 모습 사이에서 '될대로 되라' 식의 포기와 체념 끝에 극단적 폭력성을 보였을지도 모르니까요.


진압의 효율성을 위해 진압군들에게 술을 먹이고 나서 진압시켰다는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기록을 보며, 집단적 최루 상태에 빠진 인간의 잔악성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다시 한번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도 집단적 최루 상태에서 깨어나고 나서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거지?' 라고 느끼는 순간, 그들도 유악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겠지요. 그리고 실질적인 피해자 못지 않게 엄청난 정신적 공황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그런 부끄러움과 수치심 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애시당초 낫다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원치않게 진압작전에 투입되어 이후 큰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군인들은 오히려 실질적인 피해자들 못지 않게 그들도 가엾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은 군 생활을 경험합니다. 저 또한 군 생활을 경험했고, 그 속에서 내가 당시 공수부대원이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투영시켜 봅니다. 상상하기 힘들겠지요. 시대의 피해자의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광주 민주화 항쟁의 역사는 덮여지지 않고 끊임없이 진실 추구와 다양한 시각에서의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당시 가해자의 입장에서 제2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들 또한 피해자의 측면에서 재평가 될 여지는 남겨놓는 것이 어떨까요?



"극단적인 폭력성은 너와 나를 구분 지으려고 한다."


책 끝부분 해설에 보면 광주 문제를 '상관있는 놈' 과 '끊이 맺어진 상관 없는 놈' 으로 구분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광주 민주화 항쟁은 언제나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고 우리 안의 범주에 들지 않으리라는 생각 또한 하지 말자는 것이지요.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경험한 극단적 폭력성, 잔학성, 대량 학살 등을 통해 개인적인 내면세계가 황폐화되고 파괴되어버리는 이야기를 소설 8편을 통해 충분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완전한 영혼』에서는 민주화 항쟁 당시 군인들의 살육을 멈추게 하려다 구타 당해 청력을 잃어버림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모습을 잃지 않는 장인하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무력하게 당할 수 밖에 없는 10대 소녀의 입장에서 그 소녀의 영혼이 황폐화되어 버리는 내용을 묘사한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그리고 자신 때문에 친구가 진압 군인에게 맞아 죽고 말았다고 자책하고 끝내 정신병원에 입원해버린 한 친구를 바라보는 다른 친구들의 감정을 묘사한 『봄날』, 진압 마지막날 이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이유로 전남도청을 신부님과 함께 빠져나온 요셉의 자책하는 모습을 그린 소설 『밤길』이 또한 그것입니다.

이렇게 광주 민주화 항쟁과 무자비한 진압은 당시 죽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 친족들, 그리고 그 주변의 흔히 우리가 '관계' 라는 이름으로 부딪히는 여러 사람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곧 우리이고, 우리가 곧 그들일 수 있습니다. 무자비한 탄압을 경험하는 순간 우리들은 모두 남이 되어버리고 말았고 그들의 일인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말았지요. 그것이 지금도 광주 민주화 항쟁에 대해 이야기하기 힘든 부분일수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험을 하고 난 이들은 어느 순간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당한 사람은 불쌍하고 가엾으나 어쨌든 그들 속에 나는 들어가 있지 않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게 확인하고 선을 긋고 싶어합니다.
 

역사의 풍파 속에서 나는 언제나 비껴나 있다는 생각을 가지며 크고 작은 비관적 사건들은 소위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일' 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공감 능력이 필요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 우리의 일 말입니다.

자신만큼은 예외일 것이다 라고 믿는 사람에게 그 예외인 일이 일어나게 되면 더 받아들이기 힘들게 되고 '왜 하필 이런 일이 나에게?' 라는 생각에 더 큰 이유없는 분노심과 고통 이상의 고통을 스스로 수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가 아니라 '나라고 왜 예외일까' 라는 말처럼 그런 생각 속에서 살게 될 때 우리는 더 큰 개개인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공감능력을 발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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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이덕일 / 석필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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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이덕일 씨가 지난 1997년에 출간한 책으로서 일본의 식민사관으로 조선이 망할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당파싸움에 있었다는 무조건적인 비판시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 위해 저술한 내용이다. 다른 방식으로 본다고 해서, 꼭 당파싸움이 좋았던 것이었다 가 아닌, 객관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좋고 나쁨을 적절히 분석해보자는 취지이기도 하다.
 

 

시대는 조선 시대 선조부터 정조 사후까지를 서술하고 있으며, 붕당의 현실과 진행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이리저리 얽히고 설키었던 이야기들을 차례로 풀어놓고 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이미 우리들이 우연찮게 일단 부딪히며 경험했던 조선시대 당쟁 사회를 다룬 책들을 아우르는, 일종의 「개론서」와도 같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중기-후기 로 이어지는 당쟁에 대해 관심 있으며, 시대 상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좋은 도움이 될 듯 싶다.


1. '반대만을 위한 반대' 만 있다.

  저자는 당쟁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임진왜란의 예를 들더라도, 긍정적인 측면에서 서인은 임진왜란을 예측해냈고, 서인의 영수 (엄밀히 말하자면 아니지만,) 율곡 이이는 병조판서(지금의 국방부 장관)로 재직 시,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십만 양병설'을 주장했다. 한편, 동인에서 북인(강경파)과 남인(온건파)으로 나뉘었을 시, 남인에는 서애 류성룡 등 조선 시대 역사상 손에 꼽을만한 재상들이 즐비해 임진왜란 전쟁 당시 행정적인 측면에서 국난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노력했으며 북인은 강경파답게 의병장 출신들이 많았고, 실제 전장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긍정적인 측면은 이렇지만 300여년이 넘는 조선 시대 당쟁은 부정적인 측면 또한 강했다.

이는 '반대만을 위한 반대' 라고 정의할 수 있다. 수백년 간 조선을 괴롭히고, 결국 조선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당쟁은 아주 하찮은 감정싸움에서부터 시작된다. 바로 '이조전랑' 이라는 특수한 인사담당 직위를 두고 심의겸이 그 직위에 추천된 김효원을 적절치 못한 인사행정이다 라고 한 비판에서부터인데, 책을 보며 내내 현대 정치판의 모습이 머릿 속에 투영되는 느낌이었다. 아마 저자가 전하고 싶은 무언의 메세지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나 율곡 이이는 조정의 화합과 중재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한 정치가였으나 그 또한 당쟁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도 경험하게 된다. 둘로 분열된 조선의 집권층은 성리학이라는 중국의 학문을 신성시여기며 실리보다는 명분에 강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명분 속에서 서로가 다르다는 아주 작은 차이라도 발견하게 되면, 둘로 분열된 그 집권층들은 서로가 서로를 또 다시 나누었다. 그리고 각 시대마다 정책 상의 이유로, 후계자의 선정 이유로, 정권이 교체되는 이유로, 소위 말 그대로 서로간의 암투로 인해 죽고 죽이는 것을 반복하는 악순환이 이루어졌다.

국익이 아니라, 당리당략에 의해서만 움직이게 되는 모습을 책 속에서 무한정 보게 될 때의 슬픔이란!!

여기서 매우 흥미로웠던 사실은 당쟁의 주요원인. 서로가 죽이고 살리며 권력에 집착했던 이유 중의 하나를 저자 이덕일 선생님은 '토지' 로 꼽았다. 태조 이성계의 개국, 세조의 왕위찬탈, 그리고 중종반정 등을 통해 공신들에게는 많은 토지를 세습할 수 있도록 허가되는데, 이런 폐단은 특정 계층의 배만 불리우게 되고 실제 농민들은 소작농 내지 노비로 전락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세조 때 실시된 직전법이나 성종 때 관직으로 인한 토지 세습 금지법을 내놓은 것은 이러한 폐단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당시 정치 이외에 농업, 상공업을 천시했던 양반 사대부들이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무조건 관직으로 진출하는 것 뿐이었다. 한정된 자리에서 서로가 주어진 파이를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것도 당쟁의 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시대 초기 소수였던 양반층이 시대를 거듭할수록, 여러 전쟁, 시대변화를 겪으며 그 수가 늘어나게 것도 당쟁을 치열하게 만든 하나의 배경이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직후, 전쟁으로 인해 국토가 폐허가 되버려 경제적으로 백성들이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있는 그 상황 속에서도, 광해군 대신 영창대군을 옹립해야 한다며 당리당략, 명분만을 좇아 비밀리에 인목대비를 찾아가는 영의정 유영경의 모습 속에서.

그는 분명 당시 조선 시대 정치의 수장의 자리에 있었다.

저자 이덕일 선생님은 현 시대의 지지층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를 역사를 통해 보여주는 듯 싶다.
 

2.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가 없는 이상한 사회
 

  조선시대에서 사대부는 특권층이었다. 게다가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군역이다. 물론 양반 사대부는 국가 부역에도 동원되지 않는 특권 계층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군역은 백성들이 진 납부의 의무 중에 가장 큰 부담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양반 사대부가 얻은 특혜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특혜가 주어지면 사람은 방탕해지고 해이해 지게 된다. 가장 많이 쥐고 있는 자가 가장 적게 내놓는 사회. 바로 당시 조선사회였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가 실천되지 않는 사회의 반감이 극단적으로 폭발한 것은 바로 임진왜란이었다. 감히 피난 중인 임금이 타신 어가를 멈춰 세우는 민중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자신들을 쥐어짜고, 자신들의 위에서 군림하던 이들 또한 자신들과 다를 바가 없구나.. 아니, 더 구질구질한 년놈들이었구나 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그들은 분노했다.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누리는 자가 결코 우리들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피부로서 깨달은 순간이었다.

또한 율곡 이이가 두 당의 합당과 중재를 이루기 위해, 최초 붕당의 원인을 제공한 심의겸과 김효원의 외직을 청했을 때 선조는 그 방법이 옳다고 여겨 심의겸은 경기도 개성유수로, 김효원은 함경도 경흥부사로 파견보내지만, 동인들은 김효원의 함경도 경흥부사 파견에 대해, "경흥은 오랑캐 땅과 가까워서 선비가 기거할 곳이 아닙니다" 라는 이유를 들어 반대 상소를 올리게 된다. 이 상소 내용에서 보더라도 당시 사대부들이 얼마나 특권 의식에 젖어 체면만을 내세웠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사대부들의 특권 의식은 대동법 정책 시 태도를 보면 더 확실해진다. 납부의 의무를 단일화해서 백성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실시하려고 했던 대동법은 전국적으로 실행되는데 100여년이나 걸렸다. 대동법이 당연히 효율적인 정책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바로 양반 사대부 지주층들의 단순한 반대 때문이었다.

어느 사회, 어느 문화에서나 가진 자는 더 내놓으려 하지 않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경제적 신분제도 또한 존재하고 있다.
 

3. 군약신강(君弱臣强)의 조선

군약신강. - 군주의 힘은 약하고 신하의 힘은 강하다. - 라는 뜻의 사자성어는 특히 조선 후기를 나타내는 가장 적절한 단어였다.

명분을 중요시 여기는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리더쉽이 약해져 간 이유를 나는 이렇게 정리한다.

‘최초 서자 출신의 조선 왕 선조’

  선조는 최초 서자 출신 왕이었다. 후사가 없던 명종이 총애했던 조카였던 선조는 즉위 후 자신이 서얼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 큰 콤플렉스를 가진다. 신하들이 자신의 아들 중 그것도 서자 중에서도 둘째 출신인 광해군을 지목하는 것에 정색했었던 왕이기도 하다. 또한 전란을 수습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광해군 대신, 전란 이후 얻은 어린 왕비로부터 얻은 적자. 영창대군에 눈이 가기 시작한다. 자신의 컴플렉스가 자신의 아들 영창을 죽음으로 이르게 했었다는 것. 그리고 당쟁을 더 이끌었다는 것, 저자 이덕일 선생님이 선조에 대해 '주관이 뚜렷하지 않았던 대표적인 리더쉽의 케이스' 라고 사례를 드는 이유다.

출신이 좋지 않았던. 그리고 주관조차 뚜렷하지 않았던 군주 속에서 당쟁이 시작되었다.

 

 

‘권력을 약속받은 인조’

  서인들에게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인조가 '선택된다'. 인조는 자신이 왕에 오르기 위해 사대부들에게 권력의 반을 내놓는 도박을 실시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결코 백성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던 도박이었다.

사실 서인들에게 누가 왕이 되어야 하는 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지 선택에서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인조가 권력욕에 쿠데타를 일으킨 반정에 참여한 것이나 병자호란의 치욕으로 인해 자신의 재임기간 내내 치욕과 수치 속에서 세월을 보낸 점, 그리고 서인들과 결탁해 자신의 큰 아들 소현세자, 맏며느리 세자빈, 손자인 세손까지 죽여버린 점을 보면 얼마나 고집이 세고 권력에 눈이 멀었었는지 알게 된다.

인조와 서인은 결코 노선이 같지는 않았다. 인조는 단지 왕이 되기를 원했고, 서인들은 그런 인조를 이용해 정권을 다시 잡기만을 희망했다. 일종의 타협이었고, 자신들이 보는 노선에 교집합이 형성된 것 뿐이다. 인조반정과 인조의 27년의 재임기간으로 인해 서인들이 집권층으로 단단히 뿌리내리게 된다. 인조의 '인' 자가 어질 인(仁) 이라는 것 또한 참으로 역설적이다.

 

‘예측 못했던 절대군주(?)의 등장. 숙종’

  인조가 행해놓은 사대부들의 권력이양 치세(?) 덕분에 효종과 그의 아들 현종은 사대부들과의 타협과 호통 속에서 스트레스를 꽤나 받게 된다. 이덕일 선생님의 또 다른 저서.『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만 보더라도 효종과 현종이 사대부들과의 힘겨루기. 더 정확히 말해서 명분싸움이라는 얼마나 소비적인 싸움만을 벌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 상황이 아니었었더라면 조선의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효종의 아들 숙종은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군주 스타일이었다. 그는 어쩌면 현대 시대의 박정희나 전두환 대통령과 같은 군주였을지도 모른다. 천성 자체가 강단이 있었고, 전혀 나약한 타입이 아니였다. 그는 또한 타고난 당쟁가였고 준비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소위 싸이코 기질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자시절, 송시열과 그 일파들이 자신의 아버지 현종과 벌이는 논쟁 속에서 "내가 후에 왕이 된다면 송시열이란 자를 죽이겠다." 라고 엄포를 놓을 만큼 담도 컸고, 그 파벌싸움 속에서 자신 스스로 느낀 바도 컸을 것이다. 또한 각종 환국을 통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집권층을 바꿔버리는 과단성도 보였다. 실제로 송시열을 귀향보내다가 마음이 바뀌어 귀향가는 도중에 사약을 내려 버리는 모습에서, 당쟁에 뼈가 굵은 사대부 사이에서도 숙종이라는 군주가 절대 만만찮은 상대가 아니다 라고 느낀바가 컸을 것이다.

어쩌면 선조 이후 조선시대 후기 왕들 중에서는 절대 왕권을 유지하며 자신의 왕권을 후회없이 휘두른 유일한 군주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숙종의 절대왕권 또한 각 당파끼리의 싸움을 더 부추기는 결과를 낳아 당파 간의 갈등의 골은 더 커지게 된다.

 

‘개혁을 하기엔 너무 늦은 시기였을지도 모를 영조와 정조’

  조선 역사상 가장 긴 재위기간동안 왕위에 있었던 영조와 그의 손자 정조는 시기를 빨리 타고 났어야 할 왕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당파싸움으로 인해 왕권이 약해진 상태에서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더욱 현명하게 대처했을런지도 모른다.

사실 정조 이후, 한 가문의 세도정치로 들어가기 전까지 영.정조시대가 가장 당파싸움이 치열했고 왕권도 약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조와 정조는 현명한 군주였다. 개인적으로는 영조가 자신의 왕권의 안위를 자신의 아들의 죽음과 맞바꾼 것이라고 보였고, 또 그것은 영조가 실수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보인다. 더 나은 조선을 위해서 희생한 것이라고.

정조는 그런 시대 속에서 조선의 마지막 르네상스를 이끈 군주였다. 세자 시절 당쟁에 의해 죽을 고비를 세 차례나 넘기면서도 자신의 뜻을 피력시키기 위해 절대 강압적인 방법이 아닌 합리적인 군주의 표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정조가 조선시대 최대 전성기였다는 세종 시절에 태어났었다면 어떤 치세를 펼쳤을 지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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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혁명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6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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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대상이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다. 어떤 대상, 나의 반쪽을 만나느냐가 아니라, 내 안에 잠재하고 있던 욕망이 표면으로 솟구칠 때 사랑이라는 사건이 일어난다." 


[책 소개]

  2010년 6월. 나는 요즘 사랑을 한다. 사랑을 하니 무척이나 어렵다. 사랑한다고 머리로 생각할 수는 있어도 가슴속으론 아직도 갑작스레 뭉클하고 속으로 삼키기도 어려울 정도로 아릴 때도 있고, 여튼 정의내리기가 여간 쉽지 않은 것이 사랑이었다.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무척이나 서투른 사람이다. 사랑에 서투른 사람이 사랑을 시작하니 말 그대로 좌충우돌 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다. 나는 그래서 책을 꺼내들었다.『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고전 평론가 고미숙씨의 연륜에 비친 사랑의 진실한 모습을 알고 나 또한 건전한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고미숙 선생님은 사랑도 애써 배우고 공부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절대 사적인 것이 아니며 사랑으로써 발현되는 욕망이 모두 우주적, 사회적으로 영향을 주는데 어찌 그것을 배우려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담아두려고만 하는지 독자들에게 되물었다. 속으로 담아두는 것 자체가 무지의 소치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중년의 지식인, 인텔리들에게 나타나는 변태적 성 욕망은 젊은 시절, 그들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흔히 그들이 밥 벌어 먹고 사는 지식처럼 배우려 들지 않고 그저 그렇게 넘어간 데서 비롯된 욕망의 변질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에 대해 도대체 어찌 배워야 할까? 고미숙 선생님이 말하는 사랑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고미숙 선생님은 사랑에 대해 말하기 전, 먼저 우리 시대의 왜곡된 사랑에 대해 꼬집어 말했다. 일명,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오만과 편견에 대해.

  사는 대로 생각한다는 것. 예전의 나를 그대로 반영하는 듯 싶다. 좋지 않은 추억이 있던 어린 시절, 콤플렉스에 쌓여 흔히 드라마에서나 보일 법한 순수한 것인지 순진무구한 것인지도 모를 그런 아이였다. 사랑에 대해 경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내 주변의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이 하는 사랑을, 무지한 나는 그 ‘고유의 것’을 가감 없이 그대로 배우려 했고, 내 지난 젊은 시절. 같잖은, 연애 경험 같지도 않은 경험 속에서 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힘들어했다. 왜 힘들어했는지 생각해보았더라면 답은 빨리 나왔을지도 모르건만. 그리고 그 조언은 수십 가지였으나 흔히 말해 주도권을 가져와야 한다느니 이렇게 행동하면 여자들이 좋아한다느니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조언을 주는 이들 모두 사랑에 관해서는 자칭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인물들이었다. 고미숙 선생님의 사랑에 대한 오만과 편견 중에 인상 깊었던 통찰은 소위 ‘선수’라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재정의였다.

"이들은 연애를 스포츠 경기나 게임 같은 걸로 간주한다. 그래서 늘 경쟁모드로 임할뿐더러, 상대방을 제압하지 못해 안달복달한다."

-p.26, ‘선수’들의 ‘비열한 게임’ 중
 

"선수들의 특징은 자기가 연애와 인생살이에 관해 상당한 노하우를 확보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가장 멍청하고 무능한 존재들이다. 왜냐하면, 온갖 잔머리를 굴리느라 자신의 원초적 욕망을 다 거세시켜 버린 탓이다. 즉, 존재의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원초적 에너지를 완전 ‘침묵, 봉쇄’시켜야만 이따위 짓거리를 할 수 있다."
-p.28, ‘선수’들의 ‘비열한 게임’ 중


  20대라는 청춘 속에서 무방비의 자유 속에 어찌할 줄 모르던 20대 초반 시절. 흔히 존경해(?) 마지 않던 친구, 선후배들이 다시 보이는 순간이었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사랑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사랑에 관한 또 다른 오만과 편견 중 내 마음을 사로잡은 말은 바로 ‘시절인연’ 이었다. 나는 그동안 그 같잖은 연애 경험 같지도 않은 경험 속에서 참으로 많은 원망과 감정적 분노심 속에 지내왔다. 흔히 ‘두고 봐라’ 라는 식의 마음가짐 속에서 그 감정적 굴레를 벗어나고 있지를 못하고 있었다. 고미숙 선생님은 실연이나 또는 차이거나 하는 감정을 위로, 위안 받아봤자 우리에게 득 될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며 분명한 자기 성찰 없이는 또 다른 실패의 연속점에 서 있을 뿐이라고 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시절인연’ 이었다. 사계절 속 봄이 오고 가고, 또 여름이 오고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시절인연'. 즉 때마다 자연스레 찾아오는 인연이 있다는 것이었다. 차거나 차이거나에 관계없이 시절이 어긋나면 인연이 아닌 것일 뿐이고, 분명히 누구에게나 시절인연은 찾아온다는 것이다. 또한 사랑의 시작이 별 이유가 없었던 것처럼 인연이 끝나는 것에도 별 이유가 없다는 것. 굳이 말하자면 그저 시절인연이 끝난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무지하게 내 자신을 막연히 학대하며 내 인연 속 지나간 사람들을 감정적인 분노로 대해왔는가. 또한 내 자신을 애써 스스로 위안하며 ‘그년들은 벌 받을거야’ 라는 식의 내 자신에게 마음의 훈장을 주어왔었는가. 말마따나 그저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라고 생각하며 지나갔으면 그 뿐이었을 것을 말이다. 또한 얼마나 많이 바래왔으냐는 말이다. 대가성을 바라는 순간 딱 그만큼 잉여가 발생한다는 논리와 같은 말로 희생이 아닌 교환이자 거래로 변질되는 것만큼, 나는 얼마나 주는 만큼 받기 위한 마음가짐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았느냐는 말이다.

나는 깊이 반성했다.

내가 무지했던 것에 대해, 무지한만큼 세상이 말하는 대로 가감 없이 받아 들여만 왔던 것에 대해, 그리고 내 자신을 위안 삼고자 상대방을 내 감정적 분노심 속에 집어넣어버리는 나의 지독했던 이기심에 대해.

“사랑이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즉, 내가 어떻게 관계를 구성하느냐가 사랑의 내용과 형식 모두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 존재의 궤적을 만든다.”
-p.145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내가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 마음가짐을 같이 비교해본다. 책을 읽으며, 그리고 ‘제대로’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는 이 순간, 나는 크게 동감한다. 사랑은 대상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나 또한 지금 이 순간 제대로 사랑하며 매번 의식적으로 느꼈던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사랑하느냐는 무의식적으로 발동하는 호감의 문제이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사랑의 지속성과 연관된, 어떻게 사랑해 나갈 것이냐는 바로 내 자신의 문제. 내가 얼마나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느냐는 것이라는 것을 매번 가슴으로 느껴왔기 때문이다.

“요즘 커플들이 100일을 넘기기 어려운 것도 내적 충만감보다는 인정욕망에 휘둘리는 이런 식의 문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일 터.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면 할수록 나의 내부는 비어간다. 결국 연애를 할수록 몸으로부터의 소외가 일어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하는 셈!”
-p.77, '매뉴얼만 있으면, 만사 OK!' 중

“사랑이란, 상대를 내 것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가치가 보다 온전한 것으로 더욱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장벽이 없이 상대를 마주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p.189 , 「농담의 ‘애살론’」인용


  사랑하는 사람과 있는 순간, 행복한가? 라는 물음에 yes라고 말한다면, 다시 그 사람과 있을 때 내적 충만감이 가득 채워지는가를 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로 인해 그 사람이 온전히 빛난다고 느끼고, 그 사람으로 인해 내 자신의 내적 변화가 진정 찾아오고 있느냐는 말은, 사랑의 순간 떨림을 넘어 사랑의 지속성으로 인한 그윽한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느냐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얻은 최고의 교훈이었다.
 


또한 인정해야 한다. 사랑은 변한다는 것을. 상황과 특성에 따라 한결같아야 하는 사랑의 모습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사랑은 변해간다. 처음 이 사람을 만났을 때 가슴 떨림과 시간이 지난 후 이 사람을 만날 때의 가슴 떨림은 분명 다르다. 가슴의 떨림이 적고 많고의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다. 물론 좋고 나쁘고의 질의 문제가 아니라 둘 다 긍정적인 방향에서의 다른 느낌. 새로운 떨림이다. 물론 이런 새로운 떨림. 그윽한 행복감이 계속 오도록 해야 한다면 사랑의 지속성을 계속하기 위한 나 자신의 문제에 의식적으로 부딪혀야 한다는 것도 함께 덧붙이면서.

     2010년 6월. 나는 요즘 사랑을 한다. 사랑이란 어쩌면 누군가의 조언이 아닌, 자신 스스로가 온전히 생각하고 느끼는 것. 그것이 곧 사랑이 아닐까? 사랑에 대해 갈구하는 모든 청춘들에게, 시대가 말하는 사랑이 아닌 자신의 사랑을 위한 모든 청춘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고미숙 선생님께서 동양고전평론가인만큼 사랑에 대한 시조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옛날이든 오늘날이든 사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항상 같았구나 라는 통찰을 주는 조선시대의 짤막한 시조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부터 보이는 것은 예전과는 같이 않더라.

- 조선 정조시대. 문인 유한전의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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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만큼 성공한다 - 김정운교수가 제안하는 주5일시대 일과 놀이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1세기 먹고 살만큼 발전된 대한민국 사회에서 나타난 일과 여가와의 관계를 심리학적으로 풀어내고 학문적으로 대안을 제시한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인의 생각을 바꾸고 우리들의 삶과 가치관에 경종을 울리는 꽤 인상 깊은 책으로 기억하려고 한다. 이런 책들은 내 기억 속에 우석훈 씨의 ‘88만원 세대’, 구본형 씨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 등 몇 권 되지 않는다. 인상 깊었다는 것은 읽는 내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깊이 공감했다는 뜻이다.
 


여는 이야기에서 유태인의 교육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의 교육 사상은 ‘열심히 노력하라’ 가 아닌 ‘우선 잘 쉬어라’ 라는 것이다. 안식년의 의미는 6년을 일했으면 1년 정도는 푹 쉬어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일주일은 하루는 쉬어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게다가 일요일은 일주일의 처음에 있다. ‘일단’ 쉬면서 일의 계획을 창조적으로 세우라는 의미다.

  저자는 문화 여가심리학 관점에서 대한민국 사회를 바라보고 있다. 대한민국이 IMF를 당한 이유도, GDP 1만 달러를 넘지 못하는 이유도, 그저 노는 문화가 폭탄주 문화, 고스톱 문화 등 유흥 문화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놀 줄 모르는 우리들, 엄밀히 말하면 386세대 때문이라고 말한다. 잘못된 노는 문화. 즉 폭탄주 문화, 고스톱 문화는 행복하면 안 될것 같고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우리의 인생관에서 비롯된 어긋난 놀이 문화이고 놀고 싶은 우리들의 욕구가 비정상적으로 폭발한 현상이라고 또한 덧붙인다. 사실 이 부분에서 행복하면 안될 것 같다는 말, 뭔가 더 고생해야 낙이 올 것 같다는 우리 부모 세대의 심리가 혹 할아버지 세대들이 일제 식민지 지배를 통해 얻어진 식민지 국민의 피해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그렇다면 일의 정의란 무엇일까? 일의 정의부터 다시 재정의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여지껏 “일이란 내가 자발적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 그저 남의 돈을 따 먹는 행위였을 뿐이다” 라고 인식해왔다. “그러다 보니 더럽고 아니꼽지만 참고 견뎌야만 하는 것이 곧 일이었다” 라고 저자는 말하며 “일의 반대말은 여가가 아니라 바로 나태” 라고 재정의했다.
 


그리고 일의 성과를 내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진다. 책에서 인용한 서커스에서 점프를 하는 돌고래에게 보상은 물고기 한 마리이다. 하지만 보상은 점점 커지기 마련이고 왠만한 보상 가지고서는 받는 사람의 만족도도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만약 일을 자기 의지대로 행하고 재미있고 행복하게 해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보상’ 이 아닌 ‘동기부여’ 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고 한다. 결국 놀이는 목적 추구가 아닌 과정을 즐기는 수단이며, 과정을 즐기는 사람일수록 더욱 유연하게 사고하며 다양한 시도 또한 하게 된다.
 

 

  저자는 또한 놀이는 창의성과 동의어라고 비유한다. 그리고 놀이는 정서공유를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놀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이의 기분을 잘 파악하는 것은 바로 그 이유에서라고 한다. 그러면 놀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놀이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재미’ 라고 단순히 언급한다. 대단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 재미있으면 되는 사소한 재미, 날 좋은 날 노천 카페에서 차 한잔에 책 한권을 읽다가 꾸벅꾸벅 조는 것과 같은 것이 바로 사소한 즐거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사소한 재미를 정말 사소하게 받아들이며 재미와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보니 새해마다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극기와 의지의 표현으로 가득차게 된 것은 아닐까? 저자가 새해마다 극기와 인내 대신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아가겠다고 목표를 세워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이야기. 나중에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행복해야 하고 지금 행복해야 나중에 성공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서 나조차도 행복하게 살곤 있지만 무의식적이고도 편협한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 반성을 하게 되었다.
 

 

  다니엘 카네만의 ‘하루의 재구성’ 이라는 논문이 2002년 카네만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할 수 있도록 공헌했다는 것을 이 책에서 알게 되었다. “나의 하루 중에서 즐거운 때가 많아야 행복하다고 하는 것이다” 라는 카네만의 말에 저자 김정운 씨는 우리가 얼마나 즐겁게 살고 있질 못하다는 반증이냐고 강조한다. 아마도 이 구절은 자신이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내용들을 가장 짧고 단순하게 요약해주는 한 문장일 것이다.

 

 

우리는 하루 중 즐거운 때가 얼마나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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